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리크먼

임무 로그 - 집무실을 정리하라

낙원탈출기록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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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관들에게 배정된 생활 공간은 북쪽의 집무실 건물 안에 있지만, 레아의 침실이나 집무실은 책과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먼지 쌓인 창고로 전락한 지 이미 세월이 오래되었다. 서기관들이 그를 비웃고 꺼리는 만큼 그 역시 대부분의 서기관들을 불편해했기에 구태여 현상을 고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그는 대부분의 서기관들이 - 특히 도시 출신의 서기관들이 - 가능한한 얼씬도 하지 않으려 드는 낙원 남쪽 저택의 유모 침실에서 먹고 잤다. 변이체 영아들을 밤낮없이 밀착해 수발 드는 일은 대체로 지하에서 막 올라온 신입 서기관들의 담당이었고, ‘낙원’의 관성에 찌들지 않아 로드 후보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진심 어린 애정이나 연민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데다 아직 그의 평판을 모르기에 선입관 없이 친근하게 그를 대하는 동향 출신들과 있는 것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광증에 대해 차차 알게 되더라도, 모두가 기피하는 곳에 자발적으로 와서 함께 숙식하며 위험한 업무도 선뜻 교대해주는 사람에 대한 호의가 대개는 뜨악함과 불편함보다 우세했기에 대다수는 결국 연차가 쌓이고 좀더 나은 직무로 배치가 전환될 때까지 레아를 좀 딱하게 여기면서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정도로 화목을 지키다가 떠나가곤 했다. 어느 거리, 어느 가게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그들 역시 다른 서기관들과 다르지 않게 무기력하고 무감해지고, 그에 대해서도 성가심이나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레아는 그렇게 같이 지내는 시간들을 꽤 좋아했다.

  그러므로 그가 집무실에 내왕하는 것은 거의 새로운 장난감이나 도서, 놀이기구와 같은 비품을 신청하거나 어린 로드 후보들의 신변 문제를 보고할 때, 혹은 신입 서기관들을 소개받거나 업무 사항의 변동을 안내받는 등의 전체 공지가 있을 때 등 구체적인 용건이 있는 경우뿐이었고, 이런 식의 일상적 업무에 그의 손을 빌리는 것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유례 드문 일이었다. 낙원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를 종종걸음치면서 레아는 자신이 그 연구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몸을 사리고 작은 위험이라도 피해야 할 듯했다. 흐음, 하지만 다른 일을 시킨다고 제가 과연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만 할까요? 겉으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을 반항적인 말썽꾸러기 같은 미소를 마음속으로만 지으면서, 레아는 공손한 자세로 총총 집무실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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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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