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하루]있잖아 미안해 그건 내 실수였어
오토와 루이X아토 하루키
루이.
이름을 부르면 그는 뒤를 돌아본다. 장례식 터의 공기는 아직 봄이 한창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무겁고 축축하다. 아마도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서 흘러내리는 탓이리라. 하루키는 그걸 뿌리치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움찔거리고, 입을 연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
그게 아니라.
하루키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너무 참혹해서가 아니라,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도저히… 이 이상 뻔뻔한 짓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멀리서는 어느 늙은 여인이 조문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두 번 볼 것도 없이 타구리의 아내다. 그 곁에는 장성한 타구리의 자식들이 검은 옷을 입고 서있다. 얼핏 어린 아이들도 보인다. 나이로 추측해보건데 타구리의 손주들일 것이다.
타구리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집안에서 죽었다. 따라서 오토와 타구리라는 이름은 묘비에 남지 못한다. 그러한 사실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하루키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루이.
왜 그러지.
………유감이야.
그렇군.
가족이 죽은 것은 루이인데 겉으로만 보면 하루키가 그의 가족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례식 중에 누군가가 ‘당신은 동생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까!’ 하고 덤벼드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장례식에 참여하지도 못한 탓이다.
그러므로 아토 하루키는 자신을 저주한다.
영생이 두려워서, 쓸쓸해서, 루이에게 인자를 양도해버린 자신을.
오토와 루이의 뺨에 서늘한 봄바람이 분다. 그 얼굴은 30대 언저리를 바라보던 무렵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마치 특수용액에 담가 보관한 드라이플라워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젊은 얼굴을 한 아흔 나이의 아토 하루키도 마치 화석처럼 고요한 얼굴로 존재했다.
어쩌면.
어쩌면 루이는 저 자리에서 타구리의 아내를 위로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잘 인솔하여, 역시 오토와 집안의 큰 어른이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왜냐하면 오토와 루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오리진 감마 격 존재니까.
하루키.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 루이가 말을 건다. 하루키는 슬쩍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한다. 무슨 일이야? 질문을 던지면 루이가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조금 생각해봤는데.
…봤는데?
하루키는 지옥에서 산 채로 불타는 기분으로 다음 말을 재촉한다. 루이가 운전하는 차량이 신호등 앞에서 정지했다. 눈앞의 횡단보도를 어린 아이들이 힘차게 달려 나갔다.
죽지 않고 늙지 않는다는 건 역시 편하군.
….
…………….
…….
뭐?
죽지 않고 늙지 않는다는 건 역시 편하군.
편하다고? 너 지금 나 때문에 신분증을 위조해가면서 심부름 사무소 직원으로 일하고, 무슨 일 있으면 어디든 곧장 떠나야 하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탓에 가족의 대소사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처지인데?
너도 있잖나.
…….
…………….
하루키는.
그래서 더욱 후회한다. 오토와 루이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을 힐책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주고 이해한다. 그걸 알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잔인한 짓을 하고 말았다.
(루이. 살아줘.)
(나랑 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줘….)
그가, 어떤 답변을 할지는 명확했는데도.
(그래.)
(너와 같이 살아가마, 하루키.)
(그게 너의 의지라면.)
신호가 바뀐다. 루이의 차가 출발한다. 하루키는 조수석에서 몸을 옹송그린 채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들었다. 정지해있던 풍경이 천천히 흘러가며 강변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타났다.
하늘이 푸르다. 봄 벚꽃이 화사하게 흔들린다. 어리석고 멍청하고 손쓸 도리가 없는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마무리된다.
루이.
응.
벚꽃이 예쁘네.
같이 보러갈까.
……응.
당신이 있다.
당신이 여기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또 다시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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