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들어라 그 천사의 날개짓 소리를

아토 하루키 + SNMT + S네글자

※세포신곡 C.O.E~막간까지 플레이한 이후의 감상을 권합니다.

※뇌절날조망상 설정 대량 함유되어있습니다.


인간은 대체로 세계를 자신의 시야에 맞춰 잘라보려고 해서, 정작 위화감을 느낄 때는 이상 징후를 한두개쯤 흘려보낸 뒤이곤 하다. 전형적인 문제 회피형 인간인 사네미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 자신의 가문을 둘러싼 「인자」를 마주하겠다고 결심한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소이 사네미츠라는 인간이 친아들 아토 하루키의 변화에 뭐라고 말을 보탤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피가 이어진 친아들인데 성이 다르다는 시점에서 사네미츠는 산 채로 입이 바느질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호적이란 건 자신이 하루키를 아들로 인지하고, 하루키가 자신을 아버지(親父)라 부르고, 제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소이 레이지가 그를 형이라 부른다 해서 저절로 바뀌는 편리한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가 아토 하루키라는 인물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본다면 그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톨이로 나올 것이고, 그건 사네미츠가 무언가 비상대책을 동원하지 않는 한 하루키에게 적법한 절차로 유산을 물려주거나 만일의 사태에서 법적인 신분 보호자가 되어줄 수도 없음을 뜻했다.

심지어 이소이 사네미츠는 하루키를 냉대한 경험마저 있다. 어떤 양육 전문가라도 눈앞에서 혀를 차며 펜대를 빙글빙글 돌릴 정도의 중대사안이다. 이 업보로 인해 사네미츠는 아토 하루키의 유사 보호자나 다름없는 오토와 루이를 마주했을 때 지옥과 같은 침묵을 견뎌야 했다.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여기서 도망쳤다간 두 번 다시 하루키를 마주할 수 없을 거라는 압박감이 뒤섞여 어떤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면담 자리였다.

그 자리에선 가까스로 하루키의 곁에 있어도 좋다는 요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사네미츠는 정말 하루키 앞에 얼씬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복해 말하건대, 그것이 사네미츠와 하루키 사이의 관계를 저절로 완화해 주지는 않았다. 물론 하루키는 사네미츠에게 시종일관 쌀쌀맞고 퉁명스레 굴며 자신이 관계의 우위인 듯 행동했지만… 사실 그런 태도가 아니었다면 사네미츠는 하루키를 볼 때마다 되살아나는 제 안의 감정에 짓눌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형태 이외의 소통은 함부로 시도될 수도 없었다는 의미다. 그걸 누구도 참견하거나 교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눈동자가 선명한 붉은 색인 걸 발견했을 때, 사네미츠는 이게 뒤늦은 발견인지 아니면 적절한 깨달음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혼란 속에서 가정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눈의 착각. 컬러 렌즈. 알비노 증상. 하지만 자신을 보는 하루키의 눈이 너무나 덤덤해서, 사네미츠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아, 음, 그래. 잘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루키."

"뭔데."

말을 꺼낸 것은 좋다. 하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네미츠는 공항의 번잡함 속에서 입을 벙긋거리다가 안약 사줄까? 같은 헛소리를 했다. 아토 하루키는 한심함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괜찮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탑승 수속을 위해 걸어갔다. 사네미츠는 몇 번인가 입술을 벙긋거리고, 초조하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하루키가 탄 일본행 비행기가 푸른 하늘로 날아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루키가 떠난 뒤 레이지는 애니네 집에 들러서 무언가를 받아오겠다며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떠났다. 하루키의 눈동자 색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언도 없었다. 우연히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니면 거기에 개입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사네미츠는 제 사고를 가늠하다가 어떤 결론에 도달한 뒤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망상, 몽상, 아니면 정답? 사색은 머잖아 사념이 되어 피부를 파고들었다. 나이 먹어도 여전히 얇은 피부가 손톱 모양으로 갈라지기 시작했을 무렵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사네미츠가 직접 나를 불러낸다니 별일이네."

"하루키가 오늘 일본으로 돌아갔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한껏 갈라져 있다. 사네미츠는 제 말이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다음에야 자신이 몇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계절은 늦봄이고 지고세포는 병을 허락하지 않는데 메마른 혀뿌리를 대신하듯 등줄기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대화는 마치 사전에 서로 합의라도 거친 것처럼 매끄러웠다.

"알고 있어. 다음엔 또 언제 보게 되려나."

"요즘 들어 오컬트에 대한 지식이 제법 넓어진 것 같아."

"일본의 탐정은 큰일이네. 민속학도 건드리고 있는 것 같던걸?"

"다개국어도 왠지 능숙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지식욕에 나이 제한은 없지."

"오늘은, 그 아이의 눈이 붉어진 걸 봤어."

"충혈인가?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뤘는지도 몰라."

"세오도아."

"응."

"하루키에게 뭘 하고 있는 거야?"

저 멀리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농구공을 주고받는다. 주인이 던지는 둥근 원반을 쫓아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인 중형 개가 재빠르게 달려갔다. 세오도아 리들은 그리 급한 질문도 아니라는 듯 담배에 천천히 불을 붙이곤, 빨아들였다. 희미한 사과 향을 머금은 연기가 흐물흐물하게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지금의 사네미츠에게는 견딜 수 없는 무정형無定形이었다.

"걱정하지 마, 사네미츠."

무엇을?

"너는 무슨 일이 있든 간에, 그 아이를 네 아들로서 사랑할 거잖아?"

완곡한 자백이나 다름없었다. 사네미츠는 떨리는 손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은 이렇게 밝은데 와닿는 바람은 끔찍하도록 미지근했다. 아아, 시간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악몽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시 걸어온다. 힘이 쭉 빠지려는 무릎께에 철심처럼 박혀 무너지려는 몸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하라다 씨.

"내 아들이야…!"

무엇보다 확고해야 할 외침이, 어째서 이다지도 무력하게 퍼져나가는 걸까.

있는 힘껏 숨을 몰아쉬는 사네미츠 앞에서 세오도아가 미소지었다.

명백한 가짜 미소였다.

"사네미츠, 이건 나와 하루키 사이의 거래야."

"그럼 너는 대체, 내 아들에게 무얼 주고, 뭘 받아 가고 있는 거야!!"

"미래와 죽음."

공원 바닥에서 농구공이 세게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난다. 사네미츠는 가까스로 눈꺼풀을 깜박였다.

"그 아이는 미래를 받는 대신, 내게 죽음을 줄 거야."

왜냐면 하루키는 그럴 만한.

이어지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만년필이 빛났기 때문이다.

*

아토 하루키가 일본 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짙은 석양이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일본과 이탈리아 사이의 여행은 슬슬 익숙해지긴 했지만 오랜 비행은 역시 관절을 굳어지게 만든다. 이럴 때만 나이에 걸맞은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핀 하루키는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오토와 루이에게서 도착할 즈음에 공항 주차장으로 가겠다는 메시지가 한 건, 릴리 더 위치에서 VVIP 고객에게만 월 한정으로 발송한다는 쿠폰 메시지가 한 건, 세오도아에게서 「알겠어」라는 메시지가 한 건.

조금 고민하다, 배터리의 잔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화면을 조작한다. 통화 연결을 알리는 화면이 떠오를 동안 핸드폰 액정을 응시하던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알았다. 아, 음, 뭐, 어쩔 수 없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건너편에서 전화를 받는 기척이 난다. 이번에는 딱히 상대의 신상정보를 캐낼 필요가 없었으므로 하루키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여보세요, 세오도아 씨?"

《응, 무슨 일이야. 하루키?》

"크게 다치진 않으신 것 같네요."

《걱정해준 거야? 일단은 멀쩡해.》

"일단은, 인가요."

마른 웃음소리.

《사네미츠도 다친 곳은 없어. 좀 머리가 아플지는 모르지만.》

"그 인간은 머리가 좀 쪼개지더라도 싸죠."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아토 하루키는 부정하지 않는다. 짐을 찾은 이들이 덜걱이는, 혹은 조용한 바퀴 소리를 내며 컨테이너 벨트 앞을 떠났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을 놓친 사람의 노란 캐리어 위에서 공항의 강렬한 조명을 받은 사과 스티커가 빛난다. 좀 작위적인 연출이었다.

《있잖아.》

"번복은 안 합니다. 전 당신의 인자를 전부 인계받을 거예요."

《…….》

"그때도 말했지만, 당신이 「과거」를 개찬하면 상당히 곤란하니까요."

《알아. 그게 우리의 거래지.》

"아버지가 방해하면 시간이라도 돌려버리세요."

《이미 했어.》

"수고 많으시네요."

컨베이너 벨트에서 덜걱거리며 짐이 빠져나온다. 하루키는 제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캐리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범한 회색의 표면에는 이런저런 흠집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얼핏 바싹 마른 날개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착각인가? 눈을 한 번 깜박이면 흠집은 흠집일 뿐이다. 하루키는 제 눈가를 긁적이다 캐리어의 손잡이를 한 손으로 붙잡고 끌어당겼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공항이야?》

"공항이죠."

《그래, 들어가서 쉬어.》

"네, 세오 씨도요."

통화가 끝난다. 아토 하루키는 약간 따뜻해진 핸드폰의 화면을 보다가 뒤늦게 새로 도착한 메시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발신인. 이소이 레이지. 메시지 내용. 아버지가 형이 떠났더니 그대로 앓아누웠네요. 첨부 이미지. 소파에 딱 봐도 안 좋은 안색으로 누워있는 이소이 사네미츠. 하루키는 그걸 가만히 응시한다. 핸드폰 액정 오른쪽 위에 표시되는 현재 시각이 소리 없이 3번 바뀔 동안.

「두통약 먹고 자라고 해.」

답변은 짧고 간결하다. 그것이 아토 하루키에 걸맞은 언행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캐리어를 끌고 필요한 수속을 밟은 뒤 공항 바깥으로 나오면 쏟아지는 석양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하루키는 한 손을 들어 그 빛을 가리고는 오토와 루이의 자동차를 찾아 천천히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그 등 뒤로 길게 그림자가 진다. 아직은 인간의 형태였다.


이게 다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랑 루이 오토와의 이름이 비슷한 탓입니다.

허리에 손 얹고 춋토 후카오상!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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