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ㄹㅅㄱ

[글][ㅈㄷㅇㅅ] 세상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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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래시계

ㅇㅇ종도xㅇ우석

[세상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04

뻘한 설정인데 이종도 왜캐 오빠충일거같지.. 스스로 막 오빠라고 할거같음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 뮤에서는 안 그러니 오해마시길

아 미쳤냐? 뭔 짓이야 씨벌! 드럽게 새끼야, 아오....

  이종도는 냅다 욕을 하지 않는다. 천성이 양아치에 입은 걸어도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유가 없으면 더욱 더. 그러니까 이 욕이 튀어나온 건, 어지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닥뜨린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 탓이었다.

  그날은 이종도가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은 날이었다. 주말부터 쏟아진 비가 화요일까지 줄창 내렸다. 습한 날씨때문에 사무실은 온통 꿉꿉한 냄새가 났다. 빨래는 영 마르지않고, 라이터도 자꾸만 헛돌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만이었다면 이종도도 뭐, 어떻게든 기분이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정말 날씨만이 문제였다면 말이다. 요상하게 이번 주는 영 꼬이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화요일에는 밑에 있는 놈 한명이 더 떠나고싶다는 헛소리를 해대서. 결국 저번주에 이어서 또다시 직접 '기강'을 잡았다. 물론 저번주는 이런 이유때문은 아니었지만. 

  주먹질을 하면서, 이종도는 박태수를 떠올렸다. 박태수가 있었으면 또 괜히 나서서 분위기나 흐렸을게 뻔했다. 진작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비가 오니까 암만 때려도 먼지는 안 나겄네. - 낄낄대며 발치에 엎드려있는 따까리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날씨때문인가 금새 흥미가 식었다. 원래라면 한참을 더 패도 모자랐을텐데. 눅눅한 날씨에 따라서 처지는 느낌이었다. 손을 대충 닦은 수건을 옆으로 던지면서 이종도는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였다. 시간이 더뎠다.

  수요일에는 아침부터 밥을 먹다가 장국을 쏟았다. 비는 멎었지만 여전히 날씨는 어두웠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 흥건한 장국을 바라보다 그대로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금 당장 닦고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 귀찮았다.

  목요일 오전, 침대에 누운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종도는 생각했다. 이따 저녁에 그 사거리로 가야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그냥 다 귀찮은데 굳이 나가야하나, 그냥 오늘은 만나지말자고 할까 생각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연락처를 모르네... 하씨...'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참동안을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지간히도 축 처지는 날이었다.

  오후 6시, 담배를 뻑뻑피면서 먼지와 흙투성이인 계단 벽을 내려다보았다. 귀찮네... 진짜 가지말까... - 생각하면서도 20분 후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따가 강우석 만나면 연락처던 뭐던 뜯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주 내내 유쾌한 일도 없었으니 딱히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 전이라고 안그랬던건 아니지만 - 오늘따라 유독 이야기할 화제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도 못한 복병은 강우석이었다. 만날때부터 별 다른 말도 없이, 가게에 와서도 굳은 낯으로 술만 들이키자 화라도 난 줄 알았나보다.  오뎅탕을 떠먹는 숟가락이 영 느렸다. 왜 아무것도 안했는데 먼저 눈칫밥이나 먹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이나 침묵이 흐르던 테이블 위로 우석이 머뭇거리다 질문을 던졌다.

"...너 화났어?"

"안 났어 임마. 그리고 화가 나도 너한테 화났겄냐."

  평소처럼 술을 따라 마시는데도 뭐가 그렇게 걸리는지, 강우석은 유독 굳어있었다. 누가 봐도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아까까지만해도 괜찮았던 이종도의 기분이 다시 나빠진 건 그 때문이었다. 다른것도 아니고, 자기때문에 눈치보는 강우석때문에. 그 표정때문에 일부러 우석에게 툭, 말을 던진건 일종의 충동이었다.

"그렇게 내 표정이나 살피면서 눈치나 깔짝깔짝 볼거면 니가 뭐라도 떠들어보던가, 새끼가... 허구한날 나만 입털고... 쯧..."

  말을 내뱉으면서도 별 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봤자 강우석은 평소처럼 별 말없이 안주나 주워먹을거고, 자신은 술을 마시면서 시덥잖은 소리나 지껄일테고. 빠르던 늦던 말을 꺼내는 쪽은 자기가 될 거라는 걸 알고있었다. 그래서 더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강우석이 말을 오뎅 한 조각을 씹다가 불현듯 말을 꺼냈을 때는.

"오늘... 늦잠자서... 10시에 일어났어. 일어나서 밥 먹고, 어.. 아침은 그냥 밥에 김 싸먹었고."

"어?"

"밥 먹고... 빌린 책 좀 읽다가.. 그리고 뭐했더라... 부모님께 쓸 편지지사러 잠깐 나갔다와서... 그때가 한 2시 쯤이던가,"

"뭐여. 너 뭐하는건데."

"뭐냐니, 얘기해보라며..."

"내가 언제 니 하루 일과 궁금하다고 했냐."

"...알잖아. 나 말재주 없는거. 그리고 나한테 딱히 일어나는 일도 없어서....무슨 얘기를 해야 되는지..."

"그래서 꺼낸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일과 열거하는거라고?"

"뭐... 그렇지?"

  머쓱한 얼굴로 다시 오뎅탕을 한 숟갈 입에 넣는 강우석의 얼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존나게 요령없는 새끼. 존나 인생 정직하게만 살아왔을거같은 새끼. 말수도 적고 눈치만 존나 보는데 이상하게 재밌는 새끼. 원래라면 내가 제일 싫어했을 부류의 새끼.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그냥 웃겨서인지, 옆에 놓고보기 같잖아서인지 통 알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꽤나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됐다, 에휴... 말 시켜서 뭣허냐... 나 혼자 떠들고 말지."

  말로는 이러면서도 큭큭거리면서 소주를 따라 자작했다. 웃음이 걸린 종도의 표정을 보고 내심 안심한듯한 강우석이 눈에 띄게 풀어진 표정으로 오뎅을 집어먹었다. 도토리묵이랑 오뎅탕만 잘 먹고, 뭔 할배냐? 딱딱한건 안먹게? - 새우튀김과 과자를 영 먹지않던 우석을 떠올리며 말을 던지자, 강우석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 이런 소리가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웃겨서 괜시리 더 장난을 쳤다. 유치하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있었다.

  그래도 유치해도 뭐 어떤가 싶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 그냥 딱딱한거 씹는 느낌이 싫어서 그래... - 라는 말따위를 하며 단박에 반응하는 강우석이 있으니.

  시덥잖은 대화와 함께 오뎅탕을 넘기다보니 시간은 10시 가까이 되어가고, 가게는 어느새 사람들로 만석이 되었다. 복잡해진 테이블만큼이나, 가게 분위기도 잔뜩 시끌벅적해졌다. 안쪽 테이블 몇 자리가 시끄러웠다. 우석이나 종도보다 한두살 차이가 나보이는 대여섯명의 남녀 취객들이 어지럽게 모여앉아 술게임을 하고 있었다. 시끄럽다고 욕을하거나 시비걸지는 않을까 하는 우석의 우려와는 달리, 이종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간간히 돌아보다 소주를 마실 뿐이었다. 내심 속으로 걱정하고 있던 우석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로 양아치는 아니었나, - 하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강우석이 잘못 알고 있는게 있었다. 첫번째로 이종도는 그정도로 양아치가 맞았고, 두번째는 원래 성격대로라면 진작에 시끄러워 죽겠다면서 성질을 부리다가 시비를 걸었 - 혹은 걸렸 - 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종도가 웬일로 조용하게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귀찮아서. 이건 전부 다 날씨 탓이었다. 꿉꿉한 날씨따라 큰 소리를 낼 의욕도 사라졌는지, 이종도는 소주를 들이키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휴... 놈이고 년이고... 존나게 시끄럽네."

  다행히 테이블이 만석인 덕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로 코앞에서 그 말을 들은 우석은 괜히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야.. 들리겠다. 왜 그래. 조용히하고 술이나 먹어."

"듣던가. 그리고 들리겠냐? 단체로 넋빠져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데?

  확실히, 일부러 목소리를 죽이지 않고서야 절대 들리지 않을 크기긴 했다. 그래도... 사람이 저기 있는데.... - 중얼거리던 우석은 이내 거의 바닥을 보이는 오뎅탕을 펐다. 냄비바닥과 국자가 긁히며 쇳소리가 났다.

"그래도 저 새끼들은 기집애들이라도 옆에 끼고있지... 나는 뭐냐, 참나. 뭐가 이쁘다고 같은 좆달린 새끼 앞에 놓고..."

"뭐야... 부러우면 너도 여자애들이랑 놀던가..."

"그럴걸 그랬다. 날씨도 구린데. 여자애들이나 끼고 술 마실걸. 야, 너 아는 기집애 없냐?"

".....없어. 너는? 너는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오빠야 많지. 내가 넌 줄 아냐?"

"왜 갑자기 오빠 소리야...."

  바닥을 보이는 냄비 속 건더기를 긁어담으며 이종도를 흘겨보았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여자랑 놀고싶네 어쩌네 해도 우석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여자들이랑 노는 것도, 이종도가 그러는 것도. 자신은 별로 관심도 없고, 이종도야 뭐 그러거나 말거나. 오히려 이종도정도 되는 양아치가 여자끼고 노는 버릇 없는게 이상한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강우석은, 이때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꿔야만 했다. 이종도가 또 핀잔을 주더라도 그냥 오뎅탕 건더기로 화재를 돌렸어야 했다. 아니면 그냥 휘어진 젓가락이라던가, 정말 아니면 그냥 날씨이야기라던가.

  뭐가 되었든 간에 이 이야기를 피했어야 했다. 최소한 그랬더라면 이렇게 날벼락같은 말은 듣지 않았을것이므로.

"야."

"어?"

"니 아다냐?"

쿨럭. - 

그래. 이런 말.

"아 미쳤냐? 뭔 짓이야 씨벌! 드럽게 새끼야, 아오...."

  앞서 말한대로, 이종도는 냅다 육두문자를 날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새끼 저새끼까지는 그렇다 쳐도,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은 의외로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종도가 그런 욕 - '씨발', '좆같다' 라던가 - 을 할 때는 어지간히 화나거나 당황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ㄴ, 너야말로 미쳤냐? ㅇ... 뭔 그런 마, 쿨럭, 말을 해 갑자기! 콜록...."

  사레가 들린채로 항변하는 우석의 얼굴이 온통 벌갰다. 기도로 오뎅 국물이라도 들어간 듯, 재채기를 참지 못하는 우석을 평소라면 비웃었을 것이다.

"아니 씨벌... 그까짓게 뭐라고. 찔리냐? 하는거 보니까 아다 맞네. 븅신새끼..."

"뭔 상관... 아니, 그 말 그만 좀 하라고 제발..! 여기 공공장소야..!"

  귀까지 벌개진 채로 말하는 강우석의 얼굴을 바라보다 허, 하고 바람빠진 웃음을 흘렸다. 

  이거나 닦아 새끼야- 여전히 콜록거리는 강우석의 가슴팍으로 물수건을 던진 이종도는 주섬주섬 테이블 위를 닦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우스웠다. 상당히 우스웠지만, 사레들린 꼬라지를 눈 앞에서 보자 마냥 웃기보다는 더 놀려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내가 못 할 말 했냐? 그렇다고 뭐, 니가 안마방같은데 갈 성격도 아니고. 그러니까 당연히 안해봤겠다 싶었지. 새끼야."

"하..... 일어나자 우리. 갈 시간 됐다."

"맞고만? 빙신 새끼... 야, 나중에 니 동정떼고싶으면 얘기해라잉. 예쁜 애들 있는 데 알려줄게 임마."

"아 됐어 관심없어... 빨리 일어나 가자. 일어나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고 이종도의 팔을 잡아끄는 강우석을 올려다보다, 큭큭거리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그런데 우리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더라."

"몰라.... 너 때문이야..."

"찔리냐고, 아다새끼야."

"아니.. 하.....말을 말자..."

  어쩐 일로 보폭을 한껏 넓혀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강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으며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 진짜, 존나게 웃긴 새끼. 유치한 걸 알아도 우석의 난색한 표정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최근에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 아침나절의 꿉꿉한 기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비가 그친 밤하늘이 파랬다. 온통 어두운 골목 안에서 붉게 물든 우석의 귀만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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