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눈을 가린 장막을 찢어줘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카노 아오구+연구원 아소 코지 AU.

-카노 플래그 스포일러.

-트친분께서 한 장면을 그려주셨습니다..! 다 읽고 이쪽도 봐주세요!

https://00characterlog.postype.com/post/9750261


"아소 짱, 장난감 피아노 사 와."

"드디어 인간의 식생활을 버리게 되었나요?"

"아소 짱도 애벌레로 이직하지 그래? 잘 어울리잖아."

"당신이 괴이 액상과당으로 개명한다면 고려해보죠."

"싫어. 발음이 꼬이잖아."

카노는 끄트머리만 남은 슈가 글레이즈드 도넛을 와압, 먹어버리고 손을 턴다. 직원 휴게실에 카노 아오구가 있으면 대체로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넓은 휴게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지고천 연구소 전 직원 중 유일하게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아소 코지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츄잉 폰데링을 베어 문다. 카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반 빵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을 먹고도 미간이 비장하게 찌푸려지는 모습에 그가 히죽거리는 사이 가까스로 폰데링을 씹어 삼킨 코지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무슨 바람인데요. 장난감 피아노에는 농담으로라도 당분 안 들어갑니다."

"연주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거, 해봐."

"아~ 한 번 듣고 질렸으니 내다 버리라는 패턴이네요. 판독 완료."

"아소 짱, 때린다?"

하하하. 사무적인 웃음만 흘리던 아소 코지는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뒤, 의문의 트렁크 케이스와 함께 릴리 더 위치 도넛 12개들이 박스 2개를 들고 돌아왔다. 보란 듯이 도넛에만 관심이 쏠린 카노를 익숙하게 내버려 두고 무언가를 끼릭끼릭 조립하던 코지가 신작 초코 크럼블 도넛과 딸기 크런치 타르트 도넛을 번갈아 가며 먹고 있는 카노 아오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카노 씨, 리퀘스트 있어요?"

"손가락 부러질 만큼 어려운 거."

"이 새치머리 안경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전 직원 중에서 카노 아오구와 악질 농담 비슷한 것을 주고받고 무사히 끝날 수 있는 존재는 아소 코지 정도다. (물론 아소 코지 본인은 그걸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카노를 등진 채 뭔가를 퉁탕거리는 작업을 끝낸 아소가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음악에는 일절 취미가 없는 카노 아오구도 한 번 듣고 알아챌 정도로, 동글동글하고 깜찍한 음색이었다. 카노는 그걸 듣고서야 자신이 지고천 연구소로 끌려와 지낸 몇 년간 음악이란 것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음악이네."

"『고양이 춤』이에요. 오랜만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띄엄띄엄 이어지던 음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 마치 고양이가 뛰노는 듯한 음색이 된다. 유치한 음악. 그렇게 말해주려던 카노는 장난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아소 코지의 얼굴을 보고 그냥 남은 도넛을 먹기로 했다. 혹평이야 음악이 끝난 뒤에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기껏 다 연주한 다음에 혹평해주는 쪽이 재밌다. 카노 아오구는 그때를 얼마든지 기다리기도 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

……………….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음이 꼬인다. 아니, 이건 연주라기보다는 그냥 단음單音이다. 건반 누르기 게임도 이것보단 흥겹겠군. 카노 아오구는 얼굴에 튄 핏자국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난감 피아노 앞에 앉은 아소 코지는 초점이 제대로 맞을지도 의심되는 눈빛으로 텅 빈 보면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건반 위에 놓인 손끝의 움직임은 연주라기보다 차라리 사후 경련에 가까웠다. 애초에 팔꿈치를 그렇게 내리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카노는 짜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아소 짱, 오랜만이라 기억이 안 나?"

"……칸타타."

"예전에는 시키지 않아도 잘만 연주하더니."

"카프리치?"

"재미없어, 재미없다고. 아소 짱."

카노 아오구는 대체로 모든 연구에 얼굴을 들이밀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표면상 C등급, 실제로는 특별 등급으로서 관리받고 있었다고는 해도 지고천 연구소의 정해진 규율 자체를 부술 수는 없었다는 의미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는 흥미도 없었고. 따라서 아소 코지가 불의의 사고로 텔로스늄에 감염되어 돌Doll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도 딱히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도넛에 대한 것이나, 피아노에 대한 것을 생각했을 뿐. 다른 연구원들은 그걸 보고 뭐라고 수군거렸더라. 하도 신경 쓰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돌Doll로서는 꽤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료 A는 그렇게 말했었던가.

뭐가 의식유지냐, 멍청이가.

"가야겠네. 여기 있어봤자 의미가…."

그때 갑자기 연주가 시작되었다. 평온한 듯하다가, 길을 헤매는 듯하다가, 벽을 후려치고, 다시 평온함을 가장하는 듯한 음색. 카노 아오구는 저도 모르게 어둡고 좁은 방에 갇힌 누군가가 맨손으로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사람의 모습은 천장에서부터 바닥으로 늘어진 검은 장막에 휘감겨 보이지 않는다. 한 쌍의 팔만이 장막 사이로 겨우 빠져나와 흑백의 건반을 누르고 있을 뿐이다. 하얗고, 힘을 주면 부러지는 건 아닐까 싶은 가는 팔이 어느 구간에서는 휘청이고 어느 구간은 아예 건너뛰어 버리며 음표와 음표 사이를 필사적으로 더듬는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카논."

"……."

"카노 씨."

아아, 제기랄, 빌어먹을. 카노 아오구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의 모든 험한 말을 단숨에 씹어 삼킨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허용치를 넘어서는 감정이란 건 그의 인생에 있어 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불어 무엇을 동반하는 행동 또한 관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그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에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다면 이 정도 행동이야 뭐가 대수겠는가? 누가 감히 무엇을 빌미로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좋아, 아소 짱."

연주를 멈춘 손을 잡는다. 피와 검은 액체가 체온을 타고 미지근해지고, 피아노만을 바라보고 있던 아소 코지의 고개는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헝겊인형 마냥 카노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눈동자의 초점은 여전히 불투명하여 그 어디에도 담기지 못한 카노 아오구는 오히려 하염없이 유쾌해지고 말았다. 이어 그 손을 끌어당겨 일으킨다. 아소 코지에게서는 어떤 불만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나가서 피아니스트라도 되어보자고."

뭐, 아소 짱의 실력이라면 혹평받고 끝 일 테지만!

웃음 섞인 목소리가 참혹한 꼴의 실험동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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