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즈레레

동경은 때때로 시야를 일그러뜨린다

과거로그2

케이카OC by 케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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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노이즈씨?"

병원을 나서려던 찰나 레파르시아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간호사의 목소리였다. 익숙하다 생각했더니만, 이안의 병실을 관리하여 자주 마주치곤 했던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걸음이 왜그렇게 빠르냐며 숨을 몰아쉬곤 웃었다. 레파르시아는 갑작스레 불안해져 이안에게 그새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 웃는 얼굴을 보곤 다른 용건임을 알아챘다.

"무슨 일이죠?"

"칼스 환자분께서 이걸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못드린 걸 보니 노이즈씨가 많이 바쁘셨나봐요."

간호사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테이프로 봉해진 하얀 편지봉투였다. 내심 제 말만 하고 나온 것을 담고 있던 레파르시아는 흠칫, 손을 멈추었다.

"이게, 뭐라던가요?"

레파르시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겉보기엔 편지봉투였으니 편지가 들어있을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건 잘 모르겠네요. 편지가 아닐까요? 다만 같이 전해달라던 말씀이 있었어요. 뒷장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두었다네요. 아! 그만 가봐야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간호사는 바쁜 시간이었는지 헐레벌떡 편지를 레파르시아의 손에 쥐여주고는 금세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여전히 망설이던 레파르시아는 결국 갖게 된 편지봉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비벼 매만져보자, 내용물은 그리 두툼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장? 거기에 평범한 종이와는 달리 단단한 감촉이 낯설지 않았다.

사진이구나. 그런 생각이 금세 들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레파르시아는 편지봉투를 뜯지 않고 고스란히 든 채 본부로 복귀했다.

레파르시아는 그것을 책상 위에 두었으나 마치 그대로 잊어버리겠다는 듯 손대지 않았다. 결국 편지봉투를 열어본 것은 그날로부터 며칠 후였다. 

편지봉투를 바로 버리지 않고, 일부러 눈에 닿는 곳에 올려둔 것은 고의였다.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척 내버려두었다가 어느샌가 사라져있을 것을 바보같이 기대한 걸지도 모르겠다. 기껏 받아 온 편지봉투를 열어보지 않은 것은 본능에서 기인한 어떠한 불안감 탓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열어보기로 결심한 것은 큰 충동이었다.

오래 두어 진득하게 달라붙은 테이프 조각 끝을 손톱으로 긁어내 조심스레 뚜껑을 올려 열자 하얀 뒷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안의 정갈한 글씨가 문장을 이루었다.

당신의 불은 장엄했어요.

레파르시아는 숨을 흡 들이마셨다. 사진을 쥔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이대로 버린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하루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들렸다. 그럼에도 사진을 돌려버리고 만 것은, 이것도 충동인가? 알 수 없었다.

"……."

레파르시아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망막이 이글거려 그대로 녹아 사라질듯 뜨거웠다. 놀라 한껏 당겨졌던 얼굴은 이내 처참하게 구겨졌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힘없이 속삭인다.

"아니야... 이건 그냥..." 

"끔찍한 사고일 뿐이잖아요…."

사람은 역시나 잔혹하다. 레파르시아는 시간이 갈 수록 그런 사람들을 견뎌내기 버거워지는 것이 못내 서러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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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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