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 바다.02

노을이 걸린 하늘, 그것을 수면으로 반사하는 바다는 피처럼 붉었다. 멀리서부터 조류가 섞여 흘러들어와 번지는 붉은 색, 그 아래 점차 가까워지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AC. 이구아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G13의 기체였다. 로더 4는 난전을 치르고 온 듯 한눈에 봐도 파손 상태가 심각했다. 그 기체는 연기를 등 뒤로 흘려내며 가동하다가, 이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정지했다. 그것은 바다 아래로 내린 닻처럼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젠장…!”

저런 걸 눈 앞에서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달려나갈 것이었다. 헤드 브링어의 코어가 곧장 닫혔다. 이구아수는 여태 바라보기만 했던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이구아수가 바닷속에서 AC를 끌어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수중이라는 환경과 짧은 시간제한, 그리고 출력 부족이라는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AC라고 해도, 다른 AC를 통째로 들고 움직이긴 무리였다. 로더 4의 팔과 각부의 파츠를 잡아 뜯어내고서야 코어만을 간신히 옮길 수 있었다. 뭍으로 끌어낸 코어는 장갑 전체가 너덜너덜해져 코랄 섞인 바닷물을 피처럼 흘려내고 있었다. 이미 코어 안에도 물이 차있을지도 몰랐다. 이구아수는 헤드 브링어의 손으로 코어 장갑을 뜯어내려 했지만, 코랄 때문인지 AC의 손가락 관절이 찰흙처럼 로더 4의 장갑과 함께 뭉그러질 뿐이었다.

“젠장, 야, G13—!”

세밀한 조작이 불가능해진 이상 AC는 악수다. 괜히 기계로 코어를 내리쳤다간 가뜩이나 피인지 코랄인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 기계 속에서 벼룩처럼 터져버릴 터. 이구아수는 곧장 헤드 브링어에서 내려 큰 소리로 레이븐의 콜 사인을 외치며 맨주먹으로 로더 4의 장갑을 두들겼다. 낮은 금속성 울림이 파도 소리에 묻혔다. 멍청한 짐짝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지만 레드 건의 번호를 받은 이상 들개 또한 그의 부대원이자 후임이기에, 이구아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상태였다.

파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 사이로 주먹이 밀려들어가게 된 건 금방이었다. 활성 상태의 코랄은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부식시킨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더이상 철갑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점토판 수준에 불과한 강도. 부서진 곳이 장갑의 가장자리—즉, 코어가 열리는 개폐구—라는 것을 깨달은 이구아수는 이내 발로 그 부분을 몇 번 차 구멍을 내고선 그 곳을 손잡이 삼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구멍을 따라 안쪽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벌어진 틈에 어깨를 밀어넣고 몸을 일으켜 장갑을 기어이 열어냈다. 붉은 물이 닿은 피부는 화끈거렸고, 장갑을 직접 찢어낸 손과 어깨는 피투성이였다. 온통 만신창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을 깨달을 겨를이 없었다. 코어 안에서도 파도가 밀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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