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어떤 일은 반복되나 돌이킬 수는 없고」

우츠기 노리유키, ***** 하루키, 세오도아 리들.

#세포신곡_전력_60분 『핫초코』

※세포신곡 DLC까지의 스포일러 포함.


어떤 아이는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서성인다. 어떤 어른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서성일 때의 고독을 안다. 하루키 군, 잠이 오지 않나요? …네. 짧은 문답이 오고가고, 우츠기 노리유키는 아이의 손을 잡고 탕비실을 찾는다. 시각은 야심하다해도 연구소에는 밤을 새워 연구를 하는 몇몇 연구원들이 있다. 그들이 우츠기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해보인 뒤 복도 뒤편으로 흘러갔다. 등 뒤의 이소이 하루키는 그런 어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신경쓰는 기색이었다.

신경쓸 것 없어요. 그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그래도, 저…….

네.

……조금, 방해한걸까, 싶어서.

어떤 아이는 자신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 아닌지 생각한다. 어떤 어른은 자신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의 절망을 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탕비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이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렇지 않아요, 하루키 군.

…….

그런 일은 없어요.

………네.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불에 그슬린 종이처럼 잔뜩 오그라 붙어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와 피를 나누는 아비의 얼굴을 잠시 생각했다가, 공손히 모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 으레 그러는 것처럼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이는 제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채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탕비실로 들어간다. 손이 가장 가깝게 닿는 곳의 찬장을 뒤져보니 커피통 사이로 외국계 회사의 핫초코용 초콜릿이 나왔다. 이 정도 브랜드라면 너무 싸구려도 아니고 뒷맛이 지나치게 느끼하지도 않다. 열어서 안을 확인해보면, 잠이 오지 않는 아이에게 세 잔을 내리 타주고도 넉넉할 만큼의 양이 있었다. 하루키 군, 잠시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면 네, 하고 작은 대답이 돌아왔다.

신선한 우유를 꺼낸다. 작은 플라스틱 컵에 우유를 따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운다. 그 사이 따뜻한 물을 준비해 핫초코를 천천히 녹인다. 상대가 어린 아이임을 감안하면 점도는 살짝 끈적이는 정도가 적당할까. 미간을 좁히며 집중하던 우츠기 노리유키는 적당히 따뜻해졌을 우유를 꺼내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애매한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이소이 하루키를 발견했다. 이런, 무슨 일인가요? 하루키 군. 물음을 던져도 아이는 우물쭈물할 뿐이다.

금방 완성된답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그, 뭔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핫초코를 만드는 일은 누가 도와줄 것도 없다. 하지만 아이가 어떤 심정으로 우물쭈물 서있는지 알 것 같았던 우츠기는, 자신이 핫초코를 젓는 횟수를 세어달라며 따뜻한 우유와 반쯤 녹은 핫초코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젓는 횟수를요? 의아한 표정의 아이에게 진중한 말이 이어진다. 핫초코를 너무 많이 저으면 안되니까요. 세가 서른 세 번을 저으면 이제 그만 저으라고 말해주세요.

아이는 그렇게 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아이의 조그만 제제를 듣고 부러 천천히 핫초코를 젓고있던 손길을 멈춘다. 잘했어요, 하루키 군. 이제 한 번 마셔보겠어요? 시간이 흘러 적당히 미지근해진 핫초코는 마시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되어있을 것이다. 조심조심 잔을 홀짝인 아이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창백하던 얼굴에 희미하게 혈색이 돌았다. 맛있나요? 네. 다행이네요. 조곤조곤한 대화가 흘러간다. 아이는 이후로도 머그컵을 홀짝이며 핫초코를 마셨다.

우츠기 님이 해주신 핫초코,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돌아가면 자기 전에 이빨을 잘 닦을게요.

착한 아이네요.

우츠기 님.

네.

늘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아이의 감사는 반듯하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 인사를 받으면서도 무언가가 묵직하게 얹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개조님께서도 제가 탄 코코아를 자주 드신답니다. 아, 코코아와 핫초코는 가족 관계같은 거예요. 비슷한 사이죠…. 아이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우츠기가 하는 말을 듣는다.

개조님께서요?

네, 이건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는 사실이지만요.

그건 몰랐어요.

아이는 조금 숨을 들이마시고, 중얼거린다.

"하츠토리 님도

핫초코, 좋아해?"

아토 하루키는 고개를 든다. 눈 앞에는 머그컵 하나와 보랏빛 머리카락의 사내가 서있었다. 하루키는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것과 지금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는 단내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그 이상의 추적을 그만두었다. 별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든 탓이었다.

아뇨, 저는 홍차파라서.

그래?

네.

그럼 이건 내가 마셔야 하나?

아무래도 그렇네요.

하루키는 매정하네.

세오도아 리들은 어깨를 으쓱인다. 그대로 자신이 들고있던 컵을 홀짝이던 얼굴이 으엑, 하고 찌푸려졌다. 망했네, 너무 달아. 아이를 상대로 탄다고 생각하신 거 아닌가요?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미끄러져 나오는 것 같다고 여기며 마지막 말을 잇는다. 상대는 어른이라구요.

세오도아 리들이 그를 바라본다. 아토 하루키도 세오도아 리들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네.

그는 그렇게 말하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토 하루키는 손끝을 만지작거리다가,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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