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노래해주지 않겠어 나의 노스텔지어

아토 하루키+??? ??

별은 서로 부딪치면 멸망하거든.

그렇게 전하는 이의 손길은 다정했습니다.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있는 나에 비해 무척이나 얇고 가벼운 실루엣의 그는 길게 기른 금빛 촉수를 총총이 땋고 검은 테두리의 뭔가를 쓰고 있었죠. 나는 그 사람의 불투명한 피부와 깜박이는 눈동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의문을 표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멸망한 별의 존재인가요?

응,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는 중력이 없으니까 바람은 불 수 없지요. 대신 어떤 중력에도 묶이지 않는 그의 기다란 촉수들이 한데 묶여 흔들리는 모습은 어쩐지 몽환적이었습니다. 나처럼 피부가 투명하지고 않고, 머리 아래에 익숙한 촉수들이 뻗어나와있지도 않은 기이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에요.

천사라고 해야겠지.

천사.

나는 그만 부들부들 빛을 내며 웃었습니다. 천사라니, 우리가 동화책에서 보는 것처럼 장엄하지도 않고 세 개의 동공을 지닌 한 쌍의 눈이 달려있지도 않은데도요. 하지만 그가 정말로 하늘의 사자라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그 형태가 다른 것도 당연하겠죠. 내가 그렇게 전하면 자칭 천사라는 그는 한 차례 몸을 들썩였습니다. 무슨 제스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 나쁘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았어요.

천사라면서 왜 별의 멸망을 막지 못했나요?

내가 막을 방법이 없었거든.

그는 그때의 풍경을 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무수히 많은 말뚝 같은 것이 박혀있는 지형 위를 푸르른 잎사귀를 가진 덩굴식물이 뒤덮은 풍경을 볼 수 있었죠. 태양은 영원히 빛나고 물결은 깊이 밀려들어서 다리와 날개를 가진 생물들은 식물 줄기 사이를 땅처럼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다만 그와 같은 형체는 보이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들은 다투고 시기하고 서로 사랑한 끝에 모두 죽었거든.) 그런 말이 전해지면서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습니다. 서서히 가까워져오는 거대한 별의 윤곽이 보였어요.

이런걸 보고 어떻게 참았어요?

못 참았던 것 같아.

울었어요?

아마도?

그럼에도 별은 자꾸 자꾸 가까와져서 마침내 그가 있던 별을 표면부터 파먹어들어갑니다. 어떤 마찰이 일어나는 것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는 한 점이 점점 면적을 넓혀가는 모습이 나는 더럭 겁을 먹었죠. 내가 동요한 걸 알아차렸는지 그는 그 이상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내 시야에 평화로운 우주의 모습이 돌아왔을 때, 그는 내게서 얼굴의 방향을 돌린 상태였어요. 우리의 별이 보이는 방향으로.

미안해.

아니에요. …많이 아팠나요?

어땠더라. 그냥 눈을 꼭 감고, 옛날 일을 생각했어.

그리고요?

우주를 여행했지.

돌아오는 말들은 담담했지만 그 안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걸 피상적으로만 더듬으려 노력했습니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거대한 우주 한복판에서, 발을 디디고 있던 별이 모조리 박살난 뒤에도 홀로 형태와 의식을 유지한다는 것의 의미가, 거대한 새의 그림자처럼 제 의식을 스쳐지나갔지요.

그치만 대단하네요, 우주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이라니.

아냐. 인간은 우주에서 살아갈 수 없어. 산소부족으로 죽어버리지.

그치만 당신은 지금 제 눈 앞에 멀쩡히 살아있잖아요.

난 살아있는게 아냐.

그럼 뭔가요?

그가 약간 침묵하고는 대답했습니다.

묘사되고 있을 뿐이지.

묘사된다구요.

너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네. 난 분명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를 살피는 어떤 ‘시선’이 있어. 그 ‘시선’은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에 이르는 이 순간에도 나를 향하고 있지. 나를 살피고 관찰하기 위해서. 내 존재를 묘사하고 읽어내기 위해서. 다만 그가 원한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어떤 희곡을 자아낸 적이 있었지. 그것만은 기억하고 있어. 너희에게도 연극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있을까? 거기에는 시나리오라는 뼈대가 존재하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조차 그에게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에 불과해. 네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겪었던 그 수많은 시련과 고난도 사실은 이 날 이 순간만을 위해 날조된 것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우리는 분명 여기에 있지만 우리의 의지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다른 말로 하자면, 너는 이곳에 있는 자신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 빚어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 나는 과거 그에 대한 확답을 내린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시간은 너무 강하고 거칠어. 내가 소중하게 품고있던 것들을 조각조각 갈아내어 티끌로 만들어버리지. 지금 내가 품고있는 것들은 본래 내가 아름답게 생각했던 것들의 윤곽이자 테두리에 불과해. 나는 앞으로 이 자국을 영원히 더듬어댈 수 밖에 없겠지.

하르키.

왜 나를 아직까지 관측하는 거지? 아니, 왜 나를 이 지점에서 관측하고자 한 거지? 그가 마음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멸망하는 별의 조각 사이를 부유하며 내 삶의 모든 물증들이 뭉개지는 것을 봐야만 했어. 다만 내가 나의 일부이기를 바란 것들만이 아주 조금 남았을 뿐이지 어째서 나에게 이런 것을 원한걸까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아 그럼에도 원하는 것처럼 자신을 고무시켜야 한다는 건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그의 의식이 멈췄습니다. 나는 슬금슬금 촉수를 뻗어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는 불투명한 덩어리를 감쌌어요. 두터운 우주복이 우리 사이를 감싸고 있어서 냉기나 온기는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았죠. 다만 나는 이 우주복 너머에 존재하는 그의 존재를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우주를 유영하면서도 공포와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는 하르키를 생각했어요. 별들 사이를 춤추고 어디든 괘념치 않고 갈 수 있는 모습을.

날 저 별로 데려다줘요

그리고 한껏 춤추게 해주세요

저 머나먼 별의 봄 햇살 아래에서…

하르키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순간부터 그가 나와 비슷한 곡조를 따라 노래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가사는 내가 듣기에는 그저 생경한 발음이었을 뿐입니다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는 아주 소중한 노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걸 전하는 대신에 노래의 끝부분을 계속해서 첫부분으로 이어나갔습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보면 이 허무한 우주 한 구석에라도 무언가 쌓일 거라는 듯이.

*

나는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르키는 아쉬운 기색이긴 했지만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에는 과연 웃음을 터뜨렸어요. 아니, 아마 그건 안되지 않을까. 너랑 나는 너무 모습이 다르잖아. 분명 모두들 혼비백산할걸? 그건 나도 예상한 바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우주 한복판에 그를 두고 가는 것도 어쩐지 슬펐어요. 내가 꾸물거리자 하르키가 아까처럼 또 몸을 움찔거렸습니다.

그럼 또 만나기로 약속해.

또 만날 수 있나요?

네가 원한다면.

그렇다면, 좋아요.

응.

또 만나요.

또 만나, 르이.

그는 내 이름을 말하고, 내가 나의 별로 돌아갈 때까지 쭉 배웅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대한 증표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한 것만으로 충분했어요. 그것이 내가 만난 별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의 끝입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버리긴 했습니다만 이번 일이 끝난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우주복을 입고 우리의 521번째 위성으로 날아갈 작정입니다.

거기에는 광활한 우주가 있을 것이고, 광막한 별의 표면이 있을 것이고,

별의 그늘 어딘가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친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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