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15화
“셋째야.”
옆에서 조용히 길을 걷던 검마가 이자하를 불렀다. 이자하가 그쪽을 보자 검마는 이자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요즘 잠은 잘 자고 있느냐?”
“잘 못 자지. 못 자서 미칠 것 같소.”
“어어, 미치지는 마라. 뒷감당이 두렵다.”
몽연의 농지거리에 이자하는 입으로만 웃고 다시 검마를 봤다.
“모용 선생은 뭐라 하더냐.”
검마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으면 연락하라고 하던데.”
이자하가 가볍게 뱉은 말에 검마의 심각한 표정은 더욱 무게가 깊어졌다. 몽연도 뒤늦게 이자하를 자세히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태권도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피곤해 보인다. 전생만큼은 아니지만.”
“전생만큼 못 잤으면 이미 죽었어. 무공을 익힌 몸이니까 버텼던 거지.”
태평하게 말하는 이자하를 향해 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웃을 일이 아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난 원래 이랬소. 원래 종종 잠 못 드는 날들이 있는 편이지. 화가 쌓이면 심해지긴 하지만.”
“이러다 잘못하면 또 광증 와서 일월광천… 아니지, 폭탄이라도 터뜨리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검마와 몽연이 동시에 움찔했다.
“안 해. 안 한다고. 나쁜 놈 몇 명 잡자고 평범한 시민까지 말려들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큰일 났겠구나.”
그 말에 이자하는 크게 웃었지만 정작 말을 뱉은 검마와 그 옆에 나란히 선 몽연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당장 뭐 어떻게 되는 건 아냐.”
이자하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보다 나 이제 태권도장 가야 해.”
그렇게 셋은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헤어졌다.
임소백을 만난 뒤 이자하는 전생의 기억을 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잊으면 자신은 그냥 이름이 이상한 태권도장의 관장이 된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흘러가는 대로 두었을 때 기억이 희미해진다면 그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잊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사실 요즘 들어 오히려 전생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고 있다. 그것도 유독 막 하오문을 만들고 이곳저곳 흑도들을 잡으러 돌아다녔을 때의 기억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를 수록 그때의 감정도 선명해진다. 비교적 마음이 평온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기억은 그저 머릿속에 장면으로만 존재했다.
이자하는 그날 밤 태권도장 창고에서 목검을 꺼냈다. 눈을 감고 기억 나는 대로 검로를 그렸다. 그저 하염없이, 지칠 때까지.
“바다에 가자고?”
“그래. 태권도장 며칠 쉬고 바다 다녀오자.”
“이 계절에?”
“뭐 어때. 바다 구경은 어느 계절이든 운치 있는 법이야. 이제 둘째도 한가해졌고.”
며칠 전에 첫눈이 왔다. 지금은 가을을 지나 완연한 겨울이 됐다.
“사부님께도 여쭤봤는데 이틀 정도는 연차 낼 수 있으시대. 주말이랑 합쳐서 3박 4일로 다녀오면 딱이야.”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 몽연의 목소리는 들뜬 것처럼 들렸다. 이자하는 잠시 관장실 유리창 너머로 자기들끼리 놀면서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
대답을 듣고 몽연이 무어라 외친 듯했지만 이자하는 그 말이 들리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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