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의 해프닝
금방 잊게 될 겁니다
도쿄항, 양복을 입은 지긋한 나이의 사내가 배에서 내렸다. 몇 년 전이었다면 도쿄의 모두가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겠으나 이젠 영국 여왕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서양인의 출현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본 검사국이었다. 그는 검사국 내부에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일본어였지만 그는 들어오라는 뜻이겠거니, 짐작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상 위 수북한 서류 더미 위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남자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유창한 영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미스터 아소기. 저는 게리 존스, 반직스 가문의 변호사입니다.”
“네?”
아소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소파로 안내했다. 소파 앞 티 테이블에도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아소기가 그것들을 어디로 치워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을 때, 변호사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바쁘신 듯하니 금방 끝내겠습니다. 원래는 전보를 부치려고 했으나 전보는 중간에 유실될 위험이 있어서 제가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아소기는 변호사의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았다. 아소기는 여전히 왜 반직스 가문의 변호사가 저를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한동안 편지고 뭐고 아무 소식도 없더니 설마 변호사를 보낼 줄은 몰랐군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사이에 또 무슨 혐의를 뒤집어쓴 겁니까? 영국에 변호사가 없는 것도 아닐 테고 무엇보다 전 검사입니다만…”
“마지막으로 반직스 경께서 편지를 보낸 때가 언제였죠?”
“두 달 전입니다. 별 내용은 없었습니다. 다들 잘 지낸다는 내용이 전부였죠. 제 친구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도 한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걱정하더군요.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명탐정과 아이리스, 레스트레이드 형사에게도 비슷한 시기에 편지가 끊겼다. 미코토바… 아니, 나루호도 법무조사가 말하기론, 미코토바 교수는 명탐정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지만 미코토바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처음 듣는 소식이겠군요.”
변호사가 케이스에서 어떤 서류를 꺼내 들었다. 아소기는 언뜻 본 얇은 서류에서 익숙한 글씨체를 발견했다.
“미스터 아소기, 지금부터 바로크 반직스 경의 유언을 집행하겠습니다. 유언장은 바로크 반직스 경 본인이 자필로 작성하였으며 변호사 게리 존스와 셜록 홈즈가 공증하였습니다. 전달해 드릴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깐, 잠깐.”
아소기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를 막았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유언이요?”
변호사가 들고 있던 유언장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바로크 반직스 경이 한 달 전 병환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그의 유언을 집행하러 온 겁니다.”
“…병환이요?”
“꽤 오랜 시간 시달리셨습니다. 유언장은 그즈음 작성되었고 두 달 전부터는 병세가 악화하여 은퇴하시고 별장에서 지내셨습니다.”
“편지에 그런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알리지 않으셨나 보군요.”
변호사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답했다. 아소기는 이 모든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명탐정은요, 아이리스는, 그들은 전부 알고 있었습니까?”
“두 분은 반직스 경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셨습니다. 장례에도 참석하셨고, 유언과 유산 집행도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장례는, 언제 진행된 겁니까.”
“사망 직후 바로 진행되었습니다.”
“근데 저도, 나루호도도 부르지 않았다고요.”
“제가 여기 오기까지 2주가 넘게 걸렸습니다. 전보를 받고 가셔도 한 달 가까이 걸렸을 겁니다.”
아소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변호사는 다시 유언장을 집어 들었다.
“그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전달해 드릴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스터 아소기, 이리 갑작스럽게 비보를 전달하게 된 점, 용서를 구하지. 일본에서 법조인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는 귀공이나 미스터 나루호도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장례는 원래 조용히 치를 예정이었다. 내가 귀공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으니 미스터 홈즈나 아이리스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스터 아소기, 귀공이 떠난 지는 벌써 5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 죄송합니다. 이 부분은 지우기로 한 부분입니다. 이어서 읽겠습니다.
‘미스터 아소기, 귀공에게는 아소기 겐신의 물건들을 전해주고 싶다. 그는 사건이 종료될 때마다 직접 사건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죽은 이후 오랫동안 내 집무실에 있었는데 인제야 전하게 되어 송구하다. 나나 형님, 스코틀랜드 야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있으니 귀공에게 남기겠다. 미스터 아소기, 귀공의 무궁한 앞날을 기원하지. 짧은 시간이지만 감사했다.’“
변호사는 유언을 읊는 것을 마치고 또 다른 케이스를 아소기의 앞으로 내밀었다.
“반직스 경이 남긴 겁니다.”
아소기는 방해되는 서류들을 바닥으로 치워버리고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글씨가 빼곡하게 담긴 사건 기록들과 사진 몇 장이 담겨 있었다. 그는 케이스 내부를 살펴보다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청년이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이게… 답니까?”
“네, 그렇습니다.”
변호사가 유언장을 도로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변호사가 손을 내밀었고, 아소기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짧은 악수였다.
“나루호도에게도 남겨진 유언이나 유산이 있습니까?”
“이후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에게는 뭐라고 하던가요.”
“유언은 당사자에게만 전달하게 되어있어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소식으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며 아소기의 집무실을 나갔다.
아소기는 닫힌 집무실 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당장 오늘까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으나 그는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아직도 손에 들려있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거 한 장이다. 그 남자와 관련된 물건은.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려면 두 손을 써야 했다. 그러나 아소기는 오랫동안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담배는 결국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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