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나는 너의 작품 마르지 않는 갈라테이아

Vitis와 E루키 / C.O.E 본편 전체적인 스포일러

만약에.

오리진 알파가 인간이 만든 개념, 콕 집어 말해 인간의 윤리관이나 도덕 개념에 대해 흡수하고 나름의 정의를 세웠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아토 하루키의 파탄 난 인격도 조금은 긍정적으로 수습될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긍정적이라 함은 어설프게라도 일반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리란 의미다.) 하지만 오로지 인간의 필요로 합성되어 인간의 요구 때문에 이식된 오리진 알파는, 인간의 후천적 기능에 속하는 윤리관을 학습할 마땅한 이유를 얻지 못했다.

그건 알파가 이소이 하루키의 의지를 이어 만들어낸 「아토 하루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한 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뻔" 했다. "뻔" 했다는 수준에서 끝난 이유는 본래 이소이 하루키가 가지고 있던 생명을 향한 경의의 마음 덕분이리라.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추상적 관념을 인식하지 못한 오리진 알파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랬기에 더더욱 이소이 하루키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손상 없이 인계되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오토와 루이라는 자가 「아토 하루키」에게 다가오게 되지만….

이소이 하루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나 오토와 루이가 미친 영향력에 대한 건 접어두도록 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허물어져 버린 아토 하루키의 재건再建이다. 허물어졌다 하여 육체가 어떻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겉모습은 멀쩡하다. 문제는 그의 내면이었다. 마치 의지해 자라던 담벼락이 통째로 부서진 덩굴식물처럼, 산산이 무너져내린 아토 하루키의 자아는 자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리진 알파는 그것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떤 것은 울고, 어떤 것은 화내고, 어떤 것은 갈 곳 없는 살의에 가득 차 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온갖 의지들. 물론 알파는 그 어느 것도 버리지 않는다. 울고 싶어 하는 덩굴은 맘껏 울게 하고, 분노하는 덩굴은 계속 분노하게 하고, 무언가를 죽이고자 하는 덩굴에게는 그럴 힘이 있음을 일깨울 뿐.

그래.

이 모든 것이 너잖아, 하루키.

하루키의 의지가 빛을 받은 광수용체처럼 움칠거린다. 오리진 알파는 그 반응을 절대 재촉하지 않으며 흩어진 자아를 하나로 기워냈다. 그것이 인간의 시점에서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토 하루키」의 의지를 지키고, 계승하고, 피워내는 것이니까. 그것은 식물의 생장, 식물의 번식과도 닮아있다. 그들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절대 망설이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혐오하지 않기에 자신의 자손을 학대하지도 살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키워낸다. 정해진 순서대로.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온 것처럼.

이것을 인간들은 사랑이라 부를까?

날이 밝았다. 무척이나 맑은 아침이었다. 오리진 알파는 제 앞에 있는 아토 하루키를 바라보았다. 온갖 식물들로 이루어진 자리에 반쯤 누워, 한 점 얼룩 없이 눈을 감은 얼굴이 평온하다. 가슴에서 시작되어 아랫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공동空洞만 없었더라면 그저 잠든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것은 덩굴식물이 늘어진 동굴의 입구를 닮았다. 오리진 알파는 하루키의 거대한 허무 그 안쪽을 살짝 들여다본 뒤, 한 손을 들어 하루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얼핏 다정하고 조심스럽다.

입술을 이마에 댄 것은 무언가의 흉내였는지 유일한 친애의 표현이었는지.

오리진 알파는 이제 공동 안으로 제 몸을 밀어 넣는다. 덩굴들은 사박거리는 소릴 내며 저항 없이 제 동포를 받아들였다. 이소이 하루키를 본뜬 오리진 알파의 손끝이, 팔꿈치가, 등이, 어깨가, 왼쪽 발바닥이, 무릎이, 정수리가, 반대편 어깨가, 작은 발바닥이… 하루키의 덩굴 속으로 잠겨간다. 마지막 옷자락까지 삼켜졌을 무렵 공동의 끄트머리가 천천히 허무를 봉합했다. 마치 바닥없는 늪이 희생양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우듯이.

…….

………….

이윽고 아토 하루키가 눈을 뜬다.

옥좌는 합당한 주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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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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