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트라와 존재론
2022.02.25 학생이 갖출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잡다한 지식에 대하여
햇살이 부드러웠다. 그것은 창가의 문양을 따라 도형을 그리지만, 테두리가 부드럽게 번져 벽을 물들었다. 페네트라는 이상하도록 따스한 노란 무늬를 멍하니 보았다. 내 방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을 수 있었나? 왜 그간 못 봤지?
주위는 고요했다. 그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기분도 신선했다. 몸이 이렇게나 가벼운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상쾌하고 머리는 느긋하고 편안했다. 마치 푹 잔 것처럼…….
푹 잔 것처럼?
“잠깐만? 제기랄, 지각이다.”
페네트라는 벌떡 일어났다. 이 감각은 지각의 감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이라는 게 이리도 편안할 리 없었다. 늦잠을 한 번이라도 자본 자들은 모두 깨닫게 되는 아름다운 진리다. 등교 및 출근의 저주가 감춰버리는, 제 방에 햇빛이 적절한 각도로 들어올 때의 아름다움과 가벼운 몸의 축복. 그러나 이 과실을 맛본 이들은 뒤따라오는 지각이라는 단어의 거센 분노와 무자비한 뒷수습으로 뼈저린 고초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잊기 마련이고, 기억 이상으로 강대한 잠의 베일은 제 천을 드리우며 매일 밤부터 아침까지 거절할 수 없는 가호를 내리기에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페네트라는 당황하는 대신 기이한 차분함에 물들어 차근차근 생각했다.
1번, 상황을 파악한다.
확실하게 지각이다. 고요한 걸 보니 기숙사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전부 수업에 갔을 것이다.
2번. 시간을 본다.
음, 역시. 1교시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군.
3번, 침착한다.
침착했다.
4번. 옷을 갈아입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 대용으로 쓰는 운동복을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재킷을 걸쳤다.
5번. 신발을 제대로 신는다.
신었다.
6번. 어쩔까?
글쎄다. 어쩔까?
페네트라는 그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본래 성실한 학생이라면 6번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다. 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페네트라는 지각 정도의 충격에 공포에 휘말리는 학생이 아니었다. 페네트라는 경험 많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약아빠진 종류의 학생들이 규칙을 어겨보면서 익히는, 성실함과 반비례하는 종류의 것이다. 친애하는 우리 초등학교의 담벼락은 쓰레기장 근처가 낮아서 뛰어넘기 좋다던가, 선생님에게 들켜서는 곤란한 일을 벌일 때는 점심시간 시작 후 30분 정도가 좋다던가.
“어쨌든, 어쩔 수 없지.”
페네트라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본교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곳에서도 규칙을 어겨본 바에 의하면 출석은 5분이 넘어가면 끝난다. 고로 이미 늦었고, 어쩔 수 없다. 이번 수업의 선생님께서는 이곳의 빡빡한 규칙이나, 깨워주지 않은 배신자 친구들을 탓하십시오.
그래도 수업 중에 괜히 운동장 한복판을 돌아다니면서 걸리고 싶지 않아서 운동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본교를 돌아서 체육관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카메라 렌즈가 반짝거렸지만 페네트라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까지 CCTV를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불러내는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노출은 자신이 탈출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댁들은 그 정도에서 안심하라지. 이미 몇십 번이나 이러는 걸 봤으면서 인제 와서 신경 쓰이지는 않을 거 아니야?
친구들이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페네트라는 그동안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문을 박차고 나간 것만 몇 번인가? 그들은 배신하지 않았다. 페네트라를 배려해주었거나, 익숙해졌거나, 포기하였다. 그것을 배신자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신자는 오히려 페네트라쪽에 어울리는 단어이다. 학생의 본분을 저버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있고 싶지 않은 장소에서 수업까지 들으며 착한 학생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 나가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지독히도 가고 싶었다.
페네트라는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체육관에 다다랐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대련하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페네트라는 특별한 운동기구를 건드리는 대신 체육관 창고로 가서 잔뜩 쌓여있는 운동 매트에 몸을 던졌다. 창고에서는 먼지가 풀썩 일어났고, 두껍게 쌓인 운동 매트는 페네트라를 푹신하게 받았다.
페네트라는 몸에서 힘을 뺐다. 얼굴은 가장 상단의 섬유 조직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더 기울이자 그 아래에 깔린 매트에 닿을 수 있었다. 페네트라는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매트를 통과하여 그 아래 잠겼다.
손을 뻗자 비닐과 섬유조직, 거칠게 누빈 실과 그 아래의 스펀지나 솜이 만져졌다. 페네트라는 지층을 느끼듯 그것들을 쓸어보았다. 저마다의 감촉이 손가락을 통과했다.
그러나 사람은 무언가를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각 물체를 이루는 원자는 사실 서로 닿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자핵은 +극, 전자는 –극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끌어당기며 제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니까 모든 원자의 둘레는 전자, 즉 –극으로 둘러 쌓여있던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같은 극의 자석을 맞붙이기가 매우 어렵듯이, 서로 -극을 띄는 각 원자의 전자들은 서로 강렬하게 밀어내기 때문에 접촉할 수 없다. 고로 원자들은 서로 접촉할 수 없다. 당신의 손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만지려는 물체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둘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닿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물질은 완전히 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만졌다고 생각할 때의 촉감은 무엇인가? 그 전자가 밀어내는 힘이 주는 척력이 감촉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종이에서는 종이의 전자들이 종이의 감촉을. 유리에서는 유리의 전자들이 유리의 감촉으로 밀어내었기 때문에 우리는 종이와 유리를 구분한다.
페네트라의 능력은 터널 효과이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힘에도 불구하고 원자와 원자를 통과시키는 힘. 페네트라는 전자들의 척력을 차근차근 통과시켰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이윽고, 페네트라에게 감각의 부재가 찾아왔다.
페네트라는 스스로 자문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가?
지금 나는 여기 있는 것인가, 아닌가? 존재하고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이 이리도 나와 유리되면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이 장소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되면 나는 고향에 있을 수도, 어쩌면 지구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칸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페네트라는 생각한다. 생각이 존재를 만든다. 머릿속에서 감도는 생각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심장에 가라앉는다. 그 무게는 내가 존재함을 일러준다. 우주의 모든 것이 소멸하여도, 내 육신이 사라지고 내가 혼령으로 남더라도, 나의 고뇌와 불안이 내게 들러 붙어있다면 나는 지워지지 못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나를 피할 수 없으므로. 나는 사라질 수 없다.
그 어느 일이 있어도 존재가 남아있으리라는 희망이자 의지인가? 아니다. 쉬이 사라지지 못하리라는 지독한 절망이다. 정말로 사라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저주받은 장벽 안에서, 과거의 발자취와 암담한 전망과 매일 같이 겨루고 싶지 않다. 제 고향이 아닌 곳이 이리 머무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동안만 존재한다.
생각을 멈출 수 있으면 사라질 수 있을까?
"페네트라 학생."
페네트라는 숨을 훅 들이켰다. 그리고 제 숨에 놀라서 쿨럭거리며 심장을 쳤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여전히 체육관의 창고였고, 운동 매트는 주변에 치워져 있었으며 안드로이드 하나가 페네트라 앞에 서 있었다. 페네트라는 눈을 힘겹게 깜박였다. 자신은 얼마 동안이나 부재 상태였는가? 간신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간단하게도 현실로 이끌려왔다. 너는 이곳, 그니즈도 아카테미에 존재한다고 신적인 존재가 단정 짓는 것처럼.
“페네트라 학생. 지금 즉시 교무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페네트라는 천천히 제 머리로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꽉 잡았다. 신경질적인 대꾸가 나왔다.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더니 왜 그래요?”
“오시면 아실 겁니다.”
체코어로 된, 불만을 표하는 꽤 과격한 단어들이 입에서 새었다. 페네트라는 머리를 한참 헤집으며 그러고 있다가 일어났다. 바닥을 밟는 감촉이 끔찍하게도 선명했다.
안드로이드는 등을 돌려 먼저 걸어 나갔다. 페네트라는 발을 질질 끌으며 걸어갔다. 그리고 투덜거리며 불온한 생각을 잔뜩 했다. 혼내려고 부르나? 문 앞에서 기색을 살피다 여차하면 그대로 뒤돌아가서 튀어버리지 뭐. 아니면 잔소리 앞에서 게슈탈트 붕괴에 대해 시험해보자. 무자극에 관해 확인해 봤으니 과자극에 대해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비록 그거 학계 정통 심리학이 아니라지만 알 게 뭐야?
이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도시 괴담이든 유사 과학이든 정말 알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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