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x🟠서랍 속의 편지
나도.
그 한 마디 내뱉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이미 모든 명제와 수식은 네가 정립해 주었다. 나는 그저 정해진 답을 적어내기만 하면 될 터인데, 그게 쉽지가 않아. 그러니 이 편지라는 양식을 빌려본다. 그래 마치 너처럼.
어렴풋이 기억이 나. 그날의 술집, 가벼운 말다툼. 격양된 감정 사이에서 막힌 말문을 뚫는 것은 폭력이었고 앞질러간 주먹보다 조금 늦게 발을 뗀 이성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전한 장소'에 너를 눕혔다. 돌이켜보면 신원도 불분명한 낯선 남자를 집으로 들이다니 나도 어렸군. 그렇게 깨어나 겨우 정신을 다잡은 너에게 이름을 물었지.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네 말마따나 그때부터 너는 요한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일찍.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우리는 시작됐던 거야.
그로부터 수년, 그때의 나는 곧 무너질 사람이었어. 어리석었지. 그리고 그 어리석음이 다시 만난 너를 생사의 가로로 밀어 넣었다. 그 후의 일을 너에게 말한 적은 없던가. 나는 다시 한번 너를 둘러업으며 선장에게 가장 가까운 대륙이 어디냐 소리쳤어. 그렇게 항구에 발을 딛자마자 공황에 빠져 정신이 나간 채로 달렸고 너는 내 등 뒤에서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며 천천히 굳어갔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 가망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와 함께 너와 무슨 관계냐고 묻더군.
이름? 몰라.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 정도는 했었지 수년 전에. 내가 잊었을 뿐. 네가 누구인지, 뭘 하던 사람인지, 아는 것 하나 없었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네가 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았어. 왜일까. 고민하며 며칠을 지새우다 네가 기적처럼 눈을 뜨는 순간, 너무도 고마웠다. 내 간절함에 응해준 유일한 사람.
이후로 우리는 쭉 함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하지만 네가 이걸 읽는 때에는 아닐지도 몰라. 나는 이 편지를 너에게 전해주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미안해. 이유가 뭐든, 명백한 나의 잘못이겠지. 미안해… 그래 미안해. 이렇게 쉬운 단어가 왜 네 앞에서는 말문부터 막혀버리는 걸까? 사과해야 할 것이 이리도 많은데…
너무도 두려웠다. 너는 내 은인이자 특별한 사람이잖아. 하지만 사선에 발을 걸치고서 목숨을 담보로 탄창을 채우던 위태로운 네 뒷모습. 나는 나의 나약함을 너의 탓으로 돌리고 네 숨통을 조였다. 하지만 너는 그마저도 버텼다.
언제였지?. 내 앞으로 온 편지 한 통.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에게도 사랑한다 말해줄 수 있냐는 한 문장. 그 뒤로도 열댓 통의 편지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불길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이 정체불명의 발신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이유, 그건 너 때문이었어. 뭐… 보낸 이가 적혀있지 않았던 마지막 편지에 네가 촉이 벌어진 싸구려 만년필을 들고 같은 필체로 서명하기 전까진 말이야. 혼란스러웠다. 이때까지는 네가 날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괴롭히는 것이라고,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가지고 놀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몰아넣는 것이라 넘겨짚었다.
처음 받았던 편지의 내용을 기억하냐는 마지막 편지의 질문. 나는 한참을 뜸 들이다 고심 끝에 대답했지.
사랑한다고.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해줬으니 앞으로 이런 장난은 삼가라는 말라는 말을 덧붙였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그리고 더 이상 할 수 없는 이유.
이제는 한 번이라도 내뱉어 버리면 거짓말이 아니게 되니까.
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고 싶지 않으니까.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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