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너의 손끝은 페일 블루

가명조(카노 아오구+아토 하루키)

날이 제법 쌀쌀하다.

전날 겨울비가 내린 탓이다.

잔잔한 공기에는 아직 찬 수분기가 남아있었다. 아토 하루키는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얀 입김을 뱉었다. 목 끝까지 올라오는 하이넥 스웨터에 따뜻한 코트. 든든하게 걸쳤는데도 몸 어딘가에 한기가 도는 것은 불행히도 장갑을 진흙탕에 빠뜨려 맨손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고 하겠지만, 오리진을 인계한 아토 하루키라 해도 의뢰인이 사죄의 뜻으로 선사한 선물세트를 손으로 잡지 않고 공중에 띄우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능력을 남용하고 싶지도 않고.)

따라서 오른손이 희생된다. 그나마 왼손은 코트 아래에서 안락하게 잠들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의뢰를 맡고 나올 때에는 다소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해서 벗어둔 머플러를 그리워해도 때는 늦었다. 알알이 찬 기운이 얽혀있는 공기를 들이마시면 서늘한 기운이 코 안쪽 점막을 자극하며 기도를 타고 아래로 슬금슬금 내려갔다. 잘못하면 폐포들도 바삭바삭 얼어버리는 건 아닐까? 아니. 도시에서 좀 떨어진 시골이라 해도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폐가 언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하루키는 헛기침을 하고는, 서서히 정신적 무게를 더해가는 선물상자를 흘끗 바라보았다.

"도넛이 아니잖아."

"화과자라고 떡하니 쓰여 있잖아요."

"가엾은 아소 짱. 손가락이 빨갛게 얼었네."

"감각도 없으니까 떼가져가지만 마세요."

"따뜻하게 해줄까?"

시골 도로는 차량은 커녕 사람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딱 한 대, 마을에서 마을로 물건을 배달하는 우체부의 오토바이가 하루키의 시야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질렀다. 사람과 오토바이의 구불구불한 그림자가 하루키의 발치를 매끈하게 스쳐 지나간다. 하루키는 그 엔진음을 들으며 제 안의 상식 농도를 조절했다.

"손을 따뜻하게 해주는 저주인가요? 난방비가 절약되겠네요."

"카노 씨는 무보수 만능 양산형 자시키와라시 같은 게 아니거든?"

"그럼 뭔데요?"

카노 아오구가 웃는다.

"알면서."

아토 하루키는 카노 아오구를 돌아보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이 겨울 햇빛 몇 조각을 머금은 채 나뭇가지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그곳에 서 있는 인간의 터무니 없는 존엄성. 담긴 감정만큼이나 무거운 화과자 상자…. 그리고 변덕쟁이 저주 하나.

장갑은 결국 버리고 말았다.

하필 썩은 웅덩이였던 것이다.

"자, 그렇지만 카노 씨는 아소 짱의 친구니까."

"특별 출혈 서비스로 손 잡아줄게!"

아토 하루키는 돌아보지 않는다. 앙상한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각양각색의 형태로 잘리고 재단된 햇살을 이쪽으로 밀어 보내는 중이었다. 마침 눈가에 그림자가 지면서 건너편의 풍경이 조금 선명하게 보인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산의 능선은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고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입김은 몸을 뒤틀다 빛 속에서 옅어져 갔다. 하루키는 그것을 유령 같다고 생각하다가, 이제 거의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오른손을 움찔거렸다.

"어때, 아소 짱."

"뭔가 느껴져?"

납작한 종이끈의 감촉. 점막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한기. 제 피부 아래를 뛰어다니는 혈액의 감각.

굽어진 손가락의 주름과 맞닿은 피부 사이로 느껴지는 것은 미미한 정도의 열감.

(온기라기보다 일정한 압력으로 인해 발생한 압축열이라 표현해야 옳다.)

그것들을 현세의 것이라 치고 제외한다면,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손 잡고 있어."

"그런가요."

"따뜻하지?"

바람이, 어디선가 균형을 잃은 것 처럼 와락 밀어닥친다. 아토 하루키는 눈을 감고 몸을 움츠린 채 비정한 이들이 스쳐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뒤를 쫓듯이 그토록 기다리던 시내버스가 달려온다. 아토 하루키는 미리 왼쪽 주머니에 넣어둔 승차권을 꺼내 들었다. 나이 많은 시골 사람들의 건강을 배려한 것일까. 버스는 열리자마자 따뜻한 온기를 뿜어냈고 추위에 차갑게 말라 있던 안구와 피부가 그 변화를 가장 반겼다. 하루키는 버스에 한 발짝 올라서고는, 말한다.

"따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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