앙스타!

도와줘요 히어로!

“도움을 구하는 이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는 것이 히어로의 도리!”

모리사와는 크게 외치며 UFO 캐쳐에 동전을 밀어넣었다. 그런 모리사와의 등 뒤에서 타카미네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도움 같은 거 구한 적 없는데요.”

“모리사와 들었어? 필요 없다잖아.”

타카미네의 말에 세나가 덧붙였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에도 모리사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리사와는.

“힉…….”

오히려 세나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타카미네 쪽이었다. 불쌍하게도. 타카미네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드는 것이 하카제의 눈에 들었다. 학교 외부의 게임센터에서, 그저 면식만 있는 정도의 1학년 후배와 세나가 말을 섞게 된 것은 전부 모리사와 때문이었다.

세나와 하카제는 모리사와와 함께 게임센터를 들렀다. 평소라면 유닛활동이나 부활동이 먼저였기에 아주 드물게 시간이 맞았다. 같은 반이기는 해도 그렇게 친한 편도 아니었고 어쩌다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는지는 게임센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세나는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이었고 하카제는 시간 낭비는 좋아해도 그 상대를 고르는 인간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리사와 치아키가 지나치게 친한 척을 해온 탓이라면 그게 맞았다.

유야무야 휩쓸려 게임센터에 도착한 것이 방금 전이다. 이 곳에서 우연히 모리사와의 후배인 타카미네를 만났다. 아주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테다. 타카미네는 모리사와와 같은 유닛에 같은 부활동을 하고 있다. 그도 시간이 남아돌아 게임센터로 발을 옮겼던 것이겠지.

타카미네는 UFO 캐쳐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인형을 뽑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다. 새로 들어온 인형은 미니라라는 이름의 인형이랬는데, 유리벽 안에는 표정이 다른 서너 종류의 미니라 인형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미니라라는 이름에 짚이는 구석이 있어, 미니라가 설마 그 미니라냐고 하니 잘 모르겠단다.

그야 그랬다. 최근의 분위기에 편승한 것인지 제법 귀여운 디자인이 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타카미네 소년의 건투를 빌며 다른 게임기로 떠날 셈이었다.

그런데 모리사와가 그 앞에서, 제가 미니라 인형을 뽑아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물론 모리사와는 센스가 없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장본인인 모리사와도 저의 타고난 센스를 믿었던 것이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UFO 캐쳐도 그의 후배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타카미네가 원하는 것은 잠자는 미니라 인형이었다. 개수도 적은 것 같고, 제일 잘 보이는 녀석도 다른 미니라들 아래에 배치가 되어 있다. 한두 번의 동전 투입으로는 절대 뽑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유리창을 짚고 안쪽의 인형들을 살피는 모리사와의 곁으로 타카미네가 한 걸음 다가섰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세나와 하카제를 신경쓰고 있는 것이리라.

“그냥 가면 안 돼여? 서,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저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인데? 완전, 짜증나.”

나왔다. 세나 이즈미 특유의 짜증스러운 입버릇에 타카미네가 바들바들 몸을 떨며 세나를 돌아보았다.

“흐잇……! 저, 저는 진짜 필요 없는데 이 사람이……!”

“너한테 한 말 아니니까 쓸데없이 겁먹지 마. 한심해보이니까 고개 숙이지 마. 허리 펴. 목 움츠리지 마.”

“네, 네에…….”

말쑥한 얼굴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혀가 꼬인 대답이었다. 하카제는 순간 웃어버릴 뻔 했지만 잔뜩 긴장한 1학년에게 이 이상의 위기감을 주지 않기 위해 겨우 참아내었다. 자칫하면 딸꾹질까지 시작해버릴 기세다.

타카미네라는 아이가 저토록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해는 갔다. 세나 이즈미는 1학년 후배가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예민한 분위기의 사내다. 긴장해버리는 것도 별 수 없는 일이다. 세나는 정말로, 별 생각 없이 한 말인 것 같지만.

모리사와는 계속해서 실패했다. 세나는 지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고 하카제는 그런 세나에게 그를 기다려주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게 세나 나름의 상냥함이라는 것 정도는 하카제도 알았던 탓이다.

확실히 모리사와가 UFO 캐쳐를 엄청나게 못한다든지 하는, 모리사와에서 원인을 찾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모리사와의 후배가 원하는 인형이 레어한 종류의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잠자는 미니라 인형은 잡기 어려운 곳마다 위치해 있다. 웃거나 윙크하고 있는 수많은 미니라 인형의 밑에 깔린 채 잠들어있는 것이, 이제는 조금 기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쳐내어 없애는 식으로 모리사와는 천천히, 잠자는 미니라 인형을 공략하고 있었다. 모리사와 뿐만 아니라 타카미네 역시도, UFO 캐쳐의 움직임에 집중한 채다. 그리고 결국에는.

“앗……!”

“우오옷!”

덜컹이는 소음과 함께 타겟으로 잡았던 인형이 출구로 떨어졌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세나도 타카미네와 모리사와의 탄성에 고개를 들었다. 인형을 꺼내 든 것은 모리사와였다. 후배를 돌아보는 모리사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난다. 타카미네는 그에 비하면 조금은 소극적으로 미니라 인형을 받아들었다. 물론 발갛게 달아오른 뺨은 그의 흥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에 도달했다면 좋았겠지만.

인형을 바라보던 하카제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 애, 윙크하고 있는데?”

“엣…….”

하카제의 지적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미니라의 얼굴을 살폈다. 다른 미니라에 가려서 안 보였던 쪽의 눈이, 확실히 뜨여져 있었다. 모리사와는 멍하니 선 채 미니라 인형을 바라보는 타카미네와는 달리 극적인 모션을 취하며 주저앉았다.

“크으으읏……. 미안하다, 타카미네! 내가 제대로 살폈어야 했는데……!”

구구절절 이어지는 사과에 타카미네는 가만히 모리사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얌전한 얼굴은 여느 때와 달리 우울해보이는 것도 아닌 무덤덤한 표정이다. 애초에 모리사와가 미안할 이유도 없다. 구태여 제가 제 돈을 써가며 뽑아주겠다고 들러붙은 것이다. 굳이 지금 상황에서 마음을 쓸 셈이라면 타카미네가 아니라 옆에서 소중한 시간을 사내자식 때문에 낭비한 세나와 하카제에게 사과해야 한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지만.

타카미네 역시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셋이라면 누구나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신경쓰지 않는 척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여전히 넌더리를 내는 듯한 세나의 표정 역시 분명 그 때문이다. 모리사와는 대체 어디까지를 자신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릴 셈인 걸까. 타카미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그만해여, 이제 됐으니까.”

그건 모리사와를 저지하는 말이었다.

“이걸로 만족할게요. 이 아이도 싫지는 않구.”

타카미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인형을 고쳐 들었다. 윙크를 하는 미니라 인형의 얼굴이 모리사와를 향했다. 모리사와는 멍하니 미니라 인형과 타카미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상황파악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모리사와를 앞에 둔 채 타카미네는 어떤 말을 망설이는 것처럼 입을 벙긋대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것처럼 시선을 떨어트리고 마는 것이다. 이어나가는 목소리에는 묘하게 맥이 없다. 그러니 그게 이 아이가 하려던 말은 아니었던 것이지 싶었다.

“그럼, 전 갈게여.”

타카미네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난 다음에도 몇 번인가 유리상자 안을 흘끔거렸지만 결국 게임센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알았다! 내일 보자!”

그렇게 후배를 전송한 모리사와는 타카미네가 게임센터에서 나가고, 자동문이 닫히는 동시에 세나와 하카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모리사와와 눈이 마주친 순간, 흐릿하지만 명확한 예감으로 두 사람은 시선을 피했다. 모리사와는 말보다 확실한 외면에도 굴하지 않고 크게 소리치며 두 손을 모았다.

“……우오오! 세나! 하카제!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게 힘을 모아다오!”

모리사와의 말은 마치 히어로가 하는 명대사처럼 게임센터 안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도움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거겠지.”

세나의 말대로다. 모리사와가 뜨끔한 표정을 짓고 말을 망설이면 세나는 질린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리사와와는 달리 망설이지도 않고 지갑을 꺼내 동전을 내주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세나는 무른 사람이 맞았다.

“바로 갚으라고.”

“알았다!”

모리사와는 동전을 받아들고 미니라 인형이 든 UFO 캐쳐로 향했다. 정말 질리지도 않는다. 한숨을 내쉰 하카제는 문득 게임센터의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타카미네가 그 너머에 아직 남아있었다. 사내자식이고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니 그리 관심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린 것이 의문스러워 결국은 시선이 멈추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상기된 뺨을 하고 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는 모리사와의 앞에서는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표정이다. 모리사와를 대하는 내내 뚱하고 무심했던 얼굴을 떠올린다. 상기된 뺨과 흥분으로 들뜬 눈동자는 레어 인형을 향했던 것이 분명했다.

분명 그랬는데.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의 옆모습은 마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만 같아서.

하카제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타카미네 미도리가 모리사와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든지, 이 뻔한 이면을 눈치채지 못하는 모리사와 치아키가 한심하다든지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원래 남이 하는 연애는 대충 잡아 열에 아홉은 꼴불견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카제는 결국 턱을 문지르며 모리사와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저기, 모릿치.”

“잠깐 기다려다오! 지금이 승부처다!”

하지만 모리사와 치아키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 대신, 하카제만이 곁눈질로 유리문 너머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미니라 인형의 보드라운 뒤통수에 슬며시 입술을 묻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정말 질린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소중한 후배는 윙크하는 미니라 인형이 아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가늘게 한 하카제가 무심하게 속삭였다.

“그거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잠자는 미니라 인형을 뽑아 타카미네의 웃는 얼굴을 되찾을 때까지, 내게 포기란 있을 수 없단 말이다!”

겨우 뽑기 인형따위에 뭘 제 사활까지 걸고 있는지 모르겠다. 멍청하고 눈치 없는 뒷모습에 하카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목을 울렸다.

“그러니까 이미…… 하아.”

한숨을 내쉰 하카제는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남의 연애사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끼어들어봐야 결국 이쪽만 귀찮아질 뿐이다. 하카제는 턱을 괸 채, 두 번째 동전을 기계에 집어넣는 모리사와의 등을 향해 말했다.

“모릿치 말야, 눈치 없다는 말 자주 듣지?”

“으으으음?”

모리사와가 그제야 몸을 돌렸다. 선배가 뽑아준 인형에 마음을 빼앗긴 후배는 유리창 너머로도 보이지 않게 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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