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커플링Coupling

[카노아토]당신과 나의 주파수를 맞추고

카노 아오구X아토 하루키.

※카노 플래그 스포일러 있습니다.

※가명조 역할 반전 + 돌루키 소재입니다.

※트친 아버님과 함께 푼 썰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화분을 많이 사가시네요."

식물은 산다고 해서 포장 없이 덜렁 들고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화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식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점원이 투명한 비닐백에 화분을 담아주는 동안, 아오기 카나오에게는 대답을 하기에 충분한 공백이 생겼다. 보통 때 같았으면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기분이 꽤 좋은 상태였다.

"네, 같이 사는 동거인이 식물을 좋아해서요."

"어머나, 정말요? 다음엔 두 분이 직접 보러 오세요!"

"음~ 조금 힘들지도. 몸이 병약하거든요."

시계는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킨다. 화분을 받아들고 나온 아오기 카나오는 퍽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점가를 지나, 자신의 집이 있는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어느 집에서는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어들이고, 어느 집에서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요리를 하는 시각. 카나오의 집 한 켠에는 은은한 불빛이 켜져있었다. 다만 여느 집처럼 요리를 하는 냄새나 잔잔한 TV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새로 생긴 동거인이 그런 걸 즐기지 않는 탓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문을 연다. 도어락을 누르고 현관문을 연 카나오는 안쪽에서 걸쇠를 걸어 문을 잠근 다음 품에서 열쇠를 꺼내 집 내부로 이어지는 중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편집증을 충분히 의심할 법한 행동이었으나, 지금 카나오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문을 통과한 뒤 아까와 마찬가지로 잠금장치를 걸어버린 뒤 집안으로 향하는 걸음이 한결 경쾌했다.

"아~소~ 짱. 나 왔어!"

발랄하게 외치며 걸어간 끝에는 작은 방이 있다. 방 한쪽 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 그걸 등지듯이 놓여있는 침대, 침대의 주변을 장식하듯이 놓여있는 색색의 화분들. 그리고 그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던 누군가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깨진 거울 조각처럼 검은 틈새가 벌어진 얼굴,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동자에 아오기 카나오의 모습이 비친다. 얇은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응, 착하게 잘 있었어? 오늘은 새 화분을 사왔어~. 뭐라더라, 제라늄? 이라고 하던데."

상대의 옅은 반응에도 활짝 웃어보이며 화분을 안겨주는 아오기 카나오의 손길에, 아소 코지의 눈꺼풀이 살짝 움찔거린다. 카나오는 빙긋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코지의 한쪽 손을 잡아올려, 마치 동물을 쓰다듬듯 제라늄의 꽃잎 위로 코지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하얀 손가락이 조금 오래도록 침묵하다 천천히 굽어져, 붉은 꽃잎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마음에 들어? 잘됐네! 이건 여기에 둘게!"

달칵. 화분을 적당한 빈 자리에 놓아둔 아오기 카나오가 풀썩 아소 코지 곁에 눕는다. 그 충격에 침대가 살짝 흔들렸지만 아소 코지는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배게를 끌어안고 반응이 희미한 코지 곁에서 이런저런 불평을 말하던 아오기 카나오는 제 이마에 조금 서늘한 감촉이 닿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이성이 박탈되고 본능이 희석되고 감정이 박제된 아소 코지의 손이 거기 있었다.

"지금 위로해주는거야?"

"……."

"착하기도 해라, 아소 짱."

침대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켜 콧등에 입을 맞춘다. 상대방은 얼굴을 붉히거나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이쪽을 바라볼 뿐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카나오는 그대로 아소 코지의 몸을 끌어안았다.

*

아소 코지가 아오기 카나오의 집을 찾아오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애초에 목을 그어 자살한 상태에서, 지고천 연구소가 무너져내리면서 건물 파편에 깔려 뭉개졌어야 할 이가 사지 멀쩡한 상태인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오기 카나오는 그 모든 연유를 찾아내고 조사하는 대신 아소 코지의 손을 잡고 제 집으로 들였다. 저항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상호동의인거지? 일단 상대를 막무가내로 소파에 앉히고 말하는 카나오 앞에서 아소 코지가 눈을 깜박였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는 아오기 카나오였기에 이어진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살풍경하던 방에 너른 침대를 들이고 화분을 들이고 아소 코지를 누이는 데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따금 모든게 귀찮아질 때면 아오기 카나오는 아소 코지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시 움직이곤 했다.

요즘 연애라도 하고 있나요. 같은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

아마도? 아오기 카나오는 가볍게 답하곤 실실 웃었다.

그럼 이제 결혼하시는 거예요? 장난 섞인 질문들.

카나오는 명확히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게 없어도 우린 이미 함께하고 있는걸.

그렇지?

그런 거지?

안 그래?

"아소 짱."

아오기 카나오는 방에 가득 찬 진득한 흙냄새와 푸른 신록의 냄새를 맡는다. 아소 코지의 몸 여기저기서 피어난 꽃망울과 잎새들을 거칠게 뜯어내면서. 조용히 감긴 눈꺼풀을 떨리는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어딜 가려는 거야."

여린 꽃과 잎새가 뜯겨나간 자리에선 검은 물이 울컥 솟아오른다. 그 새카만 색이 아소 코지의 피부를 타고 흘러 하얀 침대 시트를 마구잡이로 더럽혔다. 어떤 것은 눈가를 타고 흘러 새카만 눈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오기 카나오는 그걸 닦아주지 않았다.

"넌 내 곁에 있어야지."

…….

"이제 와서 무엇이 되려는 거야?"

…….

"넌 아소 코지잖아."

…….

"어디서 도망치려 들어 이 망할…!!"

어디선가 또 검은 물이 흐른다. 생생한 생명의 향내가 깃든 손끝이 멈춘다. 아오기 카나오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소 코지의 몸은 분명 자신의 몸 아래에 짓눌려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알맹이는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처럼.

광막한 공백이 버겁다.

아오기 카나오는 그 순간에 처음으로 외롭다는 말의 질감을 알았다.

"이걸 바랐어?"

침묵.

"이걸 바라고 나한테 온 거야?"

침묵.

"나는."

침묵.

"……."

침묵.

살갗을 녹슨 송곳으로 뚫는 듯한 두통이 머리를 찌른다.

아오기 카나오는 몸을 웅크렸다.

이대로 모든 걸 다 함께 불태우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부표처럼 떠올랐을 무렵이었다.

문득, 몸을 끌어안는 감촉이 느껴진다. 꺾인 갈대처럼 아무런 지지대 없이 웅크리고만 있던 카나오는 자신이 드디어 미친걸까 생각했다. 귓가에 그토록 되풀이해서 떠올렸던 목소리가 닿은 순간에도.

"카노, 씨."

…….

"여기… 있어, 요."

…….

"있을, 테니까."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소 코지의 눈은 담담하고, 고요하고, 그런데도 명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지 마요…."

"………하."

울긴 누가 울었다는 거야. 아소 짱 바보야? 아오기 카나오는 웃음 섞인 투로 말하려다가.

"그럼 가지 마."

실패한다.

"어디로도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어쩌면 가장 처참한 형태로.

"사랑해."

혹은 가장 합당한 형태로.

"사랑하고 있어…."

어떤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결말이 된다. 아오기 카나오는 이제 자신의 진정한 방점이 카노 아오구의 자리에 찍힐 것임을 직감한다. 아토 하루키가 아소 코지라는 자리로 돌아와 앉은 이상, 자신도 마땅히 그 곁에 앉아야 하기에.

그대로 입을 맞춘다.

분명한 단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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