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하여 신이 보기에 그가 사랑받아 마땅하더라

이소이 레이지 중심.

-요루님(@yoru_cell)에게서 첫 문장을 받은 연성교환글.

-DLC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신은 그를 사랑했다. 신에게 사랑받는 이는 신께서 일찍 데려가신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는 일찍 죽고 말았다. 신이 사랑한 이를 인간들이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는가. 그의 장례식 날 마을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어 각자의 손으로 관 안에 하얀 장미를 채워 넣었다. 눈물, 한숨, 기도,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기를, 부디 행복하게 지내기를.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맑은 날에 내리는 빗줄기가 되었다. 가장 경건한 몸짓으로 시신보다 장미 꽃잎이 더 무거운 관을 들어 올린 이들이 깊이 파인 구덩이에 관을 안치하고 흙을 뿌린다. 사람들은 오열하고 슬퍼하다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흙이 덮였을 때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죽은 이가 그 먼 하늘에서 날개를 달고 자신들을 내려다볼 것처럼.

장례식은 끝났다.

삼 일 뒤, 그는 관 안에서 눈을 떴다.

깨어난 이는 관 안에 가득한 장미 꽃잎을 씹어먹고 있는 힘을 다해 관 뚜껑을 뜯어내고 맨손으로 두꺼운 흙을 파헤쳐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무덤에서 피투성이 손으로 기어 나온 시체를 발견한 추모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하얀 꽃잎과 핏자국과 피골이 상접한 얼굴, 식식대는 숨결을 가지고 기어 나온 그는 이전과 같이 신에게서 사랑받는 이가 아니었다. 죽음에서 되살아난 자. 신의 정원에서 추방당한 자. 신의 사랑에서 어긋난 자. 그런 이야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애초에 그가 신의 사랑을 받는 이라는 증거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도 신이 그를 직접 아끼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그러한 계시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대관절 무엇이었단 말인가? 머리를 모으면 어떻게든 반짝이는 발상이 나오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마침내 깨달았다. 누구도 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을 본 적 없음을, 그런데도 그가 신의 사랑을 받는 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은 갖은 방법으로 위장한 언행 때문이었다는 것을. 실제의 그는 단지 얼굴만 천사처럼 타고났을 뿐 어떤 선행도 노력도 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베풀거나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였던 행동들은 다른 이들과 짜고 행하는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들이 모조리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횃불과 농기구를 들고 그가 머무르던 외딴집으로 나아갔다. 사기꾼 나와라! 사기꾼은 사죄하라!

다음날 그는 다시금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번에도 또 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동시에 그들의 슬픔을 농락한 자가 이 땅에 편히 잠들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시체의 목에 밧줄을 걸어 공동묘지의 오래된 검은 나무에 매달았다. 매달린 시체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썩어가며 끔찍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깨달았다. 그는 신의 사랑을 받는 이도 무엇도 아니라, 그저 원죄를 저질러 신에게서 미움받게 된 악마였노라고.

그래서 그 마을에는 「신의 자식일수록 악마의 꼬리를 찾아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쉽게 믿거나 마음을 내주지 말고 쌀쌀맞게 대하며 수상한 구석을 찾아보라는 뜻이다.

"신을 믿지 않는 건가요?"

"달라. 오히려 너무 믿은 거지."

"너무 믿었다?"

"신은 있다. 분명히 있다. 그리고 신은 우리 모두를 공평히 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편애 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런 자는 거짓이다. 몰아내야 한다."

"……."

"어떻게 생각해?"

기차나 전철, 버스와 달리 비행기는 이동 중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운송수단이다. 대량의 인원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란히 앉아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거대한 극장의 관객석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누구였더라. 아무튼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잡지를 뒤적이거나 영화를 보는 대신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이유는 명백해서, 이소이 레이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느낀 모순점을 언어로 정리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말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프로파간다 같네요."

"어떤 점이?"

"전부 다요. 이야기만 들으면 그가 마을 사람들을 고의로 속인 것처럼 나와 있지만 애초에 정말로 사기꾼인지 어떤지도 정확하지 않잖습니까. 옛날 일이라면 의사가 가사 상태를 사망으로 오인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면 신에게 사랑받는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재능 있던 사람을 무덤에서 기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해하고, 시체까지 모욕했다는 끔찍한 얘기가 되어버리고요."

"맞아, 끔찍한 이야기지.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는 루마니아 산골지방의 아주 작은 마을들에서만 전해졌었어."

"과거형인 이유는 제보자가 있기 때문인가요."

"응. 레이지도 알다시피 「신의 자식」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거든."

승무원이 복도를 지나간다. 직무에 집중하고 있는 그가 자신들의 대화를 엿들을 리 없는데도 레이지는 부러 대화를 잇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멀리, 어딘가에서 아이가 칭얼거리자 아버지가 이런저런 동물 소리를 내며 자식을 달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개, …고릴라? 의외의 선택에 고개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세오도아가 손가락을 딱 튕기는 소리를 냈다.

"그럼 레이지."

붉은 기 도는 눈동자가 장난스레 휘어졌다.

"그곳에 있는 건 과연 어떤「신의 자식」일까?"

*

"그게 문제?"

"네, 문제임다."

흐음, 하고 아토 하루키가 잔을 기울인다. 물론 아토 하루키가 대낮부터 이소이 레이지를 상대로 대작對酌을 한다는 것은 섶을 짊어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므로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잘 우려낸 홍차일 뿐이다. 이소이 레이지도 제 형을 따라 반듯하게 자리에 앉은 채 잔을 비웠다.

포트넘 앤 메이슨 사의 스모키 얼그레이. 일반적인 얼그레이 상품들이 베르가모트 향을 섬세하게 살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차는 그 곁에 다소 거친 훈연향을 더하는 것으로 차별점을 두었다. 그 독특한 풍취는 취향 혹은 우리는 방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다행스럽게도 호텔 로비에 위치한 카페의 수준은 꽤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남은 것은 이소이 레이지의 취향 문제였는데, 츠바이크로부터 맥주와 생햄을 전수받은 레이지가 대상이 차라 한들 훈연향을 마다할 리 없다. 입술을 축인 레이지가 4등분된 햄 치즈 샌드위치를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 동안 하루키는 입가에 손을 대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윽고 그 얼굴이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일단 금발."

"호오."

"그리고 키가 커."

"왠지 열받지만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하죠."

"덩치는 마른 편."

"……."

"눈은~ 붉은색? 갈색?"

"이러다 직업은 탐정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네요."

"아하하."

시시한 이야기에 아토 하루키가 웃는다. 이소이 레이지도 괜히 진지하게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케케케,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어차피 심심풀이로 나누던 이야기니 정답 여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애초에 이 문제는 아토 하루키가 우연히라도 정답을 맞출 수 없도록 함정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레이지는 일부러 찻잔을 기울이며 살짝 시간을 지체시킨 뒤, 하루키에게 깜짝 상자를 내밀듯이 툭 말했다.

"정답은 백발."

"어라."

"그리고 붉은 눈."

"알비노였어?"

"귀는 엄청 길고요."

"귀?"

"잎새와 당근을 좋아하더군요."

"……."

"참고로 발바닥에 육구는 없습니다."

아토 하루키는 뒤로 길게 몸을 기댔다. 그 입술 사이에서 짧지 않은 한숨이 흘러나오더니 기울어진 몸이 천천히 앞으로 되돌아왔다. 이윽고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을 자연스럽게 깍지 낀 아토 하루키가 눈을 떴다.

"토끼잖아."

"네, 토끼였어요."

*

루마니아 산골지역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집. 둥근 테이블 위에 의뢰인이 조심조심 타온 차는 흔히 접할 수 있는 티백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연구소로 출근하셔서 저녁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실 거예요.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과 깔끔한 옷차림으로 의젓하게 말한 의뢰인은 아무리 봐도 10살을 조금 넘긴 아이였지만, 세오도아와 레이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인사를 나눈 뒤 정원 뒤편에서 문제의 「신의 자식」을 본 참이었다. 하얀 털에 붉은 눈, 오물거리는 입, 짧고 통통한 꼬리. 어딜 어떻게 봐도 토끼라고밖에 할 수 없는 하얀 털 뭉치를 소개하며, 의뢰인은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클렌. 「신의 자식」이에요."

의뢰인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클렌이라는 이름의 하얀 토끼를 데려왔다. 늘 애완동물을 기대했던 의뢰인은 성심성의껏 클렌을 돌보았다. 이 하얀 친구는 제 주인에게 조금 무심한 부분이 있었지만 대체로 의뢰인과 사이좋게 지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한 달 전 클렌이 갑작스레 숨을 거둔 것이다.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의뢰인이었다.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가다가 문득 정원을 보았을 때, 클렌이 기이한 자세로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황급히 어루만져봤지만 온기도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뢰인은 처음으로 접하는 생생한 죽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아, 죽어버린 클렌의 시체를 두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날 비통한 마음을 안고 아침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의뢰인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분명 어젯밤 죽었던 클렌이 멀쩡하게 정원을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의뢰인은 부모님에게 어제 보았던 풍경을 이야기했지만 부모님은 악몽을 꾼 것 아니냐고 웃기만 했다. 클렌은 언제나처럼 쌀쌀맞게 도망 다녔다.

그건 꿈이었을까? 하지만 클렌을 끌어안은 순간 죽음이 피부에 맞닿아온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의뢰인은 자신이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그 정도 구분은 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했다. 비록 객관적인 증거는 없지만 자신의 명예를 걸 수 있다는 말은, 상대가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레이지가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차만 홀짝이는 사이 세오도아가 의뢰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럼 클렌이 죽음에서 부활한 걸 보고 「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가요?"

"네, 「신의 자식일수록 악마의 꼬리를 찾아보라」고 하지만… 저는 그 이야기가 왜곡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그 외에 또 다른 일은 없었나요?"

"실은… 밤중에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요."

조금 초조해하는 아버지와 냉정한 어머니. 두 사람은 클렌에 대한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지 논의하는 눈치였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아버지,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어머니. 의뢰인은 그 대화가 자신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눈치챘다. 무심결에 클렌이 「신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연구개발소 소속인 어머니는 그 자리에선 무슨 소리냐며 웃어넘겼지만, 아무래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었던 모양이다. 의뢰인이 숨죽이는 사이 부모님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그리다가 누군가의 벨 소리에 의해 끊어졌다. 의뢰인은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그것이 약 이 주 전의 일이었다.

레이지는 찻잔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티백과 그 사이로 보이는 찻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오도아는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저희 둘이서만 클렌을 관찰해봐도 괜찮을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예요."

"얼마든 지요.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의젓한 목소리를 등지고 바깥으로 나온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정원의 나무들은 부는 바람에 잎새를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고 푸른 잔디 깔린 정원에는 나무 그림자가 한가롭게 흔들렸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 움튼 새싹과 잎사귀의 향기가 깊이 스며들었다. 정원 한쪽에는 그늘에 몸을 누인 하얀 토끼가 한 마리. 세오도아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기색도 무시하고 그늘진 자리에서 콧잔등을 움찔거렸다.

"세오 씨."

"응."

"혹시 이미 눈치채고 있었나요?"

"백 퍼센트는 아니야. 한 팔 할 정도?"

토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레이지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끼의 목에 걸린 붉은 목걸이에 반짝이는 이름표가 달린 것이 보였다. 거기에 적혀있는 이름이 무엇일지는 굳이 가까이에서 확인하지 않더라도 명백했다.

"그럼, 레이지."

세오도아가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

"흐음."

샌드위치는 거진 사라졌고 티푸드 트레이에는 스콘과 크래커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토 하루키는 절반 정도 남은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비가 그치기 시작한 창밖으로 먹구름이 서서히 걷혀가는 풍경이 보였다.

"우선 현직 탐정으로서 의문 하나."

"물어보세요."

"상호대화는 어떻게 한 거야? 상대는 루마니아 사람이었다며."

"영어로 대화했어요. 상대가 아이라고 해도 의사소통에는 문제 없었고요."

"루마니아 어가 영어가 되는 과정에서 표현의 오류가 있지는 않았고?"

"없었네요. 애매한 부분은 세오 씨가 다 확인했으니까."

"일부러 말하지 않은 단서는?"

"그것도 없습니다."

"그래."

아토 하루키는, 조금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찻잔을 기울였다. 그걸 본 레이지는 제 의형이 이미 진상에 근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하다. 애초에 미스 리딩을 유도하는 장치가 없다. 단서는 모두 제시되었으며 교묘한 트릭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상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단서를 손에 쥐게 된 이가 택할 행동이었다. 그때 세오도아가 모든 걸 알아차린 레이지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말해줄 수밖에 없겠네."

하루키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역시 말하는 건가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

달칵, 찻잔이 찻받침 위에 놓이는 소리.

"클렌은 「신의 자식」이 아니니까."

*

의뢰인은 조금 멍한 얼굴로 레이지를 바라보았다. 레이지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을 꾹 억누르고 자신이 정리했던 말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세오도아는 그 옆자리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클렌이 죽은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하셨죠."

"네. 그런데 다음 날 거짓말처럼 건강해졌어요. 그래서 저는…."

"'거짓말처럼'이 아닙니다. 그 토끼는 본래 죽은 적도 없었을 테니까요."

"죽은 적도… 없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정말 미안한 질문입니다만."

"현재의 클렌은 죽기 전의 클렌과 같은가요?"

불시에 칼에 찔린 것처럼 의뢰인의 입술이 벌어진다. 더불어 크게 확장되는 눈동자는 그가 적잖이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대로, 몇 번인가 위태로운 숨소리가 이어진다. to, totuşi, totuşi. 흔들리는 숨결로 더듬더듬 말하던 의뢰인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올바른 자세로 앉은 채 의자 위에서 경직된 몸이 아까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왜소해 보였다. 레이지가 입술 안쪽을 꾹 깨무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의뢰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Îmi pare rău."

처음 듣는 발음이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굳이 세오도아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의뢰인의 목소리가, 떨리는 몸이, 머리를 감싸 안은 팔과 그 몸에서부터 스며 나와 떨어져 내리는 그림자가 모든 것을 답하고 있었으므로.

"클렌은… 클렌은 내가 이름을 두 번 부르면 귀를 눕히고 나에게 와줬어요. 토라져서 벽을 보고 있을 때조차 귀만은 언제나 움직였어…. 그래서 나는 클렌이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걸 알았는데, 그런데 나는 클렌이 죽었을 때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버렸어! 무서워서 도망갔어!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해주지 못하고…!!"

"그렇지만 다음 날, 토끼는 다시 뛰어다니고 있었죠."

"알고 있었어, 죄송해요, 왜냐면 이름을 불러도 귀가 움직이지 않았는걸. 엄마랑 아빠는 그걸 몰랐지만, 나만은 알았어요. 그렇지만 이대로 모르는 척을 하면, 클렌은 계속 곁에 있는 거니까."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의 실책.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기꺼이 논리 오류를 일으켰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나를 위해서 힘껏 노력해줬어… 그러니까 이대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클렌은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다름없는「신의 자식」. 신에게 사랑받아 죽음에서 되살아난 존재. 이야기 속 마을 사람과 다르게 이전처럼 아끼고 보살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

"그래서 LDL에 제보 메일을 보냈던 건가요."

"죄송해요. 클렌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클렌이라고 믿었어요. 믿고 있었어요."

"……."

"전 이제 어떻게 되나요? 경찰서에 가게 되나요?"

"갈 리가 없잖아요."

레이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의뢰인이 앉아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 의자 위에 몸을 웅크린 의뢰인을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인기척이 이동한 것을 알아차린 의뢰인이 고개를 든다. 눈물 어린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레이지는 자신의 얼굴 근육이 참 딱딱하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머리를 아프게 압박하고 있는 한쪽 팔을 잡아당겨 풀어주었다.

"어디로도 안 갑니다. 아무도 질책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 엄청나게 큰 거짓말을."

"꽤 잔혹한 말이지만, 당신의 거짓말을 아쉬워할 만한 존재는 클렌 뿐이에요."

"……그럼 난… 어쩌면 좋아요?"

"그건 당신이 정할 수밖에 없죠."

창문이 열려있는 것이겠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의뢰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모님에게 진짜 클렌이 어디 묻혔는지 물어봐도 되고, 지금 이대로 새로운 토끼를 계속 클렌이라 부르며 지내도 좋아요. 다만 과거의 클렌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만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러면… 그걸로, 되는 건가요?"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다음 방안은 스스로 생각해주세요."

"클렌이 좋아한, 당신이."

*

"그렇게 마무리한 거야? 꽤 멋지잖아."

"나 참, 얼마나 큰일이었는데요. 세오 씨는 다 알았으면 손 놓고 바라보겠다고만 하지 의뢰인은 어떠신가요? 같은 이야기를 하지. 속으로 식은땀 엄청나게 흘렸다고요. 산타 믿는 어린이에게 산타 같은 건 어른들이 만들어낸 환상의 존재라고 직구 날리는 거나 다름없잖슴까."

"하지만 나라도 비슷한 이야길 했을 거야. 거기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덮어두기만 하면 언젠가 더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죠. 세오 씨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셨슴다. 덕분에 필요악의 존재를 깨달았달까, 그렇게 됐네요."

"거창해."

테이블의 차는 거의 다 비었다. 스콘과 마들렌은 이미 자취를 감춰, 트레이 위에는 약간의 부스러기만이 남아있었다. 얼핏 바라본 시계는 오후 4시 반을 가리킨다. 사네미츠씨가 비상 마감으로 호텔 방에 틀어박힌 지도 어언 6시간째다. 하필 미니 칼럼 마감을 잊어버린 탓에 일본 호텔에서 부랴부랴 노트북을 빌려 화상 전화를 켜고 마감 모드에 들어간 아버지의 절망적인 얼굴을 다시 떠올린 레이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쓸데없는 첨언 같지만 말이야, 클렌은 역시 실험용 토끼였던 거지?"

"음~ 그럴 확률이 높다, 정도로만 해둘까요. LDL은 의뢰인의 부모에 대한 정보까지 수집할 정도로 정보력 넘치는 단체는 아니거든요. 어쩌면 진짜로 어딘가에서 얻어온 토끼일지도 모르고."

"그렇겠지."

조금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창가 너머의 먼 풍경을 바라보는 아토 하루키의 분위기는 오래된 추억 속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듯해서, 이소이 레이지는 하루키와 같은 방향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레이지는 동물을 키운 적이 있어?"

"없어요. 아무래도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라서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딱 한 번인가, 루이의 동생이 폭우 속에서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온 적이 있어. 몸이 잔뜩 젖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

"…어떻게 됐나요? 그 고양이."

"유감스럽게도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어. 그때 비슷한 얘길 들었어. 신은 사랑하는 것일수록 자기 곁에 두려고 일찍 데려간다. 그때도 지금도, 그게 무슨 제멋대로인 이야기냐고 생각해. 하지만 신의 곁에서 뛰어노는 새끼고양이를 상상했을 때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진 기억이 나."

"애도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해 하는 거라고들 하니까요."

"응. 뭐, 아무리 그래도 장례식을 치른 뒤에 다시 살아났다고 사람을 다짜고짜 사기꾼에 악마 취급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뒷맛이 안 좋지만.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예시려나."

그 순간 레이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걸 재빠르게 집어 올려 통화 버튼을 누르면, 건너편에서 지옥에서 갓 뛰쳐나온 듯한 목소리가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레이지… 해냈어….》

"끝났나요?"

《전송까지 끝냈어… 데드라인 아직 안 넘었지…?》

"네, 딱 네 시 반이네요."

"레이지, 십 오 분 안으로 복장 제대로 갈아입고 내려오지 않으면 무스비좌 공연은 너랑 갈거라고 말해줘."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하루키의 서늘한 의지가 닿은 것인지 구깃구깃해져있던 사네미츠의 목소리가 단숨에 빠릿빠릿하게 펴진다. 레이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뒷말을 덧붙였다. 로비 카페에서 기다릴 테니까 너무 서두르다 넘어지지 마세요, 아버지. 전화기 너머 사네미츠는 조금 침묵하다 기침하듯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1분 남짓한 통화가 끝나자 하루키가 자리에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정말이지, 본인 마감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란 말이지."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덕분에 형이랑 추억 이야기도 나눴잖슴까."

"그건 좋지만, 결국 일정을 통으로 날려버린 건 변함없으니 역시 용서 못 해."

형은 아버지에게 가차 없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아예 무시하고 말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보단 낫겠지. 이소이 레이지는 조급해하지 말자는 말을 속으로 되뇌고는 호텔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로비 카페로 이어지는 길목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감을 끝내자마자 뛰쳐나올 수는 없겠지만, 눈이 가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네?"

"생의 길고 짧음이, 정말 신의 사랑과 연관이 있는 걸까."

"……."

"어쩌면 신의 사랑이란 건…."

"………."

…미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했네. 하루키가 머쓱하게 말하기에 이소이 레이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날 의뢰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또 다른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가던 와중에, 세오도아 리들이 아토 하루키와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가 똑같이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

신은 그를 사랑했다.

신에게 사랑받는 이는 신께서 일찍 데려가신다고들 한다.

하지만 틀렸다. 신은 사랑하기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기에 적합해진 자를, 제 역할을 다한 자를 흡족히 거두어 데려갈 뿐이다.

따라서 적합하지 못한 자는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내버려 져서 비참하고 끔찍하게 살아간다.

그러니 숨을 거둔 이들의 가족이여, 마땅히 기뻐하라.

사랑하는 이들이 신의 사랑에 걸맞은 역할을 다했음을!


제시 첫 문장 : [신은 그를 사랑했다. 신에게 사랑받는 이는 신께서 일찍 데려가신다고들 한다.]

첫 문장 제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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