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페르세포네 시스템
아토 하루키+카노 아오구
-본편 SS+ 루트 이후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사과, 양파, 오렌지 등으로 속을 채워 넣고 잘 구워낸 칠면조 통구이. 토마토소스를 넣고 뭉근하게 볶아낸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살짝 잘린 단면으로 잘 익은 살점과 더불어 육즙이 배어 나오는 것이 보이는 로스트비프 스테이크. 밑간한 새우에 페페론치노와 마늘을 넣어 올리브유로 익힌 감바스 알 아히요. 가리비를 넣어 잘 끓여낸 클램차우더. 으깬 감자에 달걀, 각종 채소를 섞어 만든 감자 샐러드. 달걀과 각종 채소, 햄과 치즈 등을 얹어 만들어낸 프리타타. 새빨간 토마토와 하얀 달걀, 푸른 잎 채소의 색이 대비되는 샥슈카. 잘 익은 파스타에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넣고 얼른 볶아낸 알리오 에 올리오.
"아소 짱, 아~."
커팅한 돼지고기를 채소와 함께 볶아 소스를 부어 만든 폭찹 스테이크. 오징어와 파프리카, 토마토를 넣고 쌀을 끓여낸 빠에야. 밑간한 가자미를 녹인 버터로 천천히 구워 만들어낸 가자미 뫼니에르. 반으로 자른 호밀빵 위에 아보카도와 햄, 치즈를 올려 만든 오픈 샌드위치. 채를 썬 양배추 위에 듬뿍 올려놓은 돼지고기 생강구이. 잘게 넣은 게살과 달걀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게살 수프. 다진 고기에 채소를 넣고 한데 뭉친 뒤 동그랗게 구워낸 햄버그 스테이크. 익힌 닭고기에 와인을 넣고 끓여낸 코코뱅. 선명한 노란빛으로 빛나는 단호박 수프. 비장의 소스를 몇 번이고 덧발라 윤기가 나도록 구워낸 장어구이.
"자자, 사양 말고 이것도 먹어~."
"…저기, 카노 씨."
"응?"
돼지고기 소를 양배추로 돌돌 말아 토마토소스로 쪄낸 양배추롤. 삶은 달걀을 고기로 감싸고 튀겨낸 스카치 에그. 종이 호일 위에 각종 채소와 마늘 소스를 바른 연어, 조개와 새우 등을 넣고 오븐에서 구워낸 연어 카르토치오. 돼지고기 다리 한쪽을 통째로 요리해 내놓은 슈바인스학세. 얇은 고기, 채소, 버섯, 두부 등을 보골보골 끓여낸 샤브샤브. 버터로 구워낸 뒤 간장과 맛술 등을 넣은 소스를 넣고 졸여 만든 송이버섯 간장 버터구이. 정사각형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를 끼워 넣고 튀겨낸 멘보샤. 넓게 펼쳐낸 고기에 빵가루를 입히고 튀겨낸 커틀릿.
"저, 어째서 도넛만 먹어야 하나요?"
"뭐어? 설마 카노씨가 엄선한 도넛 세트가 성에 차지 않는 거야?"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할까, 뭐랄까."
오향초를 넣고 만든 간장에 얇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를 넣고 삶아낸 오향장육. T자 뼈가 고스란히 보이도록 구워낸 티본 스테이크. 겉을 바삭하게 튀겨냈지만 속은 아직 촉촉해서 붉은 단면이 그대로 보이는 규카츠.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넣고 만든 소에 육수를 넣고 만들어, 한 입 깨물면 뜨거운 육수가 흘러나오는 샤오룽바오. 그릴에 통째로 구워낸 로스트 치킨. 크림소스와 버섯을 썰어 넣은 버섯 크림 파스타. 껍질을 포함해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내 구워낸 웨지 감자. 한입 크기로 잘라내 익힌 닭고기를 생크림과 슈프림 소스로 조리한 치킨 아라킹. 치즈와 소시지, 양파 등을 듬뿍 넣어 두툼하게 만든 오믈렛.
"이런 메뉴들을 눈앞에 두고 도넛만 먹어야 한다는 건 좀 불합리하지 않나요?"
"아소 짱, 언제부터 그렇게 식탐이 강한 캐릭터였어?"
"당연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만."
"그렇지만 도넛은 그 자체로 완전식품이라고? 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라고? 중앙의 결핍이 있음으로써 성립되는 질서! 아소 짱 이런 거 잘 알지 않아?"
"모릅."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하나 더~!"
칼로리를 줄이기 위해서 오이를 얇게 썰어 만든 오이 샌드위치. 두툼한 금괴 모양으로 구워져서 '금융가'를 뜻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피낭시에. 얇게 구워 만든 빵에 원하는 재료를 취향껏 올려 먹는 타코. 잘 구워진 갈색 눈사람 같은 모양의 브리오슈 아 테트. 닭가슴살과 치즈, 올리브 등을 넣고 따끈하게 만들어낸 그라탱. 조그만 미니 양배추를 곁들여 졸여낸 주먹만 한 미트볼. 바게트에 베트남식 속 재료를 채워 만든 바인미. 소고기 안심을 기둥 모양으로 잘라내 풍미 좋게 구워낸 안심 스테이크. 부드러운 냄새가 식욕을 당기는 양송이 수프. 다진 돼지고기와 새우, 표고버섯 등으로 소를 만들어 꽃 모양으로 쪄낸 사오마이.
"애초에 도넛은 당신이 환장하는 거잖아요. 왜 나한테 먹이고 있죠? 수상한데."
"아소 짱, 이것저것 의심하면서 살다보니 호의조차 소화할 수 없게 됐구나."
"당신의 호의는 대가 없이 뭔가를 순순히 축복해주는 종류가 아니잖아요."
"잘 아네. 그럼 그 작은 분홍색 뇌세포로 카노 씨가 왜 이럴까 추리해봐, 아소 짱~"
"이제 성불하나요?"
"그따위 희망사항 나불거릴래?"
돼지고기 삼겹살을 통으로 구워 소스로 졸인 뒤 썰어서 청경채, 대파채 등과 함께 올린 동파육. 각종 야채에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야채 튀김. 닭고기를 양념장에 재워둔 뒤 튀김옷을 입히고 튀겨낸 가라아게. 버섯, 양파 등의 재료에 크림소스를 넣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 고기와 소시지 등으로 속을 꽉 채우고 맛을 낸 카손첼리. 큼직한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 양파를 비롯한 야채와 함께 구워낸 양꼬치구이. 익혀서 으깬 감자에 다진 고기와 치즈, 버섯을 넣고 만들어내는 체펠리나이.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기와 토마토, 야채를 넣고 진득하게 끓어낸 미트 스튜.
"아 진짜, 적당히 해!"
"적당히 라니? 카노씨가 지금 얼마나 신경 써서 초콜릿과 딸기잼과 플레인과 바닐라 크림과 땅콩버터의 황금 비율을 조정해주고 있는데. 아소 짱은 엄~청나게 호강하고 있는 거라고!"
"하아아…. 부탁이니까 그, 동그랗고 기름에 튀긴 단 음식 말고 다른 걸 먹게 해주지 않으실래요."
"으음, 아소 짱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럼…."
"블루베리 베이글!"
"므극?!"
"어때? 맛있지?"
잘 구워진 빵과 양상추, 햄 위에 동그란 수란이 올라가 있는 에그 베네딕트. 새콤달콤한 밥에 속 재료를 넣고 유부를 씌운 유부초밥. 각종 재료를 넣어 감자 반죽에 넣은 것을 튀겨 만든 다양한 종류의 크로켓. 쇠고기를 여러 가지 반죽으로 든든하게 감아둔 뒤 한 번에 구워낸 비프 웰링턴. 양파와 함께 달게 조리한 쇠고기를 밥 위에 올리고 붉은 생강으로 장식한 규동. 치즈와 햄, 딸기잼을 두툼하게 넣고 튀겨낸 몽테크리스토 샌드위치. 얇은 도우 위에 페퍼로니, 치즈를 올리고 화덕에서 구워낸 페퍼로니 피자.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데 이대로 도넛만 먹다간 저 화병이나 당뇨 둘 중 하나로 죽습니다, 카노 씨."
"응~ 안 죽어. 절대 안 죽어, 아소 짱."
"하다못해 과일이라도 먹게 해주지 않으실래요. 혀가 마비되어서 이제 단맛도 안 느껴져요."
"애초에 아소 짱,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는 알아?"
"? 여기는 그냥… 제 자리잖아요."
"쯧."
"지금 혀 찼어요?"
"아니야~ 착한 아소짱에게는 특별히 아껴둔 프리미엄 그레이트 초콜릿 도넛을 선사합니다~"
"잠시만, 뭐야 이거. 지금 동맥경화를 유도해서 절 심장마비 시킬 셈입니까?"
"그럴 리가 있어? 난 말이야, 아소 짱을."
뒷말이 들리지 않는다. 휘황찬란 이라고 수식해도 모자람이 없을 테이블에 깔린 하얀 식탁보가 휘날린다. 그 틈새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손에 무언가 쥐여주는 손가락을 감지했다. 손안에 잡힌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무언가를 건네준 존재의 정체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저 망할 튀긴 밀가루 덩어리의 맛을 잠시라도 혀끝에서 몰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애초에 카노 씨가 잘못한 것이다. 커피도 우유도 없이 도넛만 꿀떡꿀떡 넘기라니 제가 당신이냐고요. 하루키는 속으로 그런 말들을 주워섬기며 손안에 담긴 것을 만지작거렸다.
감촉은 살짝 말랑말랑하고,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다. 얼핏 생각하면 옥수수알보다 작은 것 같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아토 하루키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체 모를 손이 그걸 자신에게 건네주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먹을 것이 있고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남은 문제는 먹을 타이밍을 언제로 잡는가 하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입이 달린 것도 아니니 당연히 손을 얼굴로 가져가야 하는데, 어설프게 카노 씨의 면전에서 뭔가를 먹으려다간 뺏길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음식 사이에 밀어 넣어 먹는 것도 수상한 손짓을 하게 되니 기각.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해졌다면 행동은 담대하고 재빠르게 취해야 하는 법. 아토 하루키는 일부러 긴 한숨을 내쉬고는 테이블 앞으로 쓰러지듯이 몸을 기댔다. 아까까지의 대화도 있어 고개를 카노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마가 테이블에 부딪히는 바람에 애꿎은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제기랄, 한계에요. 도넛 너무 많이 먹어서 토할 것 같아."
"꾀병 부리긴~ 아소 짱은 할 수 있어. 아자아자!"
"그럼 뭔가 소화될만한 걸 주세요."
"그러면"
시선이 순간 물러난다. 그렇게 확신한 하루키는 왼손을 빠르게 움직여 그 안에 쥐고 있던 것을 제 입안으로 던져넣었다. 정확하지 못한 투척에 몇 알갱이는 입안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몇 개는 성공했다. 그 작은 알들을 혀로 살짝 눌러서, 즙을 내고, 과육을 목 너머로 넘긴 순간에.
어깨를 붙들려 단숨에 몸이 일으켜진다. 그러니까 당신이 먼저 한 짓이라고요. 그런 말을 해줄 요량으로 카노 아오구의 얼굴을 바라본 아토 하루키는.
"어."
당신
그런
얼굴
도
할
*
"매번 감사합니다! 이건 보너스 커피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릴리 더 위치」의 6개들이 도넛 박스를 한 손에 들고 단내가 감도는 가게를 빠져나온다. 아아, 어쩔 거야 이거. 점원이 내 얼굴을 완전히 기억하고 보너스로 커피를 주게 되어버렸잖아. 아까는 얼굴이 눈에 익은 사람이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동안 왜 안 왔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 그렇게 시시한 생각에 잠시 시달렸던 것도 잠시, 아토 하루키는 「릴리 더 위치」에서 돌아오는 내내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홀짝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문의 도넛 고문으로부터 이 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아토 하루키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줄곧 병원에 입원한 채 체력을 보전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확실히 범인을 적당히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시점에 등 뒤에서 무언가에 찔린 기억이 있다. 설마하니 공범이 폭주할 줄이야. 다행히 범인들은 하루키가 입원해있는 동안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고 하루키가 입은 상처도 붓거나 곪는 일 없이 순조롭게 아물었다. 병원 입원비도 산재 처리되어 하루키의 경제적인 타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칼에 찔렸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잘 아물었기에 망정이지 한때는 정말로 삶이 왔다 갔다 하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었다는 모양이다. 모양이다, 라고 표현하는 건 하루키는 공격을 받은 이후부터 얼마간 혼수상태에 빠져있어 그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친구 오토와 루이의 퀭한 눈이나 자신의 손을 잡던 손길을 보면 심각했었던 사실만은 진실이겠지. 아마도 그 때문에 카노 아오구 또한 자신의 꿈속에서 나타났던 것이리라고 아토 하루키는 짐작한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으로 가게 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그런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떠올랐다 하더라도 무시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배고팠고, 식욕이 동했고, 아무거나 배에 채워넣고 싶었다. 마치 모든 것을 먹은 끝에 제 이빨만 남았다는 에리직톤처럼. 하지만 그걸 막은 것이 카노 아오구의 도넛 세례였다. 솔직히 당할 때는 짜증 났지만, 합리적인 이성을 되찾은 지금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 도넛 세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그 테이블의 음식을 양껏 먹었을 것이다. 먹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사실 막판에 뭔가 먹은 기분도 들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잘 살아있으니까.
그래서 아토 하루키는 카노 아오구의 제단에 도넛을 바쳤다. 제단이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그가 남긴 쪽지를 액자에 넣어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카노 아오구가 그에 대해 불만을 말한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꿈에 나타나서 이 도넛이 먹고 싶다 저 도넛이 먹고 싶다 같은 소리나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꿈에서 만나게 되겠지. 그럼 그때는 예의 바르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두도록 하자. 하루키는 그렇게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전과 다를 바 없는 동작으로 카노 아오구에게 도넛을 공양했다.
아니나 다를까 꿈에 카노 아오구가 나타났다.
"야호, 아소 짱~ 오랜만이네."
"네, 오랜만이네요… …?"
"한동안 못 만나서 쓸쓸했어? 그런 얼굴이나 하고."
"당신은 매번 자기 맘대로 나왔다 안 나왔다 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내내, 아토 하루키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이상하지는 딱 짚어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무언가가 심각하게 변해버렸는데도 머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가슴께를 맴돌았다. 뭐지.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뭔가 변한 부분이 있는데 뭐지. 맴돌던 시선이 문득 아래로 떨어진다.
아.
"카노 씨."
"왜?"
"발목 어디 갔어요?"
없다. 카노 아오구의 발목 아래가 없다. 마치 지우개로 슥슥 지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에도 이랬나? 이랬었나? 기억이 왠지 애매하다. 하지만 있었을 것이다.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야 발목이 없다면… 아무리 그래도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없지? 끼걱대는 사고를 바쁘게 재촉한다. 무언가 명확한 결론을 내라고 닦달한다. 카노 아오구가 초콜릿으로 듬뿍 코팅된 도넛을 한 입 베어 물고는 흥, 하고 웃었다.
"아소 짱, 석류 먹었잖아. 딱 세 알이었지만."
"……."
"일 처리는 참 칼 같더라고. 거기에 더해서 「먹지 못하게 한 값」이랄까."
"먹지, 못하게?"
"월권행위라나 뭐라나."
"……노……."
농담이죠,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걸렸다가 아래로 추락한다. 카노 아오구는 태평한 얼굴로 도넛을 씹어 삼켰다. 동그란 도넛이 한입 크기로 잘려 나가며 형체를 잃다가 이윽고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소 짱의 목숨에는 내 목숨도 플러스 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정당한 생존 권리를 행사했다. 그걸로 밀고 나갔다는 말씀."
"……돌아, 오나요?"
"안 돌아와."
우물우물 우적우적.
도넛에 코팅된 설탕 부스러기가 투둑투둑 떨어진다.
"재밌는 얼굴이네. 아소 짱."
"무서워?"
"그냥 이것만 알아둬."
"다음은 없어. 너나, 나나."
꿈에서 깨어난다. 아토 하루키는 평화로운 새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방 귀퉁이를 바라보다가 눈을 두 세 번 깜박였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부옇던 시야에 초점이 맞는다. 꿈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던 대화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밖에서 차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키는 쿨한 사회인이자 탐정다운 마음가짐으로 차분하게, 차분하게 제 마음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석류는 두 번 다시 못 먹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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