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에스체트와 퀴빌라의 첫 만남

버섯숲 by 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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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베를린, 미하엘 그라나흐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 도시. 이 세계에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있고 그 중에 베를린은 상당히 부강한 도시였다. 혈족들의 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를 부강하게 만든 지도자. 그의 근심이라면, 단연코 ‘손자’ 에르빈 그라나흐일 터였다. 에르빈 그라나흐에 대한 세간의 추측은 다양했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가 병약해서일 것이라는 추측부터, 지나치게 밖에 노출되지 않는 에르빈 그라나흐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이유는 단순했다. 에르빈 그라나흐는 자신의 친부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꽁꽁 싸매고 있는 이유는 단지 그 뿐이었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라는 말은 미하엘 그라나흐에게 그닥 와닿지 않았다. 또래와의 사회성 발달 어쩌고 저쩌고. 그 아이는 프로파간다를 위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목숨을 붙여놓는 것도 사실 그에게는 아까운 일이었다. 이 어린 체스말을 어디로 둬야 하나. 이 녀석에게 제 다른 아들들만큼의 재능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반항아. 눌러놓을수록 계속해서 버릇만 나빠지는 불량품. 밖에 내놓았다가는 더 쓸모 없어질게 뻔했으니까. 쓸모없는 혀를 놀리거나...

 

“이러다 도련님이 더 버릇이 나빠지시겠죠. 아이는 혼자 자라는 존재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또래와의 교류는 중요합니다.”

“녀석이 인간 노릇을 못하는 것이 다 내 탓이란 말인가?”

 

아이를 돌보는 가정교사가 이 독재자에게 감히 쓴 소리를 했을 때, 미하엘 그라나흐는 약간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보안을 유지하면서 ‘또래’와의 교류를 시킬 만한 건수가... 오, 마침 룩소르에서 외교를 위해 그 지도자가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지. 리즈크 부부가 아이를 데려온다고 했었나.

 

“선생 말도 일리가 있군. 정 그렇다면 친구 하나 만들어 주는 건 문제가 아니지...”

 

일회용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

 

에르빈은 아침부터 짜증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그런 자리에 가야 하는데! 평소에는 버려놓은 듯 굴었잖아. 할아버지가 내 생각을 하기는 해? 다들 대충 던져놓고는 - ”

 

“도련님, 중요한 자리라고 세 번째 말씀드리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도 만날 수 있는 자리예요. 친구.”

 

“만나본 적도 없는 애가 왜 내 친구야!”

 

“도련님을 모셔라.”

 

그런 식으로 억지로 끌려가서 불편한 머리 세팅을 하고 온갖 불편한 옷을 입고는, 에르빈은 마치 억지로 끌려가는 고양이마냥 불평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할아버지’ 앞에 섰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미하엘은 에르빈에게 딱딱한 목소리로 단단히 일러두었다.

 

“네 녀석이 가정교사와 사용인들에게 멋대로 구는 걸 내가 방조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 대신에 그런 방만함을 내버려두는 거지. 그러나, 오늘 네가 상대하는 아이에게는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언을 보이지 않길 바란다.”

 

에르빈은 그냥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짜증났다. 그리고 조금 두려웠다. 아니, 조금이 아니었다. 저 사람의 말 하나로 좌지우지되는 삶이라는 걸 너무 어릴적에 깨달았다. 슬픈 일이었지만 에르빈은 그걸 느낄 정도로 여유있지 않았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네가 에르빈? 만나서 반가워. 나는 퀴빌라, 퀴빌라 리즈크야~ 그냥 퀴빌라라고 불러.”

 

“...에르빈 맞아. 너도 나 그냥 에르빈이라고 불러.”

 

눈 앞에 있는 아이는 저보다 키도 훨씬 크고, 화려하고, 당당했다. 에르빈은 확 주눅이 들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이렇게 만날 일이 없었다. 어떻게 대해야 하지? 눈을 굴리다가 제 손을 덥썩 잡는 퀴빌라 덕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 차있었고, 에르빈은 불편함이 자신의 가슴을 바늘처럼 콕콕 찌름을 느꼈다. 이 애랑은 정말로 친해지기 싫다. 저 호기심 가득한 눈, 장난끼 어린 얼굴이 너무 거북했다.

 

“우리 이제부터 친구인거다~? 에르빈, 그지?”

 

“치...친구?”

 

“응, 만나고 악수하고 이제 같이 놀거니까 친구잖아, 그렇지 않아? 나랑 친구하기 싫은거야?”

 

“그, 그래... 친구, 하자. 나쁘지... 않지.”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친구 사귀어 본 적 없어...”

 

“내가 네 첫 번째 친구인거야, 그럼? 이거 영광인걸~?”

 

퀴빌라는 헤실 웃었고, 그것은 에르빈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 녀석은 나를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게 틀림없다. 이 생각과 울렁이는 감정이 머리를 휙휙 저어놓았다. 정작 퀴빌라는 헤실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 별 생각 없이 저러는 것도 짜증났다. 그냥 모든 것에 짜증이 났지만, 쳐내는 것은 분명히 예의없는 행동이었고 오늘은 그래서는 안되는 날이었기에, 에르빈은 그냥 꾹 참으면서 퀴빌라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공원 근처를 거닐면서, 수행원을 물리고 둘이서만 노는 자유의 감각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 애 덕분인가. 이건 조금 고마워해볼까.

 

그러고보니, 만나자마자 꽃을 주리고 했지. 에르빈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꽃다발을 건넸다. 환하게 웃으며 받는 그 모습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에르빈은 드디어 자신에게도 짜증이 났다.

 

“이게 뭐야~? 예쁘다!”

 

“꽃다발, 어른들이 주라고 했어.”

 

“선물인거야? 고마워! 잘 간직할게~?”

 

“크, 큰 건 아니야. 게다가 너는 이런 거 많이 받아보지 않았어?”

 

“그래도 네가 준건 또 다르니까~? 에르빈, 꽃 좋아해? 나는 엄청 좋아하는데, 저기 꽃밭으로 가볼까?”

 

“어? 어? 어... 네가 원한다면...”

 

“가자가자!”

 

순식간에 손목이 잡혀서 꽃밭으로 달음박질을 친다. 퀴빌라가 뛰면서 웃자 에르빈도 아이인지라 웃음이 터져나왔다. 불만이 있더라도 애는 애인 것이다. 마구 뛰고, 꽃밭에서 까르르 웃다가 아직 퀴빌라 손에 꼭 붙잡혀있는 작은 꽃다발을 흘끔인다.

 

“아직도 그거 갖고 있네?”

 

“음? 네가 준거잖아. 소중히 간직해야지~?”

 

“별거 아닌 꽃인데... 화려하지도 않고.”

 

“네가 준 건데? 별거 아니긴, 나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준 꽃이니까 소중히 간직할거야!”

 

그러면서 퀴빌라가 손을 뻗어 제 머리를 복복 만지자, 에르빈은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얘 완전히 나를 우습게 생각하는거야? 화가 조금 났지만, 굳이 밀쳐내지는 않았다.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고, 싸워서도 안됐으니까.

 

“뭐, 뭐야, 하지 마!”

 

퀴빌라는 그런 말은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만큼 쓰다듬고는 눈을 접어 웃는다. 에르빈은 속이 뒤틀렸다.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오늘 만큼은 예의바르게 굴어야 하는데. 더 기분 나쁜 것은... 이게 싫지 않다는 거겠지. 왜인지 싫지 않다는 기분이 올라와서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양가적 감정에 터질 거 같은데, 상대방은 계속 기분이 좋아보여서 더 짜증났다. 퀴빌라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까르르 웃다가 에르빈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조잘조잘 말을 시작한다.

 

“좋으면서 괜히 뭐라고 하긴! 자, 이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좋지만, 우리 술래잡기 할래? 아니면 숨바꼭질도 좋겠다. 뭐부터 할래? 아, 나는 술래잡기 먼저 하고 싶어. 먼저 뛰어간다, 나?”

 

“뭐, 뭐야? 나는 좋다고 한 적 없어! 어, 어? 술래잡기? 야! 같이 가!”

 

하면서 일방적으로 시작된 놀이는 에르빈의 조그만 머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 나가게 만들었다. 숨바꼭질도 매번 에르빈이 더 빠르게 들켰고 달리기도 훨씬 더 느렸고, 영 엉망진창이었지만, 점점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간다. 여러모로 많은 것들이 흘러갔다. 꽃밭에서 꽃반지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작고 노란 꽃이 두 아이의 손에서 반지가 되었다. 에르빈은 반지 만드는 데 실패해서 퀴빌라가 다 만들어 손에 끼웠지만.

 

“나중에 내가 다시 놀러오면 그땐 연습 많이해서 네가 끼워줘야 해~?”

 

어차피 다시 놀러올 수도 없으면서. 에르빈은 꾹 그 말을 참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외교단이 돌아간 후에, 에르빈은 간간히 꽃반지를 연습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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