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태섭] 펜팔 下

-편지지가 아닌 A4용지. 여전히 동글동글한 글씨체. 고민이 많았던듯 곳곳에 잉크자국이 남아있다.-

 태웅아.

 이제 괜찮아. 아니 사실 안괜찮은데 이쯤되면 괜찮은 척 해야지. 한동안 걱정 많이 했지? 윈터컵까지 간다고 했고 주장이었던 주제에 고작 그런일로 의기소침해져서 도망이나 치고. 난 역시 아직 주장하기엔 멀었나봐.

 한나와는 계속 친구로 지내기로 했어. 그래도 당분간은 피하는게 맞을 거 같지. 내게도, 한나에게도. 한나는 먼저 진학을 위해 농구부 은퇴했으니까… 만날 일 많이 없겠지. 다른반이고.

 그래도 한동안은 많이 힘들 것 같다. 그럴땐 네가 잘 잡아줘. 새 주장 서태웅씨. 하하. 한나는 없지만 내가 너 주장일 적응 할 때까진 열심히 도와주마.

 달재가 나를 위해 윈터컵까지 은퇴를 미루겠다고 해서 거절했다. 얘도 진학이 목표인데 농구부에 발목잡혀선 안되지. 

 난…앞으로도 계속 농구 할 거니까. 인터하이는 놓쳤어도 윈터컵까지는 놓칠 수 없지. 이번 인터하이를 경험으로 윈터컵은 꼭 우승컵 쟁취하자.

 추신. 저번쪽지 그렇게 급하게 손에 쥐어주고 가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너랑 나눈 편지 다 보관하고있는데 갑자기 구깃한 쪽지 하나가 생겼네. 그래도 고맙다. 그런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금박으로 된 예쁜 꽃이 장식된 편지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신중하게 한자한자 적어나간 글자들.-

 선배.

 여행 간 곳 숙소 근처에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잠깐 가봤는데 예쁜 편지지를 팔아서 저도 모르게 샀어요.

 그렇지만 후회되진 않아요. 금색 반짝반짝한게 갑자기 선배가 떠올라서 산거니까. 그리고 관광상품 판매점에서 발견한 선물도 동봉합니다. 선배가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치만 여기는 농구코트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빨리 다시 선배랑 농구 하고싶어요.

 지금은 괜찮으실지 신경쓰입니다. 멍청이랑 가끔 놀러오는 치수선배나 준호선배, 대만선배도 요즘 선배 뭔가 어두워진 것 같다고 걱정 했습니다. 우리들 앞에서 웃다가 혼자 있으면 무표정해지는거도 알아요.

 아직 시간이 필요하실 거라는건 아는데… 그냥. 제 욕심입니다. 빨리 예전 주장으로 돌아와주세요.

 선배가 지고있던 주장의 무게도 제가 같이 들테니 전처럼 농구만 사랑하는 선배가 빨리 돌아오길 바랍니다.

 추신. 선배처럼 몸을 태우고 싶었는데 빨갛게 익기만하고 따끔따끔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하얀색 화려한 꽃이 그려진 분홍색 편지지.-

 태웅아

 네 선물 보고 깜작 놀랐어. 그리고 한참 웃었다. 이상하게 못생겼는데 또 계속 보게되는 이 검은 고양이 인형은 또 뭐야. 너무 크게 웃어서 반에서 갑자기 다들 쳐다봐서 조금 민망했다고. 그치만 고마워. 너무 귀엽다. 가방에 달고다닐게.

 선배들까지 날 걱정하고 있을줄은 몰랐네. 그러면서 왜 정작 나한텐 괜찮냐곤 물어보지도 않고 눈치만 봤담. 하여튼 이제 괜찮아. 완전히는 아니어도 훨씬 괜찮아. 아무래도 실연의 충격이 몇달 가는것도 웃기지. 

 내가 생각난다고 하기엔 꽃이 너무 화려한 거 같다. 나도 너랑 어울릴만한 편지지 찾아봤는데… 뭔가 색도 그렇고 부끄러운 느낌의 편지지가 골라졌지 뭐야. 그래도 거기 있는 것 중엔 이 편지지가 가장 너랑 어울리는 느낌이야. 농구하는 너는 좀 더 역정적이지만, 평소에는 화려한 느낌이니까. 하여튼, 여행이 좋았던것 같아보여 다행이다. 이제 힘내서 다같이 윈터컵 준비하자.

 추신. 하얀 피부는 쉽게 안 탄다고 하더라고. 근데 사실 난 너가 하얀 피부인게 더 예뻐 잘어울린다고 생각해.

-지난번과 동일한 금색 편지지-

 저 예뻐요?

 태섭선배에게.

 선배 가방에 고양이가 달려있어서 좋아요. 자꾸 멍청이가 노리는데 뺏기시면 안됩니다. 그건 선배만을 위한 인형이니까요.

 선배 컨디션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다들 안도합니다. 선배는 저희의 주장입니다. 물론 지금은 저한테 물려주셨지만, 지난 1년간 저희를 이끌어주신 일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훌륭한 주장이셨어요.

 저 밧슈가 낡아서 새로 사러 가야하는데,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레코드가게에도 새 음반 들여놨다고 광고하던데 같이 들으러 가고 싶습니다.

 이번 주말 괜찮으시면 답 부탁드립니다. 

 -자전거를 탄 여자아이가 잔디밭을 달리는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

 태웅이에게.

 네가 빌려줬던 옷이랑 동봉해서 편지도 보낸다. 감기기운은 없어? 난 그날 집에 오니까 으슬으슬 하길래 두꺼운 이불 덮고 잤어. 네 옷 정말 크더라.

 네 누나에게도 갑자기 주말에 처들어가서 죄송하다고 한번 더 전해줘. 당황스러우셨을텐데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했어 정말로.

 그분이 우리 가족 식당 알려주신 그 분이지? 그 태섭이가 너구나! 하실땐 좀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때 편지 뺏어읽으셨다고 했었던게 늦게나마 생각났어. 멋있으신 분이더라.

 비만 안 왔으면 원온원하고 더 놀다가 헤어졌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덕분에 네 집에 처음으로 놀러갈 수 있었지만. 

 이제 윈터컵 예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네. 이번에도 잘 해보자. 새 주장 겸 내 에이스.

 -보라색 라일락이 그려진 편지지. 이상할정도로 구겨진자국이 많다.-

 선배.

 이제 열도 다 내리고 괜찮아졌습니다. 다 나았어요. 내일 등교해서 이 편지를 선배에게 전해드릴겁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전화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누나랑 대화했다고… 누나가 선배랑 무슨 얘기 나눴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말도 안하던데 혹시 무슨 대화 나누셨나요. 나중에 들려주세요.

 대만선배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아픈게 별일이라고 나중에 보자고만 하고 끊었습니다. 다음에 올땐 원온원 하기로 했습니다. 대만선배랑 하는 원온원은 재밌습니다.

 이젠 태섭선배랑 하는게 더 재밌어요.

 잠깐 밥 먹는동안 누나가 몰래 방에 들어와서 편지를 읽었습니다. 뺏으려다가 조금 구겨졌습니다. 선배랑 무슨 얘기 했는지도 안 알려주면서 왜 제 편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봐요. 주장.

 -개나리가 그려진 편지지 어설프게 단풍잎 하나가 붙어있다.-

  가을인데 너무 편지지가 봄이라서 단풍잎 하나 붙여봤어. 남한테 준다고 셍각하니까 괜히 예쁜걸 골라보게 되더라. 네 맘에도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예선도 코앞이네. 애들 컨디션은 최상이고! 정말 기대된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자. 후회 없을만큼 우승을 목표로! 우린 할 수 있다!

 현예선중에는 아마 편지 못 쓸거야. 쓸 정신도 읽을 정신도 없을거 같지? 아마 이 편지가 현대회 직전 너와 주고받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다. 요즘 너나 나나 여러의미로 바빠서 편지 못보낼거같단 얘기를 편지로 썼네.

 그리고 네 누나랑은 그냥 너 얘기 했다니까. 계속 와서 안물어봐도 돼. 네 누나분이 왜 그얘기 듣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진짜 너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친구는 어떻고 그런 얘기만 했다고. 이제 그만 믿어줘라. 나야말로 네 누나분 나한테 너에대한 감상을 물어보시는게 궁금하거든!

 추신. 현예선에 선배들 구경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밥이나 사달라고 하자. 치수선배 준호선배 대만선배 다 온대.

 -옅은 회색빛 눈사람이 그려진 편지지. 급하게 썼는지 조금 휘갈겨져있다.-

 태섭선배.

 현예선 첫경기 전에 이런 편지 죄송합니다. 답장은 늦게 받고싶어서 일부러 경기 직전에 선배 라커룸에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선배와 뛰는 마지막 윈터컵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걸 전해드리지 않으면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급하게 씁니다.

 현예선 결과가 어떻든 마지막 경기를 치룬 그 날 저녁 8시경에, 교문 앞에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만약 그날 선배들이 온다면 헤어지기 전에 잠깐이라도 둘이서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가 처음 답장을 주셨던 그 편지 추신에 적혀있던 질문의 답을… 얼굴 마주보고 직접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일교차 심한데 겉옷 입고다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프신거 보고싶지 않아요.

 추신. 이겨요 우리.

 -파란 리본이 달린 편지지. 한글자 한글자 신중하게 적어내린듯 글씨가 꾹꾹 눌려져있다.-

 태웅이에게.

 답장이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네.

 네 진지한 고백에 대한 대답을 가볍게 하고싶진 않아서 오래 생각해봤어.

 우선 좋아해줘서 고마워. 네 말 듣고 네 편지를 다시한번 읽어봤는데 네 마음을 알고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다르더라. 내가 내 생각에만 집중하고있어서 그동안은 그저 좋은 후배가 써주는 편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네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알겠더라.

 아직은 네게 정확한 답을 내려주긴 어려울 것 같아. 이렇게 여지를 주는거 되게 나쁜말인거 아는데.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이미 난 너를 다른 후배들보다 좋아하는데. 이 마음이 어떤건지 아직 확신이 서진 않아. 차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 나도 몰랐는데.

 네 고백에 대한 대답은, 윈터컵 마지막 경기때까지 고민하게 해 줘. 시합에는 영향이 안 갈 수 있게. 같이 노력하자.

 -노트 절반을 찢은 뒤 다급하게 적은 듯 한 글씨체-

 야 서태웅.

 나 고민해본다고 했지 사귀자고 하지 않았다. 나 꼬시지 마라. 자꾸 달라붙지도 마!!

 -A4용지를 반으로 자른 종이. 노트 밑에 깔려있었는지 다른종이에 쓴 글자가 눌린 흔적이 남아있다-

 고민해보신다고 했지 싫다곤 안하셨잖아요.

 그럼 아직 기회는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할 때 까진 계속 슛 넣을겁니다.

  -작게 접혔던 흔적이 있는 찢어진 종이. 급하게 적은 듯 잉크가 번져있다.-

 오늘 경기끝나고 숙소앞 7시.


대충 전국대회 이후~윈터컵까지입니다. 둘이 더 자주 붙어다니면서 편지 주고받는게 많이 줄었다는 뇌내 망상....

태섭이의 마지막 쪽지는 윈터컵 결승입니다.

이대로 오픈엔딩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이거 후일담 적고싶어져서 또 찾아올거같아요...

사실 태섭이 미국가서 주고받은 편지까지 날조하고싶었는데..........안될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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