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창작

존프레스조 느와르AU1

적폐설정 다수

날조적폐 명헌태섭우성 썰

누아르산왕×대학생섭섭

그뭔씹 적폐설정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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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송태섭. 급히 돈이 필요한데 학자금 대출은 이미 풀로 땡겨서 못 쓰고 다른 대출도 조건이 안 된다나 뭐라나 하면서 1금융권에선 안 해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채 끌어씀. 아주 큰 돈은 아니었지만 이자에 이자가 붙는 사채 특성 상 바로바로 안 갚으면 큰일 난다는 걸 알고 있었음. 그래서 갚으려고 노가다며 알바며 쉬지 않고 뛰는데 반은 본가에 보내고 본인 식비며 교통비, 공과금, 월세 등등이 계속 나가니까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에 돈이 뚝딱 생길 리가 없음. 계속 붙는 이자 감당하기도 어려움. 갚아야 할 날짜 다가오는 게 죽을 날 기다리는 것 같음. 돈은 없는데 알바는 이미 최대한 하는 중임. 과외 알바라도 하면 벌이가 낫겠지만 그럴 학벌 아님. 원래도 공부랑 안 친함. 학교는 중도휴학계 냈는데도 일주일 내내 꽉꽉 채워서 일해야 겨우 돈이 모임. 그렇게 한 학기가 훌쩍 지났음. 상환일이 다가오는데 아무리 계산기 두드려봐도 그 돈이 안 나옴. 태셥이 죽을 맛임. 혹시 가족들한테 해코지라도 할까봐 불안을 떨칠 수가 없음. 그 탓에 잠도 잘 못 자고, 알바 끝나고 오면 너무 피곤해서 농구도 못 함. 숨돌릴 구석이 요만큼도 없음. 돈 대신 스트레스만 꽉꽉 쌓여가는 중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면부족과 과로로 시달리니까 일하다가 멍해지는 일이 잦아짐. 잔실수가 늘고, 어떨 때는 잔 깨먹고, 주문 받은 거 잊어버리고 아주 난리가 남. 점점 눈치가 보임. 보통 야간 수당이 세니까 새벽까지 술집에서 서빙 알바 하는데 그날따라 진상 취객한테 딱 찍힌 거임. 너이쉐끼 눈깔을 왜 그렇게 떠?! 눈썹 재수없게 생겼네 같은 말도 안 되는 시비가 걸림. 원래였으면 꾹 참고 웃으면서 돌려보내든지 내보내든지 했는데 몇 달을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태셥의 정신력이 버텨주질 않았음.

“아 씨발 어쩌라고!”

“뭐어? 씨이발? 지금 손님한테 씨이발이랬냐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그렇게 말릴 새도 없이 거대한 쌈박질이 시작됨. 소주병 깨지고 의자 굴러다니고... 난장판임. 억지로 둘을 떼어놓은 손님들과 직원들 너머로 점장이 나옴. 점장 얼굴을 보니까 정신이 퍼뜩 들었음.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여기서 짤리면 어떡하지? 그럼 이자도 맞추기 어려워지는데. 머리가 팽팽 돌아갔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고 사건은 벌어진 뒤임. 태셥은 그 자리에서 해고당함. 앞치마 벗어던지고 씩씩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태셥은 빡쳐서 뒤질 것 같았음. 그딴 말 한 마디에 감정 조절을 못 해서, 하루이틀 듣는 말도 아니면서, 앞뒤 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굴었던 자신이 한심하고 못나보였음. 입으로 욕을 중얼거리면서 답답해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펑펑 두들김. 할 수만 있다면 전봇대에 머리통 처박고 죽어버리고 싶었음. 그런데 그럴 수 없잖아. 가족이 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한탄과 자기혐오를 곱씹으면서 자취방 앞 가로등 아래에 쭈구리고 앉았음. 이러니까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는 시덥잖은 생각이 듦. 농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눈부신 조명이 비추는 코트 위에서 공을 잡고 뛰어다녔을까.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작은 키로 할 수 있는 포지션은 한정적이었음. 농구는 격한 몸싸움 때문에 신체조건이 중요했음. 작고 마른 체구의 자신이 해봤자 얼마나 했을까 싶기도 함. 대학 리그 선수들을 보면 다들 자기보다 20센티는 컸음. 손을 내려다 봄. 농구공에 닿는 마디마다 굳은살이 배겨있음. 손바닥은 공을 튀기느라 두꺼워졌고, 손톱은 공을 잡지 않아도 둥글게 정돈되어 있음. 이 손에 농구공이 딱 맞게 들어오던 순간이 떠오름. 죽을 것처럼 가슴이 아픔. 누가 불에 달군 꼬챙이로 심장을 지지는 것 같음. 태셥은 그 날 몇 달 만에 울었음.

팅팅 부은 눈으로 자취방에서 눈을 뜬 태셥은 꾸깃한 종이가 손에 쥐여있는 걸 깨달음. 무슨 정신으로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전봇대에 머리를 박으려다 발견한 종이를 쥐어뜯었던 것 같음. 종이는 전단지처럼 빳빳하고 매끄러운 재질임. 펼쳐보니 구인전단임.

시급 2만원에 교통비 식대 인센티브까지 있다는 수상한 아르바이트.

태셥은 당연히 이게 뭔지 알았음. 이런 일자리를 고려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음. 그래도 몸 파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 피했던 건데... 지금은 사정이 다름. 바로 며칠 뒤가 수금날인데 알바는 짤렸고 돈도 없음. 이런 일은 일당제인데다 현금으로 바로바로 주기 때문에 급한 불 끄기엔 나쁘지 않았음. 전단에도 써있잖아, 한 번 해보고 안 맞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돈이 급했던 태셥은 결국 그쪽에 연락을 넣음.

일 안 시켜준다고 하면 설거지든 과일 썰기든 할 수 있다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사장은 흔쾌히 오케이 했음. 몸이 좋다고 어필한 게 통한 모양임. 태샵은 불편하면 2차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였음. 웃음은 팔아도 몸은 팔지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음.

근데 이제 룸에서 지명받아서 갔더니 이명헍 있음. 금융업이라 쓰고 조폭이라 읽는 산왕캐피탈 구역의 가게였던 거임. 근데 이명헍이 지 사채 빌려준 산왕캐피탈 사람인 거 모르고 걍 옆에서 어정쩡하게 술이나 따라줌. 당연함. 누님들은 많이 왔는데 남자는 처음임. 웬 시커멓고 커다란 사내놈이 와서 앉아있으니 위압감이 장난 아님. 원래도 능숙하다기보단 뚝딱거리는 타입이었던 태셥은 두 배로 뚝딱대며 안주나 주워먹음. 며칠을 내리 시달려서 간이 파업했음. 얼음 잔뜩 채우고 잔의 반도 안 채운 멀건 위스키인데도 쳐다보는 것조차 곤욕스러움. 태셥은 명헍의 잔에 냅다 술을 따라줌.

“형은 처음, 이에요.”

“형?”

“아, 제가 스물 둘이라...”

이런 나이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대충 다 형누나임.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형 맞아.”

조용. 단답 개쩔었음. 명헌은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수금하러 왔다가 쉬고 싶어서 잡은 룸이었고, 개중에 제일 덜 시끄러워 보이는 애를 골라 앉힌 거였음. 그걸 알 리 없는 송쪼푸는 입 안쪽 살을 꽉꽉 깨물며 부담스러운 정적을 깰 스몰토크 화제를 떠올리려 머리를 굴렸음. 시발... 생각이 좃도 안 남. 여자들은 그나마 립스틱 색깔이나 머리스타일을 보고 아첨이라도 떨겠는데 남자인 이명헌은 입술색? 없음. 헤어스타일? 빡빡이. 시발 뭘 어떻게 하냐고! 호스트 경력 3일차 송태섭의 레퍼토리는 시작도 전에 바닥나버리고 만 거였음.

그러거나 말거나 이명헌은 태섭이 따라준 잔 들고 얼음 굴려서 달그락대기나 함. 살짝 굽힌 팔 때문에 소매가 약간 드러남. 삐까뻔쩍한 메탈시계가 걸려있음. 척 봐도 존나 비싸보임. 드디어 건수를 물었음. 태섭이 물어봄.

“시계, 예쁘네요.”

“갖고싶어?”

“예?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할 말 없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

송태섭은 존나 쫄렸음. 말하는 게 직업인데요? 아니 물론 술을 마시는 게 더 주로 하는 일이지만... 이딴 소리를 내뱉었다간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했음. 태섭은 입을 꾹 다물고 정면만 봤음. 머릿속으로 온갖 공상을 하며 침묵을 견딤. 얼음이 녹아 묽어진 위스키는 이제 보리차보다 연해보였음. 이명헌은 말없이 소파에 기대앉아서 위스키나 홀짝대고 있었음. 얼음 부닥치는 소리와 호로록 하는 소리, 알싸한 황금빛 액체가 이명헌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면 간간히 들렸음. 송태섭은 딱 죽을만큼 어색했지만 그냥 닥치고 있었음. 눈치를 살짝 보며 자세를 흐트러뜨려도, 술잔에 손도 안 대도, 안주를 집어먹어도, 명헌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 이제 태섭은 그냥 편하게 기대 앉아서 과일 안주나 입에 넣으며 오늘이 끝나면 마련될 돈을 계산했음.

얼마나 지났을까. 명헌이 자리에서 일어남. 술병은 반도 안 비었음. 태섭은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자켓을 입혀줌. 술은 킵해둘까요, 하고 묻는 것도 잊지 않았음. 명헌은 고개만 까딱하고 멀쩡하게 걸어나감. 태섭은 뒤를 졸졸 쫓아가며 배웅함. 그때 갑자기 명헌이 뚝 멈추더니 시계를 풂. 태섭의 머리가 팽팽 돌아감. 뭐지? 너무 버릇없게 있었다고 한 대 치려나? 명헌의 손이 올라감. 태섭은 눈을 꽉 감으며 떨어질 폭력세례를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읺았음. 눈을 찔끔 떠봄. 이명헌이 짤막하게 “손.” 이럼. 손을 꺾어버리나? 농구 해야되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며 벌벌 떨리는 손을 내밀었음. 손목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음. 소름이 쫙 끼침. 명헌은 태섭의 손목에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채워줌. 딸깍. 명헌의 손목에 맞춘 시계가 아가리를 닫았는데도 널널했음. 손가락 두 개는 족히 들어갈 듯 함. 태섭은 놀라서 삐뚤어진 눈썹으로 명헌을 올려다봄. 깊고 짙은 검은 눈동자가 남은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시선을 뗌.

“가져.”

“예..?”

“잘 어울리네.”

존나 큰뎁쇼?! 라고 츳코미를 걸어야 하나 태섭은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음. 닥치고 사양 두 번 한 다음 얌전히 받으면 됨.

“이건 형 시계잖아요. 안 줘도 돼요.”

“이제 네 거.”

“아까 시계 예쁘다고 해서 주는 거예요? 갖고 싶어서 한 말 아닌데.”

“아니. 기특해서.”

기특? 뭐가? 한 거라곤 앉아서 멜론이랑 샤인머스켓–일부러 비싼 것만 골라서–집어먹은 것밖에 없는 내가? 태섭은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음. 명헌은 여전히 태섭의 손목을 보고 있음.

“가져.”

“진짜 주시는 거예요?”

“진짜.”

“와...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잘 쓰긴 개뿔, 얼른 팔아치운 다음 현금화 해서 채무 갚는 데 보탤 예정이었다. 아니면 이대로도 받아주나? 이거 내밀면서 깎아달라고 하면 해주지 않을까? 최소한 담보로라도 맡길 수 있지 않나? 송태섭이 빠르게 생각을 굴리는 동안 명헌은 뚜벅뚜벅 나가기 시작함. 태섭은 또 얼른 쫓아가 문 앞까지 그를 바래다줌. 원래대로라면 차까지 가서 다음에 또 와달라고 애교아닌 애교를 부려야 하지만 조용히 있었다고 기특해하는 남자한테 거치적거려봐야 안 좋을 것 같았음. 미리 불러놨는지 운전기사를 할 부하깍두기도 와 있었고. 송태섭은 빨간 선을 남기고 떠나는 검은 세단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복귀함. 곧 퇴근이었음. 명헌 덕에 땡땡이 제대로 쳤음. 태섭은 일당을 받고 퇴근함. 주머니에는 헐렁한 고급 메탈 시계가 묵직하게 들어있었음.

시계는 사실... 그거임... 그 사이로 손가락 넣는 거 보고싶었음...

태섭은 안도했음. 바로 안 팔아치워서 다행이다. 다음날 명헌이 냅다 찾아와서 자길 지명한 거임. 뭐지. 시계 잘 간수하고 있나 보려고? 아니면 술김에 준 거니까 돌려받으려고? 후자는 개찌질해보인다고 생각하며 송쪼푸는 룸으로 들어가서 얌전히 앉았음. 웨이터? 서버?가 킵해둔 위스키랑 얼음빠께스(태섭은 이걸 부르는 더 간지나는 단어를 못 들어봤음)랑 잔을 세팅해주고 떠남. 이명헌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음. 짙게 잡힌 쌍꺼풀과 두툼한 입술, 역시나 검은 정장에 넥타이까지 바짝 맨 차림임. 이명헌은 답답한지 넥타이를 죽죽 당겨 느슨하게 만든 다음 태섭에게 잔을 내밀었음. 이제 출근 나흘째인 생초보 송태섭은 잔 채워주는 것도 깜박했던 거임 ㅋㅋㅋ 허둥지둥 잔에 둥근 얼음 넣어주고 잔을 반절 채움. 자기 잔에는 각얼음 와르르 쏟아넣고 술 채움.

“안 하고 있네.”

“ㅇ, 예?”

오늘은 떠들어야 했던 건가..? 일 안 하고 술만 축낸다고 꼽주는 건가??? 송쪼푸의 예상은 다 틀렸음. 이명헌이 손목을 흘끗 봄.

“시계.”

아. 헐렁한 시계는 불편하고 무거웠음. 손 씻을 때마다 물에 흠뻑 젖을 것 같았음. 비싼 건데 고장내면 안되지!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이걸 지적할 줄이야. 눈치 없는 자신을 속으로 나무라면서 태섭은 구차한 변명을 주절주절 내놓음.

“너무 커서 흘릴까봐. 가방에 넣어놨어요.”

“금은방 가면 맞춰줄텐데.”

금은방. 와... 그런 데가 아직 남아있다고? MZ세대 송쪼푸 충격받다. 이 형은 나이가 존나 많나보다 생각한 송태섭은 이명헌이 엄청난 동안이구나, 하는 오해를 해버림.

말을 먼저 걸었으니 오늘은 떠들어줘야 하는 거겠지. 송태섭은 어제는 정신없어서 까먹은 통성명을 하기로 함. 와 어떻게 이름도 안 물어봤는지. 과거의 자신이 멍청하기 짝이 없음.

“송태섭이라고 합니다.”

“알아.”

“알아요?”

“지명할 때 봤어.”

아 참.... 그랬지......... 송태섭은 자신의 멍청함에

신물이 났음. 아는 게 좃도 없음. 나흘차 신입한테 아무도 그런 거 바라지 않는데도 송쪼푸는 쫄렸음. 사람이 몰려있으면 정상적인 사고가 안 돌아가니까. 이명헌한테 미움받아서 실적 핑계삼아 짤리는 생각이나 떠오름.

태섭이 열심히 우울의 수렁에 빠지려는 찰나, 이명헌이 또 입을 엶.

“이명헌뿅.”

“이명헌... 뿅?”

이름도 참 지 같다 생각하며 따라 발음해보던 태섭은 생경한 단어까지 따라 말해버리고 말았음. 뾰오오옹????? 미친 거 아님? 저 얼굴에서 나오기 민망한 음절이었음. 심지어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음. 얼굴색 하나 안 변함. 맞붙은 입술이 내밀어지고 파열하면서 나는 소리. 여러 번 해본 것처럼 어색함 하나 없이 툭나왔음. 아니, 오히려 훨씬 편하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명헌은 반말인데뿅.”

“아, 죄송합니다. 아니 근데, 뿅...은 뭐예요?”

송태섭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의문을 그대로 제기해버림. 원래 같으면 잘못 들었납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런 생각 하기도 전에 충동적으로 질문한 거임.

“그냥 재밌어서용.”

이번엔 용????? 커플들이 싸우면 한다는 용용체????

송쪼푸 22년만에 처음으로 턱 떨어지다.

반면 이명헌은 태연함. 당연하지... 맨날 하던 건데. 어제는 초면이라 숨긴 거였음. 일할 때 빼곤 다 용용뿅뿅삐뇽베시를 달고 있는 괴짜인 거 산왕캐피탈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음. 송태섭만 몰랐음.

“내가 많이 불편한가용?”

용용대기 시작하니 말이 트이나봄. 질문이 많아짐. 벋 답은 정해져있는 질문. 어떻게 냉큼 '네. 님 존나 불편함.' 이러겠냐고... 태섭은 영업용 미소를 띠었음. 안 익숙한 표정이라 입꼬리 달달 떨리고 난리 남. 다행히 명헌은 태섭이 아니라 술잔을 보고 있어서 들키진 않았음.

“불편하다뇨, 전혀 아니에요.”

이명헌이 말없이 술이나 홀짝임. 또 정적. 이젠 익숙해질 것 같음. 말이 참 없는 사람이구나. 송태섭은 머릿속 이명헌 대응 리스트에 ‘2. 조용한 걸 좋아함’을 써놓음. 처음 쓴 건 '1. 뿅뿅댐'이었음.

역시나 이명헌은–송태섭은 그를 속으로 뿅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함–어제처럼 소파에 기대앉아 술이나 마셨음. 이따금 그는 태섭에게 시선을 주었는데 쳐다보기만 하고 말을 걸진 않아서 태섭도 눈치만 보다가 어색한 미소나 슥 지어주고 말았음. 그렇게 하면 이명헌은 고개를 돌려 다시 달그락대는 얼음을 노려봤음. 뿅뿅체로 이미지를 팍 깨주신 이명헌 덕분에 태섭은 한결 편하게 앉아있었음. 안 그렇게 생겨서 웃긴 사람임. 송태섭은 몰랐지... 한국인이 사랑에 빠지면 하는 말이 하여튼 웃겨, 라는 걸...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임. 어제처럼 이명헌을 배웅나온 송태섭이 운전기사로 온 정우성이랑 마주침. 왜 문제냐면, 정우셩은 반반하게 생긴 주제에 돈 갚으라고 주기적으로 얼굴 비추면서 경고하는 놈이었음. 태셥과 가끔 봤고, 장보러 나갔다가 우성이 따까리들 끌고 체납된 가게에 깽판 놓는 것도 봤음.

제비처럼 생겨선 일수꾼인 정우성.

껄렁하게 생겨선 제비인 송태섭.

왠지 쟤랑 나랑 자리가 바뀐 듯? 같은 생각을 했음.

“어! 너!”

송태섭은 뭐 좋은 관계라고 아는 척 하나, 쌩까자 싶었으나 정우성이 그럴 인재던가. 시끄러움으로 한몫 하는 개새끼인 우성은 삿대질까지 하며 태섭을 알아봄. 태섭이 이마를 짚었음.

'씨발 어쩐지 이틀 내리 편하다 했더니 오늘이 운수 좋은 날이었구나. 이러다 왜 설렁탕을 사왔는데 먹질 못하니 같은 상황 발생하는 거 아니냐...'

여기까지 생각한 송태섭은 갑자기 소름이 쫘악 끼침. 정우성은 나한테 돈 갚으라고 독촉하는 새끼임. 이명헌을 데리러 정우성이 옴. 즉, 이명헌은 정우성의 상사임.

와...

씨발 돈 갚으라고 눈치 준 거였어! 어쩐지 조용히 술만 처먹더라!

태섭은 약간 빈정이 상함과 동시에 눈치 밥말아먹은 자신에게 빡이 쳤음. 불러서 아무것도 안 시키고 꼬라보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음. 태섭은 눈썹을 짝짝이로 만들며 정우성을 쳐다봄.

“왜. 까먹었냐 그새?”

송태섭은 상남자임. 기싸움도 잘함. 아가리도 잘 턺(이중적인 의미). 하지만 깽판 굴러먹은 개새끼 정우성을 이기긴 짬이 부족했음. 허세를 잔뜩 섞어서 센 척을 해봤지만 손이 덜덜 떨림. 얼른 주머니에 쑤셔넣으니 웬걸, 열 배로 버릇없어 보임. 손님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정우성을 마주쳤겠다, 더이상 이명헌 앞에서 내숭 같은 거 떨 이유가 없음. 우성이 귀갓길에 태섭의 신상을 먼지도 안 나올 때까지 탈탈 털어 일러바칠 테니까. 역시나 우성은 여유만만임. 기껏해야 채무자임. 채권자가 꿀릴 리가 없음. 정우성은 반반한 얼굴로 생긋(송태섭은 이걸 보고 구역질이 났음) 웃어줌.

“기억 하다마다요, 고객님아.”

웃으니까 존나 잘생겼네. 송태섭은 솔직한 상남자였기 때문에 재수없다고 얼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흐려지진 않았음. 왜 저 얼굴 안 팔고 깽판이나 놓고 다닐까. 기껏해야 나흘이지만 화류계에 발 들인 송태섭은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고객님이라고 할 거면 존칭 똑바로 쓰시죠?”

“싫은데?”

“됐다. 얼른 꺼져.”

“하하, 그래도 갚으려고 용쓰는 거 보니까 기특은 하다.”

또 그 소리. 개새끼들이 사람 애취급도 정도가 있지, 이틀 연속으로 기특하네 어쩌네 평가당한 송쪼푸는 성격이 더러워질 것 같았음. 벋 꾹 참고 억지미소로 명헌에게 작별인사 함.

“명헌이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뿅.”

옆에서 정우성이 “명헌이형???” 하고 놀라는 게 보였지만 태섭은 미련없이 들어가버렸음. 곧 퇴근임. 근처 금은방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함.

한편, 검은 세단 안…

명헌은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서 창 밖만 쳐다보고 있음. 원래도 조용한 사람이지만 오늘따라 더 조용하다 싶어서 백미러로 흘끗 명헌을 훔쳐봄. 눈이 마주침. 우성은 얼른 눈을 돌렸음. 명헌이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음.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았음. 뻐끔, 작은 파열음과 함께 쌉싸름한 담배 연기가 두툼한 입술 사이에서 피어오름. 우성은 담배를 즐기지 않았지만–걍 노맛이라서–명헌이 담배를 물고 있으면 왠지 맛있어보였음.

“아는 사이뿅?”

“아는 사이라면 아는 사이죠.”

“고객님이라면서용.”

“기껏해야 한두 번 얼굴 본 게 다인걸요.”

“우성 담당?”

“네, 안 그래도 상환일 며칠 안 남아서 찾아가볼까 했거든요.”

명헌이 다시 담배를 빨았음. 명헌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폐부를 가득 채우는 일산화탄소와 니코틴의 고양감 탓인지, 아니면 송태섭이라는 인물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찾은 덕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음. 그만큼 별 것 아닌 감정이었으므로. 겨우 담배 한 대로 불러내는 고양감과 비슷한 수준의 작은 불씨였음. 내버려두면 꺼질 테지. 내부가 담배연기로 자욱함. 우성은 얌전히 운전해서 명헌을 집에 데려다주고 퇴근함.

‘저 오늘 완전 베스트 드라이버였죠?’ 하고 꼬리 팽팽 돌리면서 이누키타 되어 있는 우성이한테 끄덕. 해서 칭찬해주고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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