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
"아아, 안녕하세요. 중화요리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작은 룸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누구한테 들으셨을까요?"
"제가 발이 좀 넓거든요."
"동생한테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은 없습니다."
남자는 무거운 의자를 끌어내어 걸터앉는다. 단숨에 평안을 가장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먼저 앉아있던 그는 가벼운 미소를 만들어 보인다.
"자기 기억을 신뢰하시나요?"
"물론."
"대단한데..."
"대단하고 말고도 없어. 선천적인 거니까요."
"좋은 유전자를 뽑으셨네."
"운이 좋았습니다."
남자가 외투를 옷걸이에 거는 동시에, 종업원이 음식을 날라온다. 전채 요리는 새우게살스프. 흐리멍텅한 육수에 둥둥 떠 다니는 게살과 계란. 썩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은 아니다.
남자는 와이셔츠 소매를 아주 조금 걷어올린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그 역시 비슷한 차림이다. 종업원은 아마, 샐러리맨들의 미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예, 솔직히, 남한테 듣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 동생이 중화요리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형도 입맛이 비슷하지 않을까 해서."
마주 앉은 남자는 단정한 머리칼을 쓸어올린다. 눈썹 바로 위에서 가지런히 잘린 앞머리는 미묘하게 빛깔이 옅다. 새치가 섞인 것도 아닌데, 신기한 일이군, 하고 생각해 본다.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우연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당신, 형제가 있습니까?"
"위로 누나가 하나 있습니다."
"취향은 비슷한가요?"
"제 친구가 제 누나를 좋아했어요. 물론 그 친구는 저도 좋아했죠."
"이상한 대답입니다."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씨익 웃어보였다. 눈가까지 접어 웃는 완벽한 미소다.
남자는 첫 술을 떴다. 핏기 덜한 깔끔한 입술에 깊이가 있는 숟가락을 가져다 댄다.
그의 동생은 항상 입가가 거칠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아선 찢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형제인데도 이렇게나 반대의 삶을 살게 된 건, 그건, 형의 탓이라고, 그 친구는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던가.
게살스프는 적당히 맛있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늘 보자고 하신 이유가?"
"교수님 동생 건 때문에, 교섭할 게 있어서."
"교섭할 게 있습니까? 탈옥이라도 했나요, 그 애?"
"아뇨, 나오려면 삼 년은 더 있어야죠."
"그런데?"
"보석을 할까 싶어서."
숟가락을 옮기던 팔을 멈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더니, 식기를 내려놓는다.
"그 애가 필요하십니까?"
"뭐, 슬슬 필요할 때가 되어서."
부러 태평한 표정을 만든다. 마주 앉은 남자도 고요한 얼굴이다. 그 뒤편에서 어느 정도의 계산식을 세우고 풀어내고 있을까. 나와 비슷한 정도일까.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음색의 목소리에는 기복이 없다.
다만 미소한 위압감은 존재한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일까요?"
"상관이 없지는 않죠. 교수님께서 그 친구를 감옥에 보낸 셈이니."
미닫이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춘다. 종업원이다. 문지방 너머에 웨건을 세워두곤 요리를 테이블로 옮긴다. 붉은 양념이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깐풍기. 허여멀건 소스가 덕지덕지 발라진 크림새우. 그 외의 별 거 아닌 밑반찬. 마지막으로 텅 빈 스프 접시를 회수한다.
종업원은 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는 기다란 젓가락으로 크림새우 하나를 집어든다.
젓가락이 기다래서 좋았다. 확실히 집어든다는 감각이 있다.
"글쎄...... 모든 건 동생의 애드리브였는데."
"자충수였다?"
"게다가 상황도 안 좋았습니다. 내부인의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인의 개입이 너무 컸거든요."
"내부인이라면, 대학 내부의?"
"원래 있던 건물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잠시 연구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어."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았던 교수, 라든가."
"조급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죽이려고 들었던 걸 보면."
"덕분에 동생을 감옥으로 넣는 건 일사천리였다?"
"글쎄요. 구태여 그런 짓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남자는 깐풍기를 오물댄다. 인간 앞에서 식량을 섭취하는 척하는 안드로이드 같은 얼굴이다.
"약간의 팩터만 변경하면 손쉬운 일입니다."
서늘한 말투였다.
"외부 요인은 예상하지 못했잖아요."
"그 학생의 오빠 말인가......"
"대학을 꽤 들쑤시고 다녔던 것 같던데."
"동생이랑 상당한 커넥션이 있었나 봅니다. 당신."
"그야, 저한테 상담했으니까요. 덕분에 경찰에 불려갈 뻔했지만."
"불려가지 않았다?"
"친구라고 둘러댔거든요. 실제로 이전부터 통화 기록이 많기도 했고."
"나도 만들어둘 걸 그랬나? 통화 기록."
"자길 화마 속에 버려둔 형 말을 어련히 들을까......"
슬쩍 표정을 살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교수의 동생은 기억을 잃은 채 고아원에 버려졌다.
한 트럭 기사가 제 트럭 짐칸에 아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근처 고아원에 위탁시켰다. 한동안 운전을 했던 터라 아이가 어디에서 탔는지도 불명확했던 때문이다. 다만 몸 이곳저곳에 화상을 입은 점으로 미루어 어딘가의 화재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라 추정되었는데, 이런저런 사정 탓에 결국 연고를 찾지 못하고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아이는 자라서 적당한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다양한 단계를 거쳐 그와 친교를 맺었다.
둘이서 밥을 먹던 어느날, 그 친구는 식당의 구식 TV에서 교수의 얼굴을 보곤 기억을 되찾았다.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가 개최되었다는 뉴스였다. 과거의 한국인 고득점자들을 몇 초 간 읊어주던 부분에서, 그 친구는 교수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곤 물컵을 떨어뜨렸다.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 뉴스는 지나갔음에도.
"네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남을 데리고 불바다 속에서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의 이성적인 판단이었다고 하시는 건가요?"
"동생 근처의 창문은 열려있었으니까. 잘하면 저기로 떨어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혼자 문을 열고 나가셨죠."
"닫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한 일이라......"
"현관문을 연 채로 둘 수는 없죠."
괜찮게 받아칠 말이 영 떠오르지 않아, 깐풍기를 집어든다. 양념치킨과 다를 것 없는 맛이다. 입 안을 비우고 나서야 말을 잇는다.
"동생이 죽은 줄 아셨죠?"
"유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린애니까 뼈까지 타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동생이 더더욱 방해였다."
"건실한 직업도 아니고 건달이니까요."
"그래서 감옥에 보낼 함정을 팠다......"
"동생의 능력이 아까웠으면, 당신이 괜찮은 오더를 내렸으면 될 일인데."
"이파전에 가까운 삼파전을 헤쳐나갈 방도가 보이질 않았거든요."
"나는 동생을 범인으로 몰고, 그들은 살인미수자를 찾았으니."
"그럼요.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블러프를 칩니까?"
"당신의 특기 아닙니까?"
"블러프가?"
"지금도 블러프를 치고 있지."
"하하, 그런가......"
"저는, 당신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동생을 꺼내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하지만."
남자는 두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손깍지를 하고, 그 위에 가볍게 턱을 얹어 상대를 바라본다. 순하게 처진 눈꼬리. 서늘하게 침잠한 차가운 시선. 너 따위는 이미 파악이 끝났다는 듯한, 슬쩍 올라간 입가.
"동생이 저희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해 주세요."
"방해가 된다면?"
"다시 없애야 하겠죠."
더 이상의 요리는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 상대도 그것을 원하고 있으리라.
짧은 침묵을 머금는다. 방해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생각한다. 교수로서의 명성이 손상되지 않는 바운더리라면 괜찮은 걸까. 그 정도라면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한 게 있는데..."
천천히 입을 뗀다. 깐풍기의 짠맛이 아직 구강에 남아 있다. 상대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확인한 후, 말을 잇는다.
"지금은 누구시죠?"
남자는 테이블에서 팔꿈치를 떼어낸다. 손을 풀어내는 장면은 보지 못했으니, 그대로 무릎 위로 옮겨두지 않았을까. 영양가 없는 추측을 멍하니 떠올린다.
상냥한 눈웃음이 이쪽을 향한다.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째서?"
"전부 죽거나 도망가버렸으니까. 이제 멀쩡하게 가동하는 건 저 혼자입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
"백정우는 죽었다, 백정문은 거의 도망쳤다. 그리고 저는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백정문이라는 이름은, 그래...... 집합의 이름 같은 겁니다. 단체의 이름이죠. 겉껍데기인 육체에 멋대로 붙여진 이름을 대푯값에게 부여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인격을 대푯값으로 삼았죠. 그 편이 경제적이니까. 그래서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붙여준다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밖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하죠?"
"당신이 이제 저를 부를 일은 없지 않을까요?"
"예. 교수님보단 정우를 더 많이 부르겠죠. 감옥에 갇혀있는 정우."
"안부는 안 전해주셔도 됩니다."
"교수님은 돌아가셨다고 할까요?"
"아니... 백정우는 죽었다고 하세요."
"아아, 네......"
음식은 절반 정도 남아있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남은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처사인가, 고민한다.
"이번엔 제가 묻고 싶은데."
"뭐죠?"
"방금 당신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처음 본 사이 아닌가요?"
"아니, 아까의 진술에서 떠올랐습니다. 정우랑 자주 연락한 친구라 둘러대셨다고, 하셨죠."
"그런데요......"
"제 친구가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라 사건의 진척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이 있으면 저한테 곧잘 털어놓았죠. 그래, 당신도 잠깐이지만 공범자 리스트에 올랐었어."
이건 곤란한 전개다. 미간에 골이 생기지 않도록 유념에 유념을 더한다.
"이름이 되게 특이하시던데......"
"착각하신 거 아닌가요? 삼 년 전 일인데."
"저는, 제 기억을 신뢰합니다."
입을 다물었다. 활로는 없다. 선연하게 느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선연하게.
표정 관리를 해야......
"소나무 씨, 맞죠?"
그렇다. 삼 년 전의 일이다.
백정우는 모종의 사정으로 백정문과 접촉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선, 그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로 하여금 형을 협박해 돈을 뜯어낼 속셈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피붙이를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었던 것인지,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가 처한 상황을 분석해 최대한의 활로를 더듬어주었다.
일이 꼬여 당황한 정우가 생판 관계 없는 제삼자를 반쯤 죽여놨기 때문이다.
물론 일이 꼬인 바탕에는 백정문이 있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외부인이 개입하여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인 전개가 되었다. 결국 그는 돌을 던졌다. 정우는 그대로 감옥에 갔다. 살인미수죄였다. 괜찮은 변호사를 써서 겨우 얻어낸 6년이라는 형량을, 정우는 포기하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저기... 당장 꺼내줄 수는 없어. 살인미수잖아? 보석을 해도 단숨에 컷 당할 거야. 그러니까, 그 안에서 열심히 모범수로 살아. 정말정말 뉘우쳤다고 해. 그 후에 보석을 낼게. 그러면 분명 3년 안에는 나올 수 있을 거야. 변호사님이랑도 상담했어. 내 말 믿지? 정우야."
그 후로도 몇 번이고 면회를 갔다.
그의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면회를 하며 시기를 엿봤다.
슬슬 꺼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정우를 감옥으로 이끈 그가 마음에 걸렸다.
꺼낸 걸 알면 보복해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불러낸 건데......
괜한 말을 했다. 작게 혀를 찼다. 외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당신도 이 정도 리스크는 떠안고 있어야죠."
말없이 시선을 마주친다.
백정문이라는 이름의 집합체는 가늘게 웃었다.
"그 편이 공정하니까."
소나무는 입가를 비틀었다.
하지만 괜찮은 반박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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