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ysement (2)
G. K.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추리 문학 역사에 길이 남은 명작이라고들 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의 흥행으로 시작된 추리문학의 황금기는 걸출한 작가들을 낳았는데,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체스터튼 역시 황금기 시대의 작가에 속한다.
당대를 풍미한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는 추리 기계 탐정들과 다르게 브라운 신부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인간을 용서하는 것이 신부의 일이니 인간의 심리에 능숙한 게 이상하지는 않으나, 그의 특이점은 그 너머에 있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해 없는 용서는 그저 표면적인 아부에 지나지 않거나, 자신은 그를 용서했다는 결과값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브라운 신부는 그렇지 않다. 어떤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건을 마주하여 수사를 이어나가는 도중 범인의 인간상을 정립하고 그 안으로 발을 들인다. 범인의 눈이 자신의 눈이 되고, 범인의 손이 자신의 손이 된다. 범인이 칼을 휘두르며 느꼈던 감정을 신부는 고스란히 체험한다. 그가 칼을 휘두르기 직전 보였던 찰나의 후회를 신부는 선연하게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범죄자를 용서하고 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탐정인가?
사건 풀이에 급급하여 인간의 마음은 부속물로도 취급하지 않는 탐정들과는 궤가 다르다.
사건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어떠한 의지를 갖고 사건을 만들어낸다. 의지를 갖지 않은 사건은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는 싸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기술적인 풀이에만 집중하여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게 누구에게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 푸른 십자가, 새 책을 샀다면서요? ]
[ 소겐추리문고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문고본입니다. ]
[ 하여간에 정말 꾸준하군요. ]
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다.
[ 일전의 출제, 보셨습니까? ]
[ 봤습니다. ]
[ 감상은 어때요? ]
[ 현대적이더군요. ]
[ 현대적이라니?? ]
[ 신호등을 해킹해서 신호를 멋대로 바꾸다니. 해커란 대단하네요. ]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암호화 된 메신저를 이용해 살인 게임을 주최하고 있는 어떤 형사다. 그와는 우연한 계기로 인터넷 상에서 마주쳤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비공개 메신저 방에 초대되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살인 게임에 억지로 참가하고 만 것이다.
이 방에 초대된 모두는 각자 현실에서 사람을 하나씩 죽인다. 그냥 죽이는 건 재미없으니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한 트릭을 하나씩 준비해서 죽이는 것 같다. 살인자 외의 나머지는 그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추리한다. 아주 부도덕하고, 경찰에 발각이라도 된다면 채팅방의 참가자 모두가 감옥에 들어갈 법하다. 하지만 여태 그런 일은 없었다.
[ 아뇨, 아뇨 아뇨 아뇨 말도 안 되는 트릭입니다 그건 ]
[ 왜요? ]
[ 언페어하다 못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트릭이지 않습니까?? ]
[ 그런가요? 그래도 그 때 마침 기상 상황이 나빴고, 천둥번개도 쳤으니 기상 상황으로 인한 단순 오작동으로 블러핑이 되지 않습니까. ]
[ 블러핑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언페어하다니까요, 트릭이 ]
사람을 정말로 죽여놓고 추리소설의 페어 언페어를 논하는 게 이 사람의 웃긴 점이었다.
[ 마음에 참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
[ 진지하게 강퇴를 고려하고 있어요. ]
[ 해킹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닌데, 노고를 봐서 한 번 봐 주시죠. ]
[ 푸른 십자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
푸른 십자가라는 닉네임은 당연하지만 브라운 신부의 첫 번째 단편에서 따 왔다. 얼마 전까지는 살인 채팅방에서 추리도 하고 살인 문제를 출제도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은 주최자의 안배 하에 관전자로 머물고 있다.
[ 한국에는 언제 오는 겁니까? ]
[ 올해 안으로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 ]
[ 정말요? 이거 신나는데? ]
일본의 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지만, 솔직히 슬슬 손을 뗄 때가 온 것 같다.
연구소에서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개인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에서도.
[ 일본도 사이비는 거기서 거기더군요. ]
[ 일본까지 가서도 종교를 찾아 다닌 겁니까?? ]
[ 재미있잖아요. ]
[ 브라운 신부가 슬퍼할 거예요. ]
[ 저를 참회시키려고 찾아와주시지 않을까요? 대도도 참회시킨 분인데. ]
[ 혹시 현실과 가상이 잘 구분이 안 되는 건 아니죠? ]
[ 그럴 리가요. ]
그럴 수도 있었다.
이번의 아이는 나의 신부가 되지 못했다.
나의 신자가 되었을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은 건 그 때문이었다.
[ 한국에서 뵙죠. ]
메신저 앱을 닫았다. 집의 창 너머로 오 월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골든 위크도 끝난 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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