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그 애

살화살 인어AU

Malibu Nights by 늑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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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다가 지긋지긋했다. 바다를 보지 않고 살 방법이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할 정도로 바다가 싫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섬에 살았고 우리 집은 해변과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려온다. 지긋지긋한 파도 소리… 집에 들어가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이미 나가고 없을 테지. 나는 누이가 돌아올 때까지 해변의 바위에 걸터앉아 수평선 위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내 일상은 거의 그랬다. 

"안녕, 여기서 뭐 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의 사내아이. 나와 키가 엇비슷하고 흑단같이 검은 머리에 웃는 낯이 자연스러운 애였다.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와 단정한 검은 반바지 차림을 한 소년은 금세 내 옆자리에 자리한다. 나는 주춤하며 조금 그 애한테서 떨어져 앉는다. 대답하려 해도 낯가림이 심한 탓에 말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럴 때 샛별이 없는 것이 야속하기만 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 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싱글벙글 웃고는 다시 묻는다.

"바다 좋아해?"

"아니."

대답할 생각 없었는데 바다를 좋아하냐는 말에 반사신경처럼 대답을 툭 내뱉고 말았다. 그러면 그 애는 뭐가 웃긴 지 큭큭대며 묻는다.

"싫어하는데 왜 바다를 보고 있어?"

"그건…"

"그건?"

"…네 알 바 아니잖아." 

내 목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나서야 기분이 상했을까 고개를 들어 그 애와 눈을 마주쳤다. 물론 어색한 나머지 얼마 안 가서 시선을 바다 쪽으로 옮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 애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그냥 웃고 있었다. 꼭 재밌다는 듯이 나를 팔꿈치로 툭 치면서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터는가 싶더니 내 쪽으로 손을 내민다. 뚱한 표정을 한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자기 손끝을 바라보던 그 애는 이내 손을 거두곤 스스럼없이 말을 꺼낸다. 

"나 이제 가야 해. 또 보자, 안녕."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여길 올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또 보자는 기약을 하는 걸까. 곧 해가 진다. 노을이 물든 바다는 붉고 진하다. 내 옆을 지나쳐가는 그 애한테선 물비린내가 났다. 꼭 바다와도 같은 냄새. 축축하고 지긋지긋하고…  그렇게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그런 냄새가. 

 인어는 순수하다. 날 때부터 그래왔다. 광활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인어는 간간이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곤 했다. 때때로 인어들은 어부들에게 황금 어장으로 이끌어주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등 호의를 보였다. 그 덕분인지 어부들 사이에서는 인어를 만나는 것이 길조며 귀히 여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건 다 옛말에 불과했다. 이제 인어는 가장 영험한 약재이자 고급 식자재로 전락했다. 인어의 심장을 먹으면 수명을 늘려준다더라. 인어의 피는 미용에 좋다더라. 인어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어떤 소문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나는 인어를 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무서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시이익─ 가마 속으로 집어 넣은 유리를 꺼내 모양을 잡아내고 찬바람 앞에 가져다 대자 나는 소리였다. 천천히 바람 앞에서 식어가는 유리는 암초에 앉은 인어 모양을 띈다. 비슷한 공예품을 여러 개 만들고 나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와 포장을 하고 섬을 관광 온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들려질 것이다. 일을 마치고 주인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면 아저씨는 물건들을 살펴보고 그 날 내가 일한 분의 일당을 챙겨주었다. 하얀 돈 봉투를 받자마자 교복 바지에 대강 쑤셔 넣은 채로 작업실을 나와 잰걸음으로 바다로 향한다. 널따란 도로가 보이면 뭐가 급한지 무턱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썩이는 파도소리 요란한 해변에 도착하면 바위에 앉은 채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애가 보인다.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었는지 내 발소리가 컸는지 그 애가 나를 향해 뒤돌아보고 미소 짓는다.

"어서 와, 별아. 기다렸어."

대답대신 그 애의 옆에 엉덩이를 붙여앉았다. 그 애가 왜 이리 급하게 왔냐는 물음에 해가 질 때면 어김없이 돌아가버리는 너 때문에 급하게 달려왔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워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다. 그러면 그 애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이렇게 묻곤 했다. 

"내가 보고 싶었어?"

"너 어디가 예쁘다고 내가 보고 싶어 해?"

"나는 보고 싶었는데, 별이."

 솔직한 네 대답에 열이 확 오르는 듯했다. 괜히 덥다는 핑계를 대며 손 부채질을 한다. 네 쪽으로 시선이 슬금슬금 향한다. 보고 싶었으니까 달려왔지,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도…하고 답한다. 그러면 그 애는 귀신같이 그걸 듣고 어여쁘게 웃었다. 너와 알게 된 지 이제 곧 한 달이 되어갔다. 처음 널 만났던 그 날 이후로 너는 매일 낮이면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만났네?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바다를 왜 싫어하냐며 말을 걸어왔었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질리지도 않는지 너는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서 나는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 일상이 되어 있었다.

"곧 축제야."

"축제? 그게 뭔데?"

"넌 맨날 내가 말하는 것마다 모른다고 하더라. 대체 아는 게 뭐냐?"

"네 이름이 전살별이라는 거랑 네가 바다를 싫어한다는 거."

"인생 진짜 헛살았다, 너. 어떻게 아는 게 나 밖에 없냐?"

이제 8월 중순이었으니 그늘 없이 내리쬐는 햇빛에 제 옷깃을 잡고 셔츠를 펄럭이며 더위를 식혔다. 진짜 이상한 애다. 그러면서 밉지 않은 애. 

"그리고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알지."

"뭐? 아니거든." 

위의 말은 취소. 그 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덜컥 대답해버린 탓에 네가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그저 친구가 생겨서 기뻤을 뿐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더 구차해지는 것 같아 관뒀지만 네가 얄미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만다. 심통이 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얼굴이 돌아간 쪽으로 가서는 기어이 얼굴을 들이민다. 윽, 주춤하며 고개를 뒤로 빼곤 너를 바라본다. 너무 가깝다고 볼멘소리로 중얼거릴 뿐 크게 무어라 하지 못한 채다.

"그래서 축제가 뭔데?"

"야, 너 진짜 여기서 사는 거 맞냐? 어떻게 된 애가 축제도 몰라?"

"난 그동안 집 밖으로 못 나왔거든. 그래서 몰라." 

이어진 네 대답에는 차마 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여기 섬사람들이 별나다지만 어떤 부모가 축제 날에도 집에 가둬둔단 말인가. 계속 집 밖으로 못 나왔다면 네가 학교를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갔다. 무슨 일이 있길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 가뒀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네가 상처 받을까 애써 관심 없는 척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자기에 대해 말해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항상 네가 나에 대해 묻고 모르는 것을 물었으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네가 상처받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네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괜찮아. 네가 다 알려주잖아, 별아."

힘 빠지게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그래, 다 알려줄게.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전부 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는 툭하면 빠졌고 일일 아르바이트나 하고 다니며 누나 속을 썩였으니까. 그래도 너에게 축제가 뭔지, 내 이름의 뜻인 별이 어떤 건지 알려주지 못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네게 손을 내밀어 뻗는다. 그럼 그 애는 내가 어딜 갈지도 모르면서 마주 잡았다. 순진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그래도 나는 그런 네가 좋았으니까. 

"가자."

"어디로?"

"어디든. 너는 별도 모르고 축제도 모른다며."

너와 맞닿은 손이 시원해서 좋았다. 조금 더 닿고 싶다는 웃긴 생각을 하면서 바다로부터 멀어진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마을은 읍내로 들어가야 더 볼만했으니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슬슬 인어 축제가 다가오니 모두 분주한 것 같았다. 너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관해 물어봤다. 이게 뭐야? 초콜릿. 초콜릿이 뭔데? 안 먹어봤어? 응. 그럼 나는 초콜릿을 하나 사서 네 손에 들려준다. 너는 그 초콜릿을 보다가 조그마한 조각 하나였는데도 굳이 반을 잘라 나에게 건넨다. 너 먹으라고 손을 내저어 사양해도 고집불통이다. 기어코 내 입에 반으로 쪼갠 초콜릿을 밀어 넣고 자기 입에도 덥석 넣는다. 정말 처음 먹어본 건지 너무 달다며 얼굴이 이상하게 굳은 너를 보며 얼마나 놀려댔는지. 너는 궁금한 게 많았고 알게 될 때마다 환하게 웃었다. 진작 너를 데리고 마을로 올 걸. 

"이게 축제야?"

"준비하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축제가 아니지."

"그래도 반짝거리는데. 신기한 것도 많잖아."

손을 마주 잡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린 네가 말했다. 축제가 시작하기 전이라고 해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았으니까 혹여나 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못 놓게 했다. 너는 크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종종 흥미 있는 것이 눈에 보이면 손을 놓고 그쪽으로 다가갔으니 몇번이고 다시 손을 잡아채야했다. 아는 게 나에 대한 것 두 가지 뿐이고 다른 건 다 모른다는 너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집에 돌아가겠냐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 내 걱정은 모르고 즐거운 듯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거리는 네가 나를 따라 걷는다. 

"축제가 되면 폭죽을 터뜨려. 광장에서 춤도 추고 공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겠네? 오늘처럼."

"그렇지. 그런데……."

"그게 인어지?"

별로 내키지 않아 했던 단어가 네 입에서 뱉어짐에 눈을 크게 뜨고 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진부한 대답도 하지 못하자 네가 계속 손을 흔들거리며 나를 향해 묻는다.

"어딜 가든 인어 그림, 인어 모형, 횟집… 그런 게 있잖아. 모르는 게 더 바보겠다."

"그런가…"

"별아, 인어 좋아해?"

계속 흔들거리는 손이 그 질문과 함께 멈춘다. 선연하게 웃고 있던 낯도 언제 웃었냐는 듯 사라진 채로 너는 내게 물었다. 인어 좋아해? 아니, 너는 다시 고쳐 묻는다. 별아, 너는 인어 고기를 좋아해? 아니, 나는 너와 돌아다닐 때도 일부러 횟집 근처를 피해서 걸었다. 아니, 대체 사람들은 인어를 어떻게 먹는 걸까. 아니, 역겨워. 아니, 피비린내가 나. 아니, 죽어버린 눈깔이 무서워. 아니, 나는… 인어를 좋아하지 않아. 새파래진 안색과 당장 뭐라도 올라오는 것처럼 하는 헛구역질, 나는 네 손을 놓고 입을 틀어막고 주저 앉았다. 당황한 네가 쭈그려 앉아 내 등을 쓸어주며 용서를 구한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야 붉어진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갈라진 목소리가 영 힘이 없다. 

"미안해, 별아. 괜찮아?"

"…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너도."

"뭐?"

"…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여기 섬사람들 다, 인어를 먹어. 그게 당연한 거야. 근데 나는 못 먹어. 너무 역해. 아무리 냄새를 지우고 지워도 인어 고기만 보면 피비린내가 나."

"전살별."

"그래서 못 먹겠다니까 다들 날 비웃었어. 너도, 너도 그러려는 거지? 인어도 못먹는 비위 약한 한심한 새끼라고."

너는 한순간에 내 멱살을 잡아들었다. 꽉 쥔 주먹이 내 넥카라를 틀어쥐고 자기 얼굴 앞까지 끌어온다. 당황해서 굳어있던 낯도 잠시 조금씩 누그러지는 네 표정을 한껏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너는 멱살을 쥔 손에 힘을 탁 풀며 입을 열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나도 인어 못 먹어. 그럼 나도 한심한 새끼야?"

"…어."

"…한심한 전살별."

"죽을래?"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얄미운 놈. 어이없어서 기가 찼다. 방금까지 헛구역질에 시달렸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어이없는 게 한몫했을 거다. 아무 말도 안 했다며 시치미 뚝 떼며 그만 일어나라고 손을 내민 너를 흘기며 네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일어났다. 머쓱해진 네가 손을 거두려고 하자 그때서야 네 손을 마주 잡는다. 하늘을 보니 슬슬 노을이 진다. 

"가야 하지?" 

하늘을 보며 물은 나를 바라보더니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다시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 가야 해." 

집에 가야 할 때면 항상 우리가 만났던 해변으로 데려다달라고 하는 너. 내가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해도 혼자 갈 수 있다며 사양했다. 그동안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과 나처럼 인어를 먹지 못한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해변에 도착하고 손을 놓고 작별 인사를 한다. 또 보자, 별아. 나는 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뒤돌아 가려는 네 손을 다시 붙잡는다.

"내일은 늦게 나올 수 있어? 나랑 같이 별 보러 가."

그 애는 미소 짓지만 대답하지 않은 채로 내 손을 떼어낸다. 너는 웃고 있었지만 나한테는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그럴 수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로 내일 봐, 안녕. 그 말만을 남기고 해변을 따라 홀로 걸었다. 나는 그런 네가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그 날 헤어지고 나서 그 애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애는 몰래 낮에 나갔던 것이 들켜 부모님에게 혼이 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혹시라도 네가 늦게 찾아올까봐 대부분의 시간을 해변에 나가 보냈다. 이상함을 눈치챈 누나가 무슨 일 있냐며 물어왔지만 고개를 저으며 누나를 걱정시키지 않을 적당한 핑계를 대고 넘어갔다. 축제가 시작한지 이틀, 전국에서 인어를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몰려들었다. 민박이며 호텔이며 남는 방은 없고 횟집에선 인어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축제만 되면 번화가로 나가지 않았다. 가게에서 들려오는 인어의 단말마도 듣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거죽을 뒤집어 쓴 채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고 싶지 않았다. 누나는 축제가 되면 도살을 하러 갔다. 그래야 우리가 먹고 산다고 그 고왔던 손에 인어 피를 묻히는 걸 택한 거였다. 그거 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며 설득해봤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게 가장 시급을 높게 쳐준다는 걸. 이미 3년도 더 되었다. 어쩌면 누나는 나보다도 인어를 싫어했으니 더 그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다는 확답을 들을까봐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일 보자고 했으면서. 언제 오는 걸까. 그 애와 이제야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애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게 아니라 무슨 사정이 있어서 나오지 못한 걸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매일 아침 해변으로 나가 기다린지 이제 일주일이 되었다. 이맘때면 되면 밤에는 광장 쪽에서 폭죽이 터지고 번화가쪽은 온갖 조명으로 반짝거렸다. 외진 해변으로 나오는 관광객들은 다들 술에 취해있거나 즐거운 낯으로 깔깔대며 무리를 지어 돌아다닌다. 곧 축제가 끝날 건데, 축제가 끝나는건 아쉽지 않았지만 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네게 보여줄 수 없는건 아쉬웠다. 특히 불꽃놀이는 일년에 딱 한 번 축제 기간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었으니까.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나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내려와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애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돌아가곤 했으므로 더 이상 기다려봤자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별아! 전살별!"

가쁜 숨소리와 함께 저 너머에서 달려오는 네가 가까스로 내 손목을 잡았을 때 나는 뒤를 돌아보기 싫었다. 매일 아침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으나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데도 뒤돌아보지 않는 나를 봤는지 네 말이 이어졌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내일 보자며?"

날선 대답과 함께 뒤를 돌아 네 멱살을 틀어쥔다. 그 애는 별다른 저항없이 그저 멱살을 쥔 손에 자기 손을 덮어 올렸다. 

"개새끼. "

"별아. … 근데 이거 풀어주면 안 돼? 나 숨막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노려봤지만 내 손목에 대롱 매달려있는 너는 바보같이 웃기만 해서 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숨막히다며 내 손을 톡톡 건드는 그 손길에 한숨을 쉬며 멱살을 놓으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살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정말 한 대만 때릴까?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모래사장에 주저 앉은 너는 고개 숙인 채 자기 다리를 연신 주무르고 있었다. 네게 별을 보여주려고 찾은 곳은 언덕을 올라가야 했기에 지금부터 출발해야했다. 

"멱살잡은거 가지고 엄살이야, 일어나. 별 보러 온거 아니야?"

"…응. 보러왔지…."

다리가 아픈건지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 손이라도 잡고 일어서라고 내밀 생각이었지만 창백한 네 안색에 갈 곳 잃은 손이 네 뺨을 감쌌다. 당황한 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너는 묵묵부답으로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니, 주무르는게 아니었다. 종아리 한쪽을 가린 채로 너를 나를 올려다본다. 가린 종아리에 시선이 가닿으면 숨긴 손바닥 아래로 짙은 물고기 비늘로 서서히 덮여가는 다리.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했는지 네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전살별, 너 진짜 몰랐어?"

뭐를? 대체 뭐가? 검은 비늘로 덮이는 다리는 점점 손바닥으로는 가릴 수 없이 넓어져만 갔다. 아직 하늘은 붉었지만 점점 어두워져갔고 그럴수록 네 다리에는 비늘이 돋아났다. 제대로된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네 다리의 비늘을 제 손바닥으로 숨기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아니야. 너는 인어가 아니어야 하는데.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네가 어쩌면 인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런건 내 착각이어야만 했는데. 네 손이 내 볼에 와닿는다. 

"나, 너랑 저녁에도 놀고 싶었어."

"……."

"근데 나는… 세상이 어둠에 잠기면 바다로 돌아가야 해."

이제는 두 손으로도 숨길 수 없이 돋아나는 비늘에 어떻게든 숨기려는 손이 떨려왔다. 미안해. 속여서 미안해, 별아. 거짓말을 관둔 그 애는 다리가 지느러미로 변해가는 와중에도 나를 끌어안았다. 마을은 축제중이었고 바다에는 유람선이 떠있다. 지금 너를 바다로 돌려보낸다고 한들 잡힐게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게 될테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일단 너를 안아들고 누가 보기 전에 집으로 달렸다. 나는 내 친구를 그런식으로 잃고 싶진 않았으니까. 

욕조에는 검은 지느러미를 가진 인어가 있다. 나는 욕조 옆에 무릎을 대고 앉아 인어가 움직일 때마다 넘치는 물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욕조는 너에게 작았고 꼬리는 밖으로 나와있었다. 혹여라도 밖으로 나온 꼬리가 마를까봐 물 안으로 꾸역꾸역 넣으면 너는 불편하다는 듯 펼쳐서는 다시 밖으로 빼고 마는 것이다. 한참 이어진 적막을 우리는 쉽게 깨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네 눈동자에는 나를 속였다는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고 나는 당장 꺼낼 말이 없었다. 그저 흘러넘치는 물을 맞으며 너를 바라봤을 뿐이다. 어릴 적 들어본 적이 있다. 인어가 남획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낮에는 인간들과 뭍에서 어울리고 밤에는 바다로 돌아가는 인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저녁이 되면 다리에 걸린 주술이 풀려 어쩔 수 없이 인어가 된다던 동화같았던 이야기를 어른들은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양식되는 인어는 낮이든 밤이든 인어였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그저 동화라고 치부되던 이야기를…. 

"왜 그랬어? 너 거기서 인어로 돌아갔으면 죽었어. 주변에는 물도 없고 바다도 없었는데. 왜 왔어?" 

겨우 꺼내든 말 끝이 떨렸다. 거기서 내가 조금만 늦게 너를 데리고 들어왔다면 어쩌면 누군가가 인어인 널 보고 신고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벗어나고 싶기만 했던 이 섬에 처음으로 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꼬리가 움직이며 찰박이는 소리가 들린다. 

"인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을거면서."

"그런다고 죽을 생각을 해?"

"나 안죽었잖아, 별아. 네가 살려줬잖아. 이렇게."

"좆같은 새끼, 진짜…"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애는 물 안으로 그대로 몸을 미끄러뜨려서 욕조 바닥에 누워 고개 숙인 나와 눈을 마주친다. 당황한 내가 너를 꺼내려고 손을 뻗었지만 살랑이는 꼬리와 허리 아래의 비늘이 네가 인어라는 것을 상기시켜 손이 얼마가지 않고 멈췄다. 물 속에서 옅게 웃은 네가 내 손을 뻗어 잡는다. 물 때문인지 아니면 네가 인어라서 그런건지 맞잡은 손은 차가웠다. 

"내가 인어라서 싫어졌어?"

"……."

"너를 많이 속여서 미워?"

"……."

"미안해, 별아." 

네가 말할 때마다 물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온다. 꼭 울 것처럼 찡그린 네가 물에 일렁거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인어라서 싫어졌냐니, 나는 인어를 싫어했지만 너는 좋았다. 많이 속여서 밉냐니, 이건 좀 밉기도 한 것 같고. 욕조 밑에 잠긴 인어는 내 손을 힘주어 잡지도 못했다. 너는 왜 나를 믿었을까. 내가 인어고기를 먹지 못하는 한심한 놈이라서? 인어고기를 먹지 못해도 얼마든지 나는 너를 도살장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인간이다. 너에게서는 물 비린내가 났다. 유일하게 견딜 수 있는 물 비린내가. 

"나는 인어가 싫어."

"……."

"나를 속인 네가 밉고."

"…미안해."

"네가 나 때문에 죽을까봐 겁이 났어."

투욱, 툭. 고개숙인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져 넘실거리는 물에 닿았다. 작은 물방울은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너도 울고 있는 걸까, 숨을 들이키는 가슴팍이 들썩거렸다. 눈 앞이 흐려 제대로 너를 볼 수 없었지만 맞잡은 손을 놓기 싫어 힘을 주었다. 

"널 잃을까봐 무서웠다고…. 네가 인어가 아니든 상관없어.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물 속에 잠겨있는 너는 꼭 숨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상체를 숙여 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오직 인어에게 짧게 입맞추기 위해서. 내 입술이 네 이마에 닿으면 너는 그제서야 욕조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붉게 상기된 뺨,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달싹이는 입술. 그동안 품어왔던 감정을 막상 내뱉고 나니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시선을 옆으로 했다가 힐금 너를 바라본다. 그리고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은… 이화우야."

인어들은 인간에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름을 가르쳐 준 인어는 이름을 알게 된 인간을 거스르지 못하게 되니까. 인어에게 이름이란 호흡과도 같은 것, 그 애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지금껏 봐왔던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지냈다. 낮에는 만나 같이 놀았고 밤에는 그 애를 생각하며 파도 소리에 눈을 감았다. 화우는 손바닥 가득 차는 소라고둥을 하나 주워 나에게 주었다. 만나지 못하는 밤에는 그걸로 연락하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어쩌면 화우는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어들은 지나치게 순수할 때가 많았으니까.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괜히 소라고둥을 귀에 대고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리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 지금도 그랬다. 솨아아─ 고둥 안의 작은 바다가 파도친다. 집 밖에서 파도치는 소리는 싫었지만 네가 가져다 준 파도의 조각은 듣기 좋았다. 새벽 한시, 소라고둥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화우는 만나면 내 손부터 잡았고 둘만 남으면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항상 이러면 좋아? 하고 묻는 것이다. 부끄러워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어버버하고 있으면 나는 좋아. 사람들이 하는 애정표현 방식. 하고 웃는 낯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목소리를 내어 말하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입술이 포개어졌다. 나는 그 해 여름이 가장 더웠다. 입 사이가 벌어지면 혀가 침범하는건 금방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부비는 입술에 우리는 서로의 호흡을 탐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입술이 가까스로 떨어지면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하루는 입술이 퉁퉁 불어터질 때까지 붙어있다가 집에 들어간 바람에 샛별이 입술이 왜 그 모양이냐며 화를 냈다. 아마 어디서 맞고 왔다고 생각했던 건지 밖으로 나가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찾아 한 대 때려주려는 것을 겨우 막았다. 

"그런 일이 있었어?"

"하마터면 누나한테 네가 맞을 죽을 뻔했지."

화우는 샛별이 인어를 도살하는 걸 알았다. 그걸 말해줬을 때 화우는 조금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 우리는 샛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이 섬에서 인어가 몇 명이 죽어가든 우리는 한 명도 구해줄 수 없었다. 양식되는 인어는 말조차 배우지 못하고 이름도 인간에게서 받게 되니까 인간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네 낯빛이 안좋아질 때마다 손을 덮어 잡았다. 

"만약 누나가 너 잡으러오면 내가 막아줄게. 쫄지말고."

"내가 언제 쫄았다고… 너 비실거려서 걔한테 쨉도 안될 거 같은데."

내가 너무 많은 말을 가르쳐줬나. 미간을 찌푸리고 너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맞지. 지금 나는 샛별이를 이기긴 힘들 것이다. 아무리 남녀 간 힘의 차이가 있더라도 샛별이는 도구를 쓰는게 나보다 더 능했으니까. 결국 반박하지도 못하고 대답대신 네 입에 쿠키 하나를 밀어넣어주었다. 샛별이 얻어왔다던 쿠키는 이상하게 쓴 맛이 났다. 찡그린 얼굴로 혀를 내밀고 있는 나를 보지 못한건지 맛있다며 내 무릎에 있는 쿠키 상자에서 하나를 더 가져갔다. 그나마 네 입맛이라도 맞아서 다행이다 싶어 쿠키가 들어있는 상자를 네게 넘겼다. 다른 간식들은 한 개 이상 잘 먹지도 않더니 이건 상자를 싹 비웠다. 빈 상자에 꼼지락대는 네 손을 보곤 웃었다. 

"이건 맛있어?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더니."

"보통 사람이 먹는건 이런 맛이 안나는데 이상해."

"무슨 맛?"

"바다에서 나는 맛."

바다에서 나는 맛이 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화우의 대답은 항상 추상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는건 인어들에게 어려워 보였다. 아마도 인간을 잘 알지 못하는 탓이 커서 그런가 싶었다. 상자를 뒤집어 탈탈 털더니 부스러기가 모래사장 위로 떨어졌다. 작은 게들이 그 부스러기로 모여들어 집게발에 하나씩 집고 옆으로 날래게 도망간다. 화우는 상자를 바로 두곤 다리가 간지러웠는지 긁어댔다. 상자를 대신 버리려고 손을 뻗다 자연스레 네가 긁고있는 다리에 시선이 닿는다. 비늘?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는데, 해가 이렇게 쨍쨍한데 네 다리에선 밤이라도 된 것 마냥 비늘이 돋았다. 너도 당황한 듯 돋아나는 비늘을 손으로 어슬프게 감춘다. 어째선지 불안한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역시, 너 인어구나?"

잔뜩 날이 선 익숙한 목소리, 샛별이 화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샛별은 화우와 붙어 있는 내쪽으로 다가와 우리 사이를 확 떼어냈다. 왜 그래, 누나. 흥분한 샛별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한쪽 팔을 붙들었으나 샛별은 내 손을 뿌리치고 가지고 온 도살용 칼을 화우에게 휘둘렀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샛별의 허리를 안아 그 자리에서 버텼다. 

"누나! 씨발, 미쳤어? 여기서 뭐 하는거야?" 

"뭐? 미쳐?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전살별! 이거 놔! 안 놔?!"

"으윽! 너 뭐해! 빨리, 도망가!"

아무리 내 집 앞 해변에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낮이었다. 화우의 다리가 인어의 지느러미로 변하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 일이었다. 하물며 여기서 변했다가는 샛별에게 도살당하는건 시간문제였다. 사색이 된 네 얼굴이 안쓰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난리치는 샛별을 꽉 붙들었다. 씨발, 빨리… 가! 나를 바라보고 있던 화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바다로 달려갔다.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힘이 슬슬 빠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샛별이 품을 벗어나 네 뒤를 좇았다. 풍덩, 네가 바다로 뛰어든 소리와 함께 샛별이 악을 썼다. 숨을 몰아쉬며 샛별의 뒤를 따라 해안에 도착하니 너는 이미 없었다. 다행히 잘 도망쳤구나, 안도하니 샛별이 그대로 내 멱살을 틀어잡는다. 독기 어린 눈이 나를 향한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두둔하는 샛별은 꼭 어딘가 미쳐있는 것 같았다. 

"미쳤어, 전살별? 내가 섬에 얼굴 모르는 애가 없는데 네 옆에 붙어다니는 새끼, 이상하다 싶었어. 그런데 사람도 아니고 인어? 너 정말 어디 확실하게 돌은거야?"

카랑카랑한 샛별의 목소리에 귀가 아팠다.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우를 나쁘게 말하는 게 듣기 싫어 붙잡은 손을 쳐내며 똑같이 언성을 높였다. 

"누나가 한 짓이야? 쟤 낮인데 비늘 돋은거 네가 한거냐고, 전샛별."

"그래, 내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서 인어들 환장한다는 해초 구해다가 쿠키 만들었다, 왜."

"씨발, 진짜. 왜 그딴 짓을 해? 걔가 다른 사람한테 들켰으면 어쩔건데?"

"…하, 너 단단히 홀렸구나? 너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전살별?!"

그 말에 눈 앞이 시큰해지며 샛별을 모래사장에 세워 둔 채로 막무가내로 달렸다. 내 이름을 부르며 뒤 따르는 샛별의 발소리가 안들릴 때까지 뛰었다.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간 날 인어의 노랫소리에 홀려 돌아가셨다. 샛별이 그토록 인어를 미워하고 내가 인어를 먹지 못하게 된 이유, 바다를 싫어하게 된 그 날을 어떻게 잊겠냐고. 그 말을 하는 대신 울음을 참으며 샛별의 반대편으로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정말 인어가 싫었다. 부모님을 홀린 인어가 미웠고 샛별이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든 인어가 역겨웠다. 그런데도 … 나는 그 애 만큼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도망치라고 했는데 내 발소리를 듣고 따라온건지 해수면에 인영이 내 발걸음 따라 이동했다. 낮이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미련하게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거다. 물에 닿는건 싫은데, 저 미련한 인어를 다시 돌려보내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갔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고 나니 그제서야 얼굴을 빼꼼 내민다. 어디 다친데 없이 말끔한 네 얼굴을 쓸어만지고 나서야 안도했다. 

"이화우, 가. 너 이러다 잡혀서 죽어. 가."

"별아……."

"빨리 돌아가. 한동안은 오면 안 돼. 위험하니까, 알아들어?"

"… 그럼 나 언제 와?" 

아예 오지말라는 말로 들렸는지 거의 울듯한 네 얼굴에 눈가를 쓸어주었다. 너를 잃는 것보단 너를 한동안 못보는게 나으니까. 돌려보내면 너는 이 어딘가에서 살아갈테니 그걸로라도 만족할 생각이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너를 밀어내도 꿋꿋히 나를 잡고 놓지 않는 네 시선을 애써 피하며 밀어냈다.  

"100일만 기다려, 알았지?" 

"그건 너무 길어, 별아."

고개를 다시 내저으며 네 손을 풀어냈다. 어서 가, 빨리. 계속 나를 바라본 채로 한참을 떠나지 않더니 뒤에서 들리는 샛별의 발소리에 화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잠수했다. 검은 지느러미가 조금씩 일렁이며 사라져가는 걸 한참 바라봤다. 


누나는 이해해주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든 인어에 홀렸다며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누나는 자연산 인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섬의 어른들에게 알렸다. 인어 양식을 시작한 이후로 거의 잡히지 않았던 자연산이 있다는 소리에 어른들은 크게 흥분하며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 집 근처의 바다를 샅샅이 뒤집어놓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화우가 잡혔을까봐 심장을 졸여야만 했다. 바다를 샅샅이 뒤져도 화우가 잡히지 않자 섬 사람들은 나를 배에 태웠다. 배에 타기 싫다고 발악을 해도 인어 도축을 업으로 삼는 사내들에게 반항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나의 이름을 불러도 누나는 나를 외면했다. 인어에게 홀린 동생은 가족도 아니야? 공허한 시선이 누나가 서있는 부두를 훑는다. 억지로 탄 배 위는 지옥이었다. 이상하지, 네가 있는 바다는 그렇게 광활하고 아름다워보였는데 갑판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아주 깊고 어두운 심연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갑판 위에 제대로 설 수도 없어 난간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나를 들어매고 배에 오른 사내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살별아,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정이 얼마나 많은데… 아저씨가 뭐 큰 부탁한다냐?"

"……."

"그 인어 한 번만 불러주면 바로 육지로 내려줄테니까. 너 그 놈 이름 알지? 이름 한번만 불러 봐라. 인어란게 말이야, 이름 한번 알려준 놈한테는 꼼짝도 못해."

"……."

토악질이 밀려와 입을 틀어막고 죽일듯이 사내를 노려봤더니 그는 머리를 벅벅 긁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새끼, 눈이 돌았어. 단단히 홀렸나봐. 사내가 다른 선원들에게 가면서 하는 말은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바다가 두려워 시선을 갑판으로 내리고 고개를 처박았다. 아무리 인어를 유인하기 위해서라지만 나를 이 배 위에 계속 둘 수는 없을 거였다. 저들도 가정이 있으니 밤이 되기 전에는 풀어줄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마다 배로 끌려가며 세 달을 보냈다. 

배를 태워도 자연산 인어를 잡는데 진전이 없자 어른들은 나를 억지로 배에 태우는 짓을 그만했다. 나는 그대로 방에 틀어박혀 방문을 잠갔다. 어차피 열쇠는 샛별에게 있었으니 의미없는 반항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었다. …오늘이 화우와 약속한지 99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때쯤이면 자연산 인어의 존재가 알려진다고해도 수그러질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섬 사람들은 오히려 더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 애에게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할 걸 그랬다. 200일, 300일, 아니 1년, 2년… 100일은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저번에는 섬의 이장도 다녀갔었다. 자연산을 잡으면 그걸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우리와 같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쓸 수 있을거라던 속이 보이는 거짓말을 하며 나를 설득하려했다. 잡생각을 떨치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오늘이 지나면 그 애는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나를 만나러 이 섬에 오겠지. 그러면 그 애는 잡혀서… 더 이상 상상하기 싫어 벌떡 일어났다. 아마 지금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붙잡거나 따라붙을게 분명했다. 밤에 나가야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섬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나 뿐인 동생이 인어에 홀렸다고 굳게 믿는 가엾은 내 누이를 위해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이렇다 할 편지지가 없어 깔끔한 노트에 마지막으로 샛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써내려갔다. 미웠지만 샛별을 정말로 미워하는건 아니었다. 샛별도 나를 지키려고 그랬다는 걸 잘 아니까. 이제는 다시 못 만난거라고 생각하니 써내려가는 손이 몇번이고 멈췄다. 펜을 쥔 손이 바르르 떨리고 울음이 샐까 입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전하는 편지는 초라했다. 일반 공책에 쓰였고 뜯지도 제대로 접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내 방에 들어올테니 샛별이 발견하지 못할리는 없었으니 상관없기도 했고.

오늘은 그믐달이 뜨는 날이었는지 밤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창문으로 몰래 나와 준비해둔 운동화를 신고 바다와 반대편으로 향했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이 있는 언덕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해변에 사람이 많아지면 항상 그 절벽에서 바다를 보러 갔었다. 밤에 올 수만 있다면 여기는 별이 제일 잘보이는 자리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밤에 그 애를 데려오진 못했다. 너는 영리하니까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사람들이 바다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걸 알아챌거다. 그 사람들을 피해 섬을 돌다보면 여기서 나를 기다릴 확률이 높았다. 낮은 절벽인데도 막상 그 앞에 서니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아득했다. 사람들은 바다가 에메랄드 빛으로 푸르게 보인다던데 나에겐 그저 어둡고 검기만 했다. 그나마 안도가 되는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를 보면 두려워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네 지느러미가 생각나 그렇게 무섭지 않아졌다는 거였다. 저 아래에 네가 있을지 없을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은 약속 전 날이잖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건 내 지나친 욕심일까. 너를 어쩔 수없이 보낸 그 날부터 나는 그 애를 수도 없이 그리워했다. 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이름을 부르면 너는 내가 어디에 있든 날 찾아올텐데 그랬다간 네가 그물에 걸려버리니까 너를 부르고 싶을 때마다 혀를 깨물었다. 이미 내 입안은 엉망이 된지 오래다. 나는 고민없이 뒤로 살짝 물러나 그대로 달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 몸이 그대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살려고 버둥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차츰 정신을 잃어갔다. 

"…별?"

"……."

"전살별?"

너무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귀에 울리듯 들려와 눈을 떴다. 바다는 온통 새까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은 너무 선명하게 보인 탓에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그 애는, 너는, 화우는 환히 웃으며 내 주변을 돌았다. 예상하지 못한 이른 조우에 신난 듯한 표정이 선명하다. 

"우리 내일 만나기로 했잖아. 왜 이리 일찍 온거야? 나 보고 싶었어?"

응, 보고 싶었어. …화우야. 목소리가 나올리가 없었다.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입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꼴사납게 입을 뻐끔거리며 대답했는데도 너는 용케 알아들었다. 어디든 좋아…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인어는 어떻게 이리 순수할 수 있을까.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너는 나를 끌어안고 저 편으로 천천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화우는 내가 바다를 싫어한다는 것과 내가 화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인간은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것도 몰랐고 그래서 인간인 나는 바다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건 내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잔인하게도 이 세상에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바다에선 내가 살 수 없고 육지에선 네가 살 수 없다. 너는 하루 빨리 너를 보러온게 얼마나 기쁜지 재잘거렸다. 바다에서 듣는 네 목소리는 명랑한 노랫소리에 가까웠던 것도 같다.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네게 나는 차마 너를 보러온게 아니라 내 숨을 끊으러 온 거라 말할 수 없었다. 흐려지는 정신을 어떻게든 잡으며 네 목소리를 가득 담으려 노력한다. 있잖아, 나… 조금만 잘게. 오래 잘지도 몰라. 깨우지 마… 너에게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네. 서서히 감겨들어가는 눈에 네 입술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좋은 꿈 꿔, 살별아.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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