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사랑과 기침

하나하키병 소재

“가미 씨 감기 오래 가네~”

등굣길에 만난 아케호시가 코를 훌쩍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보. 이건 화분증이다. 감기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초겨울의 화분증이라니 말이 안 되는 데에도 정도가 있다. 나는 한 번 더, 코를 마시고 입을 가린 마스크만 당겨 정돈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내내 앓았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기침이 나오는 것은 감기의 특성이었기에 나도 처음에는 감기라고 생각했고 잠시면 지나갈 열병으로 알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좀체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언데드의 활동에도 지장이 생겼다. 그 쯤 되니 흡혈귀 자식도 걱정을 다 했다. 나를 걱정했는지 아니면 언데드를 걱정했는지,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에게 걱정을 끼치게 된 것이 속상해 시선을 떨구고 한동안은 쓸 일이 없을 기타만 조율했다. 기타를 만지며 훌쩍대고 있으려니, 어느새 다가온 그가 차가운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이마를 짚어주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순수하게 걱정하는 눈동자가 내게 향해있다. 그 차가운 손과 매서운 눈매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다정하고 상냥한 미소에는.

“이상한 일이로다. 열은 없는 모양이니 말이다.”

어째 토기가 올라왔다. 그가 손을 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나는 그를 뿌리치고 부실을 뛰쳐나갔다. 언데드의 연습을 위해서였는지 경음부실로 들어오려던 하카제 선배가 산기니 뭐니 했지만 화를 낼 여력도 없이 나는 그저 뛰어야 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꽃을 토했다. 무엇이 나올지 몰랐으니 일단 변기로 향했는데, 그러다보니 화장실이 아무래도 굉장한 꼴이 되었다. 변기를 가득 채운 눈처럼 하얀 꽃에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달콤한 향기가 났다. 이름은 몰랐다. 꽃을 멀리하고 살았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꽃가루에 먼저 질렸던 탓인데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예쁘고 향기가 좋아도 제 입으로 뱉고 나면 야속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오랜 감기라고 알았던 것은 실제 화분증이었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화분증은 이제 토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꽃이 내 구석구석까지 들어찼던 까닭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비현실적인 사건의 인과를 어쩐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꽃은 나의 마음이다.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아, 나는 이렇게나 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변기에 쌓인 꽃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전부 화분증 탓이었다.

그 날 이후로 코와 입을 감싼 마스크의 이유가 변했다. 전염을 막거나 방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꽃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물론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꽃송이를 입에 물고 있거나 억지로 삼키는 것은 아주 역겹고 고된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쿠마 선배를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부실에 가지 않았다. 아도니스도 아주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었고 사쿠마 선배도 그렇게 거부당했다. 자신을 거절하는 사람을 구태여 찾아 들러붙을 위인이 아니다. 그게 속상하기는 했다.

사쿠마 선배에게 있어 오오가미 코가란 결국 그 정도의 대상이었다는 거겠지. 오면 막지 않고 들러붙으면 들러붙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부실을 뛰쳐나갔더라도, 그에게 그것은 별 것 아닌 일이었던 거다. 만나면 안 된다고, 이 마음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이 기침은 멎을 수가 없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매일 밤, 혼자가 되어서야 삼키지 않아도 되는 꽃송이를 무수히 뱉으며 나는 누구나가 뱃속에 꽃을 가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꽃을 일부러 천칭에 달지 않아도 마음의 무게는 이리 차이나는 것을, 누구나가 꽃을 뱉었다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목적지가 같다 보니 결국은 동행이 되고 만다. 나와 걸음을 나란히 한 채 학교를 향해 걷던 아케호시가 문득 코를 킁킁대었다.

“그런데 가미 씨, 좋은 냄새 나는 것 같아.”

“비, 비켜…….”

“향수? 아니아니, 꽃향기인가?”

아케호시의 그 말에 눈 앞이 아찔해졌다. 이 자식, 하여튼 멍청한 주제에 눈치가 빠르다……! 내게서 나는 것이 꽃의 향기라는 걸 확신한 아케호시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가미 씨한테 꽃향기라니, 안 어울려~”

“이, 자식!”

아케호시 녀석을 한 대 치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분노로 거칠어진 숨이 목을 스쳐, 이내는 기침이 되었다. 나는 콜록거리며 어깨를 웅크렸다. 기침이 쉬이 멎질 않았다. 나는 근지러운 부분을 찾듯 목도리를 움켜쥐고 목도리 아래로 드러나는 목덜미를 할퀴다시피 긁었다.

“가, 가미 씨…….”

안 된다. 이걸로는 무리다. 꽃가루를 긁어낼 수 없다. 몇 번이나 연달아 기침을 토해낸 다음에야 기침은 멎었다. 몇 송이의 꽃이 이에 닿았고 다행이도 색색거리는 숨만 마스크 밖으로 흩어졌다. 찬 공기 사이로 하얀 숨이 퍼졌다. 겨우 꽃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케호시가 당황한 듯 내 팔을 움켜쥐었다.

“가미 씨!”

“소리 지르지 마……. 시끄러워…….”

“양호실로 가자!”

양호실에 간다고 나을 일이 아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거부했지만 아케호시는 무작정 내 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내가 약한 건 아니었지만 아케호시는 만만찮은 상대였다. 교실로도 양호실로도 가지 못한 채 우리는 한참을 대치 상태로 복도에 있었다.

“괜찮, 다고 하잖아!”

“내 말 좀 들어! 가미 씨~!”

아케호시 주제에 끈질기다! 다시 한 번 뭐라도 소리치려던 찰나였다.

“으음? 멍멍이가 몸이 안 좋은 게냐?”

“아, 사쿠마 선배!”

절망적이다. 왜 이 자식이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누구나 멍청한 별명으로 부르는 아케호시 자식이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부르는 인간이었다. 하필이면 그가 내 편이 아니라는 것도 큰 문제였다. 마치 나의 신병을 양도하기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로 나는 사쿠마 레이에게 넘겨졌고 아케호시에게 양호실로 끌려가지 않게 된 대신 사쿠마 레이에게 이끌려 경음부 부실로 가게 되었다. 당연히 아케호시에게 하던 것보다 더욱 심하게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아케호시가 하던 것보다 더욱 강하게 나를 잡아 끌었다.

그에게 억지로 이끌려 도착한 경음부실은 텅 비어있었다. 아직 수업도 시작하기 전이다. 아오이 형제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를 제 관에 억지로 눕히고 내 체온을 확인했다. 차가운 손이 조심스레 닿았다. 목구멍을 타고 솟구치는 꽃향기를 필사적으로 눌러 삼켰다.

“여전히 열은 없는 게로구나.”

마스크도 쓴 데다 콧물이 가득 찬 탓에 후각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사쿠마 레이의 관에서는 분명 그의 냄새가 풍겼다. 더더욱 곤란해진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의 얼굴을 외면하려 옆으로 돌아누웠다.

“미안하구나. 억지로 데려와서…….”

미안할 일이면 처음부터 데려오지를 말라고. 나는 투덜댈 생각으로 입을 벙긋대었지만 이내 토기가 올라왔기 때문에 말과 함께 삼켰다. 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기고 혼잣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몸은, 네가 무척 걱정이 되었단다.”

그는 보다 깊이 몸을 숙였고 나를 똑바로 눕혔다. 차갑고 조심스러운 손길은 내 목을 꽉 둘렀던 목도리를 풀고 이내 입을 가렸던 마스크를 제했다. 그러면 사쿠마 레이의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그 냄새에 무심코 토한 한숨에서는 꽃향기가 짙게 풍겼다. 어느새 또 기대해버린 거다. 그 냉정하고 무심한 남자가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니까, 나 같은 걸 걱정해주니까, 내 기침은 결코 멎을 수 없는 거다. 그는 내 목도리와 마스크를 정리해 의자에 걸쳐두고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순간의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기침이 진정될 때 까지만 여기에 있으려무나. 이 몸은 자리를 피해 줄 터이니 걱정은 말거라.”

언제나 경음부실에 있는 사람이다. 자리를 피해준다느니 이해가 안 간다. 나를 배려하는 것이라면 틀렸다. 나는 배려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었다. 사쿠마 레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 생각은 틀렸다. 그를 밀어냈던 건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사쿠마 레이가 생각하는 그런 게 결코 아니었단 말이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깐…….”

사쿠마 레이를 멈춰세우려던 순간이었다. 멈춰세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는 그와 마주한 순간 나는 후회했다.

“이, 젠장……!”

아, 안 된다. 뱉어버리고 만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는데, 하물며 이건 사랑 탓에 나오는 기침이다. 아무래도 감출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목에서부터 날리는 꽃가루와 곧 역류할 달콤한 향기가 얄궂다. 기침이 나왔다. 꽃이 나왔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렸지만 그 정도로 기침은 멈추지를 않았다.

“코가야, 그건…….”

쏟아져나오는 꽃의 기침 사이로 그가 멍하니 목을 울렸다. 아무리 사쿠마 레이라고 해도 이 비현실적인 현상에 놀라기는 했던 모양이다.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 나를 향했다. 차마 손바닥으로 전부 받아내지 못한 하얀 꽃송이가 붉은 천 위로 떨어졌다. 꽃이 전부 입 밖으로 튀어나온 탓에 눈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꽃이 섞인 기침을 토했고 더욱 짙어지는 꽃가루에 눈물을 흘렸다. 전부, 화분증 탓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레이코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