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을 삼각관계
첫 트라이앵글 GL
동아리 뒤풀이로 모인 회식 자리. 여기저기서 주는 술을 적당히 버리고 마시면서 탈출 기회를 엿보다가 남자 선배들이 과음한 것 같은 후배들에게 슬쩍 손을 올리는 모습을 봐버렸다. 저 새끼들 저번에 성추행으로 경찰서 갔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이 허벅지 사이로 기어간다. 술잔을 내려놓고 불순한 손들을 툭툭 쳐낸다.
“얘들 술 취했다. 내가 보내고 올게.”
색 빠진 과잠에 휴대폰을 쑤셔넣고 후배 둘을 어깨에 걸친 채 어기적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간다. 근처 편의점에 있는 야외 의자에 던져두고 초코우유 하나씩 쥐어주니 둘 다 눈빛이 돌아오는 것 아닌가.
“취한 척 했냐?”
“..티나요?”
“모르실 줄 알았는데.”
빡, 빡. 연기 못하는 후배들에게 풀 스매싱 딱밤을 선물해주니 좋다고 이마 부여잡은 채로 바닥을 나뒹군다. 새된 비명과 두 이마에 붉게 난 손가락 자국은 모른 척 눈 감는다.
“멋지게 고백하려는데 이러기 있어요?”
“뭐?”
“야아, 내가 먼저 말하기로 했잖아!”
나 소주 반병 마셨는데 벌써 취했나? 아닌데. 내 주량은 소주 두 병인데.
“그러니까 너희 둘이 나한테 고백하려고 했다고.”
“네. 저 언니 좋아해요.”
“제가 먼저 좋아했어요.”
머리가 지끈거린다. 시끄럽게 삐약거리는 병아리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손을 휘적이니 내 눈치를 보며 조용해진다. 훨씬 낫네.
“난 하나만 못 고르는데.”
평소에 귀여운 후배들로 대하던 게 사적 감정이 더 크게 담기긴 했었다. 그게 한 명이 아니라서 문제지. 그래서 평소에 챙겨주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랬는데.
“언제는 하나로 만족했어요?”
이게 지금 둘이 동시에 고백하고 나서 할 말인가? 할 말이 있다가도 없게 만드는 문장에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니 평소 어린애처럼 굴던 후배가 냉큼 들러붙는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가 탱크탑을 입어 드러난 배를 간지럽힌다.
“언니는 여러개가 있어야지 좋아했잖아요.”
“무, 무슨! 부끄럽지도 않냐?!”
“난 찬성.”
얌전히 앉아서 힐끗거리기만 하던 애가 끼어든다. 둘이서 날 껴안고 힘을 주니 빠져나가고 싶어도 나가지를 못한다.
“그냥 셋이서 사귀는 거 어때요?”
“미쳤어?”
“언니가 미쳤다면 미친거죠.”
옆에서 불지르니 다른 놈은 옳다구나 기름을 들이붓는다. 이것들이 쌍으로 돌아버렸나. 사실 돌아있는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밀어내야한다고 생각해도 눌러두던 감정이 힘을 주고 올라와 절로 힘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내 갈등을 눈치챘는지 둘이 눈빛교환을 하더니 사근사근 웃는다.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요. 다 알아요.”
“우리 좋아하잖아요. 그쵸?”
악마가 무해한 모습으로 둔갑해 홀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환한 미소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손으로 두 머리를 빗어주듯 쓰다듬는다. 두 연하가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손에 머리를 비벼대니 파도처럼 넘실대던 감정이 기어코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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