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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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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by 멍게m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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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발이 맞질 않아서 속도가 느리다고. 얼마 되지도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수없이 넘어지고 다쳤다. 남들이 열 걸음 나아갈 때, 우리는 겨우 한 걸음 내딛고는 가쁜 숨을 돌렸다. 그 흔한 일상의 잔잔함조차 우리보다 앞서갔기에 내가 바라는 내일을 쫓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과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꼭.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 뒤에서 출발한 내가 너에게 다다를 때까지, 너는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선을 맞추고 함께 나아가자, 이번엔 보폭이 좁은 네가 뒤처졌다. 나 또한 기다려 주었다. 다시 처음부터, 이번엔 같은 곳에 서서 똑같이 맞춰 걷자. 천천히. 그럼 훨씬 나을 테지. 하지만 이제는 나 혼자 이 길을 걷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음에도 우리 사이엔 그 흔한 사과나 화해 한번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마디 정도는 해둘걸. 분명 너 또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네 마지막 눈빛이 그렇게 말했잖아. 모순되게도 우리는 이토록 닮았기 때문에 더욱 섞일 수 없었다. 너도나도 지독한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 있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어. 우린 진즉에 늪을 헤집고 나왔지. 서로를 밟으며 겨우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이 늪지대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너와 나는 헤어져야 하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싫었고, 그렇기에 너는 죽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네 곁에 남았을 것이고 너를 대신해 살기를 택할 것이다. 그것이 너와의 약속이었다. 이별을 버티기엔, 너는 너무나 닳아 곧 바스라질 사람이었다.

너는 겁쟁이다. 상실의 슬픔을 가장 잘 아는 녀석이 더 이상 아프기 싫어서, 무서워서 그 고통을 나에게 떠넘겼다. 덕분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게 곧 너에게 있어 내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겠지.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을 확신하기 힘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증명해 주다니. 이것도 어쩌면 너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나도 사랑해.


곧 연말이야. 나는 네가 알려준 사막 한가운데의 작은 그루터기에 기대앉아 네가 알려준 별자리를 짚을 거야. 꽤 쌀쌀한 밤이겠지만 모닥불은 피우지 않아. 네가 일렁이는 불꽃에 시선을 빼앗기기 싫다며 고집을 부렸었잖아. 덕분에 나는 감기에 걸렸고. 올해도 똑같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네가 없을 뿐이다. 그뿐이니까. 나는 괜찮아. 네가 알려준 일상을 이어갈 거야.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러니까.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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