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같은 사람
과거로그
병실의 문을 열자 복도에서 풍기는 것보다 더욱 진한 소독약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선다.
문을 여는 소리에 누워있던 병실의 주인은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를 꼼꼼히 감싼 붕대에 잠시 시선이 가고, 눈을 든 레파르시아는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요?"
"그럼요. 오랜만입니다, 노이즈."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레파르시아와 필드를 누볐던 특수부대원 이안 칼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레파르시아는 손에 든 장미 한 송이를 빈 꽃병에 꽂았다. 이맘때쯤 찾아올 것을 안 간호사가 물을 갈아둔 것인지 세공된 유리병 겉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이안이 다리를 조금 옆으로 옮겨 자리를 내어주자, 레파르시아는 그 빈 공간에 걸터앉았다.
"이안. 드디어 은퇴한다면서요?"
"퇴원이죠."
"그거나 그거나."
병원을 나서는 순간 군인의 신분을 잃을 그였으니 동의어나 마찬가지 아닌가. 레파르시아의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튀어나왔다. 그런 속내를 알아 챈 이안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불만스러워 보입니다만."
"응? 그럴리가요? 힘든 일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축하해주지 못할지언정 불만이 가당키나 한가요."
레파르시아는 두 손을 펴 어깨 위로 들어보이며 과장스레 놀란 체 했다. 명백히 비꼬는 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불쾌해하기는커녕 미안하다는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직도 화났습니까?"
"당연한거 아닌가요."
곧장 튀어나오는 대답에 이안은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레파르시아는 표정없는 얼굴로 이안을 빤히 쳐다보다가 훅, 바람을 불어 흘러내린 제 머리칼을 날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곧 품 속에서 4등분으로 길게 접힌 종이를 꺼내어 그의 무릎에 올렸다. 이안은 어리둥절하게 레파르시아의 옆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릴 생각이 없는 듯하자 조용히 종이를 펼쳐들었다. 복사해온 듯 인장이 찍힌 곳까지 전부 새까맣게 프린트 된 문서였다.
-를 확인. 능력의 소유자 및 아군을 절제없이 해치는 문장의 구성이라 판단하여 안전을 위해 뱀의 도서 일련 제 6호 '화마의 뱀' 을 폐기토록 명한다. 위의 사건을 토대로 유사한 효과를 지닌 제 4호 '느린 용암의 뱀' 과 제 12호 '구덩이 속 붉은 뱀' 또한 심사를 거쳐...
이안의 시선이 문서의 끝부분까지 다다를 즈음, 레파르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다리를 해친 괴물은 이제 없어요. 무서워하지 않아도 좋아요."
"노이즈. 저는 이런 걸 원한게..."
"하지만 이렇게 되었죠. 상부에서도 귀한 인력을 스스로 불태우는 능력따윈 가지고 싶지는 않을테니까요."
레파르시아는 여전히 이안을 바라보지 못했다. 시선은 잔뜩 긁힌 부츠의 코 끝을 향했다. 침대를 짚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가, 힘주어 시트를 움켜쥐자 이내 멈춘다.
레파르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요."
랜처에 대항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가진 이능력자들 또한 목숨을 걸고 돌아다니는 필드에서 일반 병사들이 쉽사리 나다닐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마냥 혼자 떠돌수는 없어 종종 보조를 위해 사람들이 붙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레파르시아는 첫 인사도 제치고 가장 먼저 그들에게 경고를 던졌다.
"만약 내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 위험에 처한다면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다른 명령도, 약속도 없었다. 그것만 지킨다면 어느 것도 상관없는데.
... '화마의 뱀'은 처음부터 불안정한 책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답시고 평소에 쓰던 묘사와 달리 했던 점이나, 일부러 감정을 고양시키며 잘 쓰지도 못하는 여러 비속어를 단어 사이사이에 섞어넣은 점이나. 위태로운 부분은 많았다. 절반 정도는 사고가 날 것이라 어렴풋이 예측했다.
레파르시아의 실책은 그 예측이 들어맞았을 때, 또 다른 사고가 날 가능성은 집어넣지 않은 것이었다.
폭주하는 문장, 아가리를 벌린 뱀, 사특한 독니를 드러낸 불길이 팔을 감아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이나 내쉴 때 의기롭고도 어리석은 병사가 달려들 것이라는 가능성을.
'화마'는 어둡고 깊은 감정을 담은 책인만큼 부정적인 감정에 민감했다. 뱀은 당황한 주인의 불안을 집어먹고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레파르시아는 병사의 다리를 한 입에 물어뜯는 뱀의 모습을 눈이 아프도록 기억했다. 괴로움의 몸부림과, 멀찍이서 다가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른 병사들의 모습. 망막을 불태울 듯 뜨겁고 눈부신 장면이 고스란히 새겨진 듯했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순간 갈라져 아릿한 숨소리를 내었다.
"어긴 건 당신이에요."
레파르시아는 늘 생각한다. 사람은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더없이 잔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상처를 주고, 깨닫지 못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이건 이안의 탓이다. 레파르시아 레데르타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같은 사람 탓이다.
"......"
레파르시아는 이안이 침묵하는 동안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았다. 햇빛은 기억 속의 불꽃과 비교할 수 없이 온화하게 내리쬐었다. 레파르시아의 책 속, 이안 칼스의 단원을 마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후다.
"나는요."
레파르시아는 마치 혼자만이 소리를 허락받은 양, 병실에 드리운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나는 쉽게 스러지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에 사람들과 교류하고, 인연을 맺고, 그들을 위해 싸워요."
누구보다 앞서 싸우는 것은 '나'를 사람들에게 남기기 위함이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자신의 눈으로 지켜볼 수 없다는 이기심이고, 남겨지는 것이 지독히도 외로울 것이란 두려움이다.
네가 상처를 입는 것을 볼 바에야 내가 다치고 말지.
자신이 남에게서 들었으면 질색하며 싫어했을 말을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려 한다. 레파르시아의 본성은 이토록 모질었다.
"당신같은 사람은, 내가 죽으면 나를 기억해주지 않겠죠."
레파르시아의 긴 속눈썹이 내리깔려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모난 곳 없이 동그랗고 맑은 금색의 눈동자가 오늘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죽어버려서 추억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질 테니까."
가늘고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혼잣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남는가? 죽은 사람은 남을 수 없다. 다만 남길 뿐. 남긴 것을 주워섬기는 것은 남은 자들의 권리였고, 의무가 아니였음에 레파르시아는 발버둥친다.
레파르시아는 문득 숨이 막혀, 그만 환히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같은 사람이 딱 질색이에요."
당신같은 사람을 사랑스러워하나 좋아할 수 없는 것. 이것만은 내 탓이다.
그러니 울지 말아요. 레파르시아는 나지막히 속삭이며 이안의 빰을 가볍게 훑어주었다.
"잘 지내요."
레파르시아는 이안의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곧바로 병실을 나섰다. 문을 닫고, 그럴 일이 없음에도 혹여라도 쫒아나올까봐 걸음을 빨리 하여 복도를 가로지른다.
유독 울고 싶은 날이 있다. 평소처럼 길을 걷던 와중에도 참을 수 없이 목이 메이건만 바싹 마른 눈가엔 한 점 울음기조차 묻지 않는 그런 날. 그럴 때면 보이지 않는 눈물을 쏟아내듯이,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고개를 들고 나면 더이상 울고 싶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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