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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tass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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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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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
최신화부터
1화부터
  • 계선

    10월의 가을 바람은 좀 아렸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공기가 머금은 기운이 달라진다. 여름은 축축하지만 어딘가 둔하고 바보 같은 밍숭함이 있고 가을은 포근하지만 눈을 잠시만 돌리면 코앞에 칼을 겨눌 것 같은 살기가 있다. 그런 말을 직장 동료들에게 하니 백 검사님은 굉장히 특이한 감성을 갖고 계신 분이네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백현상은 스스로 어떻

    K=Potassium
    2024.10.04
    6
  • Vanguard

    묵직한 사전과 편람들이 키 큰 책장에 나란히 꽂힌 대학도서관 5층 참고자료실에는 그다지 사람이 없었다.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없는 탓도 있겠으나, 공부를 위해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은 저층에서 머물 테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최은수는 텅 빈 열람용 테이블을 지나 서가 안으로 몸을 옮겼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좁은

    K=Potassium
    2024.09.30
    5
    2
  • Depaysement (2)

    G. K.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추리 문학 역사에 길이 남은 명작이라고들 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의 흥행으로 시작된 추리문학의 황금기는 걸출한 작가들을 낳았는데,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체스터튼 역시 황금기 시대의 작가에 속한다. 당대를 풍미한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는 추리 기계 탐정들과 다르게 브라운 신부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K=Potassium
    2024.03.21
    9
  • Depaysement (1)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것을 뜻함.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는 표현을 의미한다.

    수많은 차를 몰아봤지만 경찰차를 몰아본 건 또 처음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찰차 안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기로 했다. 조수석에 앉은 이번 일의 동업자는 점프 슈트 모양의 흰 작업복을 벗으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옷을 벗는 게 어렵긴 하다. 조력자에게 차를 한 대 준비해 달라고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답장 하나는 빠른 녀석으

    K=Potassium
    2024.03.21
    3
  • Trompe L’œil (3)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하는 게 현대인인 법이다. 유신은 영 입맛이 없다며 카페에서 커피랑 빵이나 먹자는 의견을 냈다. 새벽부터 사람의 시신을 보고 온갖 소동에 휘말렸으니 입맛이 없는 것도 이상치 않다. 나무는 약간의 허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식사를 위장 안으로 밀어넣을 만한 기분은 아니었다. 커피와 빵으로 최대한 허기를 달래보자고 생각하며 부산역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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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6
  • Trompe L’œil (2)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이라도 일단 범인이 자수한 후에는 모든 경과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법이다. 갤러리 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역시 그러했다. 범인으로 나선 한선혜의 자백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형사들이 사후조사를 이어가기는 했지만, 그녀의 자백에는 어떤 모순도 없었기에 경찰은 끝내 이를 받아들였다. 한선혜는 정말로 수제자의 머리를 잘라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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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3
  • Trompe L’œil (1)

    ‘눈속임, 착각을 일으킴’이란 뜻으로 ‘속임수 그림’이라 번역할 수 있다.

    어안이 벙벙한 세 사람을 데리고 갤러리의 경사로를 오르고 있으니 안채와의 연결통로 쪽에서 또다른 세 사람이 걸어나왔다. 지민과 승현, 그리고 영우다. "어디 가세요?" 영우가 큰 소리로 물었다. 토사 정리가 끝나 경찰이 갤러리 부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 상황에 2층으로 올라가는 게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가장 앞서던 나무가 난간을 잡고 대답한다. "현장

    K=Potassium
    2024.03.21
    3
  • Camouflage (6)

    유선은 달콤한 선잠을 방해받아 상당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단잠을 방해한 이들이 지민과 승현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그녀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오동현한테 전해들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인간들도 정말 탐정 놀이 좋아하는군. 사람이 죽었으면 조사는 경찰한테 맡겨두면 될 것을 무슨 머리를 찾겠다고 문을 두드리고 이 난리인지. 유선은

    K=Potassium
    2024.03.21
    3
  • Camouflage (5)

    레스토랑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제의 잡무를 증명하는 텅 빈 샴페인 병과 음료수 통만이 오픈형 주방의 조리대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크로와상 생지를 덥혔던 오븐은 차갑게 식었고 선반에 가득했던 잔은 상당수가 반납되지 않아 듬성듬성하다. 유신은 그 중 탄산음료 잔으로 보이는 부피감 있는 녀석을 집어들었다. "송 군도 한 잔 줄까?"

    K=Potassium
    2024.03.21
    4
  • Camouflage (4)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옥상에서 내려온 세 사람은 잠시 로비 소파에 앉아 침묵으로 일관된 시간을 보냈다. 나무의 비강 출혈이 다시 시작된 탓도 있기야 했지만, 애당초 앞으로 한두 시간만 있으면 갤러리와 바깥 세상의 길이 연결되는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덕도 있었다. 변호사의 비서라고 말했던 탐정은 소파에서 일어나 갤러리 쪽

    K=Potassium
    2024.03.21
    3
  • Camouflage (3)

    소란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대략 한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그 사이 소방서와 경찰차는 이미 갤러리의 외길을 막아버린 토사 바깥에 도착해 있었고, 경보음을 빽빽 내뱉던 아영의 차는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얌전해졌다. 아무도 아영의 사체에서 혹은 객실에서 차 키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으므로, 경보음의 한계 시간에 도달했든가 자동차의 배터리가 다 되었든가

    K=Potassium
    2024.03.21
    3
  • Camouflage (2)

    ───전부 우리가 잘못한 거야. 어둑한 밤거리 뒤로 경찰차의 붉고 파란 경광등이 앵앵대며 번쩍이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을 처리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력이 소모된다.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경찰과,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와, 사망에 얽힌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내야만 하는 유족이, 개미 떼처럼 모여든다. 실로 개미도 그렇다. 죽은 개미에서 흘러나

    K=Potassium
    2024.03.21
    2
  • Camouflage (1)

    1 (군인·장비의) 위장 2 (보호색이나 형태 등을 통한 동물들의) 위장 3 위장하다, 감추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일출 직전의 어슴푸레한 새벽녘이 커튼 틈새로 스며드는 게 보였다.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는 오전 5시 5분 쯤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시간을 확인하던 나무는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을 착용했다. 자동차의 경적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빵빵대며 울려대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차에 들어가 앉아 경적을 울릴 기묘한

    K=Potassium
    2024.03.21
    7
  • Assemblage (4)

    도슨트 서진의 부름을 받고 동현은 지하 홀에 있던 두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도슨트 은수를 줄곧 의심하던 둘은 먼저 1층 로비에 내렸다. 동현은 객실에서 쉬고 있는 유선에게 의사를 묻기 위해 그대로 3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유선의 방으로 직행했다. 문을 노크하자 방 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그냥 열고 들어

    K=Potassium
    2024.03.21
    2
  • Assemblage (3)

    "혼자 무슨 그림을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거야?" 갤러리 1층에서의 담소를 마치고 3층의 화장실로 향하던 나무의 뒤를 쫓은 유신이 물었다. 2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경사로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현과 유신은 어느새 안채 쪽으로 사라져 경사로 난간 아래로도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앞서던 나무가 그녀를 흘긋 돌아보았다. 다

    K=Potassium
    2024.03.21
    5
  • Assemblage (2)

    본래 텅 빈 갤러리를 돌아보며 시간을 죽일 생각이었던 유선은 갤러리 1층에서 마주친 유신과 나무와의 대화로 남은 에너지를 전부 소비한 듯 보였다. 피곤이 달라붙은 안경 뒤의 두 눈을 손으로 꾹 누르던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동현을 남겨두고 제 객실로 사라졌다. 3층 복도에 홀로 남은 동현은 객실로 들어가서 쉴까 하다가, 이 건물 지하의 색다른 구조가

    K=Potassium
    2024.03.21
    4
  • Assemblage (1)

    프랑스어로 집합·집적을 의미하며, 특히 조각 내지 3차원적 입체작품의 형태를 조형하는 미술상의 방법을 말한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소방서와 연락이 닿은 영우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태풍의 갑작스러운 진로변경으로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부산의 여러 지역에서 수해가 잇따랐다는 것이다. 그 탓에 소방서는 이미 거의 모든 인력을 수해 복구 및 피해 후속 처리에 가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한 지금도 피해 신고는 끝없이 접수되어, 소방 행정 마비에 가

    K=Potassium
    2024.03.21
    4
  • Collage (5)

    전시 관람이 시작된 건 오후 네 시 반의 일이었다. 리셉션이 시작되고 두 시간 반 동안 테이블에서 혹은 홀 어딘가에 서서 남들과 대화를 나누던 나무는 이제야 입을 좀 다물 수 있겠다는 미묘한 안도를 느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교적이고 사람을 거리끼지 않는 성정이지만, 아무래도 주변에 절친한 사람이 있으면 입 밖으로 뱉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니 평소보다

    K=Potassium
    2024.03.21
    3
  • Collage (4)

    서진이 유신을 데리고 지하 홀 밖으로 사라지자, 이변을 느낀 그녀의 동생이 즉각 빠른 걸음으로 나무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그림자 같은 탐정 겸 운전기사는 덤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지민과 승현은 갑자기 불어난 사람에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곁에서 가만히 서 있던 도슨트 은수의 시선까지 끌고 말았다. 언제나 무마하는 건 나무의 몫이었다. "어디 갔어요?"

    K=Potassium
    2024.03.21
    2
  • Collage (3)

    갤러리 헴의 숙박 시설 안채는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갤러리 본관에서 통로를 따라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건 데스크와 소파 세트가 놓인 1층 로비. 이곳 역시 한쪽 벽이 통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절벽 너머의 바다를 갤러리 본관과는 다른 각도에서 관람할 수 있다. 2층과 3층은 객실 플로어다. 한 층 당 6개의 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K=Potassium
    2024.03.21
    4
  • Collage (2)

    언뜻 보아도 면적이 제법 되는 1층의 전시 공간에는 소장품이 서른 점 정도 있었다. 대부분이 설치형 오브제로, 작품 설명을 듣지 않으면 무엇을 표현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소나무가 데스크에서 초대객 등록을 하던 사이 먼저 등록을 마치고 캐리어까지 맡긴 유신은 전시장 내부로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조금 이르게 온 터라 전시장은 한산했다. 빠르게

    K=Potassium
    2024.03.21
    5
  • Collage (1)

    화면에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조각, 모래, 나뭇잎 등 여러 가지를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 기법, 또는 그러한 기법에 의해 제작되는 회화를 가리킨다.

    기차는 잘도 선로를 나아간다. 불규칙한 떨림이 기차의 바퀴를, 차체를, 좌석을 타고 몸으로 전달된다. 진유신은 이런 교통수단 특유의 떨림을 좋아했다. 기차도 좋고, 지하철도 좋고 하다못해 비행기도 좋다. 거대한 고철덩어리가 사람들을 옮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귀엽다. 창가 자리에 앉은 유신의 바로 옆 자리에서는 소나무가 오늘의 작업을 하

    K=Potassium
    2024.03.21
    16
  • Esquisse

    모종의 사유로 인해 밖으로 이어진 길이 막혀 건물 안에 있던 방문객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사람이 고립되는 가장 흔한 자연재해인 태풍을 예로 들어볼까. 기상청의 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태풍은 근 십 년 간 한 해에 평균적으로 네 개 정도 발생했다. 태풍이 내륙을 직접적으로 강타하는 일은 명확하게도 피해가 상당

    K=Potassium
    2024.03.21
    17
  • 藍寶石

    Sapphire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상가의 지하에 그 만화방은 있었다. 영업 중임을 알리는 황색 형광등이 불투명한 유리문 위에서 번쩍였다. 본래 가게의 이름을 나타냈을 법한 스티커의 흔적만이 남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매캐한 연기가 아직은 앳된 티를 내는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도화는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에 카운터. 앞쪽에는 일 인용

    K=Potassium
    2024.02.02
    3
  • 蛇紋石

    Serpentine

    소나무는 평소와 같은 하루를 영위하고 있었다. 남과 공유하는 침대 위에서 눈을 뜬다. 옆 자리의 동거인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오늘의 경우, 있었다. 푹신한 이불 밑에서 곤히 잠든 얼굴만을 밖으로 내밀고 있다. 그는 잠시 그 얼굴을 내려다 본다. 언제나의 맨 얼굴이 편안한 모양새로 수면을 유지하는 모습. 아직 자고 있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지

    K=Potassium
    2024.02.02
    3
  • 螢石

    Fluorite

    올해로 스물 둘이 되는 그 아이는 몸 이곳저곳에 잔상처가 많았다. 근육이 붙다 만 몸을 겨우 가리듯 걸친 옷은 적당히 추레했는데, 오래 다듬지 않은 듯 보이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위험한 물건이 나오기 부지기수였다. 하루는 넓직한 주머니 안에서 폴딩 나이프가 튀어나왔다. 그 아이-이제부터 A군이라고 하자-가 무심한 얼굴로 날을 끄집어내자 잘 벼려진 칼날이 조명

    K=Potassium
    2024.02.02
    2
  • 電氣石

    Rubellite

    프린트 된 사진 속에서 새파란 보석이 농염하게도 빛을 뿜어내고 있다. 잘 세공된 진청색 사파이어. 날카로운 커팅의 결을 따라 둘러진 백금색의 장식. 보석을 머리에 짊어진 고리는 그 무게가 조금 버거워 보인다. 이런 반지를 손가락에 매달고 다니는 인간은 대체 어느 정도의 부를 쌓았다는 말이냐. 남몰래 불손한 생각을 하며, 김민석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 오늘의

    K=Potassium
    2024.02.02
    3
  • 끽연자

    백도화는 목적 없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서울이란 온갖 협잡과 음모가 가득한 도시였다. 인간들의 더럽고 추잡한 욕망을 1열에서 관찰하는 인생을 살다보면 저절로 이런 편견을 갖고야 만다. 물론 그런 협잡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돕는 부류가 바로 조사원이지만서도. 하지만 오늘은 딱히 손에 들어온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은 밤 열 시에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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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5
  • Semi⇔Bluff

    등장하는 인물 백도화 ...... 스트리머 겸 조사원 김 선생 ...... 백수 백현상 ...... 「현상심부름센타」의 소장 소나무 ...... 일러스트레이터 진유신 ...... 모델러 오동현 ...... 직업 탐정 백정우 ...... 샐러리맨? 등장하지 않는 인물 서도진 ...... 추리소설가 강성훈 ...... 영상편집가 진유선 ...... 변호사

    K=Potassium
    2024.02.02
    7
  • 부외자

    서점 앞 도로를 지나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 주 도심과는 거리가 있는 골목. 그 중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현의 서점은, 몇 년 전 완공된 한 동짜리 아파트와 가까이 위치해 있다. 엄밀하지 못한 대강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걸어서 십 분, 차를 타면 순식간. 한 동짜리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현의 서점 앞 도로길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다. 도보라면 약간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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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4
  • Set

    "아아, 안녕하세요. 중화요리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작은 룸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누구한테 들으셨을까요?" "제가 발이 좀 넓거든요." "동생한테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은 없습니다." 남자는 무거운 의자를 끌어내어 걸터앉는다. 단숨에 평안을 가장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먼저 앉아있던 그는 가벼운 미소를 만들어 보인다. "

    K=Potassium
    2024.02.02
    2
  • Complexity is the best

    눈을 떴을 땐 병실이었다. 무언가의 비유 같은 것이 아니다. 나에게 '나'라는 의식이 탄생했었을 때, 나는 이미 허여멀건 인테리어의 병실에 갇혀 있었다. 똑똑 떨어지는 팩 속의 액체, 얼굴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마스크, 몸 이곳저곳에 붙은 유연한 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두 눈을 끔뻑대며 주위를 살피는 일뿐이라,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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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3
  • 방랑꾼

    남자의 짐은 고작 중형 캐리어 하나였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검은 천 캐리어는 바퀴 네 개가 달린 사륜구동인데, 노쇠를 견디지 못하고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한 쪽으로 무게가 쏠려 기운 것이 불안정해 보인다. 슬슬 새 것을 살 때가 된 모양이었다. 부산에 일 년 반이나 있었으면서 짐이 그거 밖에 안 돼? 하고 물으면 남자는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

    K=Potassium
    2024.02.02
    3
  • 순람자

    11월의 바람은 싸늘했다.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부두. 각진 테트라포드만이 이따금 날개를 쉬러 내려오는 갈매기들을 맞이하고 있다. 근처 가게 주인의 말로는, 장소는 좋지만 수류가 세서 물고기가 도저히 잡히지 않는다던가. 그 때문에 기껏 사람 없는 부두를 찾은 낚시꾼들도 발길을 돌린단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지만 역시 낚시꾼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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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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