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하루]난 언젠가 네가 없는 꿈을 꾸니까
이소이 레이지X아토 하루키
“너는 네가 물건 같아?”
아토 하루키의 말은 고요하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으면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하루키의 얼굴은 심연이었다. 분명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는데도 제대로 마주볼 수 없는 감각. 이소이 레이지는 가까스로 눈꺼풀을 깜박이다가, 제 손가락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래도 저 덕분에.
“형은 안 다쳤잖아요.”
“나는 지금 네 얘기를 하고 있어.”
아토 하루키는 상냥하고 배려심 많고 인내하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예민하고 입이 험하고 성질 급한 쪽에 가까웠다. 이소이 레이지는 아토 하루키가 자신에게 그런 날것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으나, 지금 이 순간의 목소리는 날것도 무엇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면에 무언가를 더 두껍게 쌓아 가린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단한 벽이 아토 하루키의 다정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네 걱정을 안 한다고?”
이소이 레이지, 고개 똑바로 들고 나를 봐. 레이지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 말을 순순히 따른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형, 그러다 다치겠어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하루키의 미간이 좁아진다. 스르륵 뻗어 나온 손가락이 미간으로 이어졌다. 그 손끝을 포착하는 대신 레이지는 하루키의 입술을 보았다. 이빨에 세게 맞물려서 창백하게 질려가는 핏줄들.
“멍청아.”
대가로 코를 꼬집혔다.
“아파요.”
“아프라고 한 거야.”
“잘못했어요.”
“정말로, 마음을 담아 하는 말이야?”
“진심이에요.”
“…….”
꼿꼿이 서있던 하루키의 몸이 천천히 무너진다. 바로 아래 침대에 앉아있는 레이지의 중력에 이끌리듯이. 레이지는 그것이 기꺼워서 상대의 몸을 끌어안았다. 심장 고동 하나에 또 하나가 겹쳐져서 몸속이 낮게 울린다.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네가 없으면 난 누구랑 포옹을 하라는 거야.”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마.”
“네.”
“그 따위 말도 하지 마.”
아토 하루키의 팔은 떨리고 있다. 이소이 레이지는 그제사 제가 한 말과 행동이 이 사람을 얼마나 동요시켰는지를 자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루키의 반응에 이상할 정도로 안심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럼에도 자신이 행여 날카로운 말에 상처받을까봐 힘주어 참는 이 사람이, 그저 사랑스럽게 여겨져서.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헤실헤실 웃는 거 열 받아.”
결국 뺨을 잔뜩 꼬집혔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