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코가] 흡혈귀의 데이트 신청은 보통 망하는 편인가요?

- 즈! 먼 바다와 아쿠아리움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 레이랑 코가 서로 무자각 맞짝사랑 중인 거 둘만 모름

- 가볍게 쓴 글이라 약간의 캐붕있습니다. 가볍게 봐주세요. 


 레이는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멍멍이가 삐졌다. 얼마나 단단하게 토라졌는지 레이를 없는 취급하고 있었다. 관에서 일어나자마자 평소처럼 코가에게 토마토 주스를 요청하니, 코가는 그런 레이를 무시하며 '젠장, 이런 곳에 왜 아주 차가운 토마토 주스가 있는거야? 이 몸은 적당히 차가운 게 마시고 싶다고!' 하며 관 근처에 토마토 주스를 내려놓지 않나, ‘멍멍아, 눈이 부시니 커튼을 내려주렴.’, 하면 '으아아, 햇빛이 너무 강해서 연주에 방해가 되잖아!'하고 커튼을 촤라락 닫아버리는 식이었다. …무시하는 게 맞나?


하여튼. 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누가 봐도 나 심통났어요, 하는 표정으로 기타를 두드리고 있는 코가를 바라봤다. 그의 후배가 저렇게 심술을 부리고 툴툴거리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으나, 저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99.9%의 원인은 보통 자신이었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레이는 어느 정도 양심과 책임감은 가지고 있는 선배였다. 레이는 다정하게 코가를 불렀다.


"멍멍아."


코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멍멍아. 멍멍아~? 여보시게~? 우리 집 멍멍이 어딨누~? 전화 좀 바꿔주지 않겠나, 응?"


레이는 못 들은 척 하는 코가에도 굴하지 않고 실 전화기까지 사용해가며 귀찮게 굴었다. 화를 참는 듯 점점 얼굴이 붉어지던 코가는 결국 포효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 우스운 짓거리 좀 작작 하라고! 흡혈귀 자식아!"

"이제야 봐주는 구만."


코가는 입을 꾹 다물고 레이를 노려봤다. 제법 사나운 얼굴이었으나 그래봤자 털실뭉치의 위협이었다. 여기서 웃어버리면 더 삐져버릴지도 모르니 레이는 웃음을 꾹 참고 눈썹을 늘어트렸다. 슬픈 표정을 짓는 미남에게는 누구나 약한 편이다. 특히 그게 상대가 코가고 자신이 사쿠마 레이라면. 코가는 의자에 앉아 있고 레이는 그 앞에 쭈그려 앉은 모양새라 레이는 코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코가는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둘이 돌아본다는 레이의 외모를 바로 눈앞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미남이 복도를 걸으면 발에 걸릴 만큼 많은 유메노사키를 다니며 미남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건만 사쿠마 레이 만큼은 언제나 예외였다. 젠장, 잘생겼잖아~! 코가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말랑하게 풀렸다. 레이는 코가의 얼굴에 힘이 풀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멍멍아, 왜 그렇게 심통이 난게야? 응?"

"......."


레이가 빤히 바라보자 코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레이는 코가가 답하기까지 기다렸다. 코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러니까…."

"응. 듣고 있다네."

"그러니까…. 이 몸도, 물고기 구경할 줄 알거든!?"


코가는 얼굴을 들고 레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훽 돌렸다. 양 뺨과 귀 끝이 빨갛게 익어있었다. 레이는 부지런하게 머리를 굴렸다. 물고기 구경과 코가가 토라진 이유의 연관성이 도대체 뭘까? 사람의 말과 행동, 감정은 각각 하나의 퍼즐 조각과 같아 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퍼즐 조각을 모으고 맞추는 건 레이의 버릇이었고, 그렇게 맞춰진 그림은 직접 보지 않은 상황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사쿠마 레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코가가 건네주는 퍼즐만큼은 항상 한 조각이 빠져있는 터라 레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 조각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다른 때에 비해서 어려운 퍼즐은 아니라는 점에서 레이는 위안을 얻었다. 그러니까, 천천히 되짚어 보자면 저번 주 금요일에는 꽤 훈훈한 분위기로 하교했다. 주말에는 레이가 따로 약속이 있어 코가를 만나지 않았고, 코가는 주말동안 지난 일주일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해보니까 빡치네?'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니 코가가 토라진 시점은 월요일인 오늘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일의 원인이 레이라고 확신하기엔 레이는 오전 수업 내내 부실에서 잠들어 있었고, 눈을 뜬 순간부터 곁에 있던 코가는 이미 레이에게 토라져 있었다. 잠에 취해 뭔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끔 비몽사몽해서 코가를 관 안으로 끌어들이는 짓도 오늘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 오늘만큼은 레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레이의 존재 자체가 원인일 수도 있었으나, 레이는 그 가정은 머릿속에서 슬쩍 지워버렸다. 


대신 레이는 '물고기 구경'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그러고 보니 레이는 주말 동안 수족관에 다녀왔었다. 친우인 카나타의 일이 걱정되기도 하여 다른 [삼기인] 친구인 와타루와 함께. 카나타를 걱정한 다른 다정한 아이들도 여럿 와 있었다.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손가락질을 받던 친우들이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함께 무대 위에 서는 그 모습들을 보니 괜히 코 끝이 찡하기도 했는데-.


아.


번뜩 와타루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경음부도 [UNDEAD]도 쉬는 날이네, 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불러내는 건, 조금 양심에 찔리는구먼. 그 아이, 전언철회하거나, 전에 했던 말을 잊거나 하면 기분 상해하니까.'

'그 아이는, 당신이 부른다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달려올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설마 이건가? 수족관에 있었던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레이가 주말에 어디 있었는지 코가가 알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라질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주말에 선약 없이 갑자기 연락하는 건 코가도 싫어할 터이다.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니고 경멸하고 있는 흡혈귀 자식, 레이라면. 레이는 곤란한 얼굴로 코가를 바라봤다. 또 틀린 답을 내놓으면 화를 낼 게 분명했으나, 그렇다고 저리 계속 토라져 있게 둘 수는 없었다. 


"미안하구나, 멍멍아. 주말에 괜히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멍멍이가 수족관 구경을 좋아하는지는 몰랐구나."

"……."


레이의 사과에 코가는 기가 막혔다. 이 몸이 겨우 그런 걸로 이러는 것 같아!? 하고 와락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맞았다. 그래서였다. 정확히는 수족관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 안 섭섭하거든! 흡혈귀 자식이 주말에 수족관을 가든 말든 상관 없거든! 코가는 레이가 고민하는 동안 상상 속에서 쥐구멍을 부수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코가 자신도 지금 레이에게 툴툴거리고 있는 이유가 정말 터무니 없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인 걸 알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그게 사람인가. 


레이가 항상 코가와 붙어 다닌다고 해도 그건 학교 안이었고, 학교 밖에서는 일이 아니면 거의 만난 적도 없고, 항상 먼저 연락하는 건 코가였고, 레이에게는 자신 말고도 많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 레이가 주말에 코가에게 수족관에 가지 않겠냐고 연락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레이에게 코가는 그냥, 편한 학교 후배일 뿐이었다. 


그래, 그런데!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괜히 그런 말을 들으니까! 심통이 나버린 것이다. 시작은 주말에 레온과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참에 안즈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 문제였다. 


[코가 군은 오늘 일이 있어서 못 왔다면서? 아쉽네, 다음에는 아도니스 군도 같이 오자:)!]

[엥🤔? 무슨 일?? 이 몸은 지금 집인데?]

[에? 하카제 선배가….]


그러니까 상황을 설명하자면, 카나타와 카오루, 소마, 마다라가 함께 수족관에서 무대에 섰고, 다른 여럿이 구경을 하러 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레이가 있었다. 어쩌다 무대 멤버와 구경 멤버들이 함께 뒤풀이를 하게 되었고, 레이와 카오루가 시답잖은 잡담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항상 같이 다니던 코가는 어디 갔냐는 카오루의 질문에 레이는 '주말이라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네.'라고 답했고, 이어 레이의 답을 듣지 못한 안즈의 똑같은 질문에 카오루가 대충 '멍멍 군은 일이 있대~.'로 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코가에게는 안즈를 통해 '사쿠마 선배가 물어봤는데 코가 군은 일이 있어서 못 왔다면서?'로 전해져 버렸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와전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걸 몰랐던 코가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흡혈귀 자식~! 물어본 적도 없잖아! 물어봤으면! 물어봤으면 나갔지! 서운했다. 서운할 이유가 없었는데 하여튼 서운했다. 코가는 주말 내내 레온을 끌어안고 망할 흡혈귀 자식 바보! 바보! 바보! 를 외쳤다. 그리고 그 서운함이 지금 이 상황까지 풀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레이가 사과하자, 코가는 괜히 내내 툴툴거린 것이 부끄러워 그 사과를 받지 못했다. 사실 레이가 사과할 이유도 없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3살짜리 아기처럼 떼를 쓰고 있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레이를 보라, 분명히 코가가 괜한 이유로 툴툴 대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 아니, 몰랐다. 뒷걸음 치다가 쥐를 잡은 것이다. 코가에 의해 집이 부서진 불쌍한 쥐를 - 어른스럽게 사과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음악으로 뛰어넘기는 무슨.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코가는 레이보다 한참 어리기만 했다. 이대로는 레이 발 끝도 따라가지 못 할 정도로. 코가는 괜히 속상하고, 미안해서 기타만 꾹 쥐었다.


레이는 여전히 답이 없는 코가를 바라봤다. 그래도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어쩐지 울적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코가가 솔직하고 보이는 그대로라 속마음을 알기 쉽다고들 하던데, 레이는 오히려 그래서 코가가 가장 어려웠다. 카오루는 '그런 점' 때문에 코가가 레이에게 더 화를 내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레이는 영 '그런 점'을 잡지 못했다. 이러니 아직 레이도 미숙하다는 것이겠지. 인간의 감정은 짧은 삶을 사는 만큼 섬세하고 강렬해서 흡혈귀로서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건 흡혈귀나 인간이나 같겠지만.


그 사이 코가는 레이를 힐끔 바라본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레이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훽 도망간다. 잘못하고 혼나기 무서워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강아지의 모습에 레이는 웃지 않기 위해 입술을 물었다. 강아지를 달랠 때 모든 것을 간식으로 해결해 버리는 건 버릇에 좋지 않았지만, 저렇게 귀엽게 굴면 간식을 주고 싶은 것이 주인의 마음이다. 저리 행동하는 원인은 천천히 알아보면 된다. 원인을 찾겠다고 계속 낑낑거리게 두면 가엽지 않은가. 레이는 코가를 살살 달랬다. 


"그렇다면, 멍멍아. 멍멍이만 괜찮다면, 이번 주말에 함께 다녀오는 건 어떤가?"

"…!"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완전, 좋, 아니, 싫다고 한 적 없거~든?"

코가는 바람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고개를 돌려 레이를 바라보더니 여러 번 끄덕였다. 격한 반응이다. 멍멍이는 정말 물고기 구경을 좋아하나보다. 그런데 물고기를 좋아하는 건 개보다 고양이 아닌가? 레이는 자기 생각보다 기뻐 보이는 코가의 모습에 조금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이어 레이는 부드럽게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함께하는 것으로 알겠네." 

"지, 진짜냐? 정말? 이 몸이랑? 둘이?"

"본인은 이런 걸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네? 아도니스 군이나 다른 아이들도 함께 하고 싶다면 데리고 와도 좋겠구먼."

코가는 다른 아이들이란 단어에 잠깐 멈칫했다. 그렇지만 이미 서운한 감정은 날아간 지 오래였고, 오히려 레이와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당장 깊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레이와 둘이 있을 기회를 왜 스스로 발로 찬단 말인가? 코가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아무래도, 사, 사쿠마 선배랑 데이트!?

"좋았어~! 그럼 이번 주말은 연습을 못하니까 지금부터 맹연습이다! 흡혈귀 자식, 너도 함께 하자~고!"

"크크크, 멍멍이는 젊어서 부럽구먼~."

레이는 부실을 채우는 코가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기지개를 켰다. 신난 코가의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타음이었다. 레이의 기분도 따라 즐거워졌다. 사실, 여전히 코가가 왜 토라졌는지, 왜 이제는 풀렸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정말 물고기 구경 때문은 아니라는 건 당연히 레이도 알았지만. 

코가의 기분이 풀렸으니 된 거 아닐까? 레이는 퍼즐을 맞춰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코가가 건넨 마지막 퍼즐 조각을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맞춰보는 건 확신이 든 다음이다. 이번 주말은 멍멍이와 산책이구먼~. 레이는 태연하게 생각하며 오랜 만에 자신의 기타를 들었다.


2021.01.23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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