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렸다.

아토 하루키+이소이 레이지+이소이 사네미츠

하루키가 납치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소이 레이지는 쌍안경을 눈에 대고 말없이 어둠 너머를 응시했다. 본래 대대적인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가 건설회사의 부도와 해당 사업을 주선하던 정치가의 급사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는 시 외곽의 넓은 공터. 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고 풍경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내세울 만한 특산물도 없는 탓에 천천히 쇠퇴해가는 마을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그 공터를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너머에 컨테이너 박스가 몇 덩이인가 놓여 있다. 고령에 가까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 정체는 과거 건설회사가 땅을 측량하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임시 사무실…이라는 모양이지만, 지금 문 앞을 지키는 몇 명의 인원은 오래된 사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찾아온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딱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쌍안경을 품에 집어넣는다. 다시 차가운 숨을 깊이 들이마셨을 무렵에는 여러 가지 걱정이 일렁이던 눈동자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걱정하는 마음 일변으로 쳐들어간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상대가 하룻밤만에 사람 하나를 납치할 정도로 행동이 빠른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법적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사건의 단서 수집. 본래 후폭풍이 염려되는 수준의 일이라면 적절한 선에서 사무소측이 거절하기도 한다지만, 이번 건은 여러모로 운이 좋지 않았다. 단순한 부동산 관련 다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나가더니, 최종적으로는 조사원 납치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그 조사원이란 아토 하루키이다.

납치의 목적은 불분명하다기보다는 너무나 분명한 쪽이었다. 입막음, 정보수집, 손쉬운 뒤처리와 모종의 경고. 이소이 레이지는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채로 계속해서 나아가, 건물 앞을 경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거기서 곧바로 제압에 나서지 않은 것은 그들이 떠드는 목소리에 섞여 나온 정보 때문이었다.

“그 허여멀건한 놈, 슬슬 맛이 가는 것 같던데.”

“혈관에다가 삼류 약물을 아낌없이 넣어버렸으니.”

낄낄대는 소리.

“뭣하러 얼른 묻어버리지 않나 싶었는데 누님도 참 악질이지.”

“얼굴 반반한 놈들 망가뜨리는 게 취향이시잖아.”

“앞으로 얼마나 갈지 내기할래? 난 내일이면 급사한다에 한 표.”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레이지가 곧바로 한 명의 목을 후려쳐 기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짧은 욕설과 함께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들려던 다른 남자는 발차기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코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졌다. 느껴진 감촉과 소리로 판명하면 코뼈는 확실하게 작살났다. 레이지는 기절한 두 명을 재빨리 사각지대로 끌어당겨 은폐한 뒤 상황을 살폈다.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다.

군용 장갑을 낀 손을 쥐었다 편다. 레이지는 품에 넣어두었던 섬광탄을 꺼내 쥐고는 다음 단계를 수행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정말로?”

“정말로.”

12월 중순. 침대에 기대어 누운 하루키가 영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인다. 아닌 게 아니라 레이지가 하는 이야기는 어딘가의 첩보 영화 내용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다만 그 이야기 속의 인질 역할이었던 하루키가 통 현실감이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거의 일주일 간 약물의 후유증으로 끙끙 앓다가 겨우 몸을 추스린 참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쳐들어가서 당황한 놈들에게 어퍼컷을 날리고, 메다꽂고, 날려버리고, 걷어차고. 그렇게 지하까지 내려간 거라고요.”

“고생했네.”

“헌데 막상 내려가니 형은 기절해있지, 정체불명의 약은 계속 들어가지, 말을 걸어도 대답을 못하고.”

“그 정도였어?”

“약 2주일의 기억이 깔끔하게 날아간 걸 보면 모르시겠어요?”

으음, 하고 하루키가 볼을 긁는다.

“미안해. 폐 끼쳤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네. 장기임무가 끝나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형이 납치되어서 행방이 묘연하고 경찰수색도 진전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일본까지 튀어나갔거든요.”

“저런.”

“무슨 남 일 마냥 반응하네, 이 콩나물.”

“실제로 실감이 안 나는걸. 마지막에 뒤에서 잡히는 바람에 아차, 큰일이다…라고 생각한 기억은 나지만.”

“어휴.”

하긴 삼 일 전에 겨우 정신 차린 사람을 다그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레이지는 의형에게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거듭해서 말해주는 대신 난방기의 리모컨을 들어 방 내부의 온도를 조절했다. 창가에 놓인 가습기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일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계속 내 집에서 지낸 거야?”

“네. 식료품이나 물은 저희 돈으로 샀으니 걱정 마시고.”

“내가 그걸 걱정하겠어? 혹시나 난방비 아낀다고 춥게 잔 건 아니지?”

“그건 괜찮아요. 형을 돌보느라 우리 둘 다 이 방에서 떠나질 않았는지라.”

“…….”

하루키가 침묵한다. 그 원인을 잘 알고 있는 레이지는 부러 그 부분을 건드리는 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저녁 8시가 가까운 시간. 아토 하루키가 먹은 죽 그릇을 씻겠다며 나간 이소이 사네미츠는 한 시간 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가습기가 기동하는 소리, 난방기구의 따스한 공기 냄새.

전자시계의 날짜는 12월 21일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네요.”

“그러게.”

“받고 싶은 선물 있어요?”

“글쎄.”

“전 술이 좋슴다.”

“매년 엄청 마시잖아.”

“케케케.”

“그거 말고 달리 받고 싶은 건 없어?”

“전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면 뭐든지 기뻐요.”

아버지도 그럴 거구요. 덧붙인 말은 지극히 의도적이었으며 뒤따른 침묵 또한 예상한 바였다. 아토 하루키가 이불자락을 만지작거린다. 언제나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의형이 이렇게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진심을 더듬어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레이지는 상대를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버지 말야.”

“네.”

“매번 너무 늦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 그건.”

말을 이으려는 사이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집의 주인이 여기 있고 집을 찾아온 손님 중 한 명도 여기에 있으니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그러나 침묵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안쪽에 있는 사람의 허락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될 텐데. 레이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하루키가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해요.”

날선 말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문을 여는 손길이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 레이지는 사네미츠가 안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안 들어온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멈춰선 것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시선도 하루키가 아니라 애꿎은 방 구석을 향하고 있는 것이, 꼭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가 들킨 강아지 같았다.

“음, 저기, 하루키.”

“네, 뭔가요.”

“의도했던 건 아닌데….”

“아닌데?”

“………미안하다!”

사네미츠가 그제사 쭈뼛쭈뼛 방 안으로 들어와, 손 안에 쥔 것을 보여준다. 푸르스름하고 매끈한 형태의 잎사귀 한 조각. 잎맥에서 이어지는 줄기가 곧은데, 끝부분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잘려있었다.

“…….”

“그게, 하루키 씨가 오랫동안 자고 있었으니까, 식물들을 좀 돌봐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해봤는데, 어쩌다보니까 이 잎이 톡 하고 뽑혀버려서….”

“스킨답서스.”

“응?”

“스킨답서스에요, 그거. 꽤 튼튼한 식물인데 뭘 한 거예요?”

“…잎을…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이것 참, 아버지가 완전히 구겨져버렸네. 레이지는 속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뒤에서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이전보다 독기가 서려있지 않음을 눈치 채고 슬쩍 미소 지었다. 이걸 아버지에게 눈짓으로라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소이 사네미츠는 대역죄인 마냥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럼 케이크 하나 사오세요.”

“어, 응?”

“벌칙. 크리스마스 케이크.”

“…….”

“사기 싫으면 관두던가.”

“아닙니다. 일본의 온 베이커리를 다 뒤져서라도 사오겠습니다.”

“여기 사거리에 바로 제과점 있거든? 24일에 얌전히 거기 가서 사와요. 약도 그려줄 테니까.”

“네.”

사네미츠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레이지는 더 참지 못하고 소리 죽여 웃어버렸다.

“형의 선물은 그건가요?”

“……너무 얌전할지도 모르지만, 응.”

그래도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좋은 걸로 챙겨줬을 텐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지금은 이게 최선인걸 아는지, 사네미츠는 점원이 포장해준 선물을 안아들고 군말 없이 귀갓길에 올랐다. 24일 저녁 6시 반을 가리키는 시간.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제각각 웃음소리를 내며 쾌활한 발소리를 냈다.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뭐랄까, 두근두근하네요.”

“그래?”

“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라는 기분.”

“일기예보에선 밤늦게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더라.”

“형은 어릴 때면 모를까, 지금은 눈이 내리면 공연히 추울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침묵이 점점이 아스팔트 바닥에 찍힌다. 케이크를 드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타 짐들을 모두 자신이 짊어진 레이지는 그 짧은 말 한 마디에 어딘가 우울한 빛이 서려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원인에 대해서도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

“여러 가지 생각.”

“미리 말해두는데, 선물을 저한테만 맡겨두고 도망가면 형은 다음부터 아버지 얼굴 안 보려고 할 거예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안 했어. 그냥…, 뭐랄까.”

“뭐랄까?”

“…감개무량해서.”

저 멀리 하루키의 집이 보인다. 레이지는 자신보다 앞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무언가 좋은 냄새가 났다.

“어서 와. 조금 늦었네.”

“다녀왔습니다. 뭔가 요리하셨어요?”

“모처럼 크리스마스잖아.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몇 개 해봤어.”

“몸은 괜찮은 거냐? 무리해서 또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요리 좀 한다고 해서 앓을 정도로 약골이 아니거든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짐을 정리하고 케이크를 미리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 사이 슬쩍 부엌을 들여다본 레이지는 꽤 그럴듯한 식탁이 차려진 걸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본의 아니게 요리와 파괴가 동의이음어로 취급되는 레이지에게 이 정도의 식탁은 꽤나 이룩하기 힘든 수준이다.

“집을 꾸미는건 레이지가 힘냈으니까, 형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지.”

“하루키, 나도 도왔는데?”

“당신과 레이지, 어느 쪽이 더 힘쓰는 일을 잘하죠?”

“……레이지.”

“거봐요.”

케이크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음식들이 준비된 식탁에 앉는다. 마늘빵과 샐러드, 봉골레 파스타에 어딘가에서 주문한 듯한 화덕피자. 단촐하긴 하지만 넉넉하게 준비된 양은 누가 묻지 않아도 레이지를 배려하여 준비된 것이 분명했다.

그 배려가 무색하지 않게, 레이지는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술이 모자란 것이 아쉽긴 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마냥 취해서 추태를 부릴 수도 없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아토 하루키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고 가끔 사네미츠에게 말을 건넸다. 대화는 나쁘지 않게 이어졌다. 주로 LDL에서 있었던 기상천외한 사건 위주의 흐름이었다.

“그런 결말이었죠.”

“완전 바보 같아.”

“아버지의 활약을 그렇게 일축해도 되는 거니, 하루키?”

“더할 나위 없이 바보 같아.”

“와우, 쐐기 박기.”

그렇게 저녁 11시 반이 지났을 무렵에는 창밖으로 조금씩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레이지의 말에 하루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저씨가 되어서 맞이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명백히 무언가를 아쉬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목소리였다.

“하루키.”

“네.”

“내년 크리스마스는 이탈리아에서 보내지 않을래?”

하루키가 느리게 눈을 깜박인다.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기 보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레이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의형과 아버지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LDL분들도 함께?”

“………싫어?”

“싫진 않지만요.”

하루키가 물잔을 들어, 천천히 입술을 축인다.

“1년 앞서 일정을 예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겠죠.”

“대가라… 원하는 게 있니?”

“선물.”

…….

“……응?”

“선물, 준비했죠? 가져와요. 보고 판단할래.”

“잠깐, 잠깐만. 이런 건 예상 못했는데?!”

“설마 사경을 헤매다 돌아온 큰 아들의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나요?”

“그럴 리 없잖아! 아니, 그전에 하루키 씨. 혹시 선물이 맘에 안 들면 없던 얘기로 할 생각이야?”

“말이 많네요.”

“형, 제 선물까지 합산은 안 될까요.”

“안 돼.”

“죄송해요 아버지.”

최후의 보루까지 차단당해 버린 사네미츠가 앓는 소리를 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키는 물 잔을 시원하게 비워버리고는 빙긋이 웃어보였다. 알았으면 얼른 트리 밑으로 가보자구요.

하루키가 공연히 나무를 죽여 만드는 트리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에, 거실 한쪽의 트리는 불을 키면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아래쪽에 놓인 선물이 전구의 빛을 받아 빛난다. 거기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선물을 받아든 하루키의 손끝이 망설임 없이 포장을 풀었다.

“……이건.”

하루키의 손이 상자 속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까만 가죽에 까만 시계판, 전체적인 마감이 금빛으로 되어있는 손목시계였다. 척 보기에도 일반 기성품은 아니라고 파악했는지, 아토 하루키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백화점에서 샀나요?”

“맞아. 이런 건 품질보증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사는 게 좋으니까.”

“흐음.”

“물론 이탈리아만한 품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맘에 드네요.” “그럭저럭 쓸 정도는…. 응?”

“맘에 든다고요.”

하루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목시계를 상자 속에 넣어 뚜껑을 닫는다. 그 손길을 보아하면 빈말이나 비꼬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사네미츠는 정보 입력에 오류가 발생했는지, 아직 상황을 파악치 못한 표정이었다.

“어, 그럼? 하루키?”

“내년에는 이탈리아로 갈게요. LDL분들의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바쁘겠네요.”

“아버지, 잘됐네요. 형이 시계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레이지의 지원사격에도 사네미츠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하루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레이지가 준비한 선물을 마저 풀어보고는 (이쪽은 장갑과 머플러 세트를 준비했다) 더할 나위 없이 밝은 얼굴로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레이지도 선물 풀어보지 그래? 아버지는 내키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있던가.”

천천히 선물을 풀어본다. 작은 상자 속에는 투명하고 깨끗한 병이, 그 병 안에는 선명한 붉은 빛을 머금은 제라늄 한 다발이 담겨있었다. 특수한 용액에 식물을 담아 보존 처리하는 하바리움 장식병. 들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인 레이지가 짧은 탄성을 냈다.

“예쁘네요. 혹시 형이 직접 만들었나요?”

“응. 처음 만들어본 거라서 그리 훌륭하진 않지만.”

“아버지는… 아, 이건 반혼초인가요.”

“…….”

“전에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

“…맘에 안 들어?”

“………………아니….”

“너무…… 예뻐서….”

사네미츠는 거기까지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그 외에는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미리 말하는데 울지 마, 받은 선물 들고 사진 찍을 거니까.”

“사진이요?”

“응. 이렇게 하면 추억이 남잖아.”

“그건… 확실히, 괜찮네요.”

“그치?”

그러니까 남은 선물도 풀어보라며 하루키가 재촉한다. 사네미츠가 레이지에게 준비한 선물은 서점의 외국 서적 코너에서 골라낸 신예 문학 작가의 소설, 레이지가 사네미츠에게 보내는 선물은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지갑이었다.

“그러면, 선물을 이렇게 테이블 위에 두고.”

“우리는 이 뒤에 앉아있으면 되나요?”

“응. 거기서 카메라를 이렇게 조정하면… 됐다.”

찰칵, 하고 플래쉬가 두세 번 반짝인다. 곧장 사진을 확인해본 하루키는 이 정도면 잘 나왔다며 제 핸드폰에 찍힌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총 여섯 개의 선물이 놓인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세 명의 가족이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데이터 보내줄 테니까 돌아가면 앨범에 끼워놔.”

“아예 하나 사야겠는걸요.”

“그렇지?”

하루키가 웃는다. 그동안 사네미츠는 무언가 귀한 것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사진을 응시할 뿐이었다.

“아참, 이걸 까먹을 뻔했네. 메리 크리스마스, 레이지. 아버지도.”

“네, 형이랑 아버지도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난 레이지의 덤 같은 거야? 이것 참.”

간신히 시선을 뗀 사네미츠가 한숨을 내쉰다. 그 뒤에 매섭게 하루키의 주의가 따라붙었다. 이제부터 크리스마스 케이크 먹을 거니까 쓸데없이 한숨 쉬지 말아요. 사네미츠는 레이지와 눈을 마주치더니, 실로 곤란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폭죽이 팡, 소리를 내며 터진다.

조용히 눈이 내려쌓이는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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