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금랑 뒷이야기
리퀘스트
챔피언 타임은 끝났다.
N은 가라르에 줄곧 있지는 않았지만, 그 경기를 본 날 곧장 가라르로 왔다. 그의 용은 섬세한 면이 있고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연약한 점을 노출하고 싶지 않아했다. 웹을 체크해봐도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N은 금랑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금랑이 찾아올 때에도 N이 찾아올 때에도 그들은 서로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배틀타워에 그가 있을 것이다. N은 금랑을 느낄 수 있었다.
로비에는 웅성거리는 관중들 사이에 관장들이 새 챔피언과 오너와 함께 모여 있었다. N은 관중 사이에서 머리가 툭 튀어나와 있는 금랑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이 얘기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주는 얼굴에는 상냥함만이 감돌았다.
금랑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깜빡이더니 두 손을 가슴팍까지 들어올려 대화를 중단시켰다. 의아함을 표하는 동료들에게 금랑이 무어라 얘기하고, 금랑은 관중을 헤쳐 N을 찾아왔다.
“N! 어쩐 일이야?”
모르는 사람이 봐도, 금랑은 N을 반기고 있었다. N은 모자를 벗으며 금랑의 포옹을 받았다. 긴 포니테일로 정리한 에메랄드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껴안는 몸짓이 애처로웠다. N은 상냥한 얼굴로 금랑의 뺨을 쓰다듬고 턱을 들어올렸다.
“네가 슬픈 것 같아서 왔어, 나의 금랑.”
“..우와, 지금건 무지 설렜다.”
“다행이네! 괜찮아? 얘기 더 해야 하는 건?”
“아, 응.”
금랑은 허리춤을 뒤져 집의 카드키와 볼을 N에게 건넸다.
“플라이곤이야. 우리집에 가 있어.”
“너의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너를 닮아서 귀여워.”
금랑은 슬쩍 반다나를 내려 빨개진 얼굴을 가리려 노력했다. N은 몬스터볼을 들어올려 안의 플라이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저녁 전엔 돌아갈건데 뭔가 먹고 있어도 괜찮아. 플라이곤이랑 와일드에리어에 가도 괜찮고, 보물고에 가고 싶다면 지금 짐에 연락해 둘 테니까-“
“금랑.”
“응?”
관장들이 보기에 금랑의 태도는 순종적이었고, 관중들이 보기에도 금랑은 유순하게 굴었다. 말이 끊겨도 눈을 마주쳐오며 묻는 목소리엔 호의만이 있다. N은 금랑의 눈가를 만졌다.
“걱정되니까 무리하지 말고 와야해.”
이전보다 꺼슬해진 것 같았다. 금랑은 온화하게 웃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 같은 웃음으로 N의 뺨에 볼을 부비며 대꾸했다.
“Yes, my lord.”
N은 금랑을 따라 웃고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섰다. 금랑은 빨개진 뺨을 부비다가 관장들에게로 돌아갔다. 누구야? 지인. 사이 좋아 보이네. 좋은 사람이야. 단델은 N의 그림자를 눈으로 쫓았다.
금랑이 그를 가로막듯이 단델의 시야에 섰다. 단델은 가만히 금랑을 보았다. 그의 라이벌은 온후한 웃음으로 대화를 재개시켜, 그들을 회의실로 이끌었다. 사태를 덮기 위해 배틀타워에서 관장들이 출몰하는 이벤트매치를 기획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2대 2배틀을 좋아하는 금랑의 출전은 확정이었다. 야청이 타입의 불리함을 해결할 방안을 공부하고 있다며 확정했다. 순무가 호승심으로 확정했다.
이야기는 쉽게 흘러가 단델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새로운 챔피언과 반절이 넘는 관장들이라면 이목을 끌기에 좋다. 포플러를 꼬시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원래 이미 은퇴한 사람임에도 자리해준 것 자체가 단델에 대한 예우였다.
여느때라면 금랑은 가장 마지막까지 모두와 회포를 풀었을 테지만 모두가 목격했듯 그의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빠르게 택시를 잡으려는 금랑을 단델이 붙잡았다.
“왜?”
“아니, ...그는 정말 단순한 지인인가?”
기묘한 현기를 띠는 남자였다. 길쭉한 몸매와 세련된 스타일은 금랑의 지인으로 납득 가능한 맵시였지만, 단델은 그의 눈길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읽었다. 금랑의 순종적인 태도와 N의 상냥한 손길은.. 단델에게 상기시켰다.
“너희들은 마치 드래곤과 그 조련사 같았어.”
단델은 붙잡고 있던 금랑의 손에서 시선을 올렸다. 대답이 없어서였다. 표정이 사라진 금랑은 놀랍도록 낯선 얼굴이었다. 늘어진 눈길이 눈높이를 맞춰주지 않고 내려다보면 저렇게 싸늘한 빙하같음을 단델은 몰랐다. 금랑은 손을 빼내고 앱을 가동시켜 아머까오 택시를 불렀다.
“챔피언님의 관찰력은 어디 안 가나봐.”
“금랑.”
“내가,”
금랑은 스마트로톰에게 슬립모드로 전환되길 지시했다. 로토무의 눈이 완전히 감기고 금랑이 단델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내 역린을 누구로 삼든간에, 내 라이벌이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렇지?”
그 말이 맞다. 단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긍정하지 않았다. 금랑의 뒤로 아머까오가 내려앉았다. 기사는 금랑에게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검은 날개가 펄럭이는 것은 금랑을 무대 뒤로 쫓아내는 커텐자락 같았다.
단델은 챔피언 타임이 끝났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제 금랑은 챔피언의 라이벌이 아니다. 금랑은 단델의.
“너는 내 라이벌이잖아.”
금랑은 단델의 라이벌이다. 단델은 모든 것을 새 시대에 넘겨줄 수 있었지만, 모든 영광을 새로운 챔피언에게, 모든 경험을 새로운 챌린저에게 넘겨줄 수 있었지만, 그의 라이벌, 금랑만은 놓아줄 수 없었다.
“맞아.”
금랑은 간단하게 긍정하고 몸을 돌렸다.
“그럼 왜 날 떠나는 거야?”
“내가 네 용은 아니니까.”
단델은 금랑을 붙잡지 못했다.
금랑의 집엔 불이 켜져 있었다.
N은 서툰 솜씨로 요리하진 않았지만 나무열매는 조금 손질해 두었다. 플라이곤은 N과 있는 것이 즐거웠는지 금랑이 와도 달려들지 않았다. 금랑은 문을 걸어잠그자마자 볼 안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내주고 소파로 다가갔다. 앉아있는 N 앞에 무릎꿇고 N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N은 금랑의 반다나를 풀어내고 머리를 모두 풀어낸 다음 천천히 쓰다듬었다. 금랑은 울지 않았다. 금랑은 이게 이상하단 걸 알았다. 금랑은 단델의 용이 아니다. 단델의 패배에 그가 슬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슬퍼보여, 금랑.”
귓가를 스치고 뺨을 잡아 얼굴을 드는 손길을, 금랑은 거부하지 않았다. 넘칠 것 같은 호수의 눈동자는 N을 보고 있었다. 그 날 약속했었다.
“나는 N을 지킬 수 있어?”
용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평생을 단델의 등만 쫓은 금랑이 새로운 챔피언과 새로운 도전을 금방 삼켜낼 수는 없다. 금랑은 곧 새로운 도전들을 즐길테고 여전히 강해지는 것을 사랑하겠지만, 그것은 제 슬픔에 흙을 덮고 양분으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완전히 새시대를 소화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내게 돌아온다면 나는 무엇에도 상처입지 않아.”
금랑은 숨이 막혀 눈을 감았다. 속눈썹 끝에 걸린 눈물을 닦아주며 N은 단델을 생각한다. 금랑의 목줄은 N이 쥐고 있음에도, 금랑의 날개는 묶인채로 단델에게 쥐여져있다.
차라리 날개를 잘라낼까?
N이 손을 뻗어 양 엄지로 목젖을 누르고 목을 쥐어도 금랑은 반항하지 않는다. 눈을 깜빡여 살피지도 않았다. 온후하고 온순, 사람을 좋아하는 용은 가만히 N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N은 겨우 손을 떼어냈다. 어쩌면 금랑은 이대로 N의 용인채로 죽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N은 죽기 위해 제게 돌아오는 금랑은 보고싶지 않았다.
“금랑.”
“응.”
N은 보통... 포켓몬을 시험하는 트레이너를 싫어한다. 그들은 그렇게 강함이나 충성심을 시험당할 생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N의 친구이며 그들 자체로서 완벽하다. N은 자신이 금랑에게 가진 감정이 포켓몬에게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단델의 용이 될래?”
그렇다면 이런 말은 하지 못할테니, 이건 다른 감정이다. N은 천천히 동공을 확장시킨 금랑이 겁에 질려 고개를 젓는 것을 관찰했다. 금랑이 거부할 줄은 알았다. 금랑이 무서워할 줄도 알았다. N에게는 말이 필요했다.
“이제 단델은 챔피언이 아니고 너와도 라이벌로 묶여있을 필요가 없잖아. 너희 관계는 변할 수 있어.”
N은 자유로운 금랑이 좋아 가라르에 남겨두었다. 금랑은 가라르를 사랑하고 가라르에 있는 것을 기뻐했으니까. 용을 경외하는 자와 두려워하는 자들이 무어라 말하는지는 상관없었다. 금랑은 저가 어여삐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했다.
“아니, 야. 아니야. 단델이 아니야. 내가.”
N은 금랑의 두려움을 알았다. 라이벌과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고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 그걸 버틸 수 있는 건 금랑에게 안정적이고 절대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N의 용이고 싶어.”
N은 웃으며 손을 내어주었다. 여전히 몬스터볼은 잔인하다고 생각된다. 금랑은 처음으로 자길 길들인 조련사에게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길들여질 수 있는지조차 몰랐던 많은 야생 포켓몬들이 그렇듯, 두 번 다시 다른 트레이너를 따를 수 없게 될 것이다.
금랑이 그의 손을 구명줄처럼 붙잡아 입맞추었다. 용은 계약이었던 것을 완벽한 주종관계로 바꾸었다. N은 제 안에 퍼져나가는 폭력적인 만족에 낯설어하면서도, 만족했다. 조금쯤은, 평범한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쁘다, 금랑.”
강인한 생명이 오롯이 그의 지시에만 이를 드러내는 것은 이렇게도 충족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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