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너는 분명 잘하고 있어, 저승으로부터.
야나기 니나 생일 축하 기념글. 요우×니나 기반이지만 옅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다 보면 이래저래 생일축하 이벤트가 벌어지는 일이 잦다. 이따금 아이들이 반 친구들과 잘 섞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반으로 단체 포장 음식을 보내주고 싶어 하는 부모도 있었다. 올해의 9월 8일은 야나기가 맡은 반장의 생일이었고, 반장의 부모님은 남은 학기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반 아이들의 명수만큼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햄버거 세트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학교 종례 시간에 맞춰 보낼 테니 종례 시간도 같이 알려달라는 뜻과 함께. 야나기 니나는 조금 숨을 들이쉬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저희 반은 아이들이 생일에 음식을 돌리는 것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지만 우리 애는 반장이잖아요? 모두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보내는 건데 그것도 안 됩니까?"
"네, 죄송합니다. 정해진 규칙이라서요."
전화기 너머에서 언짢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반장의 학부모는 언성을 높여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일 정도로 몰상식하진 않아서 통화는 무난하게 끝났다.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는 니나 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2학기 시작하자마자 학부모랑 한 판 붙을 뻔했네요, 야나기 선생님.
"한 판 붙는다뇨, 그런거 아니예요."
"예의 차리시긴. 걱정한 거에요. 요즘은 극성 부모가 많잖아요."
계절은 가을인데도 약간 더워서 교무실의 창문은 열려있었다. 야나기 니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식을 염려하시는 거죠."
"아이고, 그렇게 좋게 말하는 건 야나기 선생님 정도일걸요. 적어도 저는 극성 부모라면 아주 넌덜머리가 나요."
옆자리에 앉은 이가 커피잔을 입에 가져간다. 그 이상 수다를 이을 여유는 없어서 대화는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그것이 7일 오후였다.
8일 오후. 평소대로 교실로 돌아와 종례를 진행하던 야나기 니나는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신가요? 다가가서 문을 열자 특유의 패스트푸드 기름 냄새와 함께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배달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키쿠치 라는 분께서 자식분 생일이라고 보내신 햄버거입니다. 니나가 약간 입을 벌리고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반 아이들 사이에서 환성이 일었다. 배달 기사가 재차 물었다. 종례 중이신 거 같으면 조금 있다가 들어갈까요?
야나기 니나는 가까스로, 그를 돌려보낼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하다못해 반 아이들에게 차례대로 음식을 나눠주고 자리에 앉아서 먹으라고 이른다. 아이들은 네~ 하고 대답을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포장을 벗기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야나기 니나의 자리에도 햄버거와 캔 콜라 하나가 놓였다. 니나는 그걸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아, 출석부 위에 음식을 올리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교실을 나오는 아이가 있었다.
"마나미."
이름을 불린 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가방을 메고, 조용히 복도를 걸어가려던 모양새였다. 이유는 딱히 캐어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니나는 천천히 웃으며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지금 돌아가는 거니?"
"넹. 저는 햄버거를 먹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
"키쿠치에게는 제대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어요. 잘했죠?"
"……그래."
"쌤, 괜찮아요! 저 딱히 햄버거 좋아하지도 않는 걸용."
이히히, 하고 웃는 아이의 얼굴은 티 없이 맑다. 니나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반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아이가 마나미의 이름을 부른다.
"마나미! 햄버거 나한테 주지!"
"선착순이지롱."
"우정 아무 소용없다 진짜!"
아이들이 낄낄거리더니 요즘 유행하는 손짓을 서로 주고받는다. 니나는 이 이상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하고 니나는 고민한다. 키쿠치는 밝고 싹싹하고 리더쉽이 있는 아이다. 다만 그 리더쉽이 자신과 친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미처 가닿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마나미와는 사이가 원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가 소아 당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던 걸까?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같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던 니나는 조금 현기증을 느꼈다.
일단 키쿠치의 부모님과 통화를 해야 한다. 이번 같은 행동이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알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전화를 걸기에는 마음 어딘가에서 여력이 나지 않아 니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인근 카페에 모여있을 이들을 떠올려도 마음이 쉽게 맑아지진 않았다.
요우라면 어땠을까.
무슨 말로 조언을 해주었을까.
이미 없는 사람의 흔적을 쫓는 것은 꽤 어리석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쟈부치 요우는 야나기 니나의 선배이자 조언자였다. 더불어 그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도 하다.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 생각, 이상이 머릿속에서 탄산수의 거품처럼 보그르르 떠올랐다가 솨아아 소리를 내며 터져나간다. 어떤 결론에 도달한 니나는 일에 집중할 때 으레 그렇게 하듯이 양 뺨을 손으로 소리 나게 때리고는 결연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키쿠치 부모님의 번호를 찾아내어 통화연결음을 듣는 동안,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
"조금 늦어버렸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슬슬 2학기 시작이죠? 선생님도 힘드시겠어요."
"아하하, 이젠 연례행사죠!"
학부모와 전화상담을 나누느라 약속시간보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의 일행들은 따뜻하게 니나를 맞이해주었다. 그 온기에 안도한 탓인지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렌이 니나의 옆자리로 살짝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언니, 언니.
"왜 그래, 카렌?"
"혹시 뭔가 고민하는 게 있었어요?"
"…조금?"
"응, 왠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언니는 분명 잘 해낼 거에요."
그 말은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말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카렌이 허튼 말이나 가식적인 발언을 할 성격이 아님을 알고있는 야나기 니나에게는 이만큼 든든한 조언이 없었다. 니나는 조그마한 아이의 손을 꼭 잡고는 힘차게 미소지었다.
"고마워, 카렌. 힘낼게!"
그 타이밍에 카페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케이크가 테이블로 옮겨진다. 숫자 양초에 붙은 불을 힘껏 불어 끄면서, 니나는 아주 잠깐, 쟈부치 요우의 마지막 미소를 떠올렸다.
눈을 뜨면 박수 소리가 가득하다.
야나기 니나의 삶을 축하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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