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야미진 / 여기엔 더 이상 그가 없어

전부 꿈이었구나.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동시에 눈꼬리에 겨우 매달려 있던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꿈에서 우는 동안 실제로도 울었던 모양이다. 유우기는 축축한 관자놀이며 눈가를 소매로 대강 닦아냈다.

무슨 일이야, 파트너?

몸을 일으키자, 벽장에 기대어 있는 또 다른 유우기가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덧붙였다.

“자는 동안 앓던데,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날카로운 인상이 누그러들었다. 유우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가 봐.

유우기는 멋쩍은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꿈이란 것이 으레 그러하듯 눈을 뜨는 순간 환상처럼 사라진다. 분명 어떤 꿈을 꿨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과 먹먹함, 그 감정의 자투리만 남고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단 하나 기억하는 것은,

또 하나의 나, 네가 사라지는 꿈이었어.

그러자 또 다른 유우기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꿈은 반대라고 하지. 걱정하지 마, 난 여기 제대로 있으니까.

그러면서 몸을 바로 세웠다. 무게를 견디고 있던 벽장의 꺾쇠가 나지막하게 끼익 울었다.

“이런 시각에 깨버렸으니, 게임이라도 할까?”

질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우기는 이미 이불을 젖혔고 또 다른 유우기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게임을 고르고 있었다.

그림자놀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던 또 다른 유우기는 이내 책상 위 어질러져 있던 주사위와 게임판을 집어 들었다. 게임에 몰입하면 더 잠이 달아날 걸 알지만, 유우기는 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또 다른 유우기가 게임판을 펼치는 사이 유우기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았다.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새벽. 방 안은 어두웠지만, 주사위 눈금이 보일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불을 켜면 엄마나 할아버지가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고.

진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기야.

좋아.

각자의 말을 고르고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결정. 또 다른 유우기는 주먹, 유우기는 보자기였다.

자, 파트너 먼저 시작해.

또 다른 유우기가 유우기의 손 위에 주사위를 쥐여주었다. 계속 쥐고 있었기에 주사위는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열정적인 빨강보다는 조금 더 침착하고 평온한 갈색에 가까운 체온.

그것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유우기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엎드려 잠든 탓에 팔도 등도 저렸다. 몸을 일으켰더니 찌뿌드드한 허리에서 뚜둑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손등으로 대강 눈가를 비비자 뭉쳐지다 만 눈곱이 흩어졌다.

전부 꿈이었구나.

주변을 둘러보자 낯설고 살풍경한 대기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집이 아니다. 자신의 방도 아니고, 새벽도 아니다. 이제 천천히 밤을 향해 나아가는 해 질 녘. 듀얼 대회의 대기실이었다.

꿈은 반대라더니, 꿈속에서 꾼 꿈은 기억나지 않아도 조금 전까지 이야기했던 그의 모습만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어둠 위로 그의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유우기는 그의 얼굴, 약간 짓궂고 다정한 표정, 벽장이 받치고 있던 무게, 책상 위 드리워졌던 그림자, 주사위 표면에 남겨진 온도, 이런 것을 잊기 위해 주먹을 펼쳤다. 그 안에는 퍼즐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이가미를 막아달라고 부탁하며 세라가 건네준 퍼즐 조각. 결코, 같이 놀자고 건네어진 주사위가 아니다.

꿈에서는 주사위조차 확실한 질량을 갖고 있었으나 손 안에 있는 퍼즐 조각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만졌을 때는 한 조각 한 조각이 무거웠는데도.

유우기는 쭉 기지개를 켜고 시각을 확인했다. 조금 있으면 대회가 시작한다. 그곳에서 유우기는 카이바에게 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선고해야만 한다.

무토 유우기는 오직 한 사람이라고 구분 지어졌던 것처럼.

유우기는 퍼즐 조각을 들어보았다. 황금 퍼즐 조각은 대기실의 시퍼런 형광등 빛에도 지지 않고 온색을 띠었다. 그 따스한 빛은 텅 빈 퍼즐과는 모순적일 정도로 눈부셨다. 유우기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부디 날 도와줘.

카이바는 물론 자신마저 꿰뚫어 버리는 말을, 울지 않고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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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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