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이시 / 나폴리탄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 현재를 단언하지 마세요.
현재의 어떤 행동도 그 어떤 선택도 미래를 바꾸지 못합니다.
·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카이바 세토에게 전달하세요. 구울즈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미끼가 될 것입니다.
실물 카드를 보여주기만 해도 배틀 시티는 개최되지만, 건네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카드를 건네줄 때는 반드시 도미노 미술관에서 전해주세요.
석판 앞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미술관 실내에서 건네야 합니다.
절대로 실외에서 전달하지 마세요.
· 배틀 십에 승선할 때 결투자와 마주쳐서는 안 됩니다. 배틀 십 승선 시 반드시 얼굴을 가리세요.
가장 먼저 배틀 십에 승선하도록 하세요. 그 후 결투가 시작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배틀 십에 승선하는 것은 출발하기 직전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결투자와도 마주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결투자 이외 대회 관계자뿐입니다.
· 리시드는 라의 익신룡의 레플리카를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것을 굳이 저지하려 하지 마세요.
레플리카 사용을 막는 것은 일시적으로 파멸의 미래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 카이바 세토와의 대결에서 이긴 후, 안티 룰로 레어 카드를 한 장 받을 수 있습니다.
곧장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요구하지 마세요.
궁극의 푸른 눈의 백룡을 요구하면 카이바 세토는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건넬 것입니다.
반드시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받도록 하세요.
· 결투 도중 다소 희생자가 발생할
결투자의 일행이 의료진을 부르면 저
현대 의학으로는 소용이 없을뿐더러 시간이 더
현대 의학으로 살아난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진
· 천년 링의 숙주인 소년을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행동하세요.
1. 소년이 천년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2. 소년이 천년 로드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 즉시 그 자리를 피하세요.
3. 소년이 천년 링을 목에 걸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어보세요. 천년 타우크가 정체를 알려줄 것입니다.
4.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경우에는 안심해도 됩니다. 의무실로 옮긴 후 일행을 부르세요.
· 천년 로드를 손에 넣게 되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1. 사악한 영혼을 세뇌하여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둘 수 있습니다.
2. 리시드를 세뇌하여 그를 깨워 마리크의 의식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는 절대로 실천하지 마세요.
·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결국 바라지 않았던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최종 결투가 끝나면 곧장 배틀 십에서 탈출하세요.
알카트라즈에서 탈출하세요.
최종 결투장에 반드시 남아 있도록 하세요. 사악한 영혼의 최후를 확인해야 합니다.
· 이 내용을 명심하세요.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마리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규칙’의 내용은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었으니까.
급하게 휘갈겨 쓴 문장들, 차마 참지 못해 놓쳐버린 눈물이 번진 자국과 찢어버린 페이지까지도 모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문자가 소모된다면 이미 규칙은 낡고 헤졌을 것이다. 특히 가장 첫 문장 “현재를 단언하지 마세요”는 몇십, 몇백 번이나 읽은 만큼 가장 너덜너덜해졌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시즈가 미소를 짓자 짙은 아이라인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냈다. 그에 반해,
“뭐가 우습지?”
마뜩잖은 기운이 가득한 저음은 이시즈의 생각을 현실로 건져내었다. 이시즈는 웃음을 거두고 눈을 떴다. 가볍게 파도치는 속눈썹 사이로 ‘현재’가 보였다.
기억보다 조금 길어진 짙은 갈색 머리카락, 날렵해진 턱선과 뺨. 그대로인 것은 신이 공들여 빚어낸 수려한 이목구비 정도일까. 절제와 욕망을 한데 섞어 인간이라는 틀에 부어 만든 것 같은 분위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배틀 시티 때의 일을 추억하고 있었어요.”
이시즈의 대꾸에, 맞은편에 앉은 남자, 카이바 세토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사나운 인상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니 여간 맹렬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공중에서 경쾌하게 스텝을 밟고 있는 유모레스크 7번과 따스한 난색 불빛이 최선을 다해 카이바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을.”
과거를 몇 마디 말로 응축해 치워버리는 태도마저 여전하다. 그러고선 컵을 집어 들어 입술을 축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남자도 목이 타들어 간다고 생각하면, 몸에 밴 고압적인 태도마저 귀엽게 봐줄 수 있을 터다.
이시즈는 시선만 움직여 테이블을 훑었다. 글라스 안의 화이트와인이 조명을 받아 부드러운 주황색을 띠었다. 가장자리가 섬세한 문양으로 세공된 접시 위에는 음식이 그대로 식어가고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메뉴임을 알지만, 공복을 메우는 정도의 식사가 습관이 된 탓에 더는 무언가를 입에 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의, 파란 비단 재질의 사각형 케이스.
이시즈는 그것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로 다가가자 아름다운 빛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유유히 흐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밤거리에 촘촘히 들어찬 하얀 형광등의 빛, 입구에 모인 인파에서 간간이 터지는 플래시까지. 고고국 장관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나 원체 검소하게 살았던 탓에 이토록 높은 건물, 그것도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올라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신은 늘 한결같군요.”
발밑에서 이따금 반짝거리는 플래시를 보며, 이시즈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굴지의 대기업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사장과 전 이집트 고고국 장관의 만남이니 뭐라도 한 장 건져보고자 몰려든 나방 떼를, 이시즈는 결코 혐오하지 않았다.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았다.
다만 카이바는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라, 최상층의 레스토랑도, 그 아래의 호텔도 통째로 빌려, 이 높고 거대한 탑에 있는 손님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이시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빛의 잔상과 어둠과 과거뿐. 현재도 미래도 아닌.
“쉰여섯 번째였어요.”
대뜸 튀어나온 순서에 카이바가 물었다.
“무엇이 말이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이 남자는 불쾌해하겠지. 그러면 의미 없는 과거의 복기는 더욱 길어질 테고.
그것은 그도 자신도 원하지 않는 미래일 것이다. 이제 미래를 볼 수 없어도 그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시즈는 사각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을 붙잡아주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려는 그를 위로해 주려는 듯이.
쉰여섯 번째는 이시즈 이슈타르가 카이바 세토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미래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괴롭지는 않았다. 이미 쉰네 번 동안 리시드, 서른일곱 번째 죠노우치 카츠야, 서른다섯 번 마자키 안즈, 마흔한 번째 무토 유우기, 열한 번째 바쿠라 료의 시체를 봤던 이시즈에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숨이 끊어진 동생을 붙잡고 울다가 눈물이 마르면 이시즈는 그제야 현재로 돌아왔다. 실패 요인과 지켜야 할 사항을 휘갈겨 적고 나면 천년 타우크로 다시 처음부터 미래를 보았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규칙을 찢어버리기도 했고, 참회하기에도 너무 큰 죄를 눈물로써 고해하기도 했다.
‘규칙’은 수많은 죽음으로 검증한 ‘미래’였다.
비록 일어나지 않은 미래였어도 이시즈는 주검으로 이루어진 산을 보았고, 그것은 결코 없던 일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이시즈는 규칙을 되새겼다.
현재를 단언하지 마세요.
다소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몇 번이나, 몇십 번, 몇백 번이나 되새겼을 텐데.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미래 속에서 마주친 생기 잃은 파란 눈동자, 더욱 새파래진 안색.
그것이 안타깝게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미래 속에서 카이바 세토는 인질로 잡힌 동생을 구하기 위해 비행선에서 뛰어내렸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전에 잠깐 뒤돌아보았던 그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린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한 다정함을 목격한 순간, 비로소 이시즈는 이 남자의 죽음이 몹시 서러워졌다. 비통하고 괴로웠다.
마리크를 구하고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위해 목숨마저도 하찮게 내던지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이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즈 이슈타르는 카이바 세토의 비정함과 다정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이시즈의 기억 속에만 있다.
그렇기에 구태여 미래를 가정하지 않는다.
이시즈는 케이스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달의 윤곽을 닮은 새하얀 고리 가운데 두 쌍의 사파이어가 밤을 배경으로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상대를 향한 배려라고는 하나도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색으로 가득 채운 청혼 반지가 우습기는 했으나, 싫지만도 않다.
카이바 세토에게는 이것이 가장 어울린다. 아집과 맹목과, 아주 약간의 애틋함이.
이시즈 역시 다이아몬드 같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피가 흐르지 않는 순간까지, 딱 그때까지만의 유한한 사랑이라면 선서할 수 있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맞춘 듯이 딱 들어맞았다. 이시즈는 손을 들어 반지를 바라보았다. 고고한 푸른빛에 눈이 시렸다. 어쩌면 이 빛을 닮은 눈을 마주했던 순간부터 이러한 미래를 예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천년 타우크가 보여준 것이 아닌, 스스로 그려내고 확신했던 미래.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시즈 이슈타르는 감히 현재를 단언한다.
“이것으로 저는 당신의 반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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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궁리하는 미어캣
카이이시 너무좋은데 계속 써주실수있을까요? 감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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