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마이 / Hello wink♥
딱히 그 녀석을 보러 가는 게 아니니까!
KC에서 배포하는 핼러윈 토큰이 갖고 싶을 뿐이니까, 그런 변명으로 오랜만에 발을 디딘 도미노쵸였다.
분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익숙한 금발을 한눈에 알아채고, 쿠자쿠 마이는 화장이 번지진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제대로 컬이 말려 있는지 허둥지둥 거울을 보았다.
첫 마디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이건 너무 어색한 사이 같지 않을까?
“시즈카는 잘 지내?” 인사치고는 너무 친한 척하는 것 같은데.
“요즘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습 잘 지켜보고 있어.” 이건 너무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렇게 마음 졸이며 다가갔건만……
“마침 잘 만났다, 마이! 과자 주라!”
몇 개월 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라니!
오랜만인데도 마치 어제도 만났던 것 같은 태도다. 그 덕에 마이는 준비해 두었던 인사 대신 “뭐어?”라고 말해버렸다. 뭐라고 말하려 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든 말든 죠노우치는 짓궂은 어린아이같이 씩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할로윈이라는 거, 코스프레하거나 맛있는 거 받는 날 아니야? 맛있는 거 줘!”
이 행사에 대한 이해도가 0에 수렴하는 말이었지만, 웃는 낯에 침 뱉기란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상대가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면 더욱. 귀신 분장을 안 하고 있다거나, 트릭 오어 트릿이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정도는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죠노우치, 정말이지 너는…….”
마이는 머리를 짚으며 한탄하듯 말했지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죠노우치의 모습에 결국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죠노우치 카츠야는 최근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참 듀얼리스트.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홀연히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갖고 떠나버리는 마이와는 다르게, 큰 대회부터 카드 샵의 작은 대회까지 참가하고 있으며, 지난 KC컵에선 4위의 성적을 달성했다.
자신이 한참 연상인데도 죠노우치에게만은 어째서인지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마이는 그것이 전혀 자신답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느 한 군데에 머무르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요츠바 카드 샵 대회 1위 죠노우치 카츠야
지난 16일 개최된 KC컵에서…… 4위는 죠노우치 카츠야 선수…….
떠오르는 유망주 죠노우치 카츠야 단독 인터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지역 방송이나 영세 스포츠 신문에 자꾸만 등장하니 신경을 끌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 영국에 있던 마이가 어떻게 일본의 작은 카드 샵 대회 사정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넘어가도록 하자)
구글에 죠노우치 카츠야의 이름 다섯 자를 검색해 보면 검색 결과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예전에는 듀얼킹 무토 유우기의 친구라는 점에 주목해서 덱을 연구하던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그마저도 운에 모든 것을 거는 죠노우치의 덱 특성상 결말은 “이게 무슨 덱이냐 도박이지”라며 금세 흥미를 잃었다…
…만 요즘에는 달랐다!
점점 제대로 갖춰지고 있는 죠노우치의 덱을 연구하는 사람들, 경마 경기 보듯 운빨 덱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긴 걸로도 모자라, 작은 규모나마 팬도 생긴 것이다!
게다가 누가 봐도 귀여운 여고생인 것 같은 팬의 트위터 계정을 발견하고 마이는 애꿎은 베개만 퍽퍽 쳐댔더란다. 그렇게 분을 삭인 후에야 약간은 상쾌해진 기분으로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결단코 죠노우치 같은 걸 보러 가는 건 아니다! 핼러윈 토큰이 갖고 싶어서 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죠노우치가 인기가 좀 늘었다고 잘난척하고 있으면 야단이라도 치는 게 어른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절대로 그와 자신의 친밀한 사이를 과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를 드러낼 틈도 없이 죠노우치는 여전히 바보에 어린애 같았다. 요즘은 어린애들도 트릭 오어 트릿이 무슨 뜻인지는 알 텐데. 정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한 게 없다. 바보 같고 유치하고 물불 가리지 않고, 그런 주제에 신경 쓰이게 만들고 정직하고 열정적이고 올곧고 다정하고…….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오랜만에 마주한 실물이라 그만 넋을 놓고 바라보고 말았다.
마이는 고개를 저어 재빨리 생각을 털어냈다.
“바, 바보가 묻어 있었어!”
“바보라니! 얼마 전 대회에서는 4위까지 했다고!”
죠노우치가 가슴을 쭉 펴고 거들먹거리자, 마이도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
“그래서, 받은 상금은?”
“윽…!”
콧대를 높이 쳐들고,
“참고로 나는 한 달 전에 상금으로 새 가방 샀어. 당연히 명품으로♡”
“크윽…….”
일부러 높은 톤으로 한껏 오호호 웃어주면,
“젠장… 4위는… 상금이 없었다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송이를 이기는 건 카드 탑 무너뜨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죠노우치가 분한 듯이 울상을 짓는 모습을 보고 마이는 가까스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겨우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게 정상이다.
자신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지배한 카지노 딜러. 지금은 프로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유명한 듀얼리스트. 그 쿠자쿠 마이가 고작 남자애 한 명 때문에 마음 졸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저쪽이 반해서 매달리는 게 아니라, 이쪽이 먼저 함락되어 상대의 일에 일희일비하다니!
그런 일은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 아니, 용서하지 않았다. 러브 게임에서도 승자는 자신이어야 한다. 그리고 남자는 하피 레이디의 목줄을 찬 애완견 역할이나 던져주면 딱 좋을 것이다.
“쳇, 그럴 돈이 있으면 옷이나 사라고! 보는 나까지 추워지니까!”
죠노우치는 여전히 입을 비죽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퉁명스러운 태도와는 달리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내밀었다.
“뭐야?”
마이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죠노우치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보면 몰라?! 입으라고 준 거잖아!”
마이는 늘 그랬듯 가슴을 드러내는 코르셋에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조금 더 청순하게 보이는 편이 좋을까 생각하며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샀지만, “너 웬일로 여자 같이 입었냐?”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라이프 포인트가 제로가 될 것 같아 쓰레기통에 전력투구로 던져버렸다.
머무르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 방 한 칸을 통째로 드레스룸으로 꾸며도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어떤 옷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줄까? 애초에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녀석을 위해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지? 기분이 메트로놈처럼 쉴 새 없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이벤트 시간이 되어버려서, 결국은 듀얼리스트 킹덤 때나 배틀 시티 때와 비슷한 패션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적어도 해가 질 즈음 기온이 훅 떨어지는 시월 말 입기에 좋은 차림새는 아니었다.
“고마워…….”
재킷은 다림질도 하지 않아 구깃구깃했고, 너무 커서 소매 속에 손이 파묻혔다. 마이가 두르고 있던 명품 브랜드의 옷과는 달리 재질도 조잡할뿐더러 자세히 보니 보풀과 실밥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낡은 재킷 하나가 왜 이렇게 기쁜 걸까?
마이에게 있어서 코르셋과 미니스커트는 강함의 증거였다. 가슴과 다리를 조금만 드러내면 남자들은 어떻게든 한 겹이라도 더 벗기려 안달 냈다. 그 탐욕스러운 낯짝을 하이힐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우월감이란!
여자의 섹시함을 무기이자 방패로, 미끼이자 담보로 이용해 왔으나 결단코 도박은 아니었다. 자신의 강함에 확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죠노우치 카츠야에게 있어서는 강함도 약함도 모두 똑같았다. 승자든 패자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둔감한 바보에게 “듀얼에서 이기면 뭐든 해줄게♡”라고 말해봤자 고작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잔뜩 시켜 먹을 생각만 할 것이다. 지면 진 대로 재밌는 듀얼이었다고 즐거워할 테고. 처음으로 겉옷을 벗어준 남자가 이런 녀석이라 맥이 빠지는 한편, 이토록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좋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한턱낼게.”
“아싸!”
그래도 이왕이면 분위기 있는 곳이 좋겠지. 그런 마음으로 근처 레스토랑을 검색하던 마이의 팔을 죠노우치가 잡아끌었다.
“뭐 하는 거야?”
“이 앞에 싸고 맛있는 곳이 있거든!”
잠깐만이라고 말할 새도 없이 끌려간 곳은 외관부터 허름한 라멘 가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된 나무 냄새와 마늘 냄새가 뜨거운 열기와 함께 훅 풍겨왔다. 먼지가 잔뜩 묻은 전구는 어둑한 빛을 냈고, 때 탄 나뭇조각에 적힌 메뉴는 라멘 650엔, 멘마 추가 무료, 가라아게 800엔, 생맥주 200엔, 이 넷이 전부였다. 무드나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정반대에 있는 곳 같았다.
“여기 이렇게 보여도 엄청 맛있거든! 국물 마시면 몸도 따뜻해지고!”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이는 도저히 맞은편에 앉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불빛이 어둡다 해도 지금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정말 여전히 섬세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구나.”
너무나 섬세하고 까다로운 자신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탔고, 세 시간 동안 옷을 고르고, 어떻게든 마주치길 바라며 한 시간 반 가까이 이벤트 회장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마이는 천천히 재킷을 벗었다. 커다란 품에 감싸여 있었던 만큼 맨피부에 닿는 밤공기는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재킷을 막 벗었을 때 뒤섞이는 열기와 한기. 양극으로 빠르게 흔들리는 마음이 딱 중간을 가리키는 찰나의 순간.
조금은 키가 크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생겨도, 처음 만났던 그때 그대로 변하지 않은 모습.
마이는 지갑을 꺼내 지폐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난 이만 갈게. 주인아저씨, 이걸로 이 녀석 맛있는 거 잔뜩 먹여줘.”
“럭키! 고마워, 마이! 할로윈이란 좋구나!”
라멘과 핼러윈 사이의 연결고리가 뭔지 알 수도 없지만, 마이는 쿡쿡 웃으며 인사 대신 “해피 핼러윈!”이라며 윙크했다.
조명이 어두우니 옷깃에 묻은 것은 보이지 않을 터다. 이미 해가 져 어두워졌으니 거리를 걸을 때도 눈에 띄지 않을 테고. 집에 가서 재킷을 옷걸이에 걸거나 세탁기에 넣을 때에야, 아니, 어쩌면 평생 눈치 못 챌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의 남친 재킷 코스프레에, 맛있는 것도 사줬으니, 이 정도 장난은 애교지. 안 그래?
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을 꺼내 열었다. 약간 번진 립스틱을 다시 바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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