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아오 / 사실은 너는 좋은 사람
톡, 톡, 빗방울이 하나둘 창문에 흔적을 남기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수업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창밖은 먹구름에 뒤덮여 벌써 밤이 온 것 같았다. 아오이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기에 젖어 일렁거리는 교실 안에는 아오이 혼자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 탓에 하릴없이 교실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것도 벌써 한 시간 째. 내일 과목의 예습도 끝마친 터라 기다림이 슬슬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게다가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한 것이, 금방 그칠 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오빠인 아키라가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후, 어쩔 수 없지. 아오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노이의 기사가 나타났다는 말에 유사쿠가 가방도 내팽개친 채 링크 브레인즈에 접속한 것이 한 시간 전. 따라가려는 아오이를 말리며 “금방 끝내고 올 테니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봐 줘.”라는 말만 남긴 채 유사쿠는 순식간에 로그인했다.
그 무심해 보이는 냉정함이 꽤나 못마땅했으나 아오이는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그의 가방을 챙겼다. 또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할 법도 한 스트랩이나 키링 같은 것은 하나도 걸려있지 않은, 무척이나 깔끔한 가방. 새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때도 타지 않은 가방을 보며 아오이는 이것이 유사쿠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굳게 닫힌 가방에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무척이나 수수하고 군더더기 없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아오이 역시 유사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면 그를 가방 정도의 존재로 인식하며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 달 전, 아오이는 유사쿠가 플레이메이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느새 그의 협력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하노이의 기사를 좇으면서 아오이는 유사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가 바로 유사쿠의 평범함이었다.
뜯어지거나 험하게 쓴 흔적도 없이 말끔하고 수수한 가방은 유사쿠를 닮아 있었으나 그가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사쿠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평범한 여느 10대 소년과는 달리 친구를 사귀지도 않고 부 활동에 청춘을 쏟아붓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말을 붙이지 못하는 분위기를 내고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한다.
분명 플레이메이커라는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조금 더 평범함을 가장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라고 아오이는 생각했다.
부 활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든다거나 그런 것을 멀리하면 외롭지 않아?
언제나 혼자 있는 유사쿠를 볼 때마다 아오이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오이 역시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오빠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아 달려와, 친구 하나 없는 처지는 같았기 때문이다. 아오이는 제 가방과 우산도 집어 들며 교실을 나섰다.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다니, 친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오이는 아직 유사쿠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사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친구나 우정과는 다른 형태의 유대감이 있었다. 이대로 친구가 되어도 나쁘지는 않겠지. 아오이는 먼 미래의 일처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듯 미소 지었다.
유사쿠가 갈 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옥상이나 체육관 뒤. 아오이도 링크 브레인즈에 접속할 때 자주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가 오니 두 군데 모두 불발일 가능성이 컸다.
후지키 군, 어디에 있을까. 아오이는 조금쯤은 탐정이 된 기분으로 유사쿠가 있을 곳을 추측했다. 어쩌면 제일 위층 구석의 특별활동 교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이니까. 아니면 예상외의 장소에 있을지도 모른다. 링크 브레인즈에서 로그아웃한 후에 곤란해하는 사람을 만나서 도와주러 갔다거나. 살가움이라고는 하나 없는 딱딱한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유사쿠를 상상하자 묘하게 납득이 갔다. 이것은 아오이가 유사쿠에 대해 알게 된 두 번째 사실과 맞닿아 있었다. 바로, 후지키 유사쿠는 정의감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플레이메이커가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노이의 천사 프로그램에 감염된 아오이를 구해주거나 어나더가 된 사람들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본인은 “하노이의 기사에 대응하기 위하여”라며 부정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정의감, 사람들을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토록 올곧은 마음은 현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언제였던가, 길 잃은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던 유사쿠를 보며 아오이는 생각했었다. 후지키 군의 저런 성격은 천성이구나, 하고. 우는 아이를 침착하게 달래주는 유사쿠가 더없이 진지해 보여서, 자신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 정도는 용서해주고 말았다.
눈에 띄기 싫어하면서도 곤란한 사람은 지나치지 못하다니. 너무 무른 거 아니야?
아오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사쿠의 선행을 말리진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아오이가 유사쿠에 대해 알게 된 것 중 세 번째 항목이 이유일 것이다.
창밖으로 내다본 체육관 뒤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기에 아오이는 제일 위층의 특별활동 교실로 향했다. 먼지 쌓인 전구 때문인지 어둑한 계단에는 발소리와 빗소리만이 가득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아오이는 아주 작은 말소리를 들었다.
“후지키 군…….”
계단을 조금 더 올라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는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아오이는 황급히 난간 뒤로 몸을 숨겼다. 이거 아무리 봐도 그거지…? 아오이는 엿듣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유사쿠 앞의 여학생은 듣는 사람이 안타까울 만큼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입학 초에 후지키 군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어.”
“기억나지 않아.”
단호하고도 냉정한 대답이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들었더라면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만큼. 그러나 여학생은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그 이후로 후지키 군을 쭉… 좋아했어요. 사귀어주세요…….”
듣고 있던 아오이가 쑥스러워질 만큼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에 남은 두 사람, 예전부터 간직해왔던 마음, 새콤달콤한 고백. 그야말로 평범한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
그러나 유사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페이지를 확 찢어버렸다.
“거절할게.”
“아, 아냐, 지금 당장 대답해주지 않아도…….”
“첫째, 나는 네가 누군지 몰라. 둘째, 지금은 누군가를 사귄다거나 할 여유가 없다. 셋째로는, 그럴 마음도 없어. 그럼 이만.”
울 것만 같은 여학생을 두고 유사쿠는 비정하게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왔다. 아오이는 못 본 척 얼른 내려가려고 했으나 유사쿠의 걸음이 더 빨랐다.
“자이젠. 보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아오이는 멋쩍은 마음에 괜스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유사쿠는 대답 대신 아오이의 손에 들린 가방을 낚아채고는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정말이지 무자비할 정도로 싸늘하네. 아오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유사쿠를 뒤따랐다.
“꽤 인기인이네, 후지키 군.”
“…….”
대답은 없었으나 아이에게 닥치라고 말할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오이는 걱정 반 진담 반인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너,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했으니 내일부터 미움받을지도 몰라. 여자애들 사이에서 찍힐지도. 좀 더 돌려 말하지 그랬어. 눈에 띄는 것은 싫다며.”
이번에야말로 짜증을 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오이의 예상과는 달리, 유사쿠는 탁한 초록색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은 대답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확실하게 끝맺지 않으면 감정이 남아버리니까.”
덤덤함을 가장한 미련이 묻어나는 목소리. 어른스러운 척하는 어린아이의 얼굴. 아오이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유사쿠 본인의 이야기이자, 상대방을 위한 그 나름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역시 너는 좋은 사람이네.”
아오이는 슬퍼지려는 마음을 몰아내며 작게 웃었다. 본인이 이렇게나 꿋꿋한데 주변의 사람이 슬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신 아오이는 유사쿠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어두운 계단이나 적막한 복도, 비에 젖는 것 정도는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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