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페네트라와 귀환

진정으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2022.02.26

“마을에는 따라오지 마세요.”

페네트라는 팔짱을 끼고 그렇게 말했다. 각종 방호복을 꼼꼼하게 갖추고 안전벨트까지 착용한 모습은 뻗대고 있다거나, 건방져 보인다는 인식을 주기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페네트라는 목소리와 자세만으로 앞에 언급한 인상을 전해주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즈리 요원은 도발 당하지 않았다.

“이유는?”

“현지인 마음대로.”

“그게 이유가 된다고 보십니까?”

“불안감 조장이라고 하면 이유가 되려나?”

페네트라와 미즈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한바탕 신경전이 일었다. 두 상대는 나름 진지했겠지만, 겉보기에는 별로 치열하지는 않았다. 방호복이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방호복이라는 장비는 서로의 눈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한 사람이 방호복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저희는 당신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감시겠죠.”

하지만 이 중에서 분위기를 못 읽을 멍청이가 있다면 애초에 자기 수행원으로 붙지 않았을 테다. 실제로 다른 수행원들은 고조된 분위기를 읽고 제각기 행동을 취하려고 했다. 운전수는 백미러를 보며 엑셀이든 브레이크든 밟을 준비를, 누군가는 상부에 바로 보고할 준비를. 하지만 그들에게는 행동 강령이 없다. 페네트라의 돌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얼마나 있겠는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미즈리는 페네트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페네트라 파비우스. 당신에게 감시가 왜 붙게 되셨는지 기억 안 나십니까?”

“글쎄요. 한 일이 한둘이 아니라서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데.”

“2017년 8월 외출에서 당신은 추적 수단을 제거하고 도주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후도 제한적으로나마 당신에게 외출이라는 것이 허용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기시지요.”

페네트라는 피식 웃었다. 방호복으로 인해 웃음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웃음을 내리지는 않았다. 비아냥거릴 때의 페네트라의 오랜 습관이었다.

“아, 그때는 정말 휴대전화를 깜박하고 버스에 두고 내린 거라니까요?”

“그다음의 무단 경로 이탈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으면 휴대전화를 되찾아야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안 들어요?”

“그런 일이 생겼으면 움직이기 전에 그니즈도 아카데미 측으로 바로 연락하셨어야 합니다.”

“생각이 안 돌아가요? 방금 말했잖아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연락을 어떻게 해요?”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죄송하게 되었네요.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타지에서 짐까지 잃어버린 게 워낙 충격적이라서 공황 비슷한 게 오는 바람에 하나도 기억이 안 났네요.”

미즈리는 페네트라를 쏘아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페네트라는 그 행위에 약간의 쾌거를 느꼈다. 그 쾌거가 아주 쓸데없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일은 마무리되었으니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번 외출하는 동안 협조해주십시오.”

“왜요? 난 재미있는데. 더 해봐요. 서로 이렇게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오해도 풀고.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미즈리는 입을 다물었다. 페네트라는 투덜거리며 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길은 매끄럽게 포장되지는 않았고 차는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차가 흔들리는데 사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수행원들은 휘청거리면서도 묵묵히 균형을 잡았다. 페네트라는 그럴 필요 없었다. 시트가 잔뜩 튕겨도 몸은 완만하게 잠겨있었다. 페네트라의 의자가 특별히 다른 종류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페네트라가 특별하다고 봐야 했다. 페네트라는 충돌 판정이 적용되지 않은 조잡한 3D 게임의 그래픽처럼 의자와 피부가 서로를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페네트라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그 상태로 팔꿈치를 유리에 대어 턱을 괴기까지 했다. 본래대로라면 차가 요동치면서 턱이 달달 떨리다 못해 턱이 나갈 지경이 되겠지만 페네트라가 충격을 받는 대신 팔꿈치가 간간히 유리를 통과하였다. 이 또한 페네트라의 특별함이다. 그리고 그 특별함에 딸린 결과가 이 방호복과 자신을 감시하는 수행원들이 잔뜩 들러붙어야 겨우 허용되는 외출이다.

쓰디쓰고 진저리나는 포기 끝에 페네트라는 그런 특별함을 인정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평범한 꼬맹이가 되고 싶은 심정을 이 수행원들은 도무지 이해해주지를 않는다. 이 심장 없는 양철 나무꾼 같으니라고. 페네트라는 울적함을 감추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럼 마을에 들리지 말아요.”

“이제 와서 가는 곳을 바꾸시겠다는 겁니까?”

“누가 그래요? 집으로 바로 가겠다고요.”

“정말 그러시겠습니까?”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옷을 입고 수상한 사람들 잔뜩 데려가서 평안한 마을 한복판에 나타나면 다들 놀라서 튀어나오거나 자빠지거나 쓰러지지 않겠어요? 마을 사람들 심정도 좀 생각해줘야 하지요. 이게 바로 배려라는 건데, 당신들도 좀 배워요.”

페네트라는 손을 휘적이며 아무렇게나 말했다. 그러나 그건 잔뜩 삐진 사람의 투정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온 노력을 다한 결과다. 미즈리는 페네트라를 보다가 운전수에게 변경된 목적지를 전했다. 운전수는 방향을 돌리려고 했다. 페네트라는 거기에 끼어들었다.

“그냥 쭉 가면 돼요. 어차피 마을을 통과해야 우리 집이 나오거든.”

미즈리 요원과 운전 수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나 경로는 결과적으로 페네트라가 말한 대로 되었다. 페네트라는 ‘내가 뭐랬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눈을 깜박이며 마을을 보았다.

그가 자라온 마을이다. 15년을 자라왔으며 그가 뼈를 묻을것을 맹세한 장소이다. 골목 사이에 구역을 나누어 점령전을 벌이고 그러다가 어른들에게 혼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수백 바퀴는 돌았던 장소이다.

마을은 전보다 낡은 듯 느껴졌고, 몇몇 곳이 변했다. 왜 변했을까? 전에 있던 것은 어떻게 되었지? 페네트라는 눈을 끔벅거렸고, 눈앞이 확 흐려졌다. 흐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잡은 광경은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가는 아이들이었다. 페네트라는 다시 욕설을 내뱉으며 눈가를 비볐고 그사이에 이미 풍경은 스쳐 지나가 있었다. 그러나 잔상은 제 머릿속의 기억과 결합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내었다.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내가 다시 저리 설 수 있을까? 페네트라는 그 안에 방호복을 입은 자신과 수행원의 모습을 덧그렸다가, 그것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광경으로 느껴져서 입술을 깨물며 모든 이미지를 지워내었다.

덜 나댈 걸 그랬다. 그러면 수행원이 이렇게까지 붙는 일은 없었을 테다. 그러나 이미 페네트라는 아카데미의 둘째라면 서러운 반항아로 찍혀있었다. 아카데미에는 뛰어난 학생이 많고 충돌에 관해서는 페네트라보다 능한 학생도 많아 페네트라가 그냥 서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람이 떨어져 나가도 페네트라가 위험한 감염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마을 분 몇몇을 떠나보낸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페네트라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찌 반응할까?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냐고, 썩 꺼지고 두 번 다시 발을 붙이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

다시는 마을에 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창가를 잡은 손이 떨렸다. 여전히 차의 진동 때문은 아니었다.

이윽고 집에 다다랐다.

“집…….”

페네트라는 집을 홀린 듯이 보다가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기도 전에 뛰어내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바닥에서 한 바퀴 굴렀다. 수행원들이 서둘러 따라내려 페네트라에게 다가왔다. 일부는 페네트라의 상태를 살피는 듯 보였고 다른 쪽은 페네트라의 돌발행동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페네트라는 손을 내밀어 세우곤 아무도 다가오지 말라는 표시를 해보였다. 그리고 휘청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의 지붕은 여전히 붉은색이었다. 외벽은 베이지색이었는데, 회색으로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에어컨을 설치했는지 호스가 길게 빠져 나와 있었다. 전부터 말썽이었던 1층 창문은 아예 교체해버렸다. 마당을 가꾸는 재능은 가족 중 누구에게도 없었기에 별거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한쪽에 놓았던 놀이기구는 치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매가 그런 것을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커버린 탓일 테다.

페네트라는 현관문에 쓰러지듯 기대어 이마를 대었다. 집. 나의 집. 그토록 오고 싶었던, 그리웠던 집.

“페네트라!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달리는 차에서 뛰쳐나가는 건!”

미즈리가 득달같이 쫓아와 뭐라고 외쳤다. 페네트라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그리고 특유의 정적으로 그 집이 비어있을 알아차렸다. 페네트라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네…….”

“페네트라 파비우스!”

미즈리가 페네트라의 어깨를 휙 잡았다. 어째 온몸에 힘이 없어서 페네트라는 그대로 끌려갔다. 미즈리는 형형한 눈으로 페네트라를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지요?”

이상하다.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지? 페네트라는 어째서인지 이해가 안 갔다. 정신이 그저 아득했다.

“속셈?”

“네, 속셈. 무슨 목적으로 당신은 차에서 뛰어내렸고, 당신 가족은 어디 있지요? 당신은 무얼 할 셈이지요?”

“아.”

아득한 정신이 점차 이 자리로 돌아왔다. 페네트라는 눈꼬리를 기울였고, 미즈리의 손을 떨어뜨리며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곧 성인 되는 애한테 가족이 꼭 들러붙어 있어야 하나요? 그냥 일 나가셨을걸요? 언제 올지는 모르고.”

“그 말을 믿으시라는 겁니까?”

“제 가족 조사 정도는 해보셨을 거 아니에요. 렌카 파비우스, 루텍 야클. 운송업 종사자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음. 최근에는 카렐 파비우스도 합류. 안토닌 파비우스는 타지에 거주 중. 그걸 생각하면 집이 비어있는 일이 그렇게나 이상한가?”

페네트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즈리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러 오신 게 확실합니까? 오기 전에 연락을 안 하셨습니까?”

“내가 굳이 왜요? 청소년에 대해 너무 모르시네. 이 나이대는 시시콜콜 집에 연락하기를 싫어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나는 그중 하나라고 해두죠.”

“그럼 이곳에는 왜 오셨습니까? 그 이전에 당신의 집이 확실합니까?”

“내 집이 맞는지 아닌지는 주소지 확인해 보면 아실 일이고. 그냥 내 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왔어요. 그럼 안 된다는 법칙 있던가?”

“외출 제한 이후로 허가된 첫 외출을 그저 이런 식으로 쓰신다고요?”

“그런 셈이지요.”

“역시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집의 내 침대에서 늘어지게 자는 거?”

미즈리는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는 페네트라가 가족과 연계한 탈출 작전을 세우고 있으며 집에는 숨겨진 비밀장소나 대항용 무기가 있을 가능성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페네트라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길게 페네트라를 노려보다가 미즈리는 마침내 한발 물러났다.

“다음부터는 멈추지 않은 차에서 함부로 내리지 마십시오. 심각하게 다치실 수 있습니다.”

“다치게 내버려 둬요. 그럼 당신들이 다루기도 편하지 않겠어?”

“당신을 보호하는 것 또한 저희의 임무입니다.”

감시라며? 페네트라는 그렇게 쏘아붙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쟁을 벌일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손을 대충 흔들어 보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내부의 모습은 어색함과 익숙함이 공존했다. 집의 구조가 곧 떠오르며 눈에 익었지만 바뀐 것이 눈에 걸렸다. 식탁보가 바뀌었네. 하긴, 새로운 걸 살 때도 되었지. 쇼파는…… 쇼파가 저거야? 그럴 리 없는데? 바뀌었다고?

당황한 페네트라는 그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읽어보려고 애썼다. 안락의자 옆에 무분별하게 쌓인 신문은 아빠가 그랬을 테다. 포장용으로 모은다는 변명이 있지만 정리해서 두는 대신 옆으로 떨어뜨리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창가에 먹던 컵을 가득 내려놓는 건 엄마의 버릇이다. 바깥 경치를 보다가 까먹는다고 하신다. 집안 달력이 개인 다이어리처럼 채워진 것은 언니가 그랬을 것이다. 너는 프라이버시도 없냐, 제발 따로 쓰자. 라며 탁상 달력을 사줬는데 그건 먼지만 쌓이고 결국 집안 달력은 언니가 점거해서 나머지 가족들은 날짜와 공휴일만 보게 되었다. 화장실에 앞에 책 한권이 있는건 안토닌의 영향일테다. 안토닌 말고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책은 아주 긴 주기를 두고 교체된다.

그러나 거실에 일렬로 놓인 화분이나, 다국적 풍으로 바뀐 집기 앞에서는 페네트라는 혼란스러워하였다. 대체 누가 식물 기르는 취미가 생겼지? 이 혼란스럽게도 다양한 나라 물건은 누구 취향이야? 그런 사람이 가족 중에는 없을 텐데?

페네트라가 알고 있는 가족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페네트라는 낯선 곳에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분명 여기가 맞을 텐데 페네트라 자신이 길을 잃었나 보다. 혹은 시간을 착각했나 보다.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자신이 놓쳐버려서 영영 잃어버렸나 보다. 그들은 페네트라가 알던 가족이 아닐 테고 집은 페네트라가 알던 곳이 아니다.

페네트라는 갑자기 쓸쓸함에 휘감겼고 그 쓸쓸함을 떨치듯 위층으로 쿵쿵 올라갔다. 페네트라를 살피던 수행원 하나가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지만 페네트라는 개의치 않고 제 방을 열었다. 제 방은 누가 청소해놓았는지 깔끔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작아 보일까? 이리 낯선 공간에 온 기분을 어찌해야 할까?

페네트라는 눈물이 핑 돌 것 같았으나, 수행원을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나 이제 잘 거니까 소리 내서 깨우기만 해봐요.”

그는 미즈리처럼 괜히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이 시간에 벌써 말입니까? 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다. 페네트라는 그 질문을 읽고 홱 대답했다.

“댁들이 오는 길에 하도 피곤하게 굴어서 말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페네트라가 먼저 시작했지만, 어쨌든. 페네트라는 제 방의 문을 잠가서 걸어 잠그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이불은 서늘했으며 익숙한 감각이 아니었다. 베개가 낮았고 약간 까슬까슬했다. 페너트라는 자신이 그니즈도에서 제공되는 침구류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집에 왔잖아. 왜 이러는 거야, 페네트라. 집에 왔는데도 어째서 마냥 편안해하지 못하는 거야. 15년을 살아온 곳이잖아. 고작 몇 년 떠났다가 돌아왔다고 적응하지 못하는 거야? 이곳은 내 집인데? 저 빌어먹을 그니즈도가 아니고 이곳인데?

페네트라는 그렇게 엎어져 몇 시간 동안 있다가 자신이 지금 잘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밤이 되기까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밤중이 다 되어가도록 같은 상태였고 그때는 약간의 위기를 느꼈다. 해결책을 찾을 필요를 느꼈고, 페네트라는 문밖으로 나왔다.

“거기 있어요?”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은 했지만, 짜증스러웠다. 페네트라는 혀를 찬 다음에 말했다.

“나 잠이 안 와서 창고 갈 건데 도주니, 뭐니 하며 요란 떨지 마시고 따라오려면 오시던지요. ”

어둠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나와 따라붙었다. 미즈리였다. 페네트라는 불을 켜지도 않고 성큼 걸었다. 창고까지 가는 길은 보지 않아도 꿰고 있다는 작은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창고의 잠금장치도 손의 감각만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은 불빛 없이 해내기 어려웠다. 복잡한 창고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야 했다. 이건 집에 눌러살던 시절의 페네트라여도 불 없이는 못 하는 일이었다.

페네트라는 입구 바로 옆에 헤드랜턴을 걸어놓는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손을 뻗었다. 밴드가 잡혔고, 스위치를 조작해서 불을 켰다. 페네트라는 그걸 미즈리에게 넘겨주었다.

“비추고 있어 봐요.”

미즈리에게서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기만 페네트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빛을 확보하고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물건을 뒤졌다. 빗자루, 내던지고. 갈퀴, 벽에 잘 세워두고. 스탠드 마이크, 이건 대관절 누가 산 거야?

“뭘 찾습니까?”

“당신은 알 것 없고. 아, 이거면 되겠네.”

페네트라는 아이스하키 스틱을 집어 들어서 쥐었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그것을 의기양양하게 어깨에 걸치고 창고를 나섰다. 미즈리는 손에 남겨진 헤드랜턴에 갈등하는 것 같았지만, 곧 적당한 장소에 두고 페네트라를 따라나섰다.

“그건 뭐하러 찾으셨습니까?”

“내 지난 장래 희망이 아이스하키 선수였수다.”

“잠이 안 와서 찾은 물건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잠이 안 오니 긴긴밤 동안 추억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취지로.”

페네트라는 어깨에 걸친 스틱이 문간에 걸리자 아래로 내려 품에 쥐었다. 그걸 보며 미즈리가 물었다.

“잘 때 총을 안고서 잔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뭔 그런 소문까지 꿰고 있어요? 노코멘트.”

“그럼 그 스틱은…….”

“당신들 뒤통수 후려갈기기 딱 좋아 보여서. 이렇게 답하면 만족해요?”

미즈리는 입을 다물었고 페네트라는 손을 대충 흔들었다.

“피차 묻지 말아요. 나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 당신도 그럴 거 아니야? 애초에 어쩌다 나 같은 애한테 붙게 되었어요? 괜히 피곤하게.”

“당신에게 말할 내용이 아닙니다.”

“아, 예. 상호 물어보지 말자고 해놓고선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해버렸네요. ”

페네트라는 그러곤 곧장 제 방으로 가서 문을 닫기 전에 빈정거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행복한 꿈도 꾸시면 좋겠고. 잘 생각이 있으시다면 말이지요. 아, 저는 정말 진심으로 숙면을 기원해요. 오래오래, 영원히요.”

페네트라는 침대로 걸어가 털썩 드러누웠다. 문 앞에서 발소리가 멀어지자 숨을 내쉬며 제 머리를 잡았다. 조금 전의 설전이 떠올랐다. 죽어버리라는 저주라니. 그 장면을 가족들이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딸내미가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게 자란 걸 알면 기절하실 거다.

사실 그래서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 가족이 집에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가족을 저 수행원과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이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집이 그렇듯 가족이 낯설어진다면…… 그건 생각하기 싫다.

그러나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이 더 이 마을과 집과 가족에게서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다른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고향이 될 만큼 오래 머무를 시간이 주어질까. 아니면 평생 그니즈도 아카데미 같은 곳에 붙어살게 될까? 그러다 그들에게 물드는 건 죽어도 싫은데.

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미즈리는 최소한 자신을 걱정했다. 그 사람에게 휴대폰은 정말 잃어버린 거였다고. 다시는 걸지 못할 번호들 뿐이라도, 그걸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니, 이곳에 오기 전의 인연이 정말로 전부 끊긴다고 생각하니 공포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면 달라질까? 그러나 생각만 해도 입가가 비틀린다. 그러고 싶지 않다.

고향에서도, 머무를 곳에서도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이런 거에 안심하고 살아가야 할까? 페네트라는 총을 쥐듯 하키 스틱을 올려서 겨누었다가 그걸 품에 안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차가운 봉에 손을 얹고 어쩌면 세상의 모든 건 그대로인데 자신이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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