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트위터 조각글 모음 09

!!세포신곡 본편델씨은자막간까지의 스포일러!!

#01

빨간색은 먹으면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캡슐.

파란색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보통 캡슐.

그걸 양 손바닥에 하나씩 든 카노 아오구가 말한다.

"아소짱, 어느 쪽이 좋아?"

"파란색이요."

카노 아오구의 왼손에서 아토 하루키의 오른손으로 파란 캡슐이 이동한다. 그걸 입에 넣고 씹어보면 소다맛이 났다. 그리 단단하지 못한 젤리가 이빨에 두 번 정도 짓씹혀 형체를 잃고, 어떤 덩어리가 된 채로 약간의 단 맛을 남긴 채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제 카노 아오구에게는 빨간 캡슐만이 남았다.

"남은 약은 어떻게 되나요?"

"내가 먹을거야."

"신이 되어서 뭘 하시려구요?"

"뻔한 걸 묻네."

카노는 어깨를 으쓱인다.

"아소짱을 유일한 내 신관으로 삼을거야."

무의식적으로 이를 움직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소짱은 내 말을 받들고, 내 말을 곱씹으며, 내 말을 따라 살아가는 거지."

"그런 거라면."

그런 거라면.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시계가 없는 공간은 적막하고.

"그게 당신이 남긴 것이잖아요."

카노 아오구의 눈은 파란색이다.

"그렇네."

"그렇죠?"

"그럼 아소짱이 먹어☆"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겝"

다짜고짜 빨간 캡슐이 입 안으로 들어오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사이 혀에 닿은 것이 빠르게 녹아내린다.

신의 캡슐에서 쇠맛이 났다.

#02 트친이_주는_첫문장으로_글쓰기

01.

그 얼굴이 지독히도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어! 우츠기 노리유키가 소리내어 중얼거린다. 그가 30분 가까이 새까만 방에서 중얼거린 말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누구도 듣지 않고,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는데도 흘러나오는 말들은 차라리 쥐어짜내는 것에 가깝다. 성마른 손가락이 머리카락 깊이 파고들어 두피를 짓누른다. 제가 내뱉는 말의 험악함에 관자놀이의 혈관이 경련했다. 먹지 않아도, 잠자지 않아도 생존하는 지고생명체라 한들 심장고동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탓이다.

역겨워, 역겹다고. 위선자, 방관자, 책임없는 아비! 심장 고동 소리를 짓누르듯이 우츠기는 거듭거듭 반복해 중얼거린다. 방은 어둡고 남자의 머릿속은 겁에 질렸고 세상은 무표정하게 그를 관망한다. 그리하여 혓바닥을 통해 쏟아낸 말들만이 유일한 방향성이었다.

우츠기 노리유키의 말이 끝났을 무렵에는 새벽이었는지, 아침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아직도 한밤중이었는지.

방은 여전히 서늘하다.

우츠기는 이걸로 마지막이라는 듯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한심해."

못 견디겠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02.

우리는 모두 활자 위에서 유의미하다. 이는 역사의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유사 이래 세상에는 수천 수만의 마음과 생각과 말이 교차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활자의 형태로 기록되어 재편된 것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세상을 이루는 4원소를 생각한 이가 있었을지 모른다. 아르키메데스 이전에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자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가정들은 무의미하다. 알아야 할 것은 유의미한 것이 활자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기록된 것이 유의미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메모여도 우리는 그 활자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나는 「보유인자론」이라는 사상을 이렇게 활자로 남기는 것이다.

나의 이론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03.

시선이 집요했다. 하루키는 공연히 기지개를 피고, 하품을 하고, 볼펜으로 작성해야 할 서류의 대략적인 개요를 적어보기도 하다가 그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토와 루이는 딱히 제 시선을 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거지? 아토 하루키는 조금 울컥,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사무실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고 천천히 참을 인忍을 그렸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홍차를 마시자 미지근한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결국 두 사람이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퇴근 시간이 지난 뒤의 주차장이었다.

"하루키."

"…무슨 일이신가요, 소장님."

"미안하다."

하루 온종일 사람을 노려봐놓고서 나오는 말치고는 너무 산뜻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수동적 공격을 할 정도로 속이 배배 꼬인 성정이 아님을 알고 있는 하루키는 그대로 머리의 회전이 멈추고 말았다. 그 사이 담담히 루이의 말이 이어졌다.

"널 속이려던 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덕분에 의뢰인 대신 괴한에게 습격당해 병원에 갔다온 오토와 루이는 삼 일 간 눈가에 푸른 멍을 달고 있어야 했다. 이제야 안대를 풀고 제대로 된 두 눈으로 자길 응시하는 시선이 올곧았다. 하루키는 그걸 보며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가, 다시 벌리기를 반복하다가.

"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조금 볼멘소리로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0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토 하루키는 조금은 멍한 머리로 조간 신문에 펼쳐진 칼럼의 제목을 읽었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 활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정보들이 있다. 때문에 아토 하루키는 꾸준히 지역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오늘의 날짜는 목요일. 문화의 요일로 정해진 목요일에는 신문 한쪽 면을 할애하여 지역민들이 투고한 칼럼이 실린다. 그나저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니. 꽤나 무거운 주제네. 그렇게 생각하며 이력을 보면 어느어느 문화센터장이자 정신건강협회 회장이라는 활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막상 읽어보면 그리 무거운 내용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만약 무언가가 당신을 미소짓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라 하기에 충분하다는 내용이었다. 설령 그게 신문 한쪽에 작게 실린 4컷만화나 이웃집 담벼락을 지나갈 때마다 가끔 들리는 고양이 우는 소리라 해도.

그렇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그 연구소에서,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맞았던 그 순간은.

당신이 여지껏 살아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일까.

짧은 상념은 금방 흘러간다. 아토 하루키는 무의식적으로 머그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가,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05.

아무리 빨리 잠들어도 평온한 꿈은 찾아오지 않았기에, 사네미츠는 뜬 눈으로 밤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자연스레 눈 밑에는 새카만 그림자가 생기고 사소한 몸짓에도 기력이 달렸다. 그런데도 하루종일 침대 위에서 시트를 둘둘 말고 누워 식음을 전폐하지 않은 것은 그를 따라온 작은 아이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최대한 집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고, 이소이 사네미츠라는 남자를 어떻게든 배려하려 했다.

아무리 사네미츠라 해도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나잇대의 아이는 맘껏 울고 맘껏 웃고 맘껏 뛰어다녀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네 마음대로 지내도 좋다고 아무리 말한들 소용이 없을 것은 자명했다. 아이가 모든 행동을 조심하고 눈치를 보는 이유는 결국 이소이 사네미츠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침잠하고 고독해지려할수록, 아이도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사네미츠는 최대한 아이의 의식주를 돌봐주고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잘 되지는 않았다.

LDL의 다른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쩌면 파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사네미츠는 옛 사진을 응시하며 생각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그때의 일을 다소 여유롭게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그때 반쯤 무너져내려있던 한심한 어른과 달리 아이의 기둥이 되어줄 든든한 사람이 셋이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여전히, 나이에 비하면 과하게 어른스럽지.

사네미츠는 쓴 웃음을 짓고는 앨범을 덮었다.

#03 멘션_온_음악을_모티브로_연성

#베토벤 교향곡 9번

베토벤이 『환희의 송가』를 연주할 때 귀가 멀어있었던 것은 상식까지는 아니지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천재의 비극」이라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지 않았던 정열」쯤으로 편집하여 내보내기 좋은 소재. 귀가 멀어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모르는 베토벤의 모습을 보고 합창단의 가수가 손을 잡아당겨 박수치는 관중을 보게했다는 이야기도 얼마나 많이 쓰이던가. 하라다 미노루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올림픽 방송을 보았다. 레이지를 무릎에 앉힌 채로 꽉 쥐고 있는 주먹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아아, 차라리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

지휘자가 손을 움직인다. 흥분한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지금!! 북경, 시드니, 베를린, 남아프리카, 미국을 거쳐 다시 나가노에서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이 부활과 영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아, 제기랄. 알고있어. 들린다고. 온 집마다 틀어놓은 TV에서 그 노래가 들린단 말야. 그러니까 그렇게.

"아빠, 굉장하다! 그지!"

그렇게, 환호하지 말아줘.

"응, 멋지구나. 레이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다. 개회식이 끝난 뒤, 하라다 미노루는 화장실에서 위액이 나올 때까지 속을 게워냈다. 귓가에서 모두가 미소지은 얼굴로 부르던 환희의 노래가, 너는 결국 실패한 것이라며 웃고 떠들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립고도 안타까운 몇몇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게 눈물에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환희의 노래 앞에서는 울부짖을 말도 마땅치 않았다.

#창귀

달이 밝다. 아토 하루키는 창 너머에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잔업 때문에 남았는데 달구경이 말이 되냐.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 보고서를 마저 작성하기 위해 크롬 브라우저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킨 하루키는 포탈 사이트의 메인에 보이는 기사를 보고 눈을 좁혔다. 「히가시야마 동물원 탈출 호랑이 아직껏 오리무중… 주민들 불안에 떨어」

"아직 안 잡힌 건가… 큰일이네. 사상자는 없어야 할텐데."

하지만 설마하니 여기까지 오진 않겠지.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서의 오류를 수정했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완벽하게 만든 보고서를 출력하고 결제용 파일에 넣어 책상 위에 둔다. 이대로 내일 아침에 출근할 루이에게 제출하기만 하면 끝이다. 하루키는 힘껏 기지개를 편 다음 이번에야말로 퇴근하기 위해 겉옷을 집어들었다. 난방을 해주던 에어 컨디셔너를 끄고, 컴퓨터의 전원도 끄고, 사무실의 전기 스위치도 전부 끄고

똑똑.

하루키는 사무실 문을 바라본다. 방금 전기불을 끈 사무실은 어둡다. 침묵하는 사이 문 너머에서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하루키 씨."

들려오는 목소리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하루키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레이지?"

"네, 아름답고 자애로운 레이지입니다."

"어떻게… 너는."

"어떻게, 라. 그렇네요."

"성불하지 못했거든요.

"………."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여기까지 왔슴다."

"…내게 바라는 게 있어? 내가 널 위해 뭘 해주면 되는거야?"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 어떻게든.

문 너머에서 조금, 침묵이 이어진다.

"그럼, 이 문을 열어주실래요."

"문을?"

"네, 이대로는 불편하니까요."

아아, 그렇지. 하루키는 납득하며 문을 연다.

문 너머에는

…….

………….

문이 닫힌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04

하츠토리 하지메가 말한다. 나는 7살 생일부터 은빛 식기를 하나씩 받았어. 세오도아 리들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처음은 티스푼, 두번째는 티포크, 세번째는….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말허리가 잘린다. 애초에 넌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데…. 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05

어느 교외. 하츠토리는 산책하고 온다던 보호자의 모습을 본다. 낡은 쇠기둥. 쓰러진 몸을 통과해서 피가 흐른다. 다만 고통스런 얼굴은 아니다.

"아프지 않아?"

그럼에도 묻는다.

"하츠토리야말로 어때?"

"내가 왜?"

"너 지금 울 것 같은 얼굴이야."

그런 일도, 그런 순간도 있었던 것이다.

"……아프지 않아?"

"별로."

"정말로, 아프지 읺아?"

"왜 그래. 하츠토리. 제법 맘이 상한 거 같은데."

"지끈지끈해."

"두통인가. 뭐, 이런걸 보면 오기 마련이지."

"…난 어떻게 해야 해?"

……….

"약을 먹고 돌아가서 쉬도록 해."

하츠토리 하지메는 그 이전에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희미하고 덧없어서 흘러간 강물을 되짚어보는 것 만큼이나 뒤늦은 일이었다. 벌린 양팔이라거나, 서로를 마주안는 온기라거나, 맞닿는 심장소리를 잃어버린 아이는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능청을 부려 어른 흉내를 낼 수도 있었던 청년은 너덜너덜한 상태로 깔끔하게 웃으며 말한다.

"돌아가, 하츠토리. 약을 먹으면 두통도 가라앉겠지. …여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하지메는 긍정의 대답을 하고도 망설인다. 세오도아는 미간을 좁힌다. 불가해를 향해서.

"돌아가, 하츠토리."

손잡이를 당겨 문을 닫아버리는 듯한 목소리.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구축된다. 하츠토리는 그 무형의 거절을 천천히 인식한다. 잘근잘근한 기분인데 그걸 잘 말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날이 춥잖아." 상냥해보이는 웃음. 하지메는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돌아올거지."

"당연하잖아."

"없어지지 않을거지."

"물론이야~."

"그럼…. 응, 알겠어."

약을 먹고 쉬고 두통을 가라앉히고 당신에게서 거리를 둘게. 그럼 당신은 괜찮은거지. 뒤늦게라도 빠져버린 조각을 주워서 다시 채워넣어주는 거지. 하지메는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타박.

문득 뒤를 돌아본다. 세오도아는 아직 그 자리 그대로다.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무렵, 가벼운 손짓으로 내쫓겼다. 그대로 차분히 걸어나오며… 하츠토리 하지메는…… 왠지 눈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06

약 이백 년 뒤의 세상에서 아토 하루키는 세계 곳곳에 흩뿌려진 존재가 되었다 신의 증거를 대신하는 단말자는 어디에든 존재해야했던 것이다 세오도아는 그런 그를 가끔 만나러 와서 (혹은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추억 이야기를 나눈다. 아토 하루키는 그때마다 "그땐 좋았죠." 한 마디만 할 뿐이다.

#07

세오씨. 응? 팬케이크가 뭔가요? 레이지는 LDL에 합류한 이래 다양한 방향으로 그들 사이에 태풍을 일으키곤 했는데 정작 본인은 무엇이 일어났는지 눈치도 채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히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왠만한 일론 눈썹 하나 꿈쩍않는 세오도아의 공적도 있다 할 것이다

이번에도 세오도아는 놀랐다는 티를 조금도 내지 않으며 팬케이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레이지, 먹어보고 싶어? 설명을 끝맺으며 그렇게 물어보면 레이지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사온 (추정) 사네미츠가 거의 구르다시피 거실로 귀환했다

#08

아토 하루키는 꿈을 꾼다 택배가 도착하는 꿈이다 열어보면 진공포장 기기가 들어있다 하루키는 그걸 들고 오토와 루이를 찾아가 그에게 진공팩을 내민다 친우는 기꺼이 그 안에 들어가고 하루키는 진공포장 시작 버튼을 누르

깼다.

아토 하루키는 그걸 악몽으로 규정했다.

#09

일본의 장마는 길다. 아토 하루키는 먼 타지의 동생을 조금 안심시켜줄까, 하는 마음으로 푸른 수국 사진을 찍어보냈다. 금새 답장이 돌아왔다. 「수국 예쁘다!」 그 순간 핸드폰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황급히 주워들어 화면을 다시 본다. 도착한 메세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10

카노 아오구의 시체가 냉장고 안에 있다. 아토 하루키는 오늘은 계란 스크램블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란을 꺼냈다. 돌아보면 시체가 테이블 위로 이동해있다. "식사할 거니까 의자에 앉으세요." 요리를 끝내고보면 카노 아오구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져있다. "어디서 배운 예절이에요?"

아토 하루키는 익숙하게 죽은 몸을 뒤집어 정상적으로 앉히고 그 앞에서 식사를 시작한다. 카노 아오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의뢰는 7시엔 끝날 거에요. 그때까지 적당히 계세요. 어지르지 말고." 다음엔 토마토 달걀볶음을 할까. 하루키는 식사를 끝내곤 설거지를 물에 담갔다.

#11

카노 아오구가 커튼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아토 하루키는 그걸 객석에서 지켜봤는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대체 뭘 하는 건가요? 하루키가 묻자 그가 대답한다 이건 아주 약간의 막간극에 불과해 누군가는 이걸 관측하겠지 누군가가 누군데요? 카노 아오구가 먼 곳을 본다

"당신."

#12

아토 하루키는 저주받았는데 그건 네가 좀 고꾸라졌으면 좋겠다 같은게 아니라 네가 오래오래 고개 빳빳이 들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류였다 그래서 하루키는 저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저주의 주체에게 공양물을 바쳐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쯤되면 진짜 교활한게 누군지 명백하지 않은가

#13

사네미츠는 하루키가 택배를 보냈다고 했을 때 퍽 긴장했는데 그 꼴을 누가 보면 청부살인업자라도 집에 찾아오는 줄 알았을 것이다 얼마 뒤 도착한 택배를 뜯으니 안에서는 꽃으로 장식된 고체 방향제가 나왔다 다음에 갈 때 제대로 쓰는지 확인할거라는 메세지 카드를 보고 사네미츠는 조금 울었다

#14

하츠토리 하지메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라기보단 건반 누르기에 가깝다

사실 그건 두 명의 연주자가 함께

건반을 눌러야하는 곡이었고

하지메는 옆자리를 늘 비워두었지만

선율이 늦게나마 찾아오는 일은

없어서

연탄곡은 추락으로 끝을 맺는다

#15

이소이 레이지는 하루키의 꿈을 꾸는데

그곳은 새하얀 눈이 쌓인 설원이었고

아토 하루키는 거길 맨발로 걸었다

그러다 동상 걸려요 돌아오세요

하지만 하루키는 돌아오지 않는다

문득 레이지는 하얀 설원 위에

눈 밟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발목까지 눈에 잠겨있는데

#16 첫번째로_멘션온_캐릭터가_두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상황에서_세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대사를_한다

아침이었고, 사네미츠는 취재 차 츠바이크와 자리를 비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소이 레이지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래 이소이 레이지가 지녔던 이름을 받아낸 이름 모를 존재는) 욕실의 세면대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잘 닦인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다만 그 윤곽을 하나하나 뜯어볼 여유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본래 이름』이 떠오른 탓이었다.

떠오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인형, 『본래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의 얼굴과 이름, 그들의 목소리, 추억, 웃음소리, 손의 온기마저도 생생히 떠올랐다. 「이소이 레이지」는 그것이 마치 오랫동안 바닷 속에 가라앉아있던 시신이 물가로 밀려오는 것 같다고 느낀다. 결코 기껍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건 대체 어찌된 일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 「이소이 레이지」는 마른 손바닥으로 연신 얼굴을 문지르다 세면대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어제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자신의 모습이다. 동시에 어제의 자신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의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이소이 레이지」야."

욕실은 고요하다. 그 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차릴 정도로.

>[레이지]가 [시나노]의 상황에서 [니죠 류]와 [사네미츠]의 대사를 한다

사네미츠의 대사 조금 어레인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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