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코가] 여름 감기

즈! 시점

- 레이코가가 맞나 싶지만 레이코가 맞습니다. 아마도……. 물론 사귀고 있진 않습니다.

- 코가의 자취방은 발코니가 따로 있는 원룸을 생각하고 썼습니다. 이미지 참고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멍멍 군은 멍멍 군인데 왜 여름 감기에 걸려버린 걸까? 코가는 '이 몸은 개가 아니라고!'라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을 몸소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카오루는 혀를 차며 3층의 경음부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 코가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렸다. 지독한 열감기였다.

 

카오루는 유닛 후배인 코가에게 백사장의 모래알 만큼의 관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었다. 가든테라스에서 안즈와 2학년의 후배들 - 미안, 이름은 모르겠어 - 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끼어들지 말 걸 그랬다.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게 아니었는데. 어쩐지 안 보인다고 생각은 했다만, 결석을 할 정도로 호되게 앓고 있을 줄은 몰랐다. 2학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코가의 문병을 갈 예정인 것 같았다. 


그중에는 아도니스도 있었다. 아도니스는 코가의 병문안을 가고 싶어 했으나 오늘 방과 후에 있는 UNDEAD의 연습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코가가 부재하는 중이니 연습은 취소해도 상관없었지만, 카오루가 연습에 빠져도 항상 진행하던 것을 기억하는 아도니스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카오루는 그 얼굴을 보며 그만 자신도 모르게 '그럼 내가 사쿠마 씨한테 오늘 연습은 취소하자고 할게.'라고 말해버렸다.


그리하여 카오루는 지금 귀찮은 걸음을 이끌고 경음부실로 향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면 간단했지만 그들의 리더는 휴대전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에 뭐든지 알고 있는 레이였으니 굳이 카오루가 전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카오루는 일에는 예의와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취소될 연습이어도 리더인 레이의 수긍 하에 취소된 것과 모두가 참여하지 않아 취소되는 것은 달랐다. 아도니스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직접 전달을 부탁하기도 했고. 


"저기, 사쿠마 씨?"


끙, 카오루는 굳게 닫혀 있는 경음부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낮임에도 두꺼운 검은색의 커튼이 쳐져 있는 경음부실은 밤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 커튼도 코가가 따로 암막커튼으로 바꿔 달았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먼지도 없이 잘 정돈된 악기들과 코가가 평소에 앉아있던 의자, 그리고 그 근처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관. 정말 학교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곳이었다. 카오루는 비정상이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의 인생에 한숨을 쉬며 관을 똑똑 두드렸다.


"사쿠마 씨~? 잠깐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관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관의 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레이는 하품을 하며 멍한 얼굴로 카오루를 바라봤다. 카오루가 들어오며 따로 형광등을 켜지 않았기에 여전히 어둑한 공간에서 레이의 새빨간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카오루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후아아, 무슨 일인가, 카오루 군?"

"히익, 진짜 불 좀 켜고 살아. 사쿠마 씨가 어둠의 자식이야?"

"어둠의 마물은 맞다만……."

"정말이지…….하여튼. 오늘 연습은 취소해야 될 것 같아서 말하러 왔어~."

"자네가 연습을 빠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만. 이렇게 말하러 오는 걸 보니 조금은 성장했나 보구려. 본인, 감격스럽다네."


카오루는 가만 들으면 아이의 성장을 감격하는 할아버지 같은 말 뒤에서 '네가 웬일?'이라는 레이를 읽을 수 있었다. 카오루는 조금 억울했지만, 그래. 지은 죄가 있었다. 


"아니, 사쿠마 씨도 알겠지만……. 오늘 멍멍 군은 못 오니까? 아도니스 군도 병문안을 가고 싶은 모양이더라고. 그럼 나랑 사쿠마 씨 둘 뿐인데, 사쿠마 씨와 단둘이 연습은 나도 싫어~. 남자와 단둘이 연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구역질 난다고. 그러니까 오늘 연습은 취소하자는 거지."

"……? 멍멍이가 왜?"


카오루는 정말 모르는 것 같은 레이의 얼굴에 같이 물음표를 띄웠다. 이 사람, 다 안다면서? 하긴. 그는 이상한 곳에서는 다 아는 것처럼 굴더니, 막상 모를 수 없는 걸 놓치는 편이었다. 특히 레이를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후배에 관해서는 더욱. 카오루는 조금은 질린 표정으로 대충 코가의 상황을 설명했다.


"흠, 그렇구먼. 알겠네. 오늘 연습은 취소하는 걸로 하지. 후아아~, 본인은 더 자야겠으니. 문은 잘 닫고 나가주게."

"응? 어, 어……. 잘 자. 사쿠마 씨?"


레이는 하품을 하며 관 속에 다시 누웠다. 카오루는 순간적으로 잘 자란 인사까지 덧붙이며 경음부실의 문을 단단하게 닫고 나왔다. 생각보다 평이한 반응이었다. 레이가 걱정하면 대충 맞장구를 쳐줄 준비를 하던 카오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려서 조금 당황해버렸다. 뭐지? 문을 닫기 전에 레이의 관에서 휴대전화의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본 것 같았는데……. 멍멍 군한테 연락이라도 하려는 걸까? 하여튼. 더는 관심 없었다. 오늘 카오루의 임무는 여기서 끝이었다. 






코가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려 누웠다. 축축한 수건이 이마에서 툭 떨어졌다. 침대 시트가 짙게 젖어간다. 수건을 갈아야 하는데. 몸이 무겁고 어지러웠다. 건강하기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코가였기에, 이렇게 한 번 아플 때마다 더욱 호되게 알았다. 본가에 계실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처음으로 앓아보는 것이어서 코가는 아플 때 곁에 누가 없으면 서럽다는 말을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부모님께 연락하면 한걸음에 달려오실 테지만……. 겨우 감기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끼잉….


그런 코가의 마음을 알았는지 레온은 계속 침대에 올라와 코가를 핥아주려고 했다. 사람의 감기가 강아지에게는 옮지 않는다는 건 알았으나, 혹시 몰라 코가는 계속 레온을 밀어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평소처럼 달래지도 못하고 밀어내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레온은 올라오는 것을 포기하고 코가의 침대 밑에 앉아 머리맡을 지켰다. 코가의 달 뜬 숨소리가 간간이 방 안에 울렸다. 


딩동, 그런 적막에 초인종이 울렸다. 레온은 고개를 들고 짖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사나웠다. 아픈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긴장한 모양이었다. 코가는 작은 목소리로 레온을 달래고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 짧은 거리가 버겁게 느껴졌다. 잡상인이면 꼭 물어 뜯어야지. 혼쭐을 내줄 테다.


"가미 씨, 괜찮아!?"


호전적으로 문을 열자마자 달려들며 끌어안는 인형에 코가는 잠시 휘청했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한참 짖던 레온도 스바루의 냄새를 확인하더니 얌전히 꼬리를 흔들었다. 


"시끄러. 머리가 울리잖아. 바보 아케호시……."


힘이 없는 코가의 목소리에 스바루는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이런 코가의 약한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었으니까. 스바루가 입을 더 열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마오가 스바루를 잡아챘다. 


"미안해, 오오가미. 걱정돼서 와봤어. 몸은 좀 괜찮아?"


마오는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코가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마코토나 다른 아이들도 오고 싶어 했는데, 너무 많이 오면 쉬는데 방해될까 봐 대표로 왔다는 마오의 뒤로, 걱정스러운 얼굴의 안즈와 안절부절못하는 아도니스의 얼굴이 보였다. 


대표로 4명도 많지 않냐고, 감기가 옮으면 어쩌려고 왔냐고 성질을 내려던 코가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다는 핑계로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사실, 조금 코끝이 찡했다. 아니, 이 몸은 고독한 늑댄데 이렇게 많이 와서 뭐어쩌자는 거야. 코가는 콜록거리는 입을 가리며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스바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코가를 달랑 들어 침대로 옮겼다.


"가미 씨, 당장 누워!"

"진짜, 바보 아케호시……."


코가는 화낼 힘도 없어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어느새 아도니스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가와 새 수건을 이마 위에 올려줬다. 이 상냥하고 순수한 친구는 곧 자신이 죽을 것처럼 침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오가미……. 나는 네가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 친구의 자격도 없다. 미안하다."

"아니, 그냥 감기라고……."


코가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아도니스의 손을 잠깐 잡았다 놔줬다.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모든 것을 말한다. 아도니스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아이라, 코가의 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


아니, 안 그래도 된다니까……. 코가는 부정할 힘도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마오는 척척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스바루, 레온이 오늘 산책을 못했을 테니까 너는 레온의 산책을 해줄래? 응, 안즈. 안즈는 여기서 야채를 손질해줘. 나는 밥을 지을 테니까. 오토가리는 오오가미 곁을 지켜줘. 아, 미안해. 오오가미. 부엌 좀 써도 될까? 아직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아서. 죽이라도 먹어야 힘이 나지."


코가는 문득 유메노사키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했다. 릿치가 마오에게 그렇게 절절하게 구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고.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라……. 코가는 어쩐지 아까보다 숨쉬기 편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서서히 잠들었다. 


코가가 잠깐 잠에 든 동안, 고소한 죽의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고 코가가 대충 던져 놓았던 교과서나 악보들도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넷이 깜빡하고 사 오지 않은 감기약은,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던 스바루가 한참을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던 카오루에게서 건네받으며 해결되었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잠들어 있던 코가를 깨워 죽을 한그릇 다 비우는 것까지 확인한 넷은 몸 상태가 더 나빠지면 꼭 연락하라고 단단히 약속까지 받은 후에야 돌아갔다. 레온은 오늘 밤엔 스바루가 맡아주기로 했다. 레온은 가기 싫다는 듯 낑낑거렸으나, 코가가 아픈 와중에도 자신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몇 번 뒤를 돌아보더니 순순히 스바루를 따라나섰다. 


코가는 나아진 몸 상태를 느끼며 이불을 파고들었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자신은 별로 해준 것도 없었는데. 코가는 조금은 선명해진 정신으로 아침에 담임에게 연락을 겨우 하고 던져둔 휴대전화를 들었다. 연락이 여러 개 와있었다. 마코토, 같은 반 아이들, 쌍둥이들, 라비츠라던가 하는 후배들, 하스미 같은 선배들, 심지어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단골 카드 가게 사장님까지…. 다들 코가를 걱정하며 빠른 쾌유를 빌고 있었다. 아니, 그냥 단순한 감기라고…. 이래서야는 고고한 늑대라는 이명에 스크레치가 나지 않는가.


툴툴거리면서도 문자 하나하나에 괜찮다는 답을 보냈다. 기분도 몸 상태도 조금 나아졌지만, 역시 문자를 답장하면서 다시 확인해도 없었다. 레이의 연락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긴 흡혈귀 자식은 휴대전화도 서투니까 전화도, 문자도 잘 못 하지. 그러니까 서운해할 필요 없었다. 코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까 아도니스와 마오가 교체해 주고 간 뽀송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 아까 열어둔 창문은 닫아야 하는데. 에어컨, 틀어놨는데….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약해진 몸은 빠르게 수마에 잠겼다. 





목말라. 코가는 갈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이마에서 서늘한 온기가 느껴졌다. 코가는 비몽사몽한 눈을 깜빡였다. 누군가 곁에 있었다. 


"이런, 목이 마른겐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손을 거두고 이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더니, 곧 다시 그가 코가의 곁에 돌아왔다. 꿈인지 현실인지 여전히 열에 들뜬 머리로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멍한 코가의 입술을 벌리고 두 손가락이 들어왔다. 코가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깨물었다. 힘이 들어가 있진 않았다.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고, 손가락을 타고 물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손수건이라도 가져왔으면 좋았겠지만, 이것으로 참아주렴." 


코가는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받아마셨다. 코가의 송곳니가, 코가의 혀가 손 끝을 스칠 때마다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남자는 인내를 가지고 코가가 충분히 목을 축일 때까지 물을 흘려주었다.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자 코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충분하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남자는 손을 거두었다. 


"…사쿠마, 선배?"


몽롱한 정신으로도 코가는 레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는 부르지 않는 호칭이었다.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던 레이는 코가가 완전히 잠에서 깨었는지 조심스럽게 코가를 살폈다. 그러나 코가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래, 코가가 다시 자신을 그렇게 부를 리 없지. 레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코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많이 내려있었다. 이럴 땐 자신의 소름 끼치기 짝이 없는 낮은 체온이 도움이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창문을 열고 자다니 혼나야겠구먼. 나쁜 흡혈귀가 이렇게 초대도 받지 않고 들어와 해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응? ……더 자렴, 코가야."

"응, 사쿠마 선배…. 시원해서 좋아."


코가는 이마 위에 올려진 레이의 손을 끌어와 열이 올라 붉어진 뺨에 부비작거렸다. 자신을 멍멍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가라고 부르는 레이에 완전히 꿈이라고 생각해 풀어진 모양이었다. 레이는 열로 평소보다 따끈한 코가의 뺨을 느끼며 굳어있었다. 손끝이 홧홧했다. 레이는 언제나 자신의 체온을 갈구하는 여리고 어린 것들에 약했다. 


이내 그는 뺨을 부비던 것을 그만두고 레이의 손을 잡고 레이를 향해 웃었다. 평소보다 힘이 빠진, 부드러운 미소였다. 금색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깜빡거리더니 곧 스르르 감겼다. 레이의 손을 잡고 있던 코가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이 고르게 오르락 내렸다. 레이는 약하게 잡혀있던 손을 빼 코가의 앞머리를 정리해줬다. 반듯한 얼굴이다.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언제나 웃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무심코 생각해 버릴 만큼. 레이는 이내 생각을 지워냈다. 


잘 자게나. 좋은 꿈 꾸고. 악몽은 본인이 전부 가져갈 테니.  


언젠가 리츠에게도 들려주었던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레이는 밤새 코가의 곁을 지켰다. 





  

눈을 두드리는 아침 햇빛에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잠에서 깨 눈을 깜빡이던 코가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레온도 스바루의 집에 있었으니, 집에는 코가 혼자였다. 어제 4인방이 간 이후로 누가 드나든 흔적도 없었다. 모든 게 그대로 였고, 찾는 사람은 없었다. 꿈이었다. 


코가는 새빨개진 얼굴로 이불을 끌어안았다. 얇은 여름 이불이 사부작 소리를 내며 구겨진다. 아니, 왜, 하필이면 그런 꿈을 꾸냐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또 싫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다. 꿈에라도 찾아온 게 어딘가. 얄미운 흡혈귀 자식. 오늘은 꼭 등교해서 그 얄미운 얼굴을 마늘로 때려줄 거다.


가뿐해진 몸을 일으키며 어제 미쳐 닫지 못했던 발코니 창문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여름이라, 감기에 걸려 있어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잠들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기세 아끼다 더 골병 들지 말고 그냥 적정온도로 틀고 자라는 마오의 충고에 에어컨을 틀고, 잠시 환기 겸 발코니와 연결 된 창문을 열어두었다. 적당히 열어두고 닫아야지, 란 생각을 하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고. 코가는 잠깐 이번 달 전기세가 두려워졌다. 밤새도록 창문이 열려서 에어컨이 돌아갔을 걸 생각하니 공포영화보다 섬뜩했다. 코가는 눈물을 머금고 창문으로 향했다. 

발코니의 창은 굳게 닫혀있었다.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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