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야미진 / 太陽の相棒

무토 유우기의 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천장의 얼룩을 다 세도 아직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 둔 전자시계는 정오와 자정에 ‘삐빗’하는 소리를 내며 제 존재를 알리곤 했는데, 침대에 누울 즈음에야 생각이 났다. 정오는 물론 자정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진 탓에 한동안 잊고 있었다. 카이바 말로는 단 1초의 오차도 없는 시계라고 했으니 그 말대로 날이 바뀌는 순간을 정확히 알려줄 터다. 이불을 걷고 침대에 걸터앉자,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홀로 눈부신 전자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23:58.

그 옆으로 동그라미도 네모도 아닌 희한한 무늬를 그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유우기는 고개를 들어 창문을 쳐다보았다. 지붕에 난 창문 위로 비가 쏟아지며 어렴풋한 빛을 조각내고 있었다. 이윽고 물결이 깨진 빛을 휩쓸고 유리를 따라 세차게 흘렀다.

사흘 전부터 때 이른 장마가 시작했다. 온종일 내리는 비를 피해 사람들은 차양이나 우산 아래 몸을 숨겼고, 사람이 없는 땅에는 물이 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쥐색 구름이 하늘 가득 깔려 아침과 밤은 구분할 의미가 없었다. 세상은 비릿한 물 내음에 잠겨 채도가 한 꺼풀 벗겨졌다. 꽃이라도 피었다면 나았으련만, 장미가 막 떨어지고 수국은 아직 피지 않았기에 잿빛으로 가라앉은 공기를 산뜻하게 밝혀줄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모쿠바의 걱정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는 무토 유우기의 탄생제, 이번 행사는 신작 게임 시연을 곁들여 야외 개최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설물은 설치하였으나 당일까지 비가 온다면 행사는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유우기, 아무래도 행사장을 실내로 옮겨야겠어.”

행사의 성공 여부보다 친구의 생일파티가 엉망이 되는 것을 염려하는 눈이 유우기에게는 아직도 어여쁘게 비쳤다. 카이바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행사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돔을 만들려는 듯했다. 하지만 유우기는 그저 웃기만 했다.

23:59.

맹렬하게 창문을 두들기던 소리가 힘이 다했는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카이바도 모쿠바도 행사를 앞두고 가장 바쁜 때라 서류에서 고개를 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우기는 곧 펼쳐질 광경을 두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카이바는, 모쿠바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걱정하지 마.”

유우기가 말한 것은 조금의 의심도 없는, 아주 단호한 선언이었다.

“비는 오지 않아.”

모쿠바는 인상을 찡그리며 볼멘소리를 냈었다.

“유우기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일 강우 확률은 백 퍼센트라고.”

어떻게, 라고 물은들 유우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단어 몇 조각에 다 담을 수 없는 답이었기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도 이 광경을 본다면 조금은 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선물이다. 제아무리 유우기의 광적인 팬이라 한들 매년 그의 생일날 날씨가 어땠는지까지 찾아보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오로지 유우기 혼자만이 알고 있는.

00:00. 삐빗, 시계가 작게 울며 자정을 알렸다.

그 순간, 구름이 하늘 가장자리까지 흩어졌다.

모세가 가른 바다, 혹은, 방주가 나아가며 헤친 파도처럼.

창문 위에서 마구 뛰놀던 빗방울은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흘러 가버렸다. 허공에 멈춘 빗줄기는 방울져 프리즘처럼 빛을 흩뿌리고는 소임을 다하고 말라 사라졌다. 개벽의 순간이란 필시 이런 것이리라는 착각이 들 풍경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낮까지 기다리지 못한 밤의 태양이 어둠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유우기의 머리 위로 환한 빛을 쏟아주었다. 유우기는 책상을 딛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물이 떨어져 어깨가 젖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방금전까지 피부를 감싸던 먹먹한 습기는 간데없었다. 조금 서늘한, 청량하기까지 한 밤공기가 유우기를 맞이했다.

이것은 선물이다. 가장 위대하고 권능적인, 생일 선물.

파란 온기가 느껴지는 볕을 받으며, 하지 못했던 대답을 하기 위해 유우기는 입을 열었다.

무토 유우기의 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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