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Sugar the Pill

오메가버스

모리사와 선배가 유닛 연습에 빠졌다. 우리는 대장의 부재에 조금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테토라 군도 이제 대장 대리의 일이 몸에 익었으니 유닛 연습은 별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아마도 선배는 보건실에 틀어박혔을 테다. 연습이 끝난 뒤에 혼자 보건실로 향하기로 마음먹는다.

모리사와 선배가 결석한 이유야 뻔했다. 누군가를 대동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센고쿠 군이나 테토라 군은 그의 사정을 모르는 것 같지만 신카이 선배라면 분명 알고 있을 테다. 나 역시 알고 있고 지금 모리사와 선배를 찾아가려 한다는 것을 신카이 선배에게 숨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몇 번이나 신카이 선배 쪽을 살폈지만 선배는 굳이 나를 붙잡거나 타이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마음이 변할세라 걸음을 재촉했다.

신카이 선배는 나를 붙잡지도 따라오지도 않았다. 어이없게도 그 사실에 안도했다. 아마도 선배가 있을 보건실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보건실에서 나오는 사가미 선생님과 마주쳤다. 그는 담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담배냄새는 나지 않았다. 담배냄새 대신 희미히게 풍기는 향기가 달콤하다. 그 냄새에 문득 어지럼증을 느낀 나는 조금 뒤늦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가미 선생님이 먼저 물었다.

“어, 모리사와를 만나러 온 거냐?”

“아, 네.”

“흠……. 넌 베타였지.”

확정에 가까운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수염이 까끌한 턱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나는 선배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그 녀석,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말이다. 쪽팔리는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 거야. 특히 네게는 더.”

“괜찮아요, 저는.”

나는 바로 사가미 선생님의 말을 부정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몇 번 도와줬었거든요.”

“……그러냐.”

내가 그렇게 덧붙이면 그는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더 보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가요?”

“하아…….”

사가미 선생님의 의도는 알고 있다. 모리사와 선배는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선배를 연기하고 싶어한다. 물론 그는 실제로도 늠름하고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그런 모습’은 그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일 테다.

사가미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만류하지 않았다. 급한 일이 있으면 직원실을 찾아오라기에 알겠다고 했다. 전부 빈 말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뭉쳐있던 공기가 터져나오듯 문틈으로 달착지근하게 스며나오는 냄새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가미 선생님에게도 옮아붙은 그 냄새다.

“선배? 괜찮아여?”

“타카, 미네……?”

내가 다가가자 선배는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소리쳤다. 어깨가 떨리는 것이 전부 눈에 보일 정도다.

“읏! 가까이 오지 마라! 냄새, 나니까…….”

“알잖아여. 나 그런 거 잘 모르는 거.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고.”

거짓말이다. 사실은 선배의 냄새에 사정하기 직전이다. 이건 베타라면 결코 알지 못할 냄새다. 즉, 오메가의 냄새라는 거다.

모리사와 선배는 오메가다. 그건 성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성징과 비슷한 특징조차 없다. 신체나 성정이 강하거나 무른 것은 실제 그 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가 오메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더라.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픈 모양이라고 막연한 것을 생각했다. 그의 달콤한 냄새와 붉어진 얼굴을 기억한다. 선배는 숨을 몰아쉬며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선배는 약을 달라고 했고 선배의 약은 그의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선배는 아이돌이었고 아이돌이란 약 시간을 그렇게 딱딱 맞출 수 있는 직업은 못 되었다. 사가미 선생님에게는 사실만을 말했다. 나는 그 뒤로도 한두 번 선배를 도와줬고 그 때마다 희미하게 풍기던 달콤한 냄새에는 의문을 품었다.

“발현이 늦어서 그런 건가?”

선배에게서 풍기는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사가미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지만 오류를 부정한 적도 없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나 역시 베타가 아님을 의미한다.

나는 알파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시기에만 해도 그럴 기미가 없었기에 뻔히 베타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랐는데도 대부분 중학생 즈음이면 발현하는 와중에 성인 남자와도 눈높이가 비슷해질 때까지 베타로 컸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 생각은 틀렸다. 내 키는 유메노사키에 입학했을 당시보다 더 커졌고 더 이상 베타도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사가미 선생님이 나를 베타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학생에게 별 관심이 없는 탓은 아니다. 오메가는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생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알파는 발정난 오메가만 만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저기에 등록된 수많은 신상정보를 구태여 고치는 데에는 큰 수고가 필요했고 나는 그걸 감당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이다. 내가 발정한 오메가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약은 먹었어여?”

나는 평온을 가장해 물었다.

“……아니.”

“사가미 선생님이 줬다고 하던데.”

“그게…… 바닥에 떨어져서…….”

선배의 말에 나는 침대 밑의 바닥을 살폈다. 떨어진 물건들이 으레 사라지듯 약은 침대 밑에는 없다. 어디 서랍장 아래로 굴러간 모양이지 싶어 몸을 일으키며 한심해하는 눈초리로 선배를 바라보았다.

“정말, 조심 좀 해여.”

“응…….”

선배는 희미하게 대답했다. 나는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내가 안 왔으면 어쩔 셈이었어여.”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기도 하니까…….”

선배는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잠을 설치지 않고 제대로 잠들었다 치자. 보건실의 문은 열려있었고 선배의 몸에서는 아주 끈적한 냄새가 났다. 만약 이 문을 연 것이 내가 아니라 다른 알파였다면. 아니, 그렇게 돌아서 갈 필요도 없다. 나 역시 알파니까. 내가 만약 선배를 범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선배가 자고 일어난 뒤 비로소 괜찮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만다. 나는 선배도 알고 있을 불안요소들에 대해 구태여 이야기하는 대신 어울리지도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거기선 고맙다고 해야죠.”

“하아…….”

선배가 멍하니 숨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의 생각은 급류를 탄다. 지금이라면 제대로, 선배를 임신시킬 수 있다. 내가 선배의 안에서 사정에 이를 때까지 선배의 몸은 가라앉지 않을 테다. 잘은 몰라도 그건 쾌감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일일 테다. 그럼에도 그 몸은 애초부터 그러도록 만들어진 몸이다. 얄궂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선배를 안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번식욕 따위의 짐승의 본능에 가까운 욕망으로 선배를 취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나의 욕망이 아니다. 알파의 욕망이다. 지금의 나는 선배가 아니라 그저 발정하는 오메가를 집어삼키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선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려요.”

“읏, 후우…….”

옷자락이 침대시트와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선배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을 것이다. 뒤통수가 뜨겁다. 그대로 녹아내릴 것만 같다. 찬장을 여는 손에 땀이 배어난다. 긴장한 것이 들통나지 않도록 조금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선배를 도울 때마다 찾았던 약은 보이지 않는다. 선배의 달뜬 신음소리와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애써 밀어내며 나는 익숙한 약통을 집어들었다. 알약이 부딪치는 소리가 섞인다. 나는 일부러 목을 울린다. 살짝, 목소리가 떨렸다.

“아, 찾았어여…….”

“흑, 으읏……. 빨리, 타카미네…….”

선배는 무엇을 재촉하는 걸까.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걸까. 답은 정해져있다. 나는 익숙하게 약통을 열었다. 선배가 원하는 것은 안정이다. 내가 다시 내밀 약을 원하는 것이다. 단 두 알의 약으로 선배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의 행동이 조금 굼떠졌다. 곁눈질로 살핀 선배는 할딱대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타카미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문장도 못 될 짧은 단어들의 울림은 달착지근하게 들러붙어 뒷머리를 당긴다. 어쩌면 선배는 나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복 바지 안쪽의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상상한다. 습하고 뜨거운 몸뚱이를 상상한다. 뜨겁게 달아올라 나를 원하는 내부를 상상한다. 지금이라면 전부 내 눈 앞에 드러내게 만들 수 있다.

곤란하다. 선배가 그런 것을 원할 리가 없을 뿐더러, 지금의 선배가 만약 그런 것을 원하고 있더라도 나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선배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나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선배는 기꺼이 나를 받아들일 것이다. 호르몬이란 이름의 미약은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 선배는 타카미네 미도리가 아니라 알파인 나를 원할 것이다. 오메가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알파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괜찮았다. 이 열을 해소할 수 있게 해줄 상대라면. 우리의 몸은 그저 번식을 위해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싫었다. 선배가 알파가 아닌 나를, 타카미네 미도리라는 개체를 원해주길 바랐다. 동시에 선배를 원하는 나의 마음 역시 오메가가 내뿜는 페로몬에 의한 착각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안 된다. 호흡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 가슴께에 모든 이산화탄소가 뭉쳐 남아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긁어내듯 한숨을 내쉬고 손바닥 위로 두 개의 알약을 덜어냈다. 약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선배의 어깨를 쥐고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향하게 돌리면 선배의 몽롱한 시선이 툭 떨어지듯 나를 향한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달콤한 숨결이 샌다. 속이 울렁거린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이대로 이 사람을 안고 싶다. 범한다면 지금이다. 지금 당장 이 오메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네여.”

달뜬 몸의 오메가를 향하는 수많은 추잡한 생각들을 혀 밑에 구겨넣으며 나는 선배의 입에 알약을 털어넣었다. 이내 선배의 목울대가 도드라진다. 이걸로 끝이다. 선배는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 것이며 짧은 수면에서 깨어난 뒤에는 알파를 원하는 오메가가 아니라 후배를 아끼는 모리사와 치아키로서 나를 대할 것이다. 선배는 몸을 고쳐 누우며 희미하게 한숨을 쉬었다. 약이 돌지 않은 숨결은 여전히 덥고 달착지근하다. 반사적으로 숨을 참은 나는 희미하게 날숨을 토하고 선배의 젖은 이마를 쓸어넘겨주며 속삭였다.

“선배는 약이 잘 받잖아요.”

“으응…….”

끔찍한 본능을 약으로 잠재울 수 있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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