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리타르트
남자는 정말 최악의 존재다. 좋아했던 걸 쪽팔리게 하는 놈은 죽어야 한다. 덕질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트위터 3대 재난 문자 중 하나다. 이 트윗이 타임라인에 흘러 들어오면 ‘오늘도 누군가의 최애가 떠내려가는구나’라며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최애가 그 죽어야 하는 놈이 될 줄은. 세상에는 아직 안 터진 장르와 이미 터진 장
· 현재를 단언하지 마세요. 현재의 어떤 행동도 그 어떤 선택도 미래를 바꾸지 못합니다. ·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카이바 세토에게 전달하세요. 구울즈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미끼가 될 것입니다. 실물 카드를 보여주기만 해도 배틀 시티는 개최되지만, 건네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카드를 건네줄 때는 반드시 도미노 미술관에서 전해주세요. 석판
딱히 그 녀석을 보러 가는 게 아니니까! KC에서 배포하는 핼러윈 토큰이 갖고 싶을 뿐이니까, 그런 변명으로 오랜만에 발을 디딘 도미노쵸였다. 분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익숙한 금발을 한눈에 알아채고, 쿠자쿠 마이는 화장이 번지진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제대로 컬이 말려 있는지 허둥지둥 거울을 보았다. 첫 마디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오
무토 유우기의 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천장의 얼룩을 다 세도 아직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 둔 전자시계는 정오와 자정에 ‘삐빗’하는 소리를 내며 제 존재를 알리곤 했는데, 침대에 누울 즈음에야 생각이 났다. 정오는 물론 자정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진 탓에 한동안 잊고 있었다. 카이바 말로는 단 1초의 오
더위라는 여름의 잔재를 멀리 내쫓으려는 듯 서늘한 바람이 옷깃에 매달리며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년은 그 냉기가 피부에 들러붙은 기분이 싫어 가볍게 팔을 젓는 것만으로 소맷부리에 달라붙은 가을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체감상으로는 조금만 움직여도 열기가 훅 올라오는 늦여름. 하지만 어느새 사계는 가을 1악장에 맞추어 활을 얹고 있었다. 한층 더 높이
톡, 톡, 빗방울이 하나둘 창문에 흔적을 남기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수업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창밖은 먹구름에 뒤덮여 벌써 밤이 온 것 같았다. 아오이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기에 젖어 일렁거리는 교실 안에는 아오이 혼자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 탓에 하릴없이 교실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것도 벌써
고요한 밤이었다. 거룩하지는 않은,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에서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로 넘어가는 어느 날 밤이었다. 유우기는 눈을 떴다. 맞닿은 눈꺼풀이 뭉근했으나 아침이 오고 창문을 열듯이 눈을 뜨자 시린 밤공기가 눈으로 들이쳤다.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이 서로의 맥박을 재고 있었다. 유우기의 손목은 실체를 갖고 있었고, 파자마 밖으로 삐져나온
XX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 같은 것은 창작물에나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형편 좋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 본인 몰래 방으로 옮기는 게 가능한지는 둘째치더라도, 애초에 납치는 엄연한 범죄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유우기는 ‘나올 수 없는 방’이라는 설정을 현실과 동떨어진 ‘드립’으로만 수용해왔다. 유튜브나 트위터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체인이 너
전부 꿈이었구나.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동시에 눈꼬리에 겨우 매달려 있던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꿈에서 우는 동안 실제로도 울었던 모양이다. 유우기는 축축한 관자놀이며 눈가를 소매로 대강 닦아냈다. “무슨 일이야, 파트너?” 몸을 일으키자, 벽장에 기대어 있는 또 다른 유우기가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덧붙였다. “자는
누구에게 기도하는 거야? 유우기의 물음에 카이바는 지그시 눈을 떴다. 밤이 걷히고 새파란 아침이 쏟아지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아주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그 행위로 나타난 것 역시 새파랬지만, 여명의 어렴풋한 온기를 품은 파랑과는 달랐다. 카이바는 시선만 움직여 유우기를 바라보았다. 햇볕에 타 거칠어진 피부와 조금은 다부진 표정의 또
파티가 끝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샹들리에는 무지개색으로 빛을 흩뿌리며 텅 빈 파티 회장을 비추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는 달빛 한 줄기 들이치고 있지 않건만, 이곳만은 완연한 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고작 인공적인 빛으로 흉내만 냈을 뿐인 양지에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싸늘하게 식은 공기와 적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모
요코님의 트윗의 3차창작입니다: https://x.com/bangmaware/status/1580595407536934912?s=20 눈동자는 마음의 창窓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창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카이바 세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사고보다는 반사의 영역에 가까웠다. 자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사랑해, 라고 말하면 만족할 거야?" 유우기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문장의 형태는 의문이었으나, 약간 처지는 말꼬리와 평소보다 더욱 부드럽고 단 말투를 들으면,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애교임을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카이바는 팔짱을 낀 채 완고한 태도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동생 같았다면 따듯한 홍차 속 금방 녹
네 마지막 작별 인사는 생각보다 더욱 가증스러웠다. “분명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라고 네가 말했었지. 카이바 세토는 그렇게 회상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최상층 레스토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느렸다. 통유리로 된 벽 너머 보이는 북극성은 그날따라 하얗게 빛났다. 유리에 비친 유우기는 약간은 들뜬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유우기는 곧잘 카이바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원체 군살이 없는 데다 근육까지 탄탄하게 붙어 있어 썩 감촉이 좋진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리면 카이바는 “베개라면 침실에 있다”고 대꾸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유우기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주었다. 때로는 그의 커다란 손등을 유우기의 뺨에 가만히 대고 있기도 했다. 유우기
“모쿠바가 너에게 이것을 받았다고 했다.” 카이바 세토가 내민 것은 장난감 로봇이었다. 세계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이라면 장난감 한두 개 정도는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카이바의 손에 쥔 것은 달랐다. 싸구려 플라스틱이 반쯤 녹은 데다 흙먼지를 뒤집어써 색이 바랜, 조잡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결벽적일 만큼 새하얀 코트나 티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