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바사삭!

리퀘스트


금랑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 직업만족도도 높은 편이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과 스스로가 충족하는 성과가 일치한다. 대개 그와 친분있는 자들이 하는 평가로는 멘탈이 강하다. 금랑은 그에게 쏟아치는 찬사와 찬양들에 익숙하고 대부분은 인정하지만, 그 말만은 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째, 금랑에게 가라르 리그의 악플 대부분이 집중되고 있다지만 다른 사람들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멜론이나 루리나는 늘 본업에 충실하고 트레이너 관두라는 얘기를 한번씩 듣는다. 저 단델마저 작작하고 은퇴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금랑이 생각하기에 수만 압도적일 뿐 빈도와 내용은 비슷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에게 칭찬을 쏟는 지인들의 멘탈도 금랑만큼은 되므로, 강한 것이 아니다.

둘째, 어쨌든 배지전은 어린 트레이너의 능력을 키우고 인증하는 일종의 승격전이다. 금랑은 마지막 체육관 관장으로서 배지 7개를 모은 트레이너만이 상대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수준은 높고 챌린저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금랑의 짐 포켓몬들은 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첫번째 체육관을 담당하는 상냥한 아킬의 짐 포켓몬들과는 다른 수준이다. 배틀의 수도 훨씬 적다. 즉, 짐 포켓몬의 유지관리에 아킬들에 비하면 훨씬 더 적은 수고를 들이는 것이다. 매번 브리더에게 적당한 개체나 혹은 알부터 받아 고레벨의 포켓몬을 육성하는 것도 큰일이라며 아킬은 경의를 표했지만, 반대로 금랑은 금방 커버리는 첫번째 짐 포켓몬들의 저레벨대 육성 횟수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아킬이 더 신기했다. 문제는 금랑이 드래곤타입 전문이란 점이었다. 금랑의 엔트리는 드래곤타입 범벅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짐에 소속된 포켓몬은 대부분 드래곤타입이다.

금랑은 그 자신이 드래곤타입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드래곤타입과 성미가 유사하며 그들을 사랑한다. 어릴때야말로 드래곤타입과 친해지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지금에와선 냄새가 배이기라도 했는지 쉽게 친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겠나요? 해당 짐이 유지해야할 수준을 ‘뛰어넘은’ 짐 포켓몬의 처분에 대하여?

“짐 배지 시스템은 명백히 이상해.”

포켓몬 배틀은 쓰러트리는 것이 기본이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의 기절을 의미한다. 마지막 한 마리가 남은 시점에서도 마비나 수면 혼란 따위의 상태이상으로는 패배가 인정되지 않는다. 적당히 내 포켓몬을 때릴 수 있었으니 너는 이 배지를 받을 자격이 되는구나! 하는 가르침도 안 된다. 어쨌든 챌린저는 짐 리더를 ‘꺾어’ 배지를 얻는 시스템인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짐 리더는 ‘진짜’ 자기 엔트리로 싸우지 못한다. 그랬다간 리그에 챌린저가 도달할 수 없다. 짐에 소속된 포켓몬들과만 배틀을 했다간 진짜 엔트리의 파트너들이 삐지고 만다. 비공식적으로 열리는 관장들의 친목 교류전은 파트너들의 위로회나 다름없다.

짐이 유지해야할 레벨대를 뛰어넘어 은퇴해야만 하는 짐 포켓몬의 처분은 전적으로 짐 리더의 권한이다. 인근 생태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방생하거나, 노후를 안전하게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입양시키거나, 개체가 맞는 경우에는 1차 생산라인으로 소모되기도 한다.

“드래곤타입은 고생이네~”

방생에 무리가 없는 야청이 웃었다.

드래곤타입의 경우에는 어디에도 보낼 수 없다. 방생? 드래곤타입은 대개 지형을 바꾸는 위력을 낸다. 첫 번째 배지전 담당이라면 약해빠진 미끄메라나 톱치였을 테고 그들이야 어디다 버리던 피식되어 사라질 테니 상관없었을 것이다. 배틀에 익숙해진데다 날씨변화기를 사용하는 고레벨 개체를 방생? 생태학자들에게 몰매맞아 죽을 것이다. 와일드에리어에 방생? 유기로 취급되는 일이니 불타 죽을 것이다.

입양? 너클 짐이 보낸 드래곤 포켓몬이 노부부를 참살 같은 뉴스를 제정신으로 보기엔, 금랑이 생각하기에 제 멘탈은 너무 연약했다. 금랑에겐 다르다지만, 짐 트레이너들도 잘 따른다지만, 드래곤타입은 일반적으로 그리고 일괄적으로 사납다. 사람 손을 잘 따르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개체들은 일방적으로 남획되어와서 경계심이 장난 아니다.

드래곤타입의 가죽이나 고기에 대한 수요는 늘 있지만, 1차 생산라인에 돌리는 것은 금랑의 멘탈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이 들고 마는 것이다. 토너먼트를 대비해 짐 포켓몬과 자기 엔트리에 너무 많은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금랑도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사랑스러운 파트너들과 유사한 개체를 그런 식으로 소모하는 걸 생각하면 금랑은 메스꺼워진다. 이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 번 견학갔을 때는 돌아와 성대하게 토했고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었고 한동안 섭식장애에 시달렸다.

“나님이 섬세하다고 해줘.. 우리가 챔피언 로드 만들어주면 좋겠다, 이제 싫어.. 짐 리더 싫어..”

가라르 리그는 챔피언 로드를 채택하지 않는다. 왕좌를 수호하는 사천왕 시스템은 보다 엔터테이먼트적이며 스포츠리그같은 방식으로 운용되는 가라르 리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단델의 인기를 생각하면 챔피언을 저 먼 곳에 올려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델은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무적의 카드였다. 하지만 사천왕이라면, 항상 자기 진짜 엔트리로 임할 수 있다. 책임져야 하는 짐 포켓몬의 관리도 없다. 동경하는 목호처럼 어린 개체와 다 큰 개체를 한번에 운용하는 방법마저 가능하다.

“그럼 관둬, 짐 리더.”

야청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금랑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테이블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네가 진심으로 너클이나 보물고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렇게 힘들면 관두라고. 어쨌든 네가 거기 앉아서 지켰고 직접 물어뜯으려 했던 단델은 이제 챔피언이 아니야. 배틀타워에만 오르면 언제라도 배틀할 수 있어. 네 우선순위가 단델이라면, 반드시 짐 리더여야 하는 건 아니야.”

로즈가 위원장일 시절, 아니, 금랑이 취임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도 금랑은 퇴진의사를 밝혔었다. 그때는 현실적인 문제로 불가능했다. 금랑이 울면서 꾸역꾸역 책임지기 시작한 짐 포켓몬들의 관리 때문이었다. 취임한지 얼마 안 되고 광고도 변변찮았던 꼬맹이가 드래곤타입 수십마리를 유지하려면 집안의 후원이라도 받아야 했다. 금랑에게 손 벌릴 가족은 없었고 당시에 PR을 위해 시작한 SNS는 약간의 중독증세를 쥐여주었다. 짐 포켓몬들의 은퇴 문제는 관장 1년차 때부터 유구히 금랑이 스스로의 멘탈을 의심하게 만드는 주요인이었다.

셋째, 금랑은 두려움이 많다. 야청은 얼굴을 새파랗게 만드는 금랑을 신기하게 여겼다.

“아니.. 아니아니, 지금 위원장이 단델이잖아.”

금랑은 도무지 놓는 법을 모른다. 선택과 집중은 금랑에게 없는 방법 같았다. 야청은 금랑이 끌어안은 수십마리의 포켓몬들을 기억한다. 금랑은 그 아이들을 위해 시간이 비면 늘 와일드에리어로 데려갔다. 매일같이 SNS에 노는 것처럼 많은 사진을 올릴 수 있는건 금랑이 시간을 천문학적 단위로 쪼개고 있기 때문이다.

“잠은 자고 있어?”
“어, 조금씩은.”
“안색 구려.”

금랑은 마른세수를 했다. 야청과 논의해야 했던 챔피언 개최 바다환경 토너먼트에 대한 이야기는 필담으로나마 거의 마무리되었다. 야청이 서류를 정리해 넣고 금랑이 커피를 마셨다. 야청은 떨림이 멎지 않는 금랑의 손을 보았다.

“카페인 쇼크 온다, 너.”
“그냥 수전증일걸.”

몇 잔 째지? 야청은 금랑이 저기에 4샷을 추가했던걸 기억한다.

“단델이 퇴임수리 안해줄 것 같아?”
“그것도 그렇지만, 무책임하잖아.”
“사천왕은 안 그렇고?”
“그건 승진이라는 느낌이고.”
“멜론씨가..”
“자리 네 개거든, 네 개. 사천왕이거든.”

금랑은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무서워하지 않는데, 버리는 것에는 공포를 기억했다. 야청은 그네보다 어른인 다른 관장들이 금랑의 그런 경향을 쉬쉬하는 걸 알았다. 아동유기 같은 문제일테고 아마 자세한 사정을 아는 것이겠지. 야청은 금랑이 시시콜콜한 것부터 중대사까지 야청에게 말해오는 걸 안다. 금랑이 모르는, 금랑의 원초에 박힌 공포로 비롯된 것이다.

“말이라도 해 봐. 스트레스 장난 아닌 것 같은데.”
“위가 쓰려.. 하지만 단델 화내면 무섭고.”
“그 사람이 화도 내? 본 적 없어.”

금랑이 입을 다물었다.

“...비교적 많이 내게 해 봤나봐?”
“시작은 이거야. ‘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장난 아니거든.”
“아 완전 이해 가는 시작이다. 뭐가 문제야 넌?”
“제발...”
“고기 좀 먹고.”
“싫어...”

포켓몬은 동료이자 친구이자 포식자이며 또한 먹이다. 금랑은 전자의 셋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드래곤 조련사지만 포켓몬을 먹는 것엔 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채식하는 용이 어딨냐고 놀림받아도 상관없다. 이미 정육된 포켓몬을 먹다 토해서 무용하게 만드느니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어쨌든, 금랑이 자기 자신의 멘탈을 낮잡아 보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악플따위 다들 견디는 일이고, 짐 포켓몬의 은퇴 이후에 대해 금랑만큼 스트레스 받는 관장은 가라르에 없으며, 금랑은 그 모든 일을 꾸역꾸역 쌓아가며 아무것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금랑은 10년이 넘게 쌓인 것들의 무게를 알았다. 고꾸라지는 순간 압사당할 것을 안다.

“일단 말은 해 볼까..”
“챔피언한테? 요새 배틀타워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네가 가면 바로 삼자대면일걸.”
“아~~~ 알려줘서 고마워~ 알고 싶지 않았지만~!”

금랑은 우는 소리를 내며 다시 테이블에 엎어졌다. 커피 벌써 다 마셨네, 야청은 금랑의 지갑을 들고 가 코코아를 시켰다. 오늘은 하루종일 식사를 제대로 못 할 것 같으니 당이라도 채워줄 요량이었다. 야청은 금랑이 우는 소리를 내며 과장하는 제스처가 괜찮으니 간섭하지 말란 신호라는 것을 잘 알았다.

금랑이 배틀타워에 우리를 찾아갔을 때, 당연한 것처럼 우리와 단델은 배틀 중이었다. 패배의 격정을 참아내는 단델의 모습은 낯설고, ‘괜찮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마는 금랑과는 아주 달랐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저렇게 표현하는 걸까?

“에, 싫어요. 그거 제가 배틀할 기회가 더 없어지잖아요.”
“역시 그런가~~”

이놈의 배틀바보 챔피언들은 챔피언 로드를 전혀 시야에 넣지 않는다. 단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금랑.”

아 역시 온다. 금랑은 우리에게 가도 괜찮다고 손을 휘젓고는 머리를 긁었다.

“아니, 역시 애들 은퇴가 신경쓰여서.”
“아직도 신경쓰고 있다면 평생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네가 어떤 형태로든 너클 짐을 등지고 나서, 짐 포켓몬들의 은퇴가 네가 바라는 형식일 리 없잖아.”

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퇴임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힘들어서 덮고 싶었을 뿐이다.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후임을 금랑이 직접 선택해도, 후임이 관장이 되고 나서의 재량권이 금랑은 간섭하지 못한다.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하면 그대로 끝장이다. 후임이 오래 일할지도 알 수 없다. 포플러처럼? 절대 못 할 걸. 멜론만큼만 일해줘도 감사할 지경이다.

그럼 그 다음은?

금랑이 죽기 전에 너클 짐 소속의 드래곤타입 포켓몬들은 다시 처분될 것이다.. 금랑은 속이 쓰리고 메스꺼워서 파카 위로 뱃가죽을 짚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음료만 마셨기 때문이다.

“알아. 그냥, 나는..”
“넌 늘 도망치고 싶어해.”

단델이 말했다. 우리가 눈을 굴렸다. 금랑은 파카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줬다. 화내지 마. 무서우니까. 아이가 보고 있잖아, 챔피언이지만. 현기증이 나는 건 수면부족 탓이다. 한 달은 족히 쪼개자는 쪽잠밖에 잠들지 못했다.

“내가 너 아닌 사람에게 졌기 때문에 이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그렇다고 말해. 그런 이유라면 네 퇴임, 수리해줄 테니까.”

우리가 입을 쩍 벌렸다. 아이가 보고 있다. 금랑은 천천히 손을 떼어내 깍지끼고 머리 뒤로 돌렸다. 핑글 도는 시야는 머리를 고정시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체간이 좋아 무게중심이 이상해져도 보통은 흔들리지 않는다.

“단델. 잠은 잘 자고 있어?”

목소리는 평온했다. 우리는 조금 침착해져서 금랑보다 단델에게 집중했다. 단델은 모자로 제 얼굴을 가렸다. 진득한 피로를 숨기지는 못 했지만, 한창 바쁠 때 미안하게 됐다고 금랑은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네 라이벌이야, 단델. 네가 누구에게 지던 나는 네게 이기지 못했으니 변하는 건 없어.”

해소하지 말아줘. 단델이 느끼는 것 이상의 두려움을 숨기며 금랑은 웃었다. 그린듯한 미소는 으레 짓는 것이다. 눈이 부드럽게 휘어 눈꼬리가 떨어지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 온후한 분위기를 풍기면 된다. 금랑은 그 미소에 익숙했다.

“짐 포켓몬의 은퇴에 대해선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 걸 아니까 답답해서 그랬을 뿐이야. 너 괜찮아? 나는 네게서 도망칠 생각 없어.”
“너는.”

단델은 모자를 구겨쥐고 금랑을 노려보았다. 금랑은 조금 앞서나가 우리의 시야를 몸으로 가렸다. 어린 챔피언이 있는데도 화를 참지 못하는 걸 보면 몹시 피곤한 게 틀림없었다.

“너는 뭐가 문제인지.. 난 전혀 모르겠어, 금랑. 네가 어떻게 나한테 괜찮냐고 말해?”

우리는 금랑의 손이 떨리는 게, 스마트로톰이 없으면 마구잡이로 핀트가 나간 사진을 양산하는 수전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웃겼다. 로톰을 두고 나온 금랑과 캠핑했을 때 금랑이 찍은 사진들은 온통 셀프 모래바람 연출 같았다.

금랑은 몇 번인가 눈을 깜빡였다. 크게 치뜬 눈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가 이내 천천히 내려갔다. 평소의 표정이 됐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금랑은 느리게 이야기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단델.”

금랑은 단델이 화낼때가 무서웠다. 금랑이 늘 도망치고 싶어하며 자신에게서 라이벌 외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매도하는 것들이 힘겨웠다. 금랑은 도망칠 수 없다. 힘들 때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금랑은 압사당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그림자가 밟힌 포켓몬처럼 싸울 것만을 강요당한다. 고꾸라지기 전까지 싸워야 한다. 도망치면 안 된다. 그의 라이벌 앞에서.

단델과.

“...네 말대로 잠이 모자랄지 몰라. 미안했다, 금랑. 우리도.”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자. 신경쓰지 말고.”

우리와 금랑이 얼른 단델의 휴전신호를 받아들였다. 어수선한 사이에 그들은 서둘러 해산했다.

금랑이 그림자밟기에 당한 상태라면, 그림자를 밟은 것은 그 옛날의 단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금랑은 절대 단델을 탓할 수 없고, 영원히 단델에게 괜찮으냐며 걱정을 건넬 것이다. 챔피언의 망토를 처음 두르고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혼자 두지 말라고 가련하게 밟았던 어린 아이를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금랑은 서둘러 제 집으로 향했는데, 아머까오 택시를 자택 인근까지 사용하진 않았으므로 골목을 걸어야만 했다. 어린 아이에게 사건을 맡겼던 것을 이유로 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이 아직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피해서였다. 그래도 걸린 걸 보면 오늘은 진짜 운이 없을지도. 금랑은 머리에 맞은 토마토의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썩은 것도 아니네, 아깝게.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해 먹어, 맛있다고.

취한 것처럼 웅얼거리던 남자는 가만히 내려다보는 금랑의 눈길에 위협을 느꼈는지 그대로 도망쳤다. 금랑은 한숨을 쉬며 반다나로 바닥에 묻은 것을 닦아내고 복통을 무시한 채로 다시 자택을 향했다.

여러가지가 쌓여 화가 난 포켓몬들을 꺼내주자마자 금랑은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 희미한 허브 냄새를 풍기는 제품들과 토마토 냄새가 섞여 요리재료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맛있는 요리라면 좋겠다. 요리당하는 것은 불쾌할 테니 먹는 사람이라도 즐거워야하지 않겠는가.

사랑스러운 포켓몬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내내 위가 너무 아팠다. 메스껍다. 드래곤타입의 아이들은 육식인 경우가 많다. 특수한 식사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키우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미끄래곤이 고기를 녹이고 있었다. 금랑은 배를 붙잡고 웅크렸다.

정말 금랑은 뭐가 문제일까? 금랑은 통증과 식은땀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금랑의 모든 조건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탑 짐 리더, 10년 무패 챔피언의 라이벌, 단델이 다른 사람에게 패배하고도 라이벌 타이틀을 묵살당하지 않았으며, 짐 트레이너들은 금랑을 존경해 주었다. 다른 짐 리더와의 교우관계도 원만하며, 스폰서와의 마찰은 거의 제로다. 너클 시민들은 금랑을 신뢰한다. 일반인 친구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포켓몬들에 둘러쌓일 수 있는 커다랗고 평온한 자택이 있다. 짐 포켓몬의 은퇴 이후를 위해 저금한 금액은 금랑이 평생 놀아도 수습할 수 있는 정도였다. 금랑이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으면 대체 누가 행복할 수 있는가?

왜 이렇게 금랑은

“플라이곤.”

플라이곤이 웅크려 배를 쥐고 있는 금랑의 팔꿈치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플라이곤의 눈은 그 붉은 덮개로 보호되지만 압박해서 좋을 리는 없었다. 금랑은 떨림을 참으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팔을 억지로 몸에서 조금 떼어냈다.

“괜찮아. 안 아파, 잠깐.. 잠깐 쑤신 거야.”

플라이곤이 걱정스레 날개를 떨었다. 좋은 소리가 났지만, 지금 금랑에겐 너무 높은 소리였다. 금랑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입 속을 짓씹었다. 플라이곤이 걱정하고 있었다.

떨림은 천천히 멎었다. 괜찮다. 건강검진은 늘 통과하고 있다. 스트레스에 유의해 달라는 문구는 누구에게나 붙는다. 금랑은 플라이곤을 쓰다듬었다. 턱 아래를 검지로 쓸어주는데 거스러미가 걸린 것 같아 손가락을 떼어냈다. 미안해, 사과하는 소리보다도 먼저 플라이곤이 금랑의 손을 붙잡고 거스러미를 입으로 떼어냈다.

조금 따가운 다음, 플라이곤의 혀가 상처를 조심스레 핥아냈다. 그 미지근한 온기와 섬세하지 못 한 제거로 생긴 통증 사이에서 금랑은 헤프게 웃었다.

“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버티는 걸까? 인생이 무겁다. 무게에 짓눌린다. 아이들의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는 할 수 없다. 속으로 삼킨 힘들어가 몇 만 번이 되는지 가슴을 잘라내면 심장에 새겨져 있을 것만 같다. 다들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왜 자꾸 금랑만 멈춰서고, 괴로워 웅크리고, 울음을 참느라 잠들지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금랑은 다만 그가 강하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말을 속으로만 부정해야 했다. 금랑은 차라리 자기가 약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금랑이 약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버거운 것이라고.

“사랑해, 플라이곤.”

원망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더 간단하다. 그가 고꾸라지면 그를 덮쳐 죽일 무게들을, 원망해버리면 안 된다. 사랑해서 짊어진 것인데 미워하고 탓하고 괴로워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면 금랑은 버틸 수 없다. 고꾸라져 압사당하는 것이 낫다.

그의 사랑하는 포켓몬들이 금랑을 껴안았다. 이 행복의 무게만큼 잠겨 죽는 것이다. 금랑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

괜찮아. 나는 행복하다. 지나친 행복이 공포를 가져온다면, 금랑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수밖에 없다. 금랑이 행복하지 않다면 대체 누가 행복하겠는가. 그는 대부분의 것을 가지고 있다. 금랑은 스스로를 안다. 그 찬사와 찬양들이 저에게 어울리며, 금랑이 저의 일들을 사랑함을 안다.

사랑을 토해내며 독을 안에 쌓아둔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언젠가 포기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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