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19XX년 10월 31일 저녁 7시 교수님 연구실에서.

할로윈 기념글.

-세포신곡 막간에 이르는 스포일러 포함. 날조 설정.

-자살한 이들에 대한 암시가 존재합니다.

-하라다 무테이가 교수입니다.


하라다 무테이는 과거를 교육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가 길러낸 우수한 인재들은 죄다 시간의 건너편에 묻혀버렸다는 뜻이다. 저승사자 교수. 대학로 어디에선 그런 소문이 떠돌고 하라다 무테이는 강단에서 판서를 하다 문득 고개를 돌린다. 오전 11시의 수강생들이 그 불가해한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끝내고 강의실을 나간다. 단 한 번도 수업을 일찍 끝마치지 않지만 동시에 늦게 끝마친 적도 없다는 교수의 몸을 타고 흘러내린 그림자가 대학로의 돌길 위를 흘러갔다. 우연히 그와 걸음이 겹친 몇몇 학생들이 뒤늦게 하라다 무테이의 존재를 깨닫고 소곤거리며 걸음을 늦추거나 빨리한다. 교수는 그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향해 걸어갈 뿐.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학생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슬쩍 고개를 숙인다. 그제야 무테이의 입술에서 짧은 말이 새어 나왔다.

"수고하게."

학생은 당혹한 기색으로 사라진다. 아마 무슨 말로 답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테이 교수는 신경 쓰지 않고 교수 연구동으로 사라진다. 그가 가는 길에 당연하다는 듯이 인적이 드물다. 4층 정도의 계단을 숨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른 하라다 무테이는 잠긴 연구실 앞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어느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자기 휘하의 대학원생을 늘 대기시켜 둔다지만 하라다 무테이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거니와 애초에 그가 담당하는 대학원생이… (쉿) …이제는 없는 탓이다.

책상 위에 출석부와 교재를 둔다. 서양식으로 정리된 연구실은 고요하다. 동물은 고사하고 식물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약간의 (물론, 의사이자 학자이며 작가인 교수의 입장에서) 자료들, 펜이 담긴 펜꽂이, 그리고 한 통의 편지.

하라다 무테이는 서랍을 연다. 페이퍼 나이프가 날렵하게 편지를 뜯었다. 그 안에서 나온 편지지를 열고, 투명한 시선으로 천천히 문자열을 훑는다. 그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리는 듯하다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본 그가 찬장으로 다가갔다. 본래 점심을 거의 먹지 않거나 적게 먹는 교수는 녹차를 자주 마신다.

잠시 후 연구실에 은은한 녹차 향기가 퍼지고, 사그라들었다가, 완전히 식는다. 하늘이 어둡게 물들었을 무렵 원고지 위에 바지런히 펜을 놀리던 하라다 무테이는 손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문간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

똑.

똑.

"들어오게."

문이 열린다. 하라다 무테이는 문간 너머에 서 있는 이들을 보고도 소리 내 놀라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들은 이미 서신으로 자신들의 방문을 정중히 알려왔기 때문이다. 하라다 무테이의 제자들, 다시 말하자면 저승으로부터 온 손님이 천천히 현세의 공간으로 걸음한다. 한때 이곳에서 교수와 토론하고 이론을 검토하며 학문에 열의를 바친 이들이 하나둘 의자에 앉았다. 어떤 이는 불탔고, 어떤 이는 물에 젖었고, 어떤 이는…….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무테이는 가만히 바라본다. 이윽고 교수 연구실의 문이 닫혔다. 시계가 째깍거린다.

오후 19시 00분.

"수업을 시작하지."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라다 무테이를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교육한 과거의 인물들을 응시한다. 침묵을 깬 것은 무테이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2명 중 한 명이었다.

-존경하는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게."

-왜 저희에게 그 지식을 주셨습니까? 당신께서 주신 그 지식은 우리를 내면부터 갉아먹고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를 멸하고 싶으셨습니까?

하라다 무테이가 대답한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군. 나는 그대들을 부수기 위해 지식을 부여한 것이 아니야. 이 세계에는 주어진 인자가 있다. 하지만 그걸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통해 이 세계의 창작자인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 정도의 개요는 이해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는 그걸 이해했습니다.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인자가 존재한다면, 그게 실제로 기능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허깨비와 같다는 것을! 그 순간 우리의 삶은 인자에게 휘둘리거나 혹은 제대로 된 인자도 없이 적당히 잊히거나 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맞은편에 있던 자가 말을 잇듯이 입을 연다.

-그 광막한 허무를 알고 계십니까? 끝나지 않는 눈보라는 눈발을 남기고 거대한 지진은 새로운 단층을 드러내는데 우리의 깨달음은 그 어떤 유익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많은 세계를 만들어 그 속의 인물들을 마치 개미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들에게 일어난 일은 실로 유감으로 생각하네."

하라다 무테이는 식은 녹차를 기울인다.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은 그 혼자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좀 더 세상을 탐구하지 않았나. 이 세상의 인자를 샅샅이 탐구하고 그들의 흐름을, 강세를 파악했다면 그대들은 능히 자신에게 인자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데."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설령 강한 인자를 가진다 해도 결국 신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달라, 다르네. 스스로 인자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아.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인자와 연결된 신과 이어지는 것도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지. 그것은 허무와 공백이 아니라 오히려 행간과 맥락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못과 망치였네."

-교수님은.

긴 침묵.

-참으로 두려운 분이시군요.

"그대들이라면 나와 같은 곳에 도달하리라 믿었네."

-오만은 가장 큰 죄입니다.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단 말인가?"

-저희는 그 공포에서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

-교수님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인사가 있습니다.

"말해보게."

-부디 인간 하라다 무테이로서 돌아오실 수 있기를.

그 말을 남기고 제자들은 사라진다. 시선을 무테이에게 고정한 채 투명해져 사라진다. 하라다 무테이는 한때 아꼈던 제자들의 부고 소식을 차례차례 접했을 때와 같은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이윽고 가장 마지막 제자의 형태가 무너지듯이 녹아내리고 연구실에는 침묵이….

똑똑.

노크소리가 들린다. 하라다 무테이는 들어오라고 말한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꽤나 뜻밖에도 나이 어린 학생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늦은 시각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수업하신 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겨서…."

하라다 무테이는

그를 다음 제자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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