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윤펭귄
도쿄항, 양복을 입은 지긋한 나이의 사내가 배에서 내렸다. 몇 년 전이었다면 도쿄의 모두가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겠으나 이젠 영국 여왕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서양인의 출현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본 검사국이었다. 그는 검사국 내부에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일본어였지만 그는
벌써 두 병째였다. 바로크는 빈 병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고 잔을 기울였다. 머리가 멍해져 온다. 머리가 멍해지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필요한 와인잔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었지만 바로크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거대한 초상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꾸지람이든 온화한 위로든 무엇이든 듣고 싶었지만
‘바로크, 잘 지내고 있어?’ 녹슨 구치소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바로크는 그를 찾아온 손님이 미스터 나루호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본인 변호사의 발소리는 이렇게 절도 있지 않았고, 그라면 분명 법무조사라는 동행인이 함께했을 것이다. 그는 새까만 그림자가 저벅저벅 걸어와 구치소 복도에 걸린 가스등의 불빛을 등지고 서는 모습을 지켜
아소기 카즈마는 창문도 없는 단칸방에 앉아 지금 자신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방 안에는 침대와 책상, 방 안을 덥힐 수 있는 가스등 외에는 옷가지가 든 작은 가방과 붉은 머리띠가 묶인 검 한 자루뿐이었다. 그는 밀항자였다. 그가 탄 배는 끊임없이 움직였고 목적지는 끊임없이 바뀌었다. 그는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아소기는 검집
2 스승의 유산 “레스트레이드, 너-“ “레스트레이드 수습 형사, 아직도 그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군. 크기를 보니 사냥개로도 못 쓸 것 같다만.” 지나를 손가락질하는 형사의 말을 반직스가 잘라먹었다. 반직스가 굳이 ‘수습 형사’라고 강조하자 지나의 볼이 뾰로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라니까! 지금 내 파트너를 무시하는 거야? 토비가 아
1 사신의 부활 ‘올드 베일리의 사신이 부활하다!’ 아소기 카즈마는 신문에서 눈을 떼고 집무실 한편을 바라보았다. 신문에서 떠드는 그 ‘사신’은 피로에 젖은 눈으로 이른 아침부터 ‘신의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있었다. “꼴사납군. 아침부터 취할 셈인가?” 그는 제자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유리잔에 와인을 따랐다. “마차를 불렀다.” 스
※대역전재판2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소기 카즈마는 노크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크 반직스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작성하던 서류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 “미스터 나루호도는…” “떠났다. 미코토바와 함께.” “그렇군.” 아소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싸움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