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하루]그래서 우리는 이혼했다
오토와 루이X아토 하루키
비가 내린다. 여름비는 축축하고 습도가 높고 무엇보다 빗줄기가 강하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면 (혹은 챙겼더라도) 비에 쫄딱 젖어버리기 딱 좋다는 뜻이다. 오토와 루이는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이전 같았으면 망설이지도 않고 단축키 1번을 눌러 연락을 넣었을 것이다. 지금 어디 있지. 우산은 있나? 내가 데리러 가지…. 루이는 삼 초 남짓한 시간으로 그 사람을 제 품 안에 들이는 방법을 안다. 유용한 기술이었다. 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업무는 퇴근 시간 빠듯한 순간까지 이어졌다. 몇몇 직원들은 일찌감치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비가 정말 억수같이 오네요. 누군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마냥 세찬 바람이 빗물을 싣고 창틀을 두들긴다. 태풍이 오는 것도 아닌데 유난스런 날씨였다.
전등이 조금 깜박인다. 루이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검토하던 서류철을 덮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해두고, 내일 출근하자마자 직원들과 상담을 해서….
“루이.”
사고가 멈춘다. 오토와 루이는 자신의 정면 약간 왼쪽, 사무소 모퉁이에서 나타난 금빛 머리카락을 본다. 가느다란 눈매. 하얀 피부. 얼핏 봐도 장신인 남자가 물에 젖은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퇴근시간 지났잖아.”
“…….”
아토 하루키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루이는 볼펜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루이를 보고서도 하루키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점차 좁아진다.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타이밍을 잰 것처럼 하루키가 입을 열었다.
“우산 챙겼어?”
“…아니, 없다.”
“그럴까봐 전해주러 왔어.”
무의식적으로 하루키의 왼손 약지를 살핀다.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 반지는 이혼 서류에 각자의 도장을 찍은 날 하루키가 직접 루이에게 반납했고… 지금은 케이스에 담긴 채 루이의 서랍 안쪽에 조용히 잠들어 있으니까. 오토와 루이는 자신의 목구멍이 까끌거리는 감각을 느낀다. 공기는 축축한데도.
“아픈 데는, 없나.”
“건강해.”
“식사는?”
“시간 잘 지켜서 먹고 있어.”
언젠가, 사랑한다는 말과 입맞춤을 숨 쉬듯이 나눌 때가 있었다. 상대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이며 상대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던 때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끝을 맞이했다. 다름 아닌 서로에 의해서.
“하루키.”
“응.”
“아직, 후회하고 있나.”
내가 네 앞에서 죽을 지경에 처했던 일을.
그걸 본 네가 거의 이성을 잃고 무언가를 넘겨주려 한 일을.
그러다 어느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서 물러났던 일을.
“…후회하지 않아.”
하루키의 얼굴은 지독히도 쓸쓸하다.
“나는 그때 나의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걸. 모든 힘을 다해서 루이를 구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지. 그래서는 안됐던 거야.”
“하루키, 나는.”
“루이는 나에게만은 너무 물러. 내가 건네는 거라면 독잔이라도 마시겠다는 거지?”
“……그래.”
“고마워. 하지만 내가 루이를 죽여선 안 되는 거야.”
너에게 마음대로 영생을 줄 수 없듯이.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곤 피곤한 듯이 미소 짓는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 비가 너무 험하게 내려서 우산을 전해주려 온 것 뿐 인데.
“하루키.”
“같이 돌아가진 않을 거야.”
차분한 목소리는 그 이상의 접근을 불허한다. 오토와 루이는 어색하게 손끝을 내민 채 멈춰 섰다. 거기에 녹색 장우산이 쥐어졌다.
“비는 밤 여덟 시 이후로는 소강상태가 될 거래. 그때까지 조금 쉬다가 가도 좋겠네.”
“여기 있어줘.”
새어나온 말은 애원에 가깝다. 하루키는 한때 자신의 연인이자 친구이자 반려였던 이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다가
“싫어.”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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