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리크먼

임무 로그 - 연구원의 의심을 무마하라

낙원탈출기록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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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불쾌감에 천착한다. 기질적으로, 해온 경험상, 혹은 단순히 그런 취향이어서. 지하에서부터 알고 있던 이 경험칙은 놀랍게도 상공에서도 유효해서, 뒤이어 더 흥미진진하고, 더 몰입감 있고, 완벽하게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다른 이야기들을 몇이나 들려주어 찜찜한 기분을 희석시켜도 어떤 로드 후보들은 불편하게 돌출된 섬뜩한 우화들을 끝내 마음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며칠이나 악몽에 시달리거나, 혹은 반대로 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공포와 멸망, 퇴폐의 심상에 탐닉하기도 했다. 불철주야 온갖 장치와 기기로 감시하고 있는 서기관과 연구원들이 놓칠 리 없는 징후들이었다.

  위험했으나, 의도한 바였다. 레아는 이 일을 결심하기 전에 온갖 황당무계하고 엉뚱한 전개까지를 마음속으로 상상했고, 역시나 온갖 기상천외한 방책들로 제 나름의 준비를 쌓아두었다. 하물며 명백하게 예상되는 반응에 대해 그가 대비되어 있지 않을 리 없었다.

  별로 당황한 기색도 없이,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레아 리크먼은 눈을 깜빡이며 상대를 빤히 바라본다.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아요. 결말이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아야 청중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땀을 쥐고 듣게 되지요. 어차피 해결될 갈등, 어차피 피해갈 위험에 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어요? 지루하다 못해, 머지않아 ‘꾸며낸 이야기가 다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저는 로드 후보님들을 가능한 오래오래 곁에서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 분들이 ‘동화를 믿을 나이는 지났지’ 하며 금세 질려서 절 떠나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 ‘낙원’에서 하기에는 그로테스크할 만큼 공교로운 이야기였지만, 바로 그래서 이 수사는 어떤 상대든 한순간은 움찔하게 했다. 이 새장을 유지하는 것은 저 얇은 유리벽도, 보화와 호사도 아닌 꾸며낸 이야기.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지 않은 채, 죽을 때까지 동화를 믿고 있는 아이들. 그것을 우습게 여기거나 내심으로 염증을 내는 서기관과 연구원들과 달리, 그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믿게 하는 일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기에 ‘나는 저것들과 달리 진실을 알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단단히 다져주는 법 또한 알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감히 혀를 잘못 놀려 고귀한 로드 후보님의 마음을 언짢게 해드렸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그저 오싹하거나, 불길하거나, 침중한 분위기의 여운에 젖어계실 뿐이라면 그건 놀이를 즐기고 계신 거에요. 평생 로드 후보님들을 섬겼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나요?”

  30년 전과 같은 시치미가 아직도 통한다는 것은 역으로 말해 30년 동안 그녀의 작업은 아무런 소출도 보지 못했다는 뜻이었기에, 이 말은 입속에서 다소간 쓰게 굴렀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그녀는, 30년 전에는 없었던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뒷말 한 마디를 더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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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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